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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 문학방

여름 수행(디카시 & 에세이)

작성자햇살(서울)|작성시간26.06.12|조회수26 목록 댓글 2

 

 







" 닫힌 문 아래
 한철의 수행이 걸려 있었다."





아파트 옥상에는 문이 두 개 있다하나는 쓰는 문이고하나는 안 쓰는 문이다쓰는 문은 사람들이 오가며 수시로 열리고 닫히지만안 쓰는 문은 늘 닫혀 있다누가 열지도 않고딱히 열 이유도 없다그 문 난간 아래쪽파 한 망이 매달려 있다.

6월이 오면 쪽파는 땅에서 나와야 한다흙속에서 한참을 자라던 것들이 뿌리째 뽑혀 망에 담기고그렇게 여름 내내 거기 걸려 있다물을 달라고 보채지도 않고햇볕을 더 달라고 몸을 내밀지도 않는다아무도 찾지 않는 문 아래서그냥 매달려 있으면 된다가을이 오면 다시 땅으로 돌아갈 테니까.

처음엔 그게 좀 쓸쓸해 보였다아무도 여닫지 않는 문 아래뿌리 닿을 땅도 없이 허공에 걸려 있는 꼴이 꼭 밀려난 것 같았다저렇게 뽑혀 나와도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그런데 자꾸 보다 보니쓸쓸한 것만은 아니었다저건 방치가 아니라쪽파가 여름을 사는 방식이었다.

쪽파는 여름을 그렇게 난다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땅속에 있을 때처럼 새 잎을 밀어 올리지도 않고누가 돌봐주기를 기다리지도 않는다망 속에서 서로 몸을 기대고마른 줄기 몇 가닥을 밖으로 내민 채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누가 보면 다 끝난 것 같지만쪽파에게는 끝난 시간이 아니다여름이 길다고 느끼는 건 사람 쪽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도 가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뭔가를 해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어딘가로 가야 하는 것도 아닌 — 그냥 매달려 있어도 되는 시간그런데 우리는 그 시간을 대개 낭비라고 부른다

쉬고 있으면서도 쉬는 것 같지 않아 불안해하고아무것도 안 한다는 말을 죄처럼 삼킨다조금만 멈춰 있어도 뒤처지는 것 같고아무 성과 없이 하루가 지나가면 괜히 마음이 헛헛해진다.

쪽파는 그런 거 없다허공에 매달려 있는 동안 조급하지 않다망 속에서 아무도 재촉하지 않고쪽파도 서두르지 않는다.

쪽파 앞에서 잠깐 걸음이 멈췄다지금 매달려 있는 것들을 생각했다끝내지 못한 일결정하지 못한 것들흐릿하게 넘어가고 있는 날들그것들이 전부 낭비처럼 느껴졌는데어쩌면 그것도 사는 방식일 수 있겠다 싶었다어떤 시간은 흙속이 아니라 허공에서도 지나가야 하는 법이니까.

닫힌 문 아래서 쪽파 한 망이 조용히 여름을 건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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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대자연 | 작성시간 26.06.12 쪽파의 여름나기 글 참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오늘도 즐겁고 건강하게 미소짓는 날이 되세요 .
  • 작성자피안화,충북 | 작성시간 26.06.13 요즘 심신이 많이 힘들셨나요? 아프지마세요? 알았지요?🙏 독자 피안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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