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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와재림

환난 후 휴거의 위험성

작성자천향연|작성시간22.02.01|조회수169 목록 댓글 0

환난 전 휴거냐 환난 후 휴거냐

 

예전에는 이 두개의 주장에 차이가 실질적으로 어떤 마음 자세를 초래하는지를 생각해 본적이 없었으나 제 어머님의 인생 계획을 들으니 과연 이 두 휴거 사건 중에 어떤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에 따라 앞으로의 신앙인들의 삶의 길이 결정될 수 있다는 중요성을 띄고 있기에 부족한 글솜씨에도 이리 제 생각을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만약 환난 후 휴거라면

우리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산 너머 산을 하나 사서 지진와 여러 재앙을 견디는 방공호를 지어야 합니다. 작은 시골에 머물러도 좋다고 여기는 분들도 계실 수 있으나 우리나라는 땅이 협소하여 먼 지역의 물이 오염이 되면 시골에서도 식수를 구하기가 어려워 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가지 돈이 많이 듭니다. 만약 핵전쟁이라도 터지면 우리나라는 피할 곳이 없다고 봅니다. 그대로 굶어 죽는 일 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물론 광야의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다고는 할 수 없으나 대부분 순교를 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치적 태도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악한 좌파 정부와 싸우고 있습니다. 환난 후 휴거자들에게는 이런 싸움은 무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악해질 것이고 아무리 우리가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운다고 한들 패배하기 때문입니다.

휴거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아니 이들에게는 휴거의 조건이 아닙니다. 환난의 조건입니다. 환난의 조건이 무엇입니까?

환난이 일어날 것은 정해진 일이기 때문에 이 환난을 막아서는 일은 금지되어야 하나요? 그들은 의지론이 아니라 결정론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환난 전 휴거는 그 시기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시한부 종말론은 분명 이단입니다. 그 때와 시기를 아무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러나 이 반대 말도 성경에는 존재합니다. 도둑같이 임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열왕기하 2장 3절 :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비록 엘리야의 직접적인 답변이 아니라 그의 제자 엘리사의 답변이기는 하나 이 휴거 가 일어나기 전에는 그의 제자들 까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때와 시간은 알지 못하나 휴거의 때가 되면 우리는 알 것이다. 정보로 아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알게 된다는 뜻이다.

몇 날 몇 시로써 확정된 날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대로 그분의 명령에 따라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우다가 문득 오실 때가 된 것 같다는 직감에 의해 알게 된다는 뜻 입니다.

그러기에 환난 전 휴거 자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그분의 이름을 위해 투쟁할 수 밖에는 없는 겁니다.

그분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그분의 음성을 무시하며 살 수록 휴거와는 멀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 그분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제가 놓치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젯 밤 산책을 하면서 문득 환난 후 휴거의 위험성이 떠올라서 이렇게 적어 보았습니다.

시한부 종말론의 매력이 환난 후 휴거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바로 극단적인 현세 도피입니다. 싸울 이유도 견딜 이유도 없이 단순히 재앙 준비라는 단 하나의 단순한 목적만이 남아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는 주장이 환난 후 휴거 라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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