| 전성시대 / 이승권 버스를 기다리다가 정류장 옆에 쓸쓸히 서 있는 공중전화기가 눈에 들어온다. 지나치기만 했는데 요즘도 이용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지 궁금해하면서 잊고 있던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는다. 지금처럼 휴대전화기가 없던 시절. 집 밖에서 연락하려면 공중전화 외는 다른 방법이 별로 없었다. 급히 연락해야 할 때의 일이 무엇보다 추억 거리로 남는다. 누구나 다 그럴 터이다. 전화기 부스 앞에서 앞 사람이 온갖 이야기를 주절대며 대화가 길어지면 기다리는 사람들은 짜증이 났다. 뒷사람들이 눈총을 주기도 했다. 차례가 되면 반가운 마음이 컸다. 딸각딸각 동전 떨어지는 소리에 마음졸이며 앞사람처럼 말을 이어간다. 슬픈 소식, 반가운 소식, 오랜만에 전하는 안부 등 그 많은 사연을 전해주느라 공중전화는 밤낮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유용하던 공중전화는 휴대전화가 나오면서 기억에서 존재가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누군가에겐 필요할지 몰라서인지 영 없애지는 못한 것 같다. 휴대전화기가 잠시도 옆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요즘이다. 일상에서 전화기는 꼭 필요한 물건이지만 불과 50년 전에는 집 전화도 흔치 않았다. 대학을 나와 기업에 공채 시험을 치르고 합격 여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발표날. 전보가 도착하기도 전에 전신전화국으로 달려갔다. 시외전화를 신청해 놓고 기다렸다. 연결되었다는 직원의 신호에 얼른 수화기를 들고 합격 여부를 물었다. 합격 통지와 함께 연수 교육에 참여하라는 말에 초조하게 기다리는 엄마를 생각하며 뛸 듯이 기뻐하던 기억도 있다. 거기 비하면 공중전화는 한때 얼마나 편리한 기기였던가. 이제 그마저도 시대에 밀리고 있다. 귀퉁이에 제 전성시대를 보내고 한적하게 서 있는 공중전화기의 모습을 보며 사는 일에 대해서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한때의 전성시대는 있었다. 은퇴 후의 직장인은 마치 자기가 일의 중심인 것 같이 앞뒤 돌아볼 여유도 없이 뛰어다니던 기억도 있을 터이고, 사업가는 한창 잘나가던 시절을 떠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아쉬움의 한숨도 쉴 것이다. 현역에서 물러난 후에는 늘 아쉬움이 남는 게 인생사가 아닐까. 전성시대라는 제목으로 몇 년 전에 구두를 매개로 지은 자작시의 일부다. 광택 억누르는 소가죽 구두 한 켤레 어두운 신발장 안에 웅크리고 있다 반짝거리는 바닥을 밟아도 봤고 눈 큰 새들과 악수 할 때는 감춘 발톱 두께를 견주어 보기도 했다 한창 자존감 오르던 전성시대 뒤축까지 광내던 웃음도 가고 한껏 오버 깃 올리던 그런 한때도 이젠 스스로 잊으려 한다(중략) 어쩌다 외출 나갈 때 신발장 안의 구두는 윙크를 보내지만 발 편하다는 이유로 선택되는 운동화(하략) 세월의 흐름을 누가 거스를 수 있을까. 소가죽 구두처럼 때가 되면 자리를 비켜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제잘났다고 안하무인격으로 설쳐대는 이 시대의 정치인들도 언젠가는 별 볼 일 없게 된다. 심지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대국의 리더 앞에서는 힘의 논리에 모두 납작 엎드리지만, 그도 한세월이 지나면 뒷방 늙은이가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길가의 공중전화기처럼 잊혀 갈 것이다. 스마트폰이 나오고는 전화기 옆에서 남의 사정 엿듣는 재미도 사라지고 모든 대화가 제각각 주머니 속으로 은밀히 숨어든다. 집 전화기도 할 일이 줄었고 공중전화기는 거의 할 일이 없어졌다. 세월의 강물은 무엇이든 흘려보내고는 새로운 것을 싣고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던가.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의 의미가 헛된 말이 아님을 지금에 와서야 더욱 가슴 깊이 와 닫는다. 맡은 일의 발바닥이 나름 넓다고 여겨질 때 주위 사람들에게 좀 더 친밀했더라면 좋았을걸. 부모님 살아계셨을 때 더욱 살가웠더라면 아쉬움이 덜할까. 타고난 너울가지가 부족해서인지 유교적 가풍의 엄격함만 몸에 익힌 탓인지 왜 그리도 내심을 표현하는 일이 인색했을까. 늘 지난 뒤에 늦은 후회를 하는 범인凡人의 대열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뒤돌아본다. 이제부터라도 매사에 좀 더 잘 해보자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공중전화기는 지금 드문드문 찾아오는 사람조차 무척 반가우리라. 무언가 쓸쓸함이 지워지지 않는 전화기 옆에서 한때 나도 그랬던 것처럼 정신없이 바쁘던 너에게도 나처럼 수고 많이 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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