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당잡고(秋堂稿) 1권
남정록(南征錄) 상권
옥침도인(玉枕道人) 저(著)
*渡銅雀津遇雨口拈
동작나루를 건너다가 비를 만나 입으로 읊조리다
【을해년(乙亥年; 1875) 봄에 이엉으로 지붕을 얽고[葺屋] 겸배(輩)는 월호(月湖)
가 베낀 두 시를 당호(堂戶)에 붙였다. 바로 창려(昌黎)3)의 횡강사(橫江詞)와 청련(靑
蓮)4)이 왕륜(汪倫)과 이별한 시였다. [당호에 붙여놓은 두 수의 시는] 먼 곳으로 떠나
이별을 근심하는 내용으로 집안에서 편안히 지내는 것과는 합당하지 않았다. 그런데
몇 달 지나지 않아 임금의 명을 받고 멀리 남쪽으로 떠나게 되었으니, 이 어찌 이러한
일을 예견한 것이 아니겠는가? 동작진 머리에서 비를 만나니 이런저런 생각이 일어
났는데, 마침내 걸어가며 회포를 서술하였다.[乙亥春, 葺屋, 輩貼月湖所寫二詩于堂
戶, 卽昌黎橫江詞及靑蓮別汪倫詩也. 離憂遠行, 不合於居室之安. 未幾月承命南行, 豈其讖
耶? 渡頭遇雨, 陟然想起, 遂步以述懷.]】
銅雀津頭迎 동작나루 머리에서 노 저으며 맞이하니
滿江風雨怒濤生 온 강에 비바람과 성난 물결 일어나네.
內裏緘書言不敢 품 속의 봉한 편지 감히 말할 수 없어
靑衫猶帶繡衣行 암행어사 행차5)에 되려 푸른 적삼 둘렀네.
3) 창려(昌黎) :당나라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한유(韓愈, 768~824)를 가리킨다.
4) 청련(靑蓮) : 당나라의 낭만주의 시인인 이백(李白, 701~762)을 가리킨다.
5) 암행어사 행차 : 원문은 수의행(繡衣行)인데 암행어사의 행차를 가리킨다. 신헌구(申獻
求)는 1875년 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의 비밀스러운 편지를 받았는데, 대
원군은 성 밖에 나간 뒤 열어 읽어보라고 명하였다. 신헌구가 성 밖에 이르러 편지를 열
어보자, 먼 변방으로 내려가 한동안 세상과 절연한 채 한가롭게 살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에 그는 해남에 내려와 5년 동안 지내게 되었고, 이후 1880년 봄에 상경할 수 있었다.
추당잡고(秋堂) 1권 │ 53
舟泊南堤上路行 배가 남쪽 언덕에 닿고 길에 올랐건만
家人隔水尙聞聲 강 건너 집안사람들 목소리 여전히 들려오네.
平安好去平安在 평안히 잘 가세요. 편안히 잘 있거라
回首重言不盡情 고개 돌려 거듭 말해도 마음을 다할 수 없다네.
*冒雨登南嶺
비를 무릅쓰고 남태령6)을 오르다
藍風吹雨滿車 남풍7)이 불어와서 비가 쏟아지더니
嶺路層登出半空 남태령 길 층층이 올라 공중으로 나왔네.
回首都門千樹綠 도성 문으로 고개 돌려 보매 천 그루 나무 푸르니
聖君知在五雲中 성군께서는 오색 빛 구름8) 속에 계심을 알겠네.
*宿果川邑店
과천의 읍점에서 유숙하다
濕霧蒸雲夜未淸 습한 안개와 구름은 밤이 되도록 개지 않고
縣樓殘角五更聲 현루의 나팔 소리 오경9)을 알리네.
家人念我應無寐 집안사람들 내 생각에 응당 잠들지 못할 텐데
最是孤燈白髮兄 외로운 등 밝힌 백발의 형님이 가장 그러하리라.
*遲遲臺
6) 남태령 :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언덕인 남태령을 가리킨다.
7) 남풍(藍風) : 비남풍(藍風)의 준말로 질풍, 폭풍을 뜻한다. 불교에 따르면 이 세계는 비
남풍이 한번 불면 모든 것이 흩어져 사라진다고 한다.
8) 오색 빛 구름 : 오운(五雲)은 오색의 채운으로, 주로 임금의 거처를 상징하는 말이다.
9) 오경(五更) : 새벽 4시부터 6시까지의 시간을 가리킨다.
54 │ 국역 추당잡고(秋堂稿)
지지대10)
南望隋城十里臺 수성11) 남쪽으로 십리 떨어진 누대를 바라보니
昔年此遲回 옛날 임금[정조]의 행차 이곳에서 머뭇거렸다네.
龍千乘非爲樂 용기12)와 천승13)은 즐거움을 위함이 아니니
誰識先王有至哀 선왕께 지극한 슬픔이 있다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過華城
화성14)을 지나다
隋城宮闕鬱蔥籠 수성의 궁궐을 빽빽하게 에워싼 곳에
仙仗巡遊御路通 선장15)이 순행하시던 어로가 통하였네.
春雨百年堤柳大 백 년 내린 봄비에 제방의 버드나무 커다랗고
夕陽十里渚蓮紅 석양 비치는 십여 리 물가에는 연꽃 붉다네.
