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매 3인방 / 김혜정
눈 뜨면 바다를 볼 수 있는 남해 삼동면 지족마을에 터전을 잡은 지 벌써 두어 달이 지나갔다. 간판도 어설프고 홍보도 하지 않은 터라 동네 어르신들은 가게 입구에서 힐끗힐끗 쳐다보기만 하고 쉽게 들어오시지 않는다.
어느 날 70, 80대 어머니 세 분이 신기하신 듯 들어오시며 “여기는 도대체 뭐 하는데요?” 하면서 이리저리 살펴보셨다. ‘윤슬 타로’라고 적힌 간판을 한 달 정도 지켜보고는 너무 궁금하여 오늘은 꼭 한번 가보자 하신 것이다. 가게에 손님이 들어가는 것을 본 적도 없고, 매일 주인만 왔다 갔다 하는 게 이상했던 모양이다.
타로 상담이라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주 난감했다. 문득 화투가 생각나서 “어머니! 옛날에 화투로 하루 운세 보신 적 있으시죠?” 하고 물었더니 “있지, 있어. 우리가 젊었을 땐 화투 가지고 패를 떴지.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잘 맞아떨어졌거든.” 하고 한 분이 말씀하셨다. “타로라는 게 화투하고 비슷한 것인데요 이건 외국 화투 같은 걸로 운세를 보는 것이에요.”라고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러면 여기가 점집이가?”라고 물으시는데 더 이해시킨다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 “네”라고 대답을 해버렸다. 따뜻한 커피 믹스 한 잔씩을 드리고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고 어머니들은 궁금증을 해소하신 듯 다시 놀러 오겠다며 자리를 뜨셨다.
며칠 지나 ‘남해 마늘 한우 축제’ 시기가 되었다. 남해 1년 살이 버킷리스트에 축제 즐기기가 있었기에 처음 맞이하는 축제에 마음이 들떠있었다. 축제장으로 가기 위해 가게 문을 닫으려는 순간 3인방께서 들어오셨다. 읍에서 ‘마늘 한우 축제’ 하는데 안 가시냐고 물었더니 버스를 타고 읍으로 갈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어서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하셨다. 지금 갈려고 하는데 같이 가시자고 하니, 나이 든 사람들 데리고 가려면 힘들 텐데 괜찮겠냐고 물으셨다.
그렇게 하여 일명 번개 효도 관광이 시작되었다. 여행 가이드가 된 것 같아 마음이 설레였다. 초대 가수들 노래에 장단을 맞춰 따라 부르고, 손뼉을 치며 어깨를 들썩이며 흥이 고조에 달했다. 바라보는 내 마음이 얼마나 흐뭇하던지.
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먹거리 아닌가. 아이들처럼 아이스크림 하나씩 손에 들고 불편한 다리로 볼거리, 먹거리 쫓아다니신다고 다리 아픈 것도 잊은 듯했다.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10년 넘게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 생각이 나서 자꾸 마음 한쪽이 울컥울컥했다.
‘나무는 고요하려고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은 효도하려고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정말 틀린 말이 아니다. 이분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이 곧 내 어머니께 드리는 효도 같았다. 요양사들도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보살펴주고 있지 않은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주 오랜만에 즐겁고 행복했다며 늙은이들 데리고 다닌다고 수고했다고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다음 날 아침 가게 문을 열자마자 3인방 어머니들이 활짝 웃으시며 들어오셨다. 농사지은 푸성귀와 과일을 잔뜩 담은 봉지를 주신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을 받았다. 타로가 뭔지 우리도 한번 보자며 호주머니에서 만 원을 꺼내 테이블에 놓으셨다. 어제의 일이 고마워서 나에게 뭔가 도움이 되고 싶으신 것 같았다. 그 마음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르신들의 상담 내용은 몇 살까지 살 수 있는지였다. 사실 타로는 점도 아니고. 무속적 개념도 아니라서 타로로는 불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분들의 마음을 아는 터라 편하게 해드리고 싶어서 카드를 펼쳤다. 화려한 카드 그림에 신기해하면서 “내는 너무 오래 살면 안 된데이. 자식들한테 민폐다. 고마, 혼자 밥 해묵을 수 있을 때 까정만 사는 게 소원이다이.”
그 말씀에 나는 가슴이 에이는듯했다. 왜 어머니들은 평생 자식 걱정일까? 당신들 청춘을 가족을 위해 평생 희생하셨는데…. 나이 들어 힘들고 아프고 병들면 자식들에게 민폐가 될까 죽음 앞에서마저도 자식 걱정이라니! 다행히 예쁘고 화려한 타로 카드들만 나와서 긍정적 설명이 가능했다.
잠들기 전 지금까지의 일을 떠올려보았다. 남해살이를 한다고 했을 때 시골일수록 텃세도 심하고 타지에 온 사람을 달갑게 보지 않는다고 친구들이 걱정을 많이 했었다. 염려와는 달리 먼저 손도 내밀어 주시고, 내 마음도 고맙게 받고, 받은 것에 보답하고 싶은 진심도 통하였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이 가면서 걱정은 사라졌다.
귀농하여 이웃과의 갈등으로 시골살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 관계에는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된다, 나의 남해살이는 3인방 어머니들과 추억을 쌓으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갈매기 소리 들으며 오늘도 하루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