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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타의문인들

당뇨병과의 동거 灘川 이종학

작성자이상목|작성시간26.06.21|조회수26 목록 댓글 0

 당뇨병과의 동거

                                                                                                                       灘川 이종학

내가 당뇨병과 동거한 지는 벌써 27년이나 된다. 1987년도 캐나다 이민 절차를 밟다가 신체검사에서 드러났다. 가족은 모두 이상이 없는데 나만 재검사하라는 캐나다 대사관의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당뇨병이었다. 떠날 준비를 이미 끝냈는데 큰 낭패였다. 나는 부랴부랴 친구가 내과 과장으로 있는 병원으로 갔다. “네가 한 번 혹이 날 줄 알었다구.”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나무라듯 말하더니 당장 혈당 검사부터 하자고 서둘렀다.

나는 술과 담배를 무척 즐긴 편이었다. 몸을 혹사하다시피 일 중독에 걸리기도 했다. 그래서 이 의사 친구는 만나기만 하면 병원에 와서 건강진단을 한번 받아 보자고 성화였다. 그렇게 무리하고서야 몸이 성할 리 없다고 걱정해 주었지만, 나는 마의 동풍이었다. 병원에 가면 틀림없이 무슨 병명이든 붙여 놓고 경고하리라. 당장 술·담배를 끊어라, 맵고 짜고 단 음식은 삼가라, 피로하지 않도록 푹 휴식을 취해라,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고 상투적인 경고와 위협으로 목을 조일 게 뻔하다. 팔자 늘어진 부자들처럼 흔들의자에 앉아서 음악감상이나 강태공처럼 낚시질하며 세월을 죽이라고 한다.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생겨도 그럴 처지가 아니기에 나는 병원을 한사코 피했다.

 

병원 검사 결과는 당뇨병이었다. 공복혈당과 식후혈당이 정상치를 넘었다. 의사 친구는 기회다. 싶었는지 당뇨병은 소리 없는 살인자라 전제하고 합병증이 얼마나 무서운지 일일이 예를 들어 겁을 잔뜩 쏟아놓고는 지체 말고 입원치료를 하란다. 당장 이민수속이 코앞에 걸렸으니 입을 악물고 절에 간 색시가 되어야 했다. 사람은 기분에 흔들리는 동물이라고 하더니 당뇨병 환자 꼬리표가 붙자마자 급속도로 몸에 이상이 찾아왔다. 어느 날 아침 별안간 멀리 있는 간판이 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안과에서는 당뇨병에 인한 망막 이상으로 근시가 왔으니 안경을 쓰란다. 겁이 더럭 났다. 의사 친구의 경고처럼 당뇨병 합병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피로감도 자주 오는 듯했다.

현대의학으로는 완치 불능인 당뇨병 환자로서 수수방관할 처지가 아니었다.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했다. 하루 날을 잡아서 나는 한강 변으로 갔다. 흐르는 강물을 처량하게 바라보면서 술과 담배와의 영원한 결별 의식을 거행했다. 진로소주 두 병을 비우는 동안 솔 담배 한 갑을 모두 태우고 나서 오래 손때 묻은 라이터를 강물에 멀리 내던졌다. 중독에 가까웠던 술과 담배를 일시에 확실하게 끊자면 비장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 천우신조였다. 이날 이후 없으면 못 산다고 여겼던 술과 담배를 조자룡이 칼 쓰듯 베어버렸다. 무엇보다도 이것들의 중독성 유혹이 내 몸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도 놀랐다. 주변에서는 작심삼일이 어디 가랴, 당연히 이전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언젠가 내가 나가던 교회에서 문제가 생겼던 적이 있다. 남전도회장에 선출된 나는 주일 예배가 끝나자 회원을 몽땅 끌고 동네 대폿집으로 들어갔다. 술 한 잔하면서 단합대회를 하자는 명목이었다. 이날 이후 동네에서는 주일에 술 퍼먹는 교회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나는 책임을 느끼고 담임목사에게 사의를 표했다. 그러나 담임목사는 오히려 나를 격려했다. 하나님이 언제든 당신에게서 술과 담배를 멀리하실 때가 올 것이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그래서 그 엄청난 결단이 이루어졌다고 지금도 나는 믿는다.

재차 신체검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가족보다 두 달 늦게 캐나다 이민 길에 올랐다. 그러나 입국하는 대로 당뇨병 센터에 가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때부터 나는 캐나다정부가 관리 보호하는 당뇨병 환자가 되었고 당뇨병에 관한 특별 교육을 거쳐서 인슐인 의존성 당뇨 병자로 구분되었다. 한 달에 한 번 당뇨병 센터에 출두해서 혈당치 측정과 체중 조절, 식사 관리 등 여러 가지 치료지침의 준수 상황을 일일이 체크 받았다. 내 건강을 위하는 일이거늘 마다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의료비 일체를 정부가 부담해 주니 감지덕지할 따름이었다.

이민 온 나라에서도 당뇨병을 고쳐 보겠다고 애를 쓰는데 당사자인 내가 멍청하게 앉아 있어서야 하겠는가. 당뇨병 센터의 지시에 따라 약물요법을 병행하면서 적당한 운동요법, 식사요법을 철저하게 지키려 노력했다. 그뿐 아니라 다른 치료방법도 열심히 찾았다. 그러고 보니 당뇨병 직효약이 천지에 널려 있었다. 산과 들과 바다에서 나는 물건은 모두가 당뇨병을 잡는 신약(神藥)이었다. “아직도 당뇨병으로 신음하십니까?” 당뇨병쯤이야 환절기에 가끔 앓는 고뿔 정도로 여긴다는 광고가 신문 잡지에 차고 넘쳤다. 이런 자연산 치료제를 먹고 완쾌했다는 당뇨 병자들의 치병(治病) 성공사례가 매일 지면을 메웠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도 이런 선전에 다이빙하듯 뛰어들었다.

 

별아 별것이 내 몸에 들어가도 당뇨병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진행성 성인병답게 서서히 합병증을 동반하고 진행을 멈추지 않았다. 멀쩡한 치아가 흔들리고 눈에 백내장이 생겼다. 그 밖에도 여러 합병증세가 나타났다. 복용하는 약의 가짓수는 점점 늘어났다. 합병증 예방약이 대부분인 처방 약을 조석으로 한 움큼씩 먹으며 하루 두 번 인슐린을 주입한다. 아편 중독자처럼 원해서 하는 짓이 아닌 터라 가끔 짜증이 난다.

 

언제부터인가 만성 당뇨병 환자인 나는 당뇨병과 아주 자연스럽게 동거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박멸이니 추방 같은 막말로 길길이 뛰며 반발했지만, 되레 호된 반격에 휘청거렸을 따름이다. 그렇다고 내가 항복한다, 백기를 들면 영원히 끝장이고, 화해하자, 사랑한다, 입에 발린 알랑방귀를 뀌자니 알량한 자존심이 용서치 않는다. 다스리려 용쓰지 말고 고운 정 미운 정 다독거리며 마음 편하게 동거하는 길이 상책이다. 비위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고 때로는 요강 단지 위하듯 모시면서 허허실실 살아간다. <2014.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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