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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인 MB와 만나 “언제든 직언하게 해달라” 중앙일보

작성자신성복(하양)|작성시간26.06.15|조회수5 목록 댓글 0

대통령 당선인 MB와 만나 “언제든 직언하게 해달라”
중앙일보
입력 2026.06.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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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일
[사공일 회고록] 경제국정, 이랬다 〈19〉

2008년 3월 13일 이명박 전 대통령과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오른쪽 둘째)이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1980년대 초 경제수석 재임 시에 시작됐다. 당시 다른 주요 기업인들처럼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과도 공무로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여러 차례 만났다. 그러나 재무장관 재직 시에나 88년 말 정부를 떠난 후에도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기억은 없다.

그런데 2002년 초 어느 날 이명박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의 저서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 출판기념회에서 축사를 부탁했다. 축사자는 당시 소망교회 목사와 나뿐이라고 했다. 예전부터 매사에 긍정적 사고와 자신감, 그리고 목표를 향한 불굴의 추진력을 가진 이명박 회장은 우리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흔쾌히 수락했다.

1월 29일 여의도 63빌딩에 도착해서 놀랐다. 대회의장 밖에까지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고, 회의장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여야 정치인, 그리고 주요 기업인들로 발 들여놓을 자리 없이 붐볐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명박 회장의 사실상 서울시장 출마 출범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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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당선 후에 다시 연락을 받았다. 송인상 전 재무장관, 조순 전 서울시장, 나웅배 전 부총리와 함께 서울시청 오찬에 초청했다. 오찬과 함께 서울시 현안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당시에 대다수 시민이 회의적으로 본 청계천 복원사업에 대한 이명박 시장 특유의 자신감은 여전히 인상적이었다.

그 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전인 2007년 2월 어느 날이었다. 이명박 전 시장을 보좌하던 전 국회의원이 찾아왔다. 이 전 시장을 위한 경제포럼을 만들려 하는데 내가 맡아줬으면 한다고 제의했다. 물론 이명박 후보의 뜻이라고 했다. 대학 선배인 이상득 국회 부의장의 권유도 있었다. 이명박 경선후보 캠프를 총괄해 온 강만수 전 재무차관(재경원 장관 역임)은 캠프에 들어와 경제 분야 총책을 맡아 달라는 후보의 뜻을 전해왔다.

2007년 4월 말께에는 이 후보가 내 사무실을 직접 방문했다. 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경제 대통령’이 절실한 때인 만큼 이명박 후보를 지원할 생각은 있었다. 그러나 이미 많은 후배가 일하고 있는 선거 캠프에는 합류하지 않고 외곽에서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후에도 선거대책위원회에는 직접 참가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대신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직접 위원장을 맡은 ‘경제 살리기 특별위원회’의 고문은 맡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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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 직후 이명박 당선인이 전화로 “인수위와 함께 출범할 국가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를 맡아달라”고 했다. 그 후 강만수 전 차관이 이 위원회는 대통령 인수위원회와는 별개의 병렬조직으로 이명박 정부의 상설기구화 준비를 하게 된다고 했다. 물론 인수위원으로 참여할 생각은 없었다.

인수위 공식 출범 후 당선인은 첫 일정으로 2007년 12월 27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현 한국경제인협회)를 방문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경제 대통령으로서의 상징성 있는 일정이었다. 전경련 방문에 앞서 내가 준비한 ‘토킹 포인트’를 중심으로 인수위 주요 간부들과 함께 간담회를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명박 정부를 ‘프로 비즈니스(pro-business)’ 대신 ‘기업 친화적(business-friendly)’ 정부로 표현해야 함을 강조했다. ‘기업 친화=일자리 친화=근로자 친화’이기 때문이다.

그날 간담회 후 당선인과 나만 남았을 때, 솔직한 심경을 밝혀 두었다. 국가에 대한 마지막 봉사로 생각하고 이명박 정부에 들어왔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경제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사심 없이 일하겠다, 그러니 청와대에 들어가서도 언제든지 직언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선인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국경위)를 설치하겠다는 아이디어는 당선인이 직접 낸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국경위가 소위 ‘MB노믹스’의 ‘기함(flag-ship)’으로 경제 국정의 핵심 기구로 봤다. 기업 하기 좋은 여건 조성과 공공부문 개혁,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제도·법·규범 정비를 이끌어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궁극적인 목표는 빠른 속도로 추락해 온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제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국정의 우선순위가 실린 규제 개혁 등 개혁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힘 있는 조직이 돼야 한다고 믿었다. 모든 정부가 외쳐온 규제 개혁이야말로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톱 다운’ 접근이 불가피하다. 이런 차원에서 국경위에 파견 나온 법률 전문가들과 함께 국경위 설치를 위한 대통령령 초안을 만들었다.