閭閻耆老遺恩澤 여염집의 늙은이들에게도 은택을 내리고
10) 지지대(遲遲臺) :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 화성시 융릉)에
참배를 하러 갈 때, 아버지의 묘가 내려다보이는 데도 묘까지 가는 시간이 너무 더디
게 느껴져 “왜 이리 더딘가”하고 한탄하였다. 또, 참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지대 고개를 넘으면서 더이상 아버지의 묘가 보이지 않아, 그리워하는 마음에
안타까워하며 이 고개에서 눈물을 흘리며 한참 지체하였다고 한다. 이에 임금의 행차
가 늦어지는 곳이라 하여, ‘느릴 지(遲)’자를 두 번 붙여 지지대라고 부른다.
11) 수성(隋城) : 경기도 수원(水原)의 다른 이름이다.
12) 용기(龍) : 용기(龍)는 두 마리 용이 날아오르는 형용을 그린 깃발로, 임금의 행차
에 쓰이는 의장(儀仗)의 하나이다.
13) 천승(千乘) : 주(周)나라 때에는 전쟁이 일어나면 사두마차(四頭馬車)를 동원하는데 마
차 한 대를 1승(乘)이라고 하여 총 100인의 군사 및 지원 인력이 소속되어 있다. 천승
의 나라는 이러한 마차 1천 대(약 100,000명의 병력)를 동원할 수 있는 제후국을 지
칭하는 말이다. 여기에서는 임금의 행차에 동원에 많은 수레를 가리키는 것이다.
14) 화성(華城) :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성곽으로 1796년에 축조되었다.
15) 선장(仙仗) : 임금의 의장(儀仗)을 가리키는 말이다.
추당잡고(秋堂) 1권 │ 55
營幕儲胥久事功 군영의 막사와 울타리16)는 오래 일한 공이라네.
像想先王經始日 선왕께서 사업을 시작한 날을 상상하니
寢園常在孝心中 침원17)에는 늘 효성스러운 마음 있다네.
*店舍述懷 二首
점사에서 회포를 적다 2수
單車羸馬炎程 수레 한 대에 파리한 말 매고 뜨거운 길을 나서
十載重御史名 10년 만에 외람되이 어사의 이름 차지했네.
天意微深臣不識 하늘의 뜻은 은미하고 깊어 신은 알 수 없지만
一身無罪是爲榮 이내 몸에 죄 없음이 바로 영화롭다고 하겠네.
野店荒茅月易沈 거친 띠로 덮은 들판의 점사엔 달이 쉬이 지고
離騷讀盡五更深 이소18)를 다 읽으니 오경의 밤 깊도다.
沅湘日夜滔滔水 원상19)은 밤낮으로 도도하게 흐르니
正是屈原憂國心 바로 굴원이 나라 걱정한 마음이라네.
*振威途中
진위로 가는 도중에
赫赫日方午 빛나는 해는 정오를 가리키고
悠悠路轉艱 아득한 길은 점점 힘들어지네.
16) 울타리[儲胥] : 군중(軍中)에 둘러친 울타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17) 침원(寢園) : 제왕(帝王)이나 제후(諸侯)의 무덤을 이르는 말이다.
18) 이소(離騷) : 초(楚) 나라 굴원(屈原)이 간신의 모함으로 임금에게 쫓겨나 나라를 사랑
하는 마음과 울분을 참지 못하여 지은 장편의 서정시다. 이(離)는 조(遭), 소(騷)는 우
(憂)의 뜻으로 근심을 만났다는 뜻이다.
19) 원상(沅湘) : 원수(沅水)와 상수(湘水)를 가리킨다. 굴원은 소인들의 참소를 입어 조정
에서 쫓겨나 초췌한 몰골로 이곳을 유랑하였다. 시인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있음
을 의미한다.
56 │ 국역 추당잡고(秋堂稿)
野橋橫斷壑 들 다리는 끊어진 골짜기에 놓여있고,
官閣倚殘山 관아는 나지막한 산에 기대었네.
晩樹蟬聲亂 저물녘 나무에는 매미 어지럽게 울고,
晴沙鷺夢閒 갠 모래톱엔 해오라기 한가롭다네.
天風吹我袂 바람이 내 소매로 불어오더니,
千里一旬還 천 리를 열흘 만에 돌아왔다네.
*宿素沙 曉起書懷
소사에서 묵고 새벽에 일어나 회포를 적다
荒村月落曙光侵 황폐한 마을에 달 지니 새벽빛 잦아들고
回首天門深 대궐20)로 고개 돌리니 자욱함 깊도다.
夜氣初醒旋壹鬱 밤기운 처음 깨어나 몹시 울적하지만
明星欲透復重陰 밝은 별빛 비쳐 중음을 회복21)하려네.
生憎犬虛跡 빈 자취에 으르렁대는 개소리 얄밉고
不忿飛蚊惱睡心 나는 모기 잠 설치게 해도 성나지 않네.
願得身成鳳翼 부디 이내 몸에 난새와 봉새의 날개 돋아나
遙登闔啓煩襟 멀리 궁궐 문22)에 올라 임금 마음 풀어드렸으면.
*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