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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자료실

우리나라 삼국시대 이후 역사에서 핵심 31개 장면 중 2개 장면에 '보한재와 혜원'이 등장합니

작성자신성복(하양)|작성시간26.06.17|조회수4 목록 댓글 0
<신병주의 라이벌로 읽는 한국사 (2026년)>의 머릿말과 171~181쪽과 315~326쪽을 살펴 봅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이후 역사에서 핵심 31개 장면 중 2개 장면에 '보한재와 혜원'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우리 종친님들은 자긍심(自矜心) 을 갖고? "떳떳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책임감"을 갖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1.
<<역사를 보다 흥미롭게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는 라이벌을 통해 그 시대와 사건, 인물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1453년 계유정난 과정에서 수양대군과 김종서가 대립했는데, 이때 충신의 길을 택한 성삼문과 공리(功利)의 길을 택한 신숙주의 선택은 이후 조선 사회의 핵심 이념이 된 의리와 실리의 갈등으로 형태를 바꿔 반복되었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김홍도와 신윤복, 도적의 대명사로 칭해지는 홍길동과 장길산의 라이벌 관계를 비롯하여............... 라이벌 관계로 엮어서 보다 흥미롭게 역사를 이해하는 시각을 제공하였다.>>
이 책의 우리나라 역사 속의 31개 라이벌 장면 중에서 2개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모습' 입니다'
그래서 한 번 들여다 봅시다.
<장면 15---죽음을 택한 성삼문과 현실을 택한 지식인 신숙주의 엇갈린 운명>
<<집현전(集賢殿)은 세종이 학문 연구를 위해 궁중에 설치한 기관으로 '현명한 학자들이 모인 집'이라는 뜻이다. 성삼문, 신숙주,정인지,박팽년,정창손 등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집현전에 들어왔고 ............신숙주가 1417년생, 성삼문이 1418년생이니 둘은 한 살 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글 창제 과정을 거치면서 돈독해졌다.한글은 1443년 12월에 창제되었지만, 3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1446년 9월, <훈민정음>을 반포했다........
마침내 절호의 기회는 왔다.1456년 6월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자리에서 세조는 단상에서 왕을 호위하는 특별 경호원 '별운검'을 세우기로 했다. 그는 성삼문의 아버지인 성승과 유응부를 적임자로 지목하였다. 거사의 주동자들이 직접 세조를 제거할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거사는 실행되지 못했다. ........... 거사에 가담한 김질이 장인 정창손에게 계획을 누설했고, 정창손은 곧장 사위를 데리고 세조에게 고변 사실을 알렸다.........
신숙주를 '숙주나물'로 비난한 내용은 숙종 대에 단종이 복권되고, 성삼문 등이 사육신으로 충신의 상징이 되면서 그 반대편에 섰던 인물들에 대한 도덕적 응징으로 생겨난 표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신숙주(훈구파. 勳舊派)는 세조의 대표적인 참모였지만, 사림파(士林派) 영수 김종직이 그의 문집 <보한재집>의 서문을 써줄 만큼 학자.관료로서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처럼 신숙주는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인물이었다........
특히 세조 대부터 성종 대까지 민족 문화의 최고 주역인 신숙주에게 가혹한 '불명예'가 붙여진 것은 분명 억울한 측면이 있다.................그러나 최근에는 관료이자 학자로서의 신숙주를 재평가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2.
<장면 15---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김홍도(1745~1806?)와 신윤복(1758~?)은 조선 문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원 라이벌이다. 김홍도는 .........다양한 그림을 남긴 조선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화가이다. 반면 세련된 필치로 남녀 간의 애정을 그린 그림으로 유명한 신윤복은 그의 생애는 잘 몰라도 그의 그림이 인쇄된 그림엽서나 달력 한 번 보지 못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의 그림은 조선시대 보다는 현대에 와서 더욱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신윤복에 대한 기록은 많이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 신한평에 대한 자료는 꽤 남아 있는 편이다. 그는 도화서 화원으로 첨절제사를 지냈으며 , 영조.정조.순조 초년까지 궁중의 자비대령화원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는 특히 초상화와 속화(俗畵)에 빼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려실기술에는 신한평의 이름이 정선.강세황.김홍도.심사정 등과 나란히 기록되어 있어, 그림을 잘 그렸던 화가였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신한평은 당대 최고의 화원들만이 그릴 수 있는 어진(御眞), 즉 왕의 얼굴을 세 차례나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조는 영조의 어진을 세 차례나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조는 영조가 어진을 10년마다 1본씩 모사(模寫)했던 것을 본받아, 자신도 그 뜻을 받들려고 했다. 이때 신한평은 어진을 모사하는 일을 담당하였는데 김홍도도 이 작업에 참여하였다.(정조실록 1781년 8월 26일)..................
