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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상의 갈등론적 접근

작성자정병호교수님|작성시간13.03.21|조회수2,641 목록 댓글 0

교육현상의 갈등론적 접근

 

 

“갈등이론은 사회를 개인 간 및 집단 간의 끊임없는 경쟁과 갈등의 연속으로 본다. 즉 세력다툼, 이해의 상충, 지배자의 압제와 피지배자의 저항, 그리고 사회의 끊임없는 불안정과 변동이 이 이론이 보는 사회의 속성이다.

갈등이론은 단순하게 말하면 인간이 소유하고자하는 하는 대상물은 제한되어 있고 인간의 소유욕은 무한한데 이 모순을 해결할 길이 없으니 인간간의 경쟁과 갈등이 불가피한 것이라고 전제한다.”(김신일: 68-69쪽)

 

 

1. 갈등론적 접근의 기본 관점

 

1) 갈등론적 사회관

유한한 자원 무한한 욕구 : 모든 사회는 이를 둘러싼 갈등과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

불일치한 집단 목표 : 이러한 부조화 현상은 외면적으로는 잔잔하게 보일지 모르나, 내면적으로 활기차게 용트림하며, 때로는 표면화되거나 폭력화되기도 한다.

 개인간․집단간 끊임없는 경쟁 : 인간은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물리적 힘이나 정신적 교화를 통해 효과적으로 통제하길 원한다.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의 대립적 관계 : 지배집단은 모든 사회가치의 중심체 역할을 하며 현 상태가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며, 피지배집단을 체제의 안정에 위협요소로 본다. 따라서 지배집단은 설득․교화․선전 등의 방법으로, 피지배집단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시키려 한다. 결국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은 계속되는 긴장과 갈등상태에 직면하면서 ‘사회변동’을 촉발한다.

 

마르크스의 계급 갈등론 : ‘생산 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서 계급 발생. 인류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라고 설명(억누르는 자 vs 억눌림을 받는 자,  가진 자 vs 못 가진 자, 부르주아 vs 프롤레타리아) 자본주의의 모순 구조 간파(자본론)→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역사 발전 5단계설)→ 사회주의→ 공산주의→ 계급없는 평등 사회

 

베버의 권력 갈등론 : 베버는 단순한 물질적 생산 수단이 아닌 다른 종류의 생산 수단도 동원하고 통제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조직 안에서의 갖가지 갈등에 주목하면서 ‘사회적인 관계는 권력 관계’라고 설명함. → 시장상황(market situation)에 따라 재산 계급, 상업 계급, 사회 계급으로 나누고, 신분상황(status situation)에 따라 나타나는 사회적 위세(위신)와 존경을 가늠하는 정도도 포함하여 갈등관계를 파악하려고 함.  

 

짐멜의 구조 갈등론 : 사회구조는 지배와 복종으로 이뤄져있다기보다는 오직 분석상으로만 나눠지고 실제로 분리되지 않는 다양한 연합과정과 해체과정으로 이뤄져있다고 설명. 유기체론적 시각에서 사회체계를 분석→ 갈등의 궁극적인 원천은 인간이 타고난 생물학적 본능(‘증오본능’)뿐만 아니라 ‘연합과 해체’의 과정들의 한 짜임 안에 매몰되어 있다고 파악→ 갈등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이며 갈등의 통합적 효과와 진보적인 효과에 주목→ 갈등의 기능론, 구조 갈등론→ 코저(Coser) : ‘사회는 갈등이 있음으로 해서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으며 도 집단의 결속력이 증가될 수 있다’는 견해와 일치함.

 

다렌도르프의 변증법적 갈등론 : 파슨즈의 기능주의 사회 이론을 정면으로 부정→ 모든 사회는 언제나 변화의 과정에 있으며, 불일치와 갈등 속에 있으며, 한 집단의 다른 집단에 대한 강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강제이론(constraint theory)). 사회의 모든 요소는 분열과 변화에 이바지한다. →그런데 갈등의 강도나 폭력성은 여러 가지 사회 조건에 따라 다르다. 갈등 집단의 유형이 계급 이외에도 많이 있다고 설명.

 

 

2) 갈등론적 교육관

→ 기능론과 마찬가지로 갈등론도 학교와 사회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갈등론은 학교와 전체 사회의 요구와의 관계보다는 엘리트 혹은 지배집단 간의 관계를 강조한다.

