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닫힌 문 아래 한철의 수행이 걸려 있었다." 아파트 옥상에는 문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쓰는 문이고, 하나는 안 쓰는 문이다. 쓰는 문은 사람들이 오가며 수시로 열리고 닫히지만, 안 쓰는 문은 늘 닫혀 있다. 누가 열지도 않고, 딱히 열 이유도 없다. 그 문 난간 아래, 쪽파 한 망이 매달려 있다. 6월이 오면 쪽파는 땅에서 나와야 한다. 흙속에서 한참을 자라던 것들이 뿌리째 뽑혀 망에 담기고, 그렇게 여름 내내 거기 걸려 있다. 물을 달라고 보채지도 않고, 햇볕을 더 달라고 몸을 내밀지도 않는다. 아무도 찾지 않는 문 아래서, 그냥 매달려 있으면 된다. 가을이 오면 다시 땅으로 돌아갈 테니까. 처음엔 그게 좀 쓸쓸해 보였다. 아무도 여닫지 않는 문 아래, 뿌리 닿을 땅도 없이 허공에 걸려 있는 꼴이 꼭 밀려난 것 같았다. 저렇게 뽑혀 나와도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자꾸 보다 보니, 쓸쓸한 것만은 아니었다. 저건 방치가 아니라, 쪽파가 여름을 사는 방식이었다. 쪽파는 여름을 그렇게 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땅속에 있을 때처럼 새 잎을 밀어 올리지도 않고, 누가 돌봐주기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망 속에서 서로 몸을 기대고, 마른 줄기 몇 가닥을 밖으로 내민 채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누가 보면 다 끝난 것 같지만, 쪽파에게는 끝난 시간이 아니다. 여름이 길다고 느끼는 건 사람 쪽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도 가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뭔가를 해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로 가야 하는 것도 아닌 — 그냥 매달려 있어도 되는 시간. 그런데 우리는 그 시간을 대개 낭비라고 부른다. 쉬고 있으면서도 쉬는 것 같지 않아 불안해하고, 아무것도 안 한다는 말을 죄처럼 삼킨다. 조금만 멈춰 있어도 뒤처지는 것 같고, 아무 성과 없이 하루가 지나가면 괜히 마음이 헛헛해진다. 쪽파는 그런 거 없다. 허공에 매달려 있는 동안 조급하지 않다. 망 속에서 아무도 재촉하지 않고, 쪽파도 서두르지 않는다. 쪽파 앞에서 잠깐 걸음이 멈췄다. 지금 매달려 있는 것들을 생각했다. 끝내지 못한 일, 결정하지 못한 것들, 흐릿하게 넘어가고 있는 날들. 그것들이 전부 낭비처럼 느껴졌는데, 어쩌면 그것도 사는 방식일 수 있겠다 싶었다. 어떤 시간은 흙속이 아니라 허공에서도 지나가야 하는 법이니까. 닫힌 문 아래서 쪽파 한 망이 조용히 여름을 건너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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