신한평은 이후에도 화원으로서 각종 시상의 혜택을 받았다. 중인(中人) 집안에서는 대대로 직업이 세습되므로 신윤복 또한 일단 아버지의 대를 이어 화원 화가가 되었지만 그는 구속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그림을 그렸다................................................
당시 도화서는 한양의 중심가인 윤종가와 광통교 인근에 위치해 있었다. 중촌이라 불린 광통교 부근은 당시 부유한 기술직 중인과 양반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그들은 이곳에서 풍악을 울리며 유흥을 즐겼다. 일부 사람들은 향락에 빠져 기방(妓房)을 장악하기도 하였는데,  신윤복의 그림에 기녀나 한량, 하급 잡직(雜職) 관료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광통교가 도화서 근처에 있어서인지 ,  이곳에는 여러 그림을 파는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다양한 그림을 파는 가게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림을 사는 수요도 꽤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곳에서 신윤복의 그림을 팔았다면, 제일 인기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이전에 접하지 못했던, 남녀의 애정 표현 등을 과감하게 그려낸 신윤복의 그림에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그의 강렬하고 댜양한 색채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김홍도가 정조의 총애를 받고 지방의 수령으로 임명된 데 비하여,  신윤복은 화원으로서의 활동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도화서 화원을 그만두고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 
  화원 집안의 가풍 속에서 어려서부터 그림을 접하고 그 능력을 발휘한 신윤복은 틀에 밖힌 도화서 화원의 길을 선택하는 대신에  자신의  성정(性情)에 충실하여 그림을 그렸다. 
특히 여성과 일상(日常)이라는 분야에서 최고의 수준을 보였고, 자신의 그림에 조선 후기 역사의 일부분을 고스란히 남겨 놓았다.   기존의 틀에서 일탈한 화원 신윤복이 있었기에 조선 후기 풍속사는 더욱 풍요로워졌다.  ..........................
    김홍도는 1806년쯤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신윤복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김홍도에  기록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반해 신윤복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당시 사람들은 김홍도의 재능은 알아봤지만,  신윤복의  세계는 조망하진 못했던 듯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두 사람의 예술은 모두 조선을 대표하는 미학(美學)으로 남았다.  이는 결국 방향성이 뚜렸한 걸작(傑作)은 시간이 지나도 시대를 넘어 그 가치가 증명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
3.
2026.4.30 <史기꾼들>로 물의를 일으켰던 'JTBC', 중앙이보  등 중앙그룹 관련 동아일보 보도( JTBC 부도 위기…업계도 술렁 ‘대금 지급 문제없나’ . 2026.5.15)입니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제작 업계도 비상이다. JTBC를 비롯한 중앙그룹 주요 계열사 5곳이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관련 업계가 동요하고 있다.
홍정도 중앙그룹 부회장은 15일 임직원에게 보낸 입장문을 통해 “그동안 경영진은 자금 경색과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고 그룹의 경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안을 모색해 왔지만, 누적된 재무 부담에 자본시장 경색이 장기화하면서, 부득이하게 금일 JTBC, 콘텐트리중앙, 메가박스중앙, 중앙홀딩스, 중앙피앤아이가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JTBC'는 이날 오후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개시 신청을 했다고 공시했다. JTBC는 지난 12일 만기가 돌아온 206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막지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이었다.


