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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와 수필

어떻게 살 것인가? / 석인수

작성자이상목|작성시간26.06.11|조회수33 목록 댓글 0

어떻게 살 것인가? / 석인수

 

나이에 대한 반발이고 저항인가, 자기 부정이 강한 탓일까? 주변이나 보도를 보면서 70대 후반 나이면 나이가 꽤 많다고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를 보면 내가 그즈음에 있다. 나도 그 부류가 분명한데도 전혀 그런 동질감을 느끼지 않고 나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별꼴이고 망발이 분명하다. 시대에 뒤처진 것인지 세월을 늦게 따라가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이 연령대에 맞는 삶과 미래를 준비하며 살지 못하는 것 같다. 생각으로만 보면 아직도 나는 5, 60대 시절에 머물러 사는 것 같다. 내 생이 많이 남고 끝이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듯하다. 지금까지는 나이에 큰 관심이 없다. 잘하는 건지 잘못하는 건지 모르겠다. 무의식 속에 취해 사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날 밝아 눈 벌어지면 온종일 뭔가를 하느라 부단히 움직이며 산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무턱대고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하는 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있고 계획한 것을 한다. 젊어서는 직장에 매여 직무 수행이 일과였으나 퇴직 후에는 적당한 경제활동과 취미 생활이 일과다. 그 일을 매일 되풀이하며 지낸다. 반복되는 일상인데도 싫지 않은 이유가 있다. 하고 싶고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 때문인 것 같다. 어쩌다 낮잠이라도 한 번 자려면 그 시간도 아깝게 여겨 즐기지 못하는 성미다. 이런 지금의 삶이 꽉 찬 내 하루의 일과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선지 질리지도 않고 마음도 평안하고 보람차다. 세수는 괘념치 않지만, 자세히 살펴 가늠해 보면 용케도 몸은 나이를 아는 것 같다. 신체의 기능이나 정신작용을 보면 순발력도 떨어지고 둔해짐을 느낀다. 나이는 속일 수 없다더니 다 먹어도 나이는 먹을 일 아니라는 말이 실감 난다. 70 고개를 넘으면서는 해마다 다르고 모든 게 뒤지는 것 같은 의식을 지울 수 없다. 흐르는 세월 또한 고속이다. 어찌나 빠른지 작년인지 올핸지 잘 분간이 안 될 때가 많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몇 년 전 일인 게 다반사다. 나이만큼의 속도로 세월이 간다는 말이 실감 난다.

돌이켜보면, 나는 참 많은 짐을 진 자 되어 살아왔다. 누군들 그러지 않았겠는가마는 유달리 남다른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어깨에 메고 살아왔다. 짊어진 짐 때문에 조심조심 살얼음판을 걷듯 살았다. 그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가난의 짐, 가족 보살핌의 짐, 향학의 짐, 시도 때도 없이 사계절을 긴장 속에 근무해야 하는 직무의 짐 등 늘 벅차고 무거운 짐을 지고 메고 살아왔다. 한눈팔고 허투루 세월 보낼 겨를이 없이 불철주야不撤晝夜 긴장하며 살았다. 퇴직 전까지는 사는 게 긴장의 연속이었고 치열한 삶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내가 짊어진 짐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무겁던 짐은 결국 내 인생의 귀한 선물이 되었다. 삶의 거센 파도와 물결이 밀려올 때면 무거운 짐 때문에 쉽사리 떠내려가지 않고 잘 버틸 수 있었다. 버겁고 힘겨운 짐이지만 언젠가는 불원장래에 내려놓을 거라는 믿음으로 뚜벅뚜벅 호흡을 조절하며 앞만 보고 걸었다. 마침내 은퇴의 시기가 오고 짊어진 짐도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그런 삶의 보상인지 운 좋게도 퇴직 후는 점점 생활이 달라졌다. 아슬아슬했지만 아내의 번뜩이는 혜안의 덕으로 결국 탁월한 선택이 된 경제활동이 생활의 여유를 갖게 했고,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늘 감사하며 겸손한 자세로 하고 싶은 취미 생활과 운동을 하며 지낸다. 고진감래란 말이 실감 난다.

평생을 사는 삶이란 결국 자기와 싸움이다. 나의 가훈 첫 번째가 ‘극기로 최선을 다하자’이다. 다른 사람이나 주변의 환경, 여건이 아니라 진정 자기를 이기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길 수 없다. 최초로 에베레스트산 등정에 성공한 에드먼드 힐러리는 ‘내가 정복한 것은 산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했다.

내 생의 남은 삶이 얼마나 길지 모르지만, 지금 머물러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 것인가는 내게 더없는 소중한 일이다. 이 또한 한 번밖에 걷지 못할 길이기에 허송할 수 없다. 긴장을 늦추고 적당히 편하게 만사태평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보람을 찾고 주변과 후대에 유익을 남길 것인가는 철저히 자기 몫이다. 유종의 미란 말이 있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말처럼 지금부터가 노년 삶의 시작이다. 하나님 부르는 날을 나는 모르지만, 그날까지 보람되고 즐겁게 살리라.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부르시면 하던 일 멈추면 된다. 끝을 알면 미리 정리하고 매듭짓겠지만 그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다만 나는 나에게 오늘이 있음을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정육精肉 간에 노화가 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몸의 기능이 떨어진다. 하지만 노년에 꿈마저 버린 사람은 죽어지내는 거나 다름없다. 꿈과 희망을 지니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며 지낼 때 노화도 늦게 오리라 믿는다. 노년에는 모든 욕심의 유혹부터 뿌리쳐야 한다고 말한다. 나이 들음을 인정하고 젊은 시절 누렸던 욕심을 버리고 노후에 맞는 생활에 만족해야 한다. 매사에 자부심과 자신감,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세파를 견디며 평생을 살아온 노인의 경륜은 인생 교과서요 한 권의 책이다. 자기 비하를 하지 말고 지닌 노하우로 세상을 관조하며 지혜롭게 노년을 살 수 있다. 무위도식하며 쓸모없는 신세가 되면 낭패다. 일본의 주부들은 정년퇴직하고 집안에 죽치고 들어앉은 늙은 남편을 ‘누렛타오치바濡れた落ち葉, 젖은 낙엽’라고 부른다고 한다. 젖은 낙엽은 한번 눌어붙으면 빗자루로 쓸어도 바닥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늙은 남편을 부인이 밖으로 쓸어내고 싶어도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으니 부담스러운 존재라는 거다. 이처럼 최소한 젖은 낙엽의 신세는 되지 않아야 한다. 동고동락하며 해로한 아내에게 이런 대접을 받아서야 말이 되겠는가. 우아하고 고상하게 늙지는 못할망정 함께 살아온 아내에게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비극이다. 노년에 부부가 서로 소중히 여기며 아끼고 보듬고 살아야 마땅하다. 힘 빠지고 핏기 없는 푸석푸석한 몸뚱이를 부부 아니면 누가 살피고 어루만지겠는가. 무상한 세월 앞에 수척하게 말라 변해버린 모습을 보며 애잔해하며 애틋한 마음으로 부둥켜안아야 하지 않겠는가. 부부로 만나 남편 되고 아내 되어 산 질고의 삶이 얼마나 값지고 보배로운 삶인가. 늙으면 내 몸 하나도 가누기 귀찮은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만 움직일 힘만 있으면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어루만져야 한다. 부부 외에는 누구도 살뜰히 살필 사람은 없다. 온갖 풍상 겪고 살아온 부부가 아닌가. 늘그막인 인생의 종착역까지 함께하는 유종의 미도 부부가 거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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