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부름을 받고 돌아가려고 송파(松坡; 이희풍)와 무민(无悶; 이희 면) 및 최(崔; 최병교), 위(魏; 위계채) 등 여러 사람과
작성자신성복(하양)작성시간26.06.16조회수2 목록 댓글 0*承召將還 松坡无悶及崔魏諸人齊會 舒■1140) 卽庚辰上元夜
임금의 부름을 받고 돌아가려고 송파(松坡; 이희풍)와 무민(无悶; 이희
면) 및 최(崔; 최병교), 위(魏; 위계채) 등 여러 사람과 함께 모여 술을 마
시며 흉금을 털어놓으니, 곧 경진년(庚辰年, 1880) 상원 밤이었다
鳳書初下伴靑春 임금의 부름을 받아 청춘들과 함께하니
樽酒相看桂影新 술잔 기울이며 달빛 아래 서로 바라보네.
欲我歸時茹苦我 나 돌아가려 하니 씀바귀 먹는 것 같고
送人今夜盡情人 이별하는 오늘 밤 모두 정 넘친다네.
留他梅竹孤園裏 저 매화와 대나무 외로운 정원에 남겨두고
鎖却衡第一水濱 강가의 초가집 문은 닫아걸었네.
江南雲樹外 강남의 아득한 구름과 나무 저편에서
也應携手夢來親 꿈속에서 손을 잡고 만나리라.
*夜宿石梯院酬崔魏兩人
석제원1141)에서 묵으며 최(崔)와 위(魏) 두 사람에게 답하다
東風回雪漲寒樽 동풍에 눈 날려 찬 술잔에 가득 차고
雁去長洲見爪痕 기러기 떠난 모래톱엔 발자국만 보이네.
前程那忍別 아득한 앞길 생각하니 이별을 어이 견디랴
與君今夜宿山村 오늘 밤은 그대와 함께 산촌에서 묵노라.
*登黃峙
황치에 오르다
1140) ■ : 이 글자는 보이지 않으나, ‘懷’로 짐작되어 번역하였음.
1141) 석제원(石梯院) :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평리 원기마을 일대로, 해남읍과 강진
방면에서 각각 올라오는 길이 만나는 지점이다.
추당잡고(秋堂) 2권 │ 411
春風驛路雨初晴 역로에 봄바람 불고 비 처음 개어
一上黃山大眼明 황산에 한 번 오르니 눈 크게 열리네.
萬里天淸雲捲處 구름 걷힌 만 리 맑은 하늘 아래
阿那知是漢陽城 저곳이 한양성임을 이제야 알겠네.
*途中憶松坡
도중에 송파(松坡)를 추억하며 읊다
蕭蕭白髮晩相知 희끗한 백발이 되어 늦게 서로 알았건만
流水高山又別離 흐르는 물과 높은 산에서 또 이별하네.
長道定無能忘日 먼 여정엔 반드시 잊을 날 없겠지만
餘年未有更逢期 남은 삶에 다시 만날 기약은 할 수 없구나.
寒鍾古寺花生懶 차가운 종소리 옛 절에 꽃마저 게으르게 피고
暮帆殘村月到遲 저물녘 돛단배 초라한 마을에 달빛 늦게 오네.
爲問江南憔悴客 묻노니 강남의 초췌한 나그네가
還從誰坐細吟詩 이제 누구와 함께 앉아 시를 읊어야 할까.
*過公州
공주를 지나며 읊다
千年百濟古熊津 천 년 백제의 옛 도읍 웅진이여
雙樹城高錦水濱 쌍수성1142) 높이 금강 가에 솟았네.
1142) 쌍수성 :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백제의 왕성인 공산성을 가리킨다. 백제 때는 웅진
성(熊津城), 고려 때는 공산성(公山城), 조선 때는 ‘쌍수성(雙樹城)’ 또는 ‘쌍수산성(雙
樹山城)’으로 불렸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2.5㎞다. 특히 공산성 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것은 이괄의 난이다. 인조는 이괄의 난을 피해 공산성에 머물렀으며, 이괄
의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머물던 곳의 두 나무, 쌍수(雙樹)에 정 3
품 벼슬을 내렸다.
412 │ 국역 추당잡고(秋堂稿)
幕府承平多暇日 막부는 태평성대라 한가한 날 많아
綺羅香散冶遊春 화려한 옷 향기 흩날리며 봄놀이 즐기네.
【길에서 충청도 관찰사[錦伯]이 유람하는 행차를 만났는데, 기녀들도 출발하였다.[路
逢錦伯出遊, 娼妓發行.]】
*寄和无
무민에게 화답하여 부치다
三尺龍泉送遠裝 삼척 용천검1143)으로 멀리 떠나는 길 전송하니
片心留與我朋良 한 조각 마음 나의 벗 그대에게 남기네.
湖雪古宅群書富 호숫가 눈 덮인 옛집에 여러 책 가득하고
海樹春園一夢長 바닷가 봄 동산의 한바탕 꿈이 길구나.
携袖臨川談逝水 소매 걷어 강가로 가서 흐르는 물 이야기하고
廻車覓路歎斜陽 수레 돌려 길 찾으며 지는 해를 탄식하네.
芳洲杜若持難贈 향기로운 언덕의 두약1144) 가져다주지 못해
翹首南天已杳茫 남쪽 하늘 우러러보니 이미 아득하구나.
1143) 용천검 :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楚) 나라의 명검(名劍). 구야자(歐冶子)와 간장(干將)
이 함께 만든 세 자루 가운데 하나로, 남북조시대 진(晉) 나라의 뇌환(雷煥)이 예장
(豫章)의 풍성(豊城) 땅속에서 얻었다는 고사가 전함. 원래는 용연검(龍淵劍)으로 불
렸으나 당(唐) 나라 고조의 휘(諱)인 ‘연(淵)’을 피하여 용천(龍泉)이라 하였다. 여기
에서는 지식인의 절개와 품격, 벗과의 우정, 그리고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고자
하는 이상(理想)을 상징하는 의상(意象)으로 볼 수 있다.
1144) 두약 : 향초로, 『초사(楚辭)』 등에서 군자를 상징하거나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
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