 
 
*******2026.5.12 <JTBC <史기꾼들 (최태성.설민석.심용환.썬킴)> 관련 불공정 방송 심의 요청> 을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신문고(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에 제출하였습니다. 그러나 2026.6.15 그 심의 결과를 확인하였더니   아직 '심의 중'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의 통보가 부적정하면 감사원에 심사청구를 할 예정으로 심사청구서를 작성하고 있으니  여러  종친님들은 관련 자료나 문헌 등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4. 2026.4.5 카톡에 올린 경기도 양평군 양평문화원에서 발간한 <국역 추당잡고(秋堂襍藁). 신헌구 저>입니다.






 
 
2026.6.19~20 지리산을 탐방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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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 라이벌로 읽는 한국사 (2026년)>의 머릿말과 171~181쪽과 315~326쪽을 살펴 봅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이후 역사에서    핵심 31개 장면 중  2개 장면에 '보한재와 혜원'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자긍심(自矜心)과 아울러 "떳떳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책임감"을 갖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1.

<<역사를 보다 흥미롭게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는 라이벌을 통해 그 시대와 사건, 인물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1453년 계유정난 과정에서 수양대군과 김종서가 대립했는데, 이때 충신의 길을 택한 성삼문과 공리(功利)의 길을 택한 신숙주의 선택은 이후 조선 사회의 핵심 이념이 된 의리와 실리의 갈등으로 형태를 바꿔 반복되었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김홍도와 신윤복, 도적의 대명사로 칭해지는 홍길동과 장길산의 라이벌 관계를 비롯하여............... 라이벌 관계로 엮어서 보다 흥미롭게 역사를 이해하는 시각을 제공하였다.>>

이 책의 우리나라 역사 속의 31개 라이벌 장면 중에서 2개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모습' 입니다'

그래서 한 번 들여다 봅시다.

<장면 15---죽음을 택한 성삼문과 현실을 택한 지식인 신숙주의 엇갈린 운명>

<<집현전(集賢殿)은 세종이 학문 연구를 위해 궁중에 설치한 기관으로 '현명한 학자들이 모인 집'이라는 뜻이다. 성삼문, 신숙주,정인지,박팽년,정창손 등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집현전에 들어왔고 ............신숙주가 1417년생, 성삼문이 1418년생이니 둘은 한 살 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글 창제 과정을 거치면서 돈독해졌다.한글은 1443년 12월에 창제되었지만, 3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1446년 9월, <훈민정음>을 반포했다........

마침내 절호의 기회는 왔다.1456년 6월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자리에서 세조는 단상에서 왕을 호위하는 특별 경호원 '별운검'을 세우기로 했다. 그는 성삼문의 아버지인 성승과 유응부를 적임자로 지목하였다. 거사의 주동자들이 직접 세조를 제거할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거사는 실행되지 못했다. ........... 거사에 가담한 김질이 장인 정창손에게 계획을 누설했고, 정창손은 곧장 사위를 데리고 세조에게 고변 사실을 알렸다.........

신숙주를 '숙주나물'로 비난한 내용은 숙종 대에 단종이 복권되고, 성삼문 등이 사육신으로 충신의 상징이 되면서 그 반대편에 섰던 인물들에 대한 도덕적 응징으로 생겨난 표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신숙주(훈구파. 勳舊派)는 세조의 대표적인 참모였지만, 사림파(士林派) 영수 김종직이 그의 문집 <보한재집>의 서문을 써줄 만큼 학자.관료로서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처럼 신숙주는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인물이었다........

특히 세조 대부터 성종 대까지 민족 문화의 최고 주역인 신숙주에게 가혹한 '불명예'가 붙여진 것은 분명 억울한 측면이 있다.................그러나 최근에는 관료이자 학자로서의 신숙주를 재평가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2.

<장면 15---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김홍도(1745~1806?)와 신윤복(1758~?)은 조선 문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원 라이벌이다. 김홍도는 .........다양한 그림을 남긴 조선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화가이다.  반면 세련된 필치로 남녀 간의 애정을 그린 그림으로 유명한 신윤복은 그의 생애는 잘 몰라도 그의 그림이 인쇄된 그림엽서나 달력 한 번 보지 못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의 그림은 조선시대 보다는 현대에 와서 더욱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신윤복에 대한 기록은 많이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 신한평에 대한 자료는 꽤 남아 있는 편이다.

 

 

3.

2026.4.30 <史기꾼들>로 물의를 일으켰던 'JTBC' 등 중앙그룹 관련 동아일보 보도( JTBC 부도 위기…업계도 술렁 ‘대금 지급 문제없나’ . 2026.5.15)입니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제작 업계도 비상이다. JTBC를 비롯한 중앙그룹 주요 계열사 5곳이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관련 업계가 동요하고 있다.

홍정도 중앙그룹 부회장은 15일 임직원에게 보낸 입장문을 통해 “그동안 경영진은 자금 경색과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고 그룹의 경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안을 모색해 왔지만, 누적된 재무 부담에 자본시장 경색이 장기화하면서, 부득이하게 금일 JTBC, 콘텐트리중앙, 메가박스중앙, 중앙홀딩스, 중앙피앤아이가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JTBC는 이날 오후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개시 신청을 했다고 공시했다. JTBC는 지난 12일 만기가 돌아온 206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막지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이었다.

