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살펴봅니다
숙주나물(녹두의 싹을 내어 먹는 나물)을 찾아보겠습니다.
1995년에
강인희 (전 명지대학교, 조리학)이 작성하였습니다(2023년 2월 7일 수정)
<<숙주나물은 원나라 때의 문헌인 ≪거가필용(居家必用)≫에 두아채(豆芽菜)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두아채는 녹두를 깨끗이 씻어서 물에 침지시켜 불린 뒤에 항아리에 넣고 물을 끼얹는다. 싹이 한 자쯤 자라면 껍질을 씻어내고 뜨거운 물에 데쳐 생강·식초·소금·기름 등을 넣고 무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숙주나물 만드는 법과 같다. 따라서 우리의 숙주나물은 원나라와의 교류가 많았던 고려 때에 들어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숙주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조선시대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력이 전한다. 세조 때 신숙주(申叔舟)가 단종에게 충성을 맹세한 여섯 신하를 고변(告變)하여 죽게 하였다.
그래서 백성들이 그를 미워하여 이 나물을 숙주라 이름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숙주나물로 만두소를 만들 때 짓이겨서 하기 때문에 신숙주를 이 나물 짓이기듯이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한다.>>
그래서 실제 표준어인 '녹두나물' 대신에 '숙주나물'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침투하였는지 찾아 보았습니다.
1. 2026.6.8 삼성서울병원(일원동) 점심 식사 메뉴에도 '숙주나물' 이라고 표시(사진 참조)하고 있습니다.
2. 2026.6.9 05:37 KBS TV <내고향 스페셜>에서 메기국밥 재료(사진 참조>를 설명하면서 '숙주'를 넣는다고 설명합니다.
3. 2026.6.10 연합뉴스 보도입니다
<<롯데마트, '초저가' 식재료 출시…숙주나물 980원·순두부 690원
(서울=연합뉴스) 정수연 기자 = 롯데마트는 초저가 자체 브랜드(PB) 식재료 제품을 출시한다고 10일 밝혔다.>>
4. 위키백과에서는 "숙주나물은 녹두를 시루 같은 그릇에 담아 물을 주어서 싹을 낸 나물이다. 조선시대 문인 신숙주의 이름에서 따왔다".
5. 나무위키에서는 <<녹두 의 싹을 내어 먹는 나물 . 취식 물 만 주면 크기 때문에 한국 에서는 1봉지에 천원, 일본 에서는 대용량이 500원 이내일 정도로 매우 저렴하다. 일상생활에서는 급식 등 대규모 인원의 식단에서 단골 식재료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사상에도 올라간다.>>라고 각각 정의하고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숙주나물」 항목 수정·보완 요청 제안서
수신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위원회 귀중
안녕하십니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우리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국가적 학술 자산으로서 국민과 연구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백과사전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에 「숙주나물」 항목에 수록된 일부 내용에 대하여 사실관계 재검토 및 수정·보완을 요청드리고자 합니다.
현재 해당 항목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숙주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조선시대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력이 전한다. 세조 때 신숙주(申叔舟)가 단종에게 충성을 맹세한 여섯 신하를 고변(告變)하여 죽게 하였다.”
그러나 위 서술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며, 학술백과사전의 객관성과 정확성을 위해 다음과 같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사육신 사건의 직접 고변자는 김질(金礩)과 그의 장인 정창손(鄭昌孫)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역사를 찾아서
<제537편>
무신들, 세조에게 반기를 들다
방송 : 2015년 2월 8일(일) 00:05~01:00 (한민족방송)
*인서트-5. 테입<370> 강문식
(03:02 세조라는 국왕 자체가 집권 방법이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기존연구에서도 세조 왕권의 정통성의 취약성, 취약한 부분들을 지적 하고 있고, 세조 본인도 상당히 콤플렉스가 있었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더 민감하게 반응을 할 수 있었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왕권에 대한 도전 이런 부분들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그러한 측면에서 이 부분을 좀 더 강력하게 대응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실제 유배형 됐다가 곧바로 석방을 하기 때문에 실제 유배를 갔다라고 보기도 어려운 측면도 있긴 있는데.03:50)
<해설> 더구나 정창손은, 성삼문 등의 단종복위 모의에 가담했던 김질의 장인으로서, 사위를 데리고 세조에게 달려가서 그 거사 계획을 밀고함으로써, 세조의 왕권 유지에 지대한 공을 세운 공신 중의 공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 한 마디를 꼬투리 삼아서 유배형까지 내렸으니, 다른 신료들에 대한 경고 효과는 충분히 거둔 셈이지요.
