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 안경덕
남편의 성(姓)은 본관이 하나뿐인 청주 한가이다. 성씨(姓氏)가 같은 사람들을 남편은 전부 일가라고 한다. 내가 어쩌다 그 사람들을 칭할 때 종씨라고 하면 꼭 일가라고 되새겨준다. 아니 몇 번이나 일가라고 강조를 한다. 유별나다 싶다가도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한 민족의 뿌리는 똑같다. 같은 조상에서 성이 나뉘어질 뿐이다. 한 나무 둥치에서 큰 가지 잔가지가 뻗어 나가듯이. 자손이 번성하여 일가가 많은 집안이 큰 나무와 같다면, 일가가 적은 집안은 작은 나무와 같지 않을까.
우리 가게 앞길에는 커다란 나무가 많다. 그 쪽은 작은 야산을 끼고 있다. 여름이면 나무 아래 놓인 평상은 주민들의 쉼터다. 몇몇 노인들은 매일 장기나 바둑을 두기도 하고, 이런 저런 정담을 나누며 시간을 소일하신다. 어떤 날은 성으로 뿌리를 운운하며 서로가 더 나은 양반이라고, 뿌리가 더 깊다고 주장을 한다. 그들은 당신들의 성에 대한 애착과 긍지가 대단한 것 같다.
어릴 때 아버지도 그러셨다. 집성촌이었기에 이웃과는 별로 성을 가지고 왈가왈부 할 일이 없었다. 가끔 오셨던 외숙부들과 술상을 앞에 놓고 누가 한 수 위의 양반인지를 가지고 언쟁을 벌였다. 외숙부는 외가의 성은 쇠똥에 굴러도 양반이라며 우기셨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은근히 아버지 편이 되곤 했다.
딸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조선시대 때 중전의 성이 자기와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았다는 말을 자랑삼아 했다. 그때 나도 모르게 “그래. 너희 외갓집에도 임금께 받은 교지(敎旨)가 있다. 그것은 윗대 할아버지가 벼슬을 했다는 징표다.” 라고 하는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왜 그런 말이 스스럼없이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나도 은연중에 성에 대한 집착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한지에 싸인 그 교지를 신주 모시듯 하셨다. 큰 가방에 누렇게 바랜 여러 권의 족보(族譜)와 한시가 든 문집(文集) 몇 권이 들어 있었다. 그것을 선반에 고이 얹어 두셨다. 그 가방은 빛이 바래고 모퉁이가 다 낡고 닳아 볼품이라곤 없었다. 묵은 세월을 만날 안고 있었으니 가방인들 성하겠는가.
아버지는 친인척이 오면 마치 보물인양 교지를 꺼내어 보여주곤 하셨다. 글자 한 자 한 자를 일일이 설명하는 아버지의 얼굴이 정말 환하셨다. 지켜보던 할머니와 어머니도 미소를 지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교지는 아버지에게 보이지 않는 힘을 실어 주었다고 믿고 싶다.
내가 결혼하고 몇 달 후에 아버지는 다시는 못 올 길을 가셨다. 그 후 쭉 교지를 잊고 지냈다. 근 스무 해가 지나고 친정 집 거실에 교지가 든 액자가 달력처럼 붙어 있었다. 아버지를 다시 뵌듯하여 참으로 반가웠다. 애석하게도 아버지 사진이 없다. 교지가 아버지의 사진을 대신해 준다고나 할까.
부모님 기일에 우리 형제자매는 그 교지에서 아버지의 정성과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제사지낼 때 큰남동생이 축문과 지방을 쓴다. 축문을 읽는 동생의 뒷모습과 목소리가 아버지를 쏙 빼 닮았다. 그래서 해가 바뀌면 부모님 기일이 더 기다려지는지도 모르겠다. 교지는 형제 자매간에 만남의 징검다리가 되어주고, 돈독한 정이 솟아나게 하는 셈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다. 사람은 모두 성이 있다. 그럼에도 굳이 성으로 뿌리의 위아래를 찾는다면 통상 큰 나무만 좋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큰 것은 큰 대로 위엄과 넉넉함이 있고, 작은 것은 작은 대로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것이 나무인 것을. 사람의 성도 일가가 적고 많은 차이일 뿐이다.
가게 앞에는 길을 넓힌다고 일렬로 서 있는 나무뿌리 한쪽을 포클레인으로 무차별 잘라버렸다. 나무는 서른 살을 더 먹어 덩치와 키가 크다. 엉켜있는 뿌리가 대부분 드러나 안쓰럽다. 거기다 비까지 잦아 나무 뿌리 주변의 흙이 거의 떠내려갔다. 경사가 심하여 통째로 나무가 넘어질 것 같다. 급작스레 집을 덮칠까 불안하다.
나무의 혜택으로 누렸던 마음의 풍요를 잃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앞선다. 이러면서 나무의 아픔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무는 한쪽 뿌리가 잘려 나가 고통스러워하는데 나는 내게 올 득과 실을 셈하고 있다니. 이런 나를 나무는 무어라고 할까.
파헤쳐져 있는 나무들의 뿌리가 똑같아 보인다. 엉겨있는 모양새와 색깔까지도. 다만 나무 이름만 다르다. 모든 식물은 땅 밑에 뿌리를 내리고, 사람은 성이 뿌리가 아닌가. 나무가 태풍에 버틸 수 있는 것은 뿌리 덕이다. 어떤 일로 마음이 너무 아파 삶이 힘들 때가 더러 있다. 그때마다 부모 형제 자식을 떠올리며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기 위해 애를 쓴다. 자신을 지탱하게끔 하는 것은 뿌리의 힘이다. 성이 곧 구심점이 되어 주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 친정의 교지를 떠올린다. 군데군데 누렇게 변색되어 얼룩이지고 모서리가 찢겨 나간 것이지만 몇 백 년의 세월이 그 속에 있고, 아버지의 손때와 마음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뿌리는 집안의 내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