 

 

*******2026.5.12 <Jtbc <史기꾼들> 관련 불공정 방송 심의 요청> 을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신문고(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에 제출하였습니다. 그러나 2026.6.15 그 심의 결과를 확인하였더니 '심의 중'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의 통보가 부적정하면 감사원에 심사청구를 할 예정이니 종친님들은 관련 자료나 문헌 등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4. 2026.4.5 카톡에 올린 경기도 양평군 양평문화원에서 발간한 <국역 추당잡고(秋堂襍藁). 신헌구 저>입니다.

추당잡고(秋堂􁯐稿) 1권
남정록(南征錄) 상권
옥침도인(玉枕道人) 저(著)

가. *渡銅雀津遇雨口拈
동작나루를 건너다가 비를 만나 입으로 읊조리다

【을해년(乙亥年; 1875) 봄에 이엉으로 지붕을 얽고[葺屋] 겸배(􂃆輩)는 월호(月湖)
가 베낀 두 시를 당호(堂戶)에 붙였다. 바로 창려(昌黎)3)의 횡강사(橫江詞)와 청련(靑
蓮)4)이 왕륜(汪倫)과 이별한 시였다. [당호에 붙여놓은 두 수의 시는] 먼 곳으로 떠나
이별을 근심하는 내용으로 집안에서 편안히 지내는 것과는 합당하지 않았다. 그런데
몇 달 지나지 않아 임금의 명을 받고 멀리 남쪽으로 떠나게 되었으니, 이 어찌 이러한
일을 예견한 것이 아니겠는가? 동작진 머리에서 비를 만나니 이런저런 생각이 일어
났는데, 마침내 걸어가며 회포를 서술하였다.
[乙亥春, 葺屋, 􂃆輩貼月湖所寫二詩于堂
戶, 卽昌黎橫江詞及靑蓮別汪倫詩也. 離憂遠行, 不合於居室之安. 未幾月承命南行, 豈其讖
耶? 渡頭遇雨, 陟然想起, 遂步以述懷.]】
銅雀津頭􁎇􀬨迎 동작나루 머리에서 노 저으며 맞이하니
滿江風雨怒濤生 온 강에 비바람과 성난 물결 일어나네.
內裏緘書言不敢 품 속의 봉한 편지 감히 말할 수 없어
靑衫猶帶繡衣行 암행어사 행차5)에 되려 푸른 적삼 둘렀네.
3) 창려(昌黎) :당나라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한유(韓愈, 768~824)를 가리킨다.
4) 청련(靑蓮) : 당나라의 낭만주의 시인인 이백(李白, 701~762)을 가리킨다.
5) 암행어사 행차 : 원문은 수의행(繡衣行)인데 암행어사의 행차를 가리킨다. 신헌구(申獻
求)는 1875년 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의 비밀스러운 편지를 받았는데, 대
원군은 성 밖에 나간 뒤 열어 읽어보라고 명하였다. 신헌구가 성 밖에 이르러 편지를 열
어보자, 먼 변방으로 내려가 한동안 세상과 절연한 채 한가롭게 살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에 그는 해남에 내려와 5년 동안 지내게 되었고, 이후 1880년 봄에 상경할 수 있었다.
추당잡고(秋堂􁯐􀟘) 1권 │ 53
舟泊南堤上路行 배가 남쪽 언덕에 닿고 길에 올랐건만
家人隔水尙聞聲 강 건너 집안사람들 목소리 여전히 들려오네.
平安好去平安在 평안히 잘 가세요. 편안히 잘 있거라
回首重言不盡情 고개 돌려 거듭 말해도 마음을 다할 수 없다네.
*冒雨登南􃮟嶺
비를 무릅쓰고 남태령6)을 오르다
藍風吹雨滿車􄗖 남풍7)이 불어와서 비가 쏟아지더니
嶺路層登出半空 남태령 길 층층이 올라 공중으로 나왔네.
回首都門千樹綠 도성 문으로 고개 돌려 보매 천 그루 나무 푸르니
聖君知在五雲中 성군께서는 오색 빛 구름8) 속에 계심을 알겠네.
*宿果川邑店
과천의 읍점에서 유숙하다
濕霧蒸雲夜未淸 습한 안개와 구름은 밤이 되도록 개지 않고