우선 대통령 경제 특별보좌관이 위원장을 맡고 대통령실과 위원회 간의 긴밀한 조율·협조를 위해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 국경위 간사를 맡도록 했다. 그리고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기획재정부 장관을 당연직 위원으로 두고 각 부처 장관들도 해당 부처 관련 개혁이 의제일 때 위원회에 직접 참석하도록 했다.

국경위 회의가 과거 수출진흥확대회의와 같은 수준의 높은 위상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닌 시대적 사명으로 생각했다. 매월 개최되는 국경위 전체 회의 일자를 사전에 고정하여 대통령이 빠짐없이 참석할 수 있도록 했다. 보통 이 회의는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찬과 함께 오후 1시30분까지 계속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나의 재임 기간(2008년 3월~2009년 2월) 중에 개최한 10차례 회의에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매번 회의에서는 지난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에 대한 추진 결과를 보고했다. 부처 간 협조가 미진한 경우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관계 장관에게 협조를 당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수천 개의 규제 개혁 과제를 대통령이 직접 나서 ‘끝장 토론’ 식으로 완수할 수 없다. 지금도 이런 국경위식 회의를 대통령 임기 5년간 매년 12번씩 총 60회 꾸준히 추진한다면 정말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국경위 발족 초창기에는 청와대 내에서마저 국경위에 힘이 지나치게 실린다는 등 비판의 소리가 나왔다. 언론에도 회자됐다. 크게 실망했으나 공개적 대응을 자제했다. 막 출범한 정부에 큰 부담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국경위 활동이 본궤도에 올라서게 됐다고 생각된 제3차 회의(2008년 5월 23일) 준비 시점이어서 그만둘 결심을 했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게 두 차례에 걸쳐 강력한 사의를 표했다. 대통령은 극구 만류하며 사표를 반려했고, 결국 오해에서 생긴 해프닝으로 끝났다.


2008년 7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경위 5차 회의에서 사공일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는 동안 이명박 전 대통령이 메모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8년 초에 출범하게 될 한국 새 정부의 정책과 개혁 의지에 관한 세계적 관심은 아주 컸다. G7 국가를 포함한 많은 나라 정상들과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대거 참여하는 스위스 다보스 포럼(2008년 1월 24~25일)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초청했다. 인수위 업무 등 국내 일정으로 당선인이 직접 참석할 수 없었다. 대신 나를 ‘대통령 당선인 특사’ 자격으로 참석토록 했다.

마침 다보스 포럼에 앞서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한·미 재계 고위 인사 50여 명이 참석하는 한·미 재계 회의(1월 18~19일)의 초청에도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응했다. 이명박 정부의 규제 개혁 의지를 믿고 적극적으로 투자해줄 것을 양국 기업인에게 당부했다. 그리고 호놀룰루에서 스위스 다보스로 가는 도중 영국 런던에 잠시 들러 HSBC 그룹 회장, BT 그룹 회장 등 런던 재계·금융계 인사들, 주요 언론인과 간담회를 했다. 그리고 파이낸셜타임스의 마틴 울프 편집장, 전 런던 시장과는 개별적으로 만나 새 정부의 정책 비전에 대한 깊이 있는 의견도 교환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다보스 포럼 특성상 한국 경제 설명회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주요 참석자들과의 개별 면담에 나섰다.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총재, 수전 슈와브 미국 무역대표, P. 멘델슨 유럽연합 통상집행위원, 자크 아탈리 프랑스 성장촉진위원장, 미 IIE 프레드 버그스턴 소장, 시티그룹 회장, 영국 로이드사 회장, HP 수석부회장 등과 만났다. 곧 출범할 국경위 위원장 겸 대통령 당선인 특사로서 MB 노믹스의 핵심을 자신있게 설명했다. 특히 국경위 설치는 이명박 정부의 기업 친화적 입장을 보여주는 설득력 있는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였다. 이들 모두는 한국 새 정부에 대한 큰 기대와 환영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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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글쓴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어떤 인연으로 함께 일하게 되었고,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나요?
Q.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 핵심 기구로 언급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국경위)'는 어떤 목표와 구조를 가지고 있었나요?
Q.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국경위)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어떤 갈등이 있었고, 글쓴이는 어떻게 대응했나요?
Q.글쓴이가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서 강조한 핵심 철학은 무엇이며, 이를 국제 사회에 어떻게 알렸나요?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36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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