저작자 표시컨텐츠변경비영리
『세조실록』 등 관련 사료에 따르면 단종 복위 계획은 김질의 밀고를 통해 세조에게 알려졌으며, 신숙주가 이를 직접 고변하였다는 명확한 기록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일부 연구에서는 신숙주가 관련 정황을 알고 있었으나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는 해석까지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숙인의 조선가족실록
지조 대신 현실 택했으나 밀고자는 아니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6.03.06 00:10
세조의 충신 신숙주와 그 가족들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462년(세조 8) 영의정에 오르기까지 신숙주에 대한 세조의 총애는 극진했다. “신숙주는 나의 위징(魏徵)이요” “내가 신숙주의 어짊을 알아보고 뽑아 써서 이렇게 되었으니, 사람 알아보는 밝음이 있다 하겠다.” 당태종을 인의(仁義)의 정치로 이끈 명재상 위징을 신숙주에 비유한 것이다. 신숙주는 정치가이자 행정가, 군사 전문가이자 학자로, 최고 권력자의 참모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조선시대 현실 정치에서 신숙주만큼 영향력을 끼친 신하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 왜 그는 나라에 공헌한 위대한 업적을 덮어버리고도 남을 역사적 조롱거리가 되었는가.
역사 반복된다면 어떤 선택을
경기도 의정부 구성마을에 있는 신숙주의 묘. [사진 이숙인]
신숙주는 친구 성삼문과 박팽년의 단종복위 모의를 미리 알았지만 전해지는 이야기와는 달리 어디에도 발설하지 않았다. 친구에 대한 마지막 예의로 보인다. 성삼문이 “신숙주는 내 친한 친구지만 죽어야만 한다”고 한 말을 보면 그는 원래 사육신과 노선을 달리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를 변절자로 부르는 것은 과도해 보인다. 다만 집현전의 옛 친구들은 사람됨의 가치를 선택함으로써 육신과 멸족의 형벌에 처해졌다. 반면에 신숙주는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가족을 온전하게 했고, 후손 가운데 더러는 시대의 인재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누구나 한번은 죽는 인생에 같은 역사가 반복된다면, 나는 어떤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숙주가 여섯 신하를 고변하여 죽게 하였다”는 표현은 역사적 사실을 단정적으로 왜곡할 우려가 있습니다.
둘째, 숙주나물 명칭의 유래에 대한 설명 역시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현재 널리 알려진 “신숙주 때문에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민간에 전승된 설화 또는 속설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문헌에서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불렀다는 확실한 기록은 쉽게 확인되지 않으며, 현재까지 알려진 자료를 살펴보면 일제강점기 이후 문헌에서부터 ‘숙주나물’이라는 명칭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숙주나물 명칭을 신숙주와 직접 연결시키는 설명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후대에 형성된 민간어원설(民間語源說) 또는 전승으로 소개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해당 항목의 집필 과정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드립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학계와 일반 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권위 있는 학술 자료입니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과 전승·설화를 명확히 구분하여 서술하는 것이 필요하며, 해당 항목을 집필한 연구자와 편찬진께서 관련 사료와 연구 성과를 다시 검토하여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내용으로 수정·보완해 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형태의 서술이 보다 적절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숙주나물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전한다. 그 가운데 하나로 세조 때의 권신 신숙주와 관련된 민간 전승이 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사료는 충분하지 않다. 또한 사육신 사건의 직접 고변자는 일반적으로 김질과 정창손으로 알려져 있어 신숙주가 사육신을 고변하였다는 통설은 역사적 검토가 필요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역사·문화 백과사전으로서 학문적 엄정성과 공공성을 더욱 높여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바쁘신 가운데 본 제안을 검토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26년 ○월 ○일
제안자 : ○○○
연락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