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성독립운동가 50인(광복회 서울특별시지부. 심옥주.김삼웅.박영하 지음. 2025년) 150쪽을 살펴 봅니다. 민영주(閔泳珠. 애
작성자신성복(하양)작성시간26.06.22조회수2 목록 댓글 0<<서울 여성독립운동가 50인(광복회 서울특별시지부. 심옥주.김삼웅.박영하 지음. 2025년) 150쪽을 살펴 봅니다. 민영주(閔泳珠. 애국지사 1923~2021)는 1923년 8월 15일,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租界地)에서 독립운동가 민필호와 어머니 신창희 상;에서 2남 3녀중 장녀로 태어났다. 부친 민필호는 1910년 경술국치 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중국정부의 기관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고, 모친 신창희는 신규식 선생의 외동딸이다. 즉, 민영주는 신규식의 외손녀 이다. 일제가 중국을 침략하는 중일전쟁이 발발하지.............. 1940년 9월 17일 충칭에서 거행된 한국광복군 창군(創軍)에 참여, 광복군이 되었다. 1942년 1월부터 1년여 동안 임시정부 내무부에서, 1944년에는 김구 주석관공실에서 근무하였다. ................. 민영주는 이범석의 비서직을 요청받아 김준엽.장준하 등과 함께 서안으로 가서 광복군 제2지대에서 복무하였다. 김준엽은 이범석의 부관업무를 하면서 그의 비서 민영주와 한 사무실에 근무하는 날이 많았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시간이 잦아지면서 서로간에 호감이 생기게 되었다.......>> 김준엽의 약력을 소개하고 민영주와의 관계 등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부탁합니다
민영주(閔泳珠, 1923~2021)와 김준엽(金俊燁, 1920~2011)의 만남은 단순한 개인적 인연을 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이라는 독립운동 현장에서 맺어진 동지적 관계이자 훗날 부부의 연으로 이어진 특별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김준엽의 약력
김준엽은 1920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났습니다.
1939년 일본 메이지대학에 유학하던 중 학병으로 강제 동원되었으나, 1944년 중국 쉬저우(徐州) 부근에서 탈출하여 중국군 점령지역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후 수천 리를 걸어 충칭(重慶)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도착하는 극적인 여정을 거쳤습니다.
그는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 광복군 제2지대에서 활동
- 이범석 장군의 부관으로 근무
- 국내진공작전 준비 참여
- 광복 후 귀국
하였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역사학자의 길을 걸으며:
- 고려대학교 교수
- 고려대학교 총장(1982~1985)
- 동아시아사 연구의 권위자
로 활동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회고록 《장정(長征)》을 통해 광복군 시절의 경험을 상세히 기록하여 독립운동 연구의 중요한 증언을 남겼습니다.
광복군 시절 민영주와의 만남
1944년 무렵 서안(西安)의 광복군 제2지대에서 두 사람은 처음 가까워졌습니다.
당시:
- 김준엽은 이범석 장군의 부관
- 민영주는 이범석의 비서
였습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늘어났고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두 사람은 모두 조국 독립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민영주는:
- 신규식 선생의 외손녀
- 임시정부 요인 가문의 자녀
- 어린 시절부터 망명생활 경험
- 한국광복군 창설 참여
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반면 김준엽은:
- 학병 탈출
- 중국 대륙 횡단
- 광복군 입대
라는 극적인 독립운동 경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공통의 역사적 경험은 두 사람을 더욱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해방 이후의 삶
광복 후 두 사람은 결혼하여 평생을 함께하였습니다.
민영주는 화려한 공직이나 정치활동보다는 남편 김준엽의 학문과 교육 활동을 묵묵히 뒷받침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독립운동사 연구가 진전되면서 민영주 역시 단순한 "김준엽의 부인"이 아니라:
- 한국광복군 여성 대원
- 임시정부 행정요원
- 독립운동가
로서 독자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정부로부터 애족장이 추서되어 공훈을 인정받았습니다.
역사적 평가
역사가들은 김준엽과 민영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첫째, 독립운동 현장에서 탄생한 부부
두 사람은 광복군이라는 항일무장투쟁의 현장에서 만났습니다.
일반적인 혼인 관계가 아니라 "독립운동 동지"에서 출발한 부부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큽니다.
둘째, 임시정부 2세와 청년 독립투사의 결합
민영주는 임시정부 지도자 집안의 후손이었고,
김준엽은 자신의 의지로 학병을 탈출하여 광복군에 합류한 청년 투사였습니다.
이들의 결합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세력과 광복군 청년세대의 역사적 연결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됩니다.
셋째, 해방 후에도 민주주의와 학문을 지킨 부부
특히 김준엽은 군사정권 시절 권력과 타협하지 않은 대표적 지식인으로 평가됩니다.
