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의 흰옷, 구엔 반 붕, 친구, 1986.
베트남은 1858년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에 접어들어, 1954년에 체결된 제네바 협정으로 인해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로 설 수 있게 되었더. 그러나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국토를 북위 17도를 경계로 분할하여 서로 다른 이념을 표방한 남과 북의 국가로 분단되었으며, 협정에 따른 공동 선거를 거부하자 남과 북의 정부 사이에 1955년부터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남쪽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미국이 전쟁에 개입해 막대한 무기와 경제력을 지원했지만, 1975년 미군의 철수로 인해 베트남이 완전한 자주 국가를 수립할 수 있었다. 근대 이후 식민지 경험과 해방, 그리고 서로 다른 체제로 분단과 전쟁을 치룬 과정은 한반도의 상황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반도는 전쟁이 일시 멈춘 휴전 상태로 분단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베트남은 전쟁을 끝내고 독립된 국가를 이뤘다는 결과가 다르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전쟁이 지속되던 1960년대 베트남 남부에 위치한 사이공을 배경으로, 당시 완전한 해방을 위해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이들의 사연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내용의 소설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서도 장래 교사나 간호사가 되기를 꿈꾸던 나(구엔 치 홍)를 작품의 중심 인물로 내세워, '나'가 학생 운동에 가담하면서 서서히 투쟁가로서의 면모를 다져가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아울러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당시 베트남의 민중들이 바라는 민주화에의 열정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립학교의 부족으로 난립한 사립학교의 운영자들이 교육보다 돈벌이에 치중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강압 통치를 행하던 정치 상황은 일견 독재정권이 통치하던 한국의 1980년대를 전후한 시대적 상황을 연상시키고 있다.
프랑스의 식민지 치하에서 독립투쟁을 하던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비민주적인 정권에 대항하여 학생운동을 전개하던 인물들의 굳건한 다짐이 작품에 고스란히 형상화되어 있다. 학생들의 움직임을 감시하여 밀고하는 역할을 맡은 자(프락치)가 등장하고, 이들의 활동으로 교사와 학생들이 투옥되어 전향이라는 명분으로 고문이 자행되었던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비민주적인 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학생운동에 투신했다가, 이른바 항전구(해방구)에서 학습을 받고 학생운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홍’(나)의 변화를 그려내고 있다. 항전구에 다녀온 후 누군가의 밀고로 인해 납치되다시피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 갇히면서, 미국으로의 유학을 미끼로 전향을 강요하던 관리들의 행태도 드러나고 있다.
끝내 전향을 거부하자, 온갖 고문을 가하면서 장소를 버꿔가며 4년 동안 옥중 생활을 견뎌내는 ‘홍(나)’의 형상은 당시의 실제 인물을 작품에 적용한 것이라고 한다. 가난을 벗어던지기 위해 교육을 받고 교사나 간호사를 꿈꿨던 평범한 학생이 비민주적인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헌신하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려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학생들이 주로 입었던 베트남의 전통 복장(아오자이)이 흰색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사이공에서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나’의 이야기를 <사이공의 희옷>이라는 제목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작품이 비록 사이공이라는 한 지역의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지만, 베트남 전쟁 국면에서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베트남 민중들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파악된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