 

→ 학교는 특정 엘리트 집단들의 권력을 영속화시켜 주고 기존 계층질서를 유지시켜 주는 도구라고 본다. 또 학교는 기존의 불평등 구조를 영속화 내지 심화시키고 현 사회구조에 순응하는 태도를 갖게 함으로써 지배 엘리트의 이익을 대변한다 것.

 

→ 학교는 현대적이고 자유주의적이며, 민주적인 정책운영에 필요한 가치나 태도를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중간계층의 도덕성, 맹목적 애국심, 바람직한 노동습관, 순종적 예법 등을 가르치는 제도이다. 학교는 자율적 사고를 고무시키기보다는 상업적 가치에 동조하는 태도를 주입시키며, 또한 현대사회의 복잡한 직업특성에 필요한 인지기술을 가르치기보다는 편협한 기술적인 가치관을 가르친다.

 

→ 학교에서 배운 지식, 기술은 직업신분이나 직무수행 능력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는 증거가 제시됨으로써 학교는 현대산업사회에서 필요한 지식, 기술을 가르치기보다는 교육자격증을 발급해 주는 곳으로 보고 있다.

 

→ 학업성취에 있어서도 계급간, 인종간의 차이가 지속적으로 나타남으로써, 교육확대를 통한 기회균등이 이루어지기보다는 특수계층의 권위를 유지하는 데 학교가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학교는 아동의 지적․정의적 성장을 실현시키는 데 별로 공헌하지 못하고 오히려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인 사회를 형성시키는 도구라는 것이다. 즉, 학교는 독립적인 사고와 인간적인 가치를 길러주기 보다는 순종과 예속성을 가르치는 기관이라는 것이다.

 

 

2. 갈등론적 교육이론 전개

 

1) 경제적 재생산 이론(economic reproduction theory)

→ 자본가 계급이 학교교육을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합법화함으로서 지배계급의 위치를 재생산한다.

→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학교교육은 경제적 모순을 은폐하고, 불평등한 구조를 존속․유지․심화하였으며, 아울러 지배계급의 위치를 정당화하는 도구적 기관의 역할을 한다고 본다. 즉 학교교육은 경제적 모순구조에서 파생된 계급 위계화 질서를 공고히 하는 기능을 담당함으로써, 사회 불평등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억압적인 개인 발달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학교교육은 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합법화함으로써 지배계급의 위치를 재생산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본다.

 

보울스와 진티스, 알뛰세의 교육사회학

보올스와 진티스(S. Bowles & H. Gintis)는「자본주의 미국사회에서의 학교교육」(1976)에서 학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달리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인지적 요소가 아니라 비인적 요소, 즉 자본주의 체제에 적합한 가치․태도․규범․퍼스낼리티 등을 중요시하고 있다고 한다. 즉 학교는 자본가 계급이 필요로 하는 이데올로기를 제공하여 현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정당화한다. 학교는 이들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본가 계급이 선호하는 가치를 아동들에게 은밀히 내면화시킴으로써 현 사회의 불평등적 위계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이다. 학교교육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필요에 따라 발전해 왔고, 학교교육은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위한 도구적 성격을 갖는다. 결국 학교는 사회계급을 결정짓는 기관으로서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알뛰쎄(L. Althusser)는 그의 사회구성체론(social formations)으로 교육현상을 이해한다. 사회구조는 토대(base)와 상부구조(superstructure)로 되어 있다. 토대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포함한 경제 하부구조를 뜻한다. 상부구조는 정치적․법적 상부구조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 구분된다.1) 보올스와 진티스는 토대에 의해 상부구조가 결정되는 과도한 경제적 결정론을 주장하지만, 알뛰쎄는 토대와 상부구조가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때 상부구조가 토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상대적 자율성’(relative autonomy)이라 한다. 또한 알뛰세는 노동력의 재생산이란 노동에 필요한 기술을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질서라는 규칙에 대한 복종을 재생산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현대사회에 있어서 교육의 사회적 선발 기능은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는 표현기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2) 문화적 재생산 이론(cultural reproduction theorists)

→ 자본주의 사회가 경제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이유는 지배계급이 선호하는 문화를 학교교육에 투입시켜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

→ 학교는 지배계급이 선호하는 문화영역을 통해 계급적 불평등을 유지․심화시키는 재생산적 기구라는 것.