縣樓殘角五更聲 현루의 나팔 소리 오경9)을 알리네.
家人念我應無寐 집안사람들 내 생각에 응당 잠들지 못할 텐데
最是孤燈白髮兄 외로운 등 밝힌 백발의 형님이 가장 그러하리라.
*遲遲臺
6) 남태령 :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언덕인 남태령을 가리킨다.
7) 남풍(藍風) : 비남풍(􅍫藍風)의 준말로 질풍, 폭풍을 뜻한다. 불교에 따르면 이 세계는 비
남풍이 한번 불면 모든 것이 흩어져 사라진다고 한다.
8) 오색 빛 구름 : 오운(五雲)은 오색의 채운으로, 주로 임금의 거처를 상징하는 말이다.
9) 오경(五更) : 새벽 4시부터 6시까지의 시간을 가리킨다.
54 │ 국역 추당잡고(秋堂􁯐稿)
지지대10)
南望隋城十里臺 수성11) 남쪽으로 십리 떨어진 누대를 바라보니
昔年􁮑􁪪此遲回 옛날 임금[정조]의 행차 이곳에서 머뭇거렸다네.
龍􅀗千乘非爲樂 용기12)와 천승13)은 즐거움을 위함이 아니니
誰識先王有至哀 선왕께 지극한 슬픔이 있다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過華城
화성14)을 지나다
隋城宮闕鬱蔥籠 수성의 궁궐을 빽빽하게 에워싼 곳에
仙仗巡遊御路通 선장15)이 순행하시던 어로가 통하였네.
春雨百年堤柳大 백 년 내린 봄비에 제방의 버드나무 커다랗고
夕陽十里渚蓮紅 석양 비치는 십여 리 물가에는 연꽃 붉다네.
閭閻耆老遺恩澤 여염집의 늙은이들에게도 은택을 내리고
10) 지지대(遲遲臺) :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 화성시 융릉)에
참배를 하러 갈 때, 아버지의 묘가 내려다보이는 데도 묘까지 가는 시간이 너무 더디
게 느껴져 “왜 이리 더딘가”하고 한탄하였다. 또, 참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지대 고개를 넘으면서 더이상 아버지의 묘가 보이지 않아, 그리워하는 마음에
안타까워하며 이 고개에서 눈물을 흘리며 한참 지체하였다고 한다. 이에 임금의 행차
가 늦어지는 곳이라 하여, ‘느릴 지(遲)’자를 두 번 붙여 지지대라고 부른다.
11) 수성(隋城) : 경기도 수원(水原)의 다른 이름이다.
12) 용기(龍􅀗) : 용기(龍􅀗)는 두 마리 용이 날아오르는 형용을 그린 깃발로, 임금의 행차
에 쓰이는 의장(儀仗)의 하나이다.
13) 천승(千乘) : 주(周)나라 때에는 전쟁이 일어나면 사두마차(四頭馬車)를 동원하는데 마
차 한 대를 1승(乘)이라고 하여 총 100인의 군사 및 지원 인력이 소속되어 있다. 천승
의 나라는 이러한 마차 1천 대(약 100,000명의 병력)를 동원할 수 있는 제후국을 지
칭하는 말이다. 여기에서는 임금의 행차에 동원에 많은 수레를 가리키는 것이다.
14) 화성(華城) :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성곽으로 1796년에 축조되었다.
15) 선장(仙仗) : 임금의 의장(儀仗)을 가리키는 말이다.
추당잡고(秋堂􁯐􀟘) 1권 │ 55
營幕儲胥久事功 군영의 막사와 울타리16)는 오래 일한 공이라네.
像想先王經始日 선왕께서 사업을 시작한 날을 상상하니
寢園常在孝心中 침원17)에는 늘 효성스러운 마음 있다네.
*店舍述懷 二首
점사에서 회포를 적다 2수
單車羸馬􁪄炎程 수레 한 대에 파리한 말 매고 뜨거운 길을 나서
十載重􄻲御史名 10년 만에 외람되이 어사의 이름 차지했네.
天意微深臣不識 하늘의 뜻은 은미하고 깊어 신은 알 수 없지만
一身無罪是爲榮 이내 몸에 죄 없음이 바로 영화롭다고 하겠네.
野店荒茅月易沈 거친 띠로 덮은 들판의 점사엔 달이 쉬이 지고
離騷讀盡五更深 이소18)를 다 읽으니 오경의 밤 깊도다.
沅湘日夜滔滔水 원상19)은 밤낮으로 도도하게 흐르니
