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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에서 퍼왔습니다.
+++조선시대 환도 패용법+++
조선 시대의 칼(환도) 차는 방법은 상당히 특이합니다. 하지만 그 특이함에 비해 불가사의할 정도로 알려져 있지 않죠.(제길, 이게 다 TV 때문입니다. 어설프게 허리띠에 칼집 푹 꽂고 나타나는 꼬락서니라니.)
아래 <구한말 포청대장을 찍은 사진.jpg> 참조
기본적으로 조선의 환도는 끈을 이용해서 칼자루가 뒤로 가도록 찹니다. 칼을 차는 군인은 군복 아래 굵은 베로 만든 소매 없는 속옷을 입습니다. 이 옷의 왼쪽 옆구리에는 굵은 베를 겹쳐 만든 고리가 달게 되는데, 이 고리를 군복 왼쪽 옆구리에 낸 구멍을 통해 내고 여기에 칼집을 연결하면 됩니다.
아래 <조선과 일본.jpg> 참조
동래부사 초량왜관에서 일본 사절을 접대하는 장면을 그린 동래부사접왜사도(東萊府使接倭使圖 -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의 일부. 일본인과 한국인의 서로 다른 패도 방식이 잘 묘사되어 있다.
자연히 칼집도 약간 특이하게 생기게 되는데, 바로 띠돈이라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왼쪽 옆구리에 있는 고리와 칼집을 연결하기 위한 장치 되겠습니다. 이 띠돈에 의해 환도를 돌리기가 쉬어져 칼자루가 뒤로 오게 칼을 차더라도 간단하게 칼자루를 앞으로 돌린 뒤 발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아래아래 사진에 칼자루를 앞으로 돌린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아래 <칼 구조.jpg> 참조
조선 환도의 부분별 명칭. 띠돈, 끈목, 칼집고리가 보인다. 띠돈과 끈목은 없어진 경우가 많지만 칼집고리의 경우 웬만한 칼집에는 남아 있다.
아래 <사진4_환도와 기병용 궁시일체인 동개를 패용한 조선 기병 완전군장.(무예24기 최형국 관장)> 참조
이렇게 특이한 패검 방식을 유지한 이유는 바로 조선군의 특성 때문입니다. 조선군의 주력은 갑옷을 입고 활로 무장한 중무장 기병이었습니다.(조선 전기 군대의 절반이 기병-_-) 말을 타는데 일본도 하듯이 허리띠에 칼을 꽂아 넣으면 말을 타다가 칼이 빠져 나오게 됩니다. 게다가 활까지 찬 마당에 칼자루를 앞으로 해서 찬다면 말 탈 때 심히 걸기적거리겠죠.
※ 이 그림이 살짝 오해를 불러 올 수도 있어 이해를 돕기위해 관련 댓글들을 올립니다.
>좌익처럼 말하다 : 4번째 사진도 패도 방법이 사실과 다릅니다. 칼 손잡이가 앞으로 오지 않고 뒤고 가 있어야 합니다. 정조 행궁행차도에 보면 잘 나와 있죠
>파란바다 : 4번째 사진은 대상이 되신 분이 일부러 보여주실려고 찍어주신 것 같군요. 칼을 뽑는 동작을 위해서 말이죠
>좌익처럼 말하다 : 칼을 뽑는 동작이라고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냥 서 있는 모습 뒤에서 찍은 거 같네요. 그리고 칼 자체도 조선도로 보기엔 너무 깁니다. 세번째 사진은 조선환도가 맞습니다만 네번째 사진의 칼은 조선환도보다는 일본 카다나에 가깝게 보입니다
>기마무사 : 네번째 사진의 최형국 관장님을 수원 화성행궁에서 직접 본적이 있는데 키가 상당히 작은 편입니다.....한 163cm 정도?......키컸으면 ^^......사진을 보면 키가 보통이거나 큰 분이 가까이서 찍은 것인데 촬영각도가 아래방향입니다......고로 칼이 긴게 아니라 사람이 작습니다.......^^
>파란바다 : 아 제가 말을 잘 못드렸군요. 저 분이 칼을 뽑는 동작을 보여주기 위해서 원래의 패용방식에서 반대로 돌리는 동영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 같다고 말씀드린 것이지요.
아래 <사진5_청나라 무사를 찍은 사진> 참조
만주족 역시 기병을 주력으로 했다는 점에서 조선군과 어느 정도 비슷한 군제를 유지했기 때문에, 청나라 무사들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 조선처럼 칼자루가 뒤로 가도록 패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 띠돈은 없고 비슷한 장치가 칼집에 달려 있다고 하네요.
이상이 기본적인 조선 환도의 패용법입니다. 다만 이것 역시 조선 후기의 이야기고, 솔직히 조선 전기에 환도를 어떻게 찼는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유물 자체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인데, 관련된 기록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세종실록 의례 군례서례 병기편>에 묘사된 환도 그림이 남아 있기는 한데, 여기에는 띠돈이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띠돈만 없이 끈으로 묶어서 차지 않았을까 합니다.
다음 페이지 <그림6_문제의 그 그림> 참조
임금을 경호하는 운검 등의 직책이 착용한 검의 경우에는 칼을 사용하는 환경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 말을 타지 않습니다 - 칼을 차는 방법도 다릅니다. 따라서 위에 장황하게 설명한 칼의 패용 방법은 일반적인 경우지, 전부 다 그런 것도 아니라는 거죠.
* 아래 그림들은 조선 후기의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 -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의 일부입니다. 환도 패용 방법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어서 올려 봅니다.
다음 페이지 <그림7,8,9>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