 

부르디외의 교육사회학

부르디외(P. Bourdieu)에 의하면, ‘자본은 사회적․문화적․경제적인 여러 가지 유형을 취하고 있는데, 만일 우리가 이들의 재생산 메커니즘을 이해하려면, 서로 다른 유형들간의 상호관계 혹은 상대적 자율성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문화가 특정 계급과 관련되어 있으며, 계급적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상징적 폭력’(symbolic violence) : 기존의 사회질서는 물리적 강제의 결과가 아니라, ‘상징적 폭력’의 표현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지배계급은 언어나 신분, 지위, 위신, 관습과 같은 상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그들의 사고 방식이나, 지배유형 또는 문화양식이 자연스러운 질서를 가진 것처럼 보이게 한다.

 

→ ‘문화자본’(cultural capital) : 문화양식은 소비․분배․생산되는 경제 자본의 운동원리와 비슷하게 ‘문화시장’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소유한 문화 형태에 따라 화폐적 가치를 지니게 되는 데, 이를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이라고 함.

 

세 가지 형태의 문화 자본 : 첫째, 어렸을 때부터 계급적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지속적인 성향인 헤비투스적(습관적: habitus) 문화자본이다. 둘째, 책이나 예술작품 같은 객관화된 상태로서의 문화자본이다. 셋째, 졸업장이나 자격증 같은 제도화된 문화자본 등이다.

 

 ‘습관적 문화자본’을 가장 중요하게 취급. 그의 독특한 개념인 ‘헤비투스(Habitus)’란, 각각의 계급 혹은 사회계급 내의 파벌들이 그들의 특징적인 문화양식이나 지배유형을 발전시켜 그 관점을 가지고 아동을 사회화시키고, 그들의 세계관을 형성하며, 동시에 아동들의 습관의 일부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을 말한다. 헤비투스는 내면화된 문화자본으로서 계급적 행동유형과 가치체계를 반영하고 있다.

 

→ 학교는 문화자본인 졸업증서와 학위를 수여하는 메커니즘을 통해 기존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중요한 장(arena)이다. 교육체계는 지배계급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지식 즉, 문화자본을 전수함으로써 사회질서를 재생산하고 합법화한다는 것이다. 또 학교교육은 지배계층의 문화자본을 채택하여 교육과정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 계층 아동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본다. 그런데 하층계급 출신의 개인은 교육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감에 따라, 지배계층의 문화양식에 동화되어 점차로 자신의 동료들과 구분된다. 이렇게 성공한 소수의 하층계급 출신자들은 현존하는 사회체제가 공정하다는 신념을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3) 학교교육과 국가론

기능론적 설명에서는 국가를 보수주의자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 국가는 이데올로기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가치중립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국가의 기능은 만인을 위한 공동선의 실현에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의 학교교육은 공정한 기회를 배분하고, 사회정의를 중립적인 입장에서 실현하는 만인을 위한 기관이 된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뿔란짜스(Poulantzas), 알뛰쎄(L. Althusser), 그람시(Gramsci), 애플(M. Apple) 등이 비판한다.

뿔란짜스에 의하면 국가의 중립성 또는 독립성은 하나의 환상일 뿐이다. 국가가 특징의 이데올로기적 이익과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학교는 국가의 여타 이데올로기적 기구들 못지 않게 지배적인 사회적 이익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학생에게 주입시킨다고 한다.