正是屈原憂國心 바로 굴원이 나라 걱정한 마음이라네.
*振威途中
진위로 가는 도중에
赫赫日方午 빛나는 해는 정오를 가리키고
悠悠路轉艱 아득한 길은 점점 힘들어지네.
16) 울타리[儲胥] : 군중(軍中)에 둘러친 울타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17) 침원(寢園) : 제왕(帝王)이나 제후(諸侯)의 무덤을 이르는 말이다.
18) 이소(離騷) : 초(楚) 나라 굴원(屈原)이 간신의 모함으로 임금에게 쫓겨나 나라를 사랑
하는 마음과 울분을 참지 못하여 지은 장편의 서정시다. 이(離)는 조(遭), 소(騷)는 우
(憂)의 뜻으로 근심을 만났다는 뜻이다.
19) 원상(沅湘) : 원수(沅水)와 상수(湘水)를 가리킨다. 굴원은 소인들의 참소를 입어 조정
에서 쫓겨나 초췌한 몰골로 이곳을 유랑하였다. 시인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있음
을 의미한다.
56 │ 국역 추당잡고(秋堂􁯐稿)
野橋橫斷壑 들 다리는 끊어진 골짜기에 놓여있고,
官閣倚殘山 관아는 나지막한 산에 기대었네.
晩樹蟬聲亂 저물녘 나무에는 매미 어지럽게 울고,
晴沙鷺夢閒 갠 모래톱엔 해오라기 한가롭다네.
天風吹我袂 바람이 내 소매로 불어오더니,
千里一旬還 천 리를 열흘 만에 돌아왔다네.
*宿素沙 曉起書懷
소사에서 묵고 새벽에 일어나 회포를 적다
荒村月落曙光侵 황폐한 마을에 달 지니 새벽빛 잦아들고
回首天門􁯨􁯨深 대궐20)로 고개 돌리니 자욱함 깊도다.
夜氣初醒旋壹鬱 밤기운 처음 깨어나 몹시 울적하지만
明星欲透復重陰 밝은 별빛 비쳐 중음을 회복21)하려네.
生憎􄚐犬􃠿虛跡 빈 자취에 으르렁대는 개소리 얄밉고
不忿飛蚊惱睡心 나는 모기 잠 설치게 해도 성나지 않네.
願得身成􁮑鳳翼 부디 이내 몸에 난새와 봉새의 날개 돋아나
遙登􄌛闔啓煩襟 멀리 궁궐 문22)에 올라 임금 마음 풀어드렸으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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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承召將還 松坡无悶及崔魏諸人齊會 舒■1140) 卽庚辰上元夜
임금의 부름을 받고 돌아가려고 송파(松坡; 이희풍)와 무민(无悶; 이희
면) 및 최(崔; 최병교), 위(魏; 위계채) 등 여러 사람과 함께 모여 술을 마
시며 흉금을 털어놓으니, 곧 경진년(庚辰年, 1880) 상원 밤이었다
鳳書初下伴靑春 임금의 부름을 받아 청춘들과 함께하니
樽酒相看桂影新 술잔 기울이며 달빛 아래 서로 바라보네.
欲我歸時茹苦我 나 돌아가려 하니 씀바귀 먹는 것 같고
送人今夜盡情人 이별하는 오늘 밤 모두 정 넘친다네.
留他梅竹孤園裏 저 매화와 대나무 외로운 정원에 남겨두고
鎖却衡第一水濱 강가의 초가집 문은 닫아걸었네.
􁫪􄶳江南雲樹外 강남의 아득한 구름과 나무 저편에서
也應携手夢來親 꿈속에서 손을 잡고 만나리라.
*夜宿石梯院酬崔魏兩人
석제원1141)에서 묵으며 최(崔)와 위(魏) 두 사람에게 답하다
東風回雪漲寒樽 동풍에 눈 날려 찬 술잔에 가득 차고
雁去長洲見爪痕 기러기 떠난 모래톱엔 발자국만 보이네.
􁫪􄶳前程那忍別 아득한 앞길 생각하니 이별을 어이 견디랴
與君今夜宿山村 오늘 밤은 그대와 함께 산촌에서 묵노라.
*登黃峙
황치에 오르다
1140) ■ : 이 글자는 보이지 않으나, ‘懷’로 짐작되어 번역하였음.
1141) 석제원(石梯院) :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평리 원기마을 일대로, 해남읍과 강진
방면에서 각각 올라오는 길이 만나는 지점이다.
추당잡고(秋堂􁯐􀟘) 2권 │ 411
春風驛路雨初晴 역로에 봄바람 불고 비 처음 개어
