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오월 / 이숙자
벌써 오월이다. 겨우내 눈과 귀가 시끄러워 텔레비전을 한동안 잠들게 했다. 째지는 유튜브 소리가 또 한몫을 하고 지나간다. 그것으로 스트레스, 바람 잘 날 없었다. 세월은 어느새 절반가량 바람처럼 날아가 버렸다.
아들 결혼 후 십육 년 지나 사십대 후반에 아기를 낳았다. 하늘이 주신 생명인 손자가 살아갈 세상은 꽃처럼 아름답고 물처럼 맑고 정직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길 간절한 바람이다. 두 번째 맞이하는 손자에 어린이날을 위해 꽃들이 만발하고 초록 물결이 가득한 꽃시장을 찾아가 좋아하는 노란 꽃을 찾았다. 들어서는 입구에서 프리지어가 반긴다. 하지만 적당한 것이 많이 있을 것 같아 에둘러 보았다. 비누로 만든 종이꽃, 카네이션, 장미, 모르는 꽃 이름도 있었다. 한데, 자꾸만 상큼하고 달달한 프리지어 향기에 끌려 다시 입구로 와서 다섯 묶음을 샀다. 이 꽃을 보고 얼마나 좋아할까 기뻐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들고 오는 동안 계속 행복하고 기뻤다.
돌아오는 길에 장난감 도매 집을 찾으러 다녔다. 두 곳에 모두 문이 잠기고 급매물로 비어 있었다. 오죽 힘들면 오월인데, 그 많은 장난감은 어디에 묻혀 있을까, 안타까운 마음과 허전한 마음으로 헤매다 생각해보니 원하지 않은 것을 사게 되면 만족스럽지 않을 것 같아 미리 며느리에게 물어보고 사야지 하고 백화점에 가서 구입할 생각으로 돌아왔다. 저녁 먹는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 느긋한 마음으로 소식을 물으니 평소의 목소리보다 당황한 목소리였다. 진작 전화를 못 드렸다면서 오늘 저녁 아버지 계신 남해, 친정에 다녀오겠다고 한다. 외손자를 보고 싶어 하는 외할아버지 뵈러 가는 것이라 나름 생각된다.
연휴가 길어서 다녀와도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운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태연하게 “잘 생각했다 아버지가 외손자 얼마나 보고 싶을까” 하고는 남해까지 가려면 장시간 운전 조심해서 다녀오라 했다. 하고는 전화를 내려놓았다. 기뻤던 마음이 순간 한숨으로 채웠다. 이것이 짝사랑이야 내 욕심으로 지금껏 짝사랑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참 동안 했다.
남편도 옆에서 통화 내용을 다 듣고는 슬그머니 뒤뜰 데크로 나갔다. 섭섭한 모양인 듯하다. 남편은 태연한 척하지만 느낌은 나와 같을 것이라 생각된다. 부부는 계속 말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눈치만 살피고 묶여 있는 프리지어 향기를 맡으며 속대에서 먼저 피어나는 봉오리를 세고 있었다.
프리지어꽃의 포장을 풀면서 이걸 어쩌지, 일주일 동안 못 견딜 것 같아 포기하고 꽃병을 찾았더니 남편은 뜨락에 놓여있는 유리병을 깨끗하게 닦아서 내 앞에 갖다 놓으면서 “여기다 하지” 한다. 고마웠다. 프리지어 향기로 우리 부부의 공간을 은은하게 채워주고 노란색은 따뜻한 에너지로 기분을 좋게 해주었다. 내 생각이지만 며느리는 남해까지 장시간 가면서 월말 바쁜 시간에 미처 나한테 전화 못 한 것에 대해 약간은 미안했을 것 같다. 미리 연락을 했으면 우리 부부의 긴 연휴의 꿈은 헛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늦었다. 부부는 당일에 다녀올 계획을 세워볼까 한다.
달력에 빨간 숫자가 꽤 길어 보인다. 보는 순간 어디로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간절해진다. 하지만 걱정을 품고 가야 할 나이가 되어 용기와 자신감이 떨어져 서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감동받을 만한 시간을 채울 수 있는 곳이 있을지, 속으로는 내심 동쪽으로 향했지만 그 또한 쉽지 않을 듯 미리 예약도 없이 떠나는 여행은 불안하다. 부부를 위해 기쁘고 즐거워야 하는데 생각이 다르다 보면 약간의 문제해결이 비합리적일 수도 있어 내비게이션만 믿고 가도 충분하지만 무엇이 걸림돌이 되는 걸까, 복합적이다. 나이 탓이다.
이 년 전 신생아를 돌보기 위해 주일마다 파주에서 서초동으로 거침없이 달려가고 했는데 지금은 피곤이 몰려와 열정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다행히 손자는 바빠질 것으로 예상하고 이제는 내려놓아 할 때가 곧 올 것 같다. 이미 나름대로 약속된 마음이지만, 남편도 스스로 다짐하며 나를 위해 위로하면서 설득하려 애쓴다. 이미 세월이 간만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 마는 놓고 싶지 않다. 가족은 소중하니까
미래는 비밀에 싸여 보이지 않지만 해맑게 웃으며 정답고 건강하게 사는 모습, 오늘이 가장 소중함을 즐기며 현실에 충실하면서 멋진 삶,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