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하면 됐다
灘川 이종학
신검(神劍)이라 추앙받는 당대의 검객 사부를 만나 검술을 배우려고 한 젊은이가 심심 협곡을 찾아 들어간다. 사부의 가르침은 혹독했다. 검술 수련은 매일 피땀을 흘려야 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강도 높은 검도(劍道)의 가르침은 무서운 정신력과 인내력을 전제로 했다. 몇 년인가 수련을 계속하던 어느 날 사부는 사제를 앉혀놓고 엄숙하게 말했다. “인제 그만 하면 되었다. 하산하도록 해라. 내 검술은 모두 전수했느니라.”
우리가 잘 아는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인제 그만하면 되었다’라는 말은 어느 정도의 완성을 뜻한다. 학교 졸업장을 받고 학위 모자를 쓰는 것에 비유된다. 그러나 완전한 수련은 아니다. 내 검술은 다 가르쳤다고 전제한다. 검도 수련에는 한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박사는 학업의 끝이 아니라 전공분야에 한해서는 스승 없이도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어느 면에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학업의 시작일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를 이루며 산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숙명적으로 목적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생명이 있는 한 자의든 타의든 할 일을 찾아 심신을 작용해야 한다. ‘이만 하면 됐다’라고 멈춰야 할 때는 바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
우리 한민족은 매사에 “이만 하면 됐다.”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다. 지금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는 빨리빨리 문화가 바로 그 증표가 아닌가. 재빠른 능력, 불같은 성취 의욕의 소산이라고 자랑한다. 전쟁의 폐허에서 오늘의 경제 대국이 된 한국의 위상을 과시한다. 그러나 ‘이만하면 됐다’를 추구하고 강요하는 결과가 곳곳에서 서서히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5년 전 2008년 2월 한국의 국보 제1호 숭례문(남대문)이 한낮에 화마로 말미암아 사라지는 안타까운 광경을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목격했다. 정신병자의 어이없는 방화가 원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단 시인 안에 원형 그대로 훌륭하게 복원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의 저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한편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는 보람된 선언이었다. 그 후에도 정부는 숭례문 복원 공사의 진행 과정을 수시로 홍보했다.
과연 정부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다. 5년 3개월 만인 2013년 5월에 숭례문을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현대식 기계작업을 취하지 않고 전통방식을 고수했음을 자랑했다. 복원에 들어가는 재료도 전통기법을 사용했다는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러나 1년도 지나지 않아 불실공사임이 드러났다. 단청은 벗겨지고 기둥도 갈라졌다. 기와는 추위를 견디기 어렵다는 조사 결과가 세상을 아연케 했다. 복원공사의 예산 242억 원 가운데 홍보사업비 24억 원, 주변 정비에 38억 원을 소비하느라 정작 본 공사는 어이없게도 예산 부족을 겪어야 했다는 것이다.
‘ 이만 하면 됐다’가 아니라 아직, 아직도 멀었다는 미완의 숭례문을 어서, 어서 서둘러 공개한 결과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장인정신이 투철한 도편수라면 충분한 시간을 요구했으리라. 그따위 만만디가 될 말이냐며 무리하게 일정을 압박한 것은 바로 성과 지향에 함몰된 위정자의 위선적인 행태를 예감하기 어렵지 않다. 정부는 복원공사의 책임자인 문화재청장을 문책하는 것으로 면책하려 했지만, 이 불실공사의 여운, 빨리빨리 문화의 습성은 심각하다. 적당히 빨리를 당연시하는 한민족 의식이 몰고 오는 세계적인 불신은 나라 발전에 험악한 걸림돌이 될 게 뻔하다.
내가 중학생 때였다. 빨리 어른이 되기를 얼마나 열망했는지 모른다. 몰래 얼굴에 면도질하고, 까까머리에다 머릿기름을 바르고, 맨 목에 넥타이 매고, 담배를 꼬나 물고 거울 앞에 서서 뒷짐 지고 헛기침을 해댔다. 엉뚱한 호기심이 발동해서 이렇게 어른 행세를 흉내 냈다. 이런 같잖은 짓거리는 곧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이라는 어른들의 호통을 듣기 마련이었다. 당연히 머리에 피가 마르는 주어진 성장기를 앞당기려는 가당치 않은 성급함에 대한 꾸지람이었다. 정월 초하루에 떡국을 두 번 먹는다고 나이도 곱빼기로 먹는 일은 없다.
빨리 성취한 결과는 새로운 문제를 몰고 온다. 서둘러 공사를 마치고 나서 보수공사에 시달리는 정부 처사나 시제품을 미리 출시하고 나서 소비자의 아우성을 듣고 나서야 겨우 완제품을 내놓는 기업들을 한국에서는 자주 본다. 주어진 일을 무조건 빨리 처리하면 능력 있다고 인정하는 사회가 걱정이다. 천자도 떼지 못한 주제에 사서 삼경 속에서 놀자고 하는 꼴을 우리는 종종 본다. 자신이 무엇을 알며 무엇을 모르는가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게 바로 안다는 것이다. 반면 자신이 모르는 것을 모르는 사실이 바로 무지(無知)이다. 이런 지식인이 너무나 많다. 무식한 박사, 전공 이외 무엇이든 잘 알고, 할 수 있다고 만용을 과시하는 박사가 도처에서 사고를 일으키고 큰 피해를 준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달이 아니다.
“쉬운 길은 언제나 잘못된 길이다.” 커튼 콜(Curtain Call)이 한 말이다. 성숙이라는 말은 ‘이만 하면 됐다’라고 할 때까지 기다리는 자세를 뜻한다. 필요한 단계를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는 노력과 인내는 아름다운 성숙한 결과를 가져온다.<2013.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