一上黃山大眼明 황산에 한 번 오르니 눈 크게 열리네.
萬里天淸雲捲處 구름 걷힌 만 리 맑은 하늘 아래
阿那知是漢陽城 저곳이 한양성임을 이제야 알겠네.
*途中憶松坡
도중에 송파(松坡)를 추억하며 읊다
蕭蕭白髮晩相知 희끗한 백발이 되어 늦게 서로 알았건만
流水高山又別離 흐르는 물과 높은 산에서 또 이별하네.
長道定無能忘日 먼 여정엔 반드시 잊을 날 없겠지만
餘年未有更逢期 남은 삶에 다시 만날 기약은 할 수 없구나.
寒鍾古寺花生懶 차가운 종소리 옛 절에 꽃마저 게으르게 피고
暮帆殘村月到遲 저물녘 돛단배 초라한 마을에 달빛 늦게 오네.
爲問江南憔悴客 묻노니 강남의 초췌한 나그네가
還從誰坐細吟詩 이제 누구와 함께 앉아 시를 읊어야 할까.
*過公州
공주를 지나며 읊다
千年百濟古熊津 천 년 백제의 옛 도읍 웅진이여
雙樹城高錦水濱 쌍수성1142) 높이 금강 가에 솟았네.
1142) 쌍수성 :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백제의 왕성인 공산성을 가리킨다. 백제 때는 웅진
성(熊津城), 고려 때는 공산성(公山城), 조선 때는 ‘쌍수성(雙樹城)’ 또는 ‘쌍수산성(雙
樹山城)’으로 불렸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2.5㎞다. 특히 공산성 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것은 이괄의 난이다. 인조는 이괄의 난을 피해 공산성에 머물렀으며, 이괄
의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머물던 곳의 두 나무, 쌍수(雙樹)에 정 3
품 벼슬을 내렸다.
412 │ 국역 추당잡고(秋堂􁯐稿)
幕府承平多暇日 막부는 태평성대라 한가한 날 많아
綺羅香散冶遊春 화려한 옷 향기 흩날리며 봄놀이 즐기네.
【길에서 충청도 관찰사[錦伯]이 유람하는 행차를 만났는데, 기녀들도 출발하였다.[路
逢錦伯出遊, 娼妓發行.]】
*寄和无
무민에게 화답하여 부치다
三尺龍泉送遠裝 삼척 용천검1143)으로 멀리 떠나는 길 전송하니
片心留與我朋良 한 조각 마음 나의 벗 그대에게 남기네.
湖雪古宅群書富 호숫가 눈 덮인 옛집에 여러 책 가득하고
海樹春園一夢長 바닷가 봄 동산의 한바탕 꿈이 길구나.
携袖臨川談逝水 소매 걷어 강가로 가서 흐르는 물 이야기하고
廻車覓路歎斜陽 수레 돌려 길 찾으며 지는 해를 탄식하네.
芳洲杜若持難贈 향기로운 언덕의 두약1144) 가져다주지 못해
翹首南天已杳茫 남쪽 하늘 우러러보니 이미 아득하구나.
1143) 용천검 :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楚) 나라의 명검(名劍). 구야자(歐冶子)와 간장(干將)
이 함께 만든 세 자루 가운데 하나로, 남북조시대 진(晉) 나라의 뇌환(雷煥)이 예장
(豫章)의 풍성(豊城) 땅속에서 얻었다는 고사가 전함. 원래는 용연검(龍淵劍)으로 불
렸으나 당(唐) 나라 고조의 휘(諱)인 ‘연(淵)’을 피하여 용천(龍泉)이라 하였다. 여기
에서는 지식인의 절개와 품격, 벗과의 우정, 그리고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고자
하는 이상(理想)을 상징하는 의상(意象)으로 볼 수 있다.
1144) 두약 : 향초로, 『초사(楚辭)』 등에서 군자를 상징하거나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
타낸다.>>> ( 연재  계속.......)

 

 

2026.6.19~20 지리산을 탐방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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