1980년대에는 정권의 압력 속에서도 대학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를 지키려 노력하였습니다.
민영주 역시 그 곁에서 평생 동반자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맺음말
신규식의 외손녀 민영주와 학병 탈출 광복군 김준엽의 만남은 단순한 연애담이 아닙니다.
그들의 사랑은 중국 대륙의 망명지와 광복군 진영에서 싹튼 "독립운동의 인연"이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의 학문과 민주주의를 지탱한 부부의 역사로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두 사람은 "광복군 부부", "독립운동 동지 부부"의 대표적 사례로 기억될 만하며, 여성광복군 민영주의 공적 또한 김준엽 못지않게 재조명될 가치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두 독립지사에 대한 르포 기사를 소개하여 주세요
광복군의 사랑, 망명 2세의 운명 ― 민영주와 김준엽, 충칭에서 서안까지
1944년 늦은 봄.
중국 서안(西安)의 한국광복군 제2지대 사무실에는 늘 분주한 발걸음이 오갔다.
일본군에 맞서 조국 독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지도를 펼치고, 연락문을 정리하고, 국내 진공작전을 논의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그 사무실 한쪽에 젊은 남녀가 있었다.
한 사람은 임시정부 지도자 가문의 딸이었다.
또 한 사람은 일본군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수천 리를 걸어 충칭까지 찾아온 청년이었다.
그들이 바로 민영주와 김준엽이었다.
상하이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의 딸
민영주는 1923년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민필호는 대한독립을 위해 망명한 임시정부 계열 독립운동가였고, 어머니 신창희는 독립운동가 신규식의 외동딸이었다.
민영주는 태어나면서부터 조국이 없었다.
그녀의 고향은 상하이였지만 조국은 한국이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망명과 피난의 연속이었다.
상하이에서 난징으로,
난징에서 창사로,
다시 충칭으로.
중일전쟁의 포화 속에서 임시정부 가족들은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불평하지 않았다.
조국을 잃은 세대에게 망명은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학병 탈출 청년
한편 평안북도 강계 출신의 김준엽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는 일본 메이지대학 유학생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조선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1944년 일본군 학병으로 징집된 그는 탈출을 결심한다.
발각되면 총살이었다.
하지만 그는 동지들과 함께 탈출하여 중국군 점령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장준하 등과 함께 수천 리를 걸어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갔다. 그의 광복군 시절 경험은 훗날 회고록 《장정》에 생생하게 기록되었다.
광복군 사무실의 두 청춘
충칭에서 광복군에 입대한 김준엽은 서안의 광복군 제2지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그는 이범석 장군의 부관이었다.
민영주는 이범석의 비서로 근무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매일 같은 공간에서 일했다.
문서를 정리하고,
전보를 번역하고,
작전 자료를 복사하고,
회의를 준비했다.
처음에는 동지였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민영주는 상하이 망명 생활을 이야기했고,
김준엽은 학병 탈출과 중국 횡단의 고난을 들려주었다.
조국을 잃은 세월의 상처가 서로를 이해하게 만들었다.
총성이 멈춘 뒤
1945년 8월.
마침내 일본이 패망했다.
광복군 청년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독립된 조국은 곧 분단의 길로 들어섰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후 정치적 갈등 속에서 잊혀 갔다.
하지만 김준엽과 민영주는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들은 부부가 되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역사학자와 광복군 여성대원
김준엽은 해방 후 역사학자가 되었다.
그는 고려대학교 교수와 총장을 지내며 한국 현대 지성사의 상징적 인물로 성장했다.
특히 군사정권 시절에도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을 지키려 했던 교육자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늘 민영주가 있었다.
오랫동안 그녀는 "김준엽의 부인"으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여성독립운동 연구가 진전되면서 평가는 달라지고 있다.
민영주는 임시정부 내무부 직원이었고,
김구 주석 관저 비서였으며,
한국광복군 여성대원이었다.
그녀 역시 독립운동가였다.
르포의 끝에서
2021년 민영주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한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다시 돌아보기 시작했다.
상하이에서 태어나
충칭에서 광복군이 되었고,
서안에서 평생의 동지를 만났으며,
광복 이후에는 역사학자의 아내가 아니라 독립운동가로 살아간 사람.
그리고 김준엽.
학병에서 광복군으로,
광복군에서 역사학자로,
역사학자에서 시대의 양심으로 살아간 사람.
두 사람의 삶은 우리에게 말해 준다.
독립운동은 총을 든 사람들만의 역사가 아니었다.
망명지의 어린 소녀와 탈출한 청년이 만나,
광복군 사무실의 작은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누었던 꿈 또한 독립운동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 꿈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학문으로 이어졌다.
그것이 바로 민영주와 김준엽, 두 광복군 동지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소중한 유산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