알뛰쎄에 의하면 국가란 지배계급이 노동자 계급에 대한 지배를 확보할 수 있는 ‘억압장치’라고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이러한 계급적 지배과정은 경찰이나 군대와 같은 국가의 ‘억압장치’나 교육, 가족, 대중매체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통해서 수행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학교란 모든 계급의 이동을 유아기에서 탈취하여, 수년동안 ‘가족적 국가기구’와 ‘교육적 국가기구’ 사이에 꼭 끼워 넣어, 지배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일정한 양의 지식(know how)을 주입시킨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학교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창출하여 자발적 동의를 유도함으로써 현 계급질서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그람시도 국가와 자본주의 체제는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학교도 계급관계를 유지하는데 기여한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이를 ‘헤게모니(hegemony)’라는 개념과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구조에도 불구하고 그 체제가 효과적으로 유지되는 이유는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피지배계급에게 자연스럽게 전수되어 그들의 가치․관습․규범 등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헤게모니는 가치관․규범․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상식을 규정하기 때문에 사회성원의 의식 속에 깊숙이 스며들 수 있다. 따라서 헤게모니는 한 계급이나 집단의 타 계급들을 강제력보다는 합의를 통해 압도하는 현상을 말한다. 학교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헤게모니를 전수하고 대행하는 기관이 된다. 학교 현장에 스며들고 있는 계급적 영향력, 즉 헤게모니의 작용으로 사회 불평등이 오히려 정상적인 형태로 받아들여지게 되며, 지배계급의 이익이 영속적으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잘 대변하는 애플(M. Apple)은 학교현장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고 있는 헤게모니의 실체를 분석하기 위해 ‘숨겨진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을 논의한다. 숨겨진 교육과정은 계급간의 갈등의 본질을 감추고 지배계급이 요구하는 가치관, 지식, 규범, 관습 등을 학생들에게 은밀히 전수함으로써 현 사회질서를 정당화한다. 따라서 학교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헤게모니의 영향력은 표면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은연중에 학생의 의식 깊은 곳에 침투하여 지배계급의 질서에 순응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플은 학교의 교육과정, 교과서, 교사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학교가 재생산의 고리임을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았지만, 교사들이 각성하고 사회 각 부문의 민주적 좌파들과 연대함으로써 교육의 민주화를 쟁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국가론의 입장에서 학교교육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배계급의 이해(利害)를 실현하는 기관이므로 계급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둘째, 국가가 가지고 있는 상대적 자율성도 지배계급의 질서를 효과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일정한 영향력으로 결국 물적 토대인 경제구조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셋째, 국가에서 주도하는 교육은 지배계급이 선호하는 가치관․규범․태도․신념체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넷째, 국가의 대행 기관인 학교는 그 실천 현장에서 은연중에 지배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전수할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질서와 규칙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4) 저항이론

 

능동적․자율적 인간관, 학교교육의 역할 확대

→ 저항이론은 학교교육을 통해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를 타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 윌리스(P. Willis), 지루(Giroux), 아론비취(Aronwitz), 애플(Apple) 등

 

윌리스는 학교가 자본주의 사회구조를 충실하게 재생산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면서도, 학교는 저항과 대항문화의 존립이 가능한 열려있는 공간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윌리스는 사회구조적 모순에 순응하지 않고, 불평등한 위계적 모순구조에 대항하는 인간의 자율적 모습을 학문적으로 분석했다. 그에 의하면, 학교교육이 사회계급구조의 불평등을 그대로 보존하거나, 이행하는 단순한 반영물이 아니라 오히려 학교교육을 통해 사회모순과 불평등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항이론’(resistance theory)은 바로 이점을 강조함으로써 학교교육의 역할을 확대시킨다. 저항이론에서의 인간은 사회구조가 요구하는 대로 그 성격이 규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에 저항․도전․비판하는 존재이다. 즉, 인간은 사회구조의 영향을 받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주체적 의지를 지닌 능동적 존재로서 사회모순에 저항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윌리스는 영국의 남녀공학계인 중등학교의 하위계층 학생을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이들 학생의 저항행위가 어떻게 표출되고 그 사회적 원인은 무엇인가가 주요 주제이다. 학업성취가 낮고, 문제아로 분류되는 하위계층 학생은 학교가 요구하는 대로 순응하지 않고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통해 거부행위를 표출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구조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놓여 있으며, 사회체계가 구조적으로 불평등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모순구조를 직시하는 것을 ‘간파’(penetration)라고 한다. 그러나 소위 문제아들인 ‘사나이’(lad)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구조적 불평등 체계로 인해 자신들의 열등한 위치에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 ‘한계’(limitation)라고 한다. 결국 윌리스의 관점은 인간은 구조적 모순에 저항을 하고 있지만 결국 사회불평등체계에 편입되게 된다는 한계를 노출한다. 이 연구에서 중요한 점은 인간이 단순히 사회구조에 그 성격이 결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의지에 따라 거부․도전 같은 행위유형을 표출하는 능동적 의지를 지닌 존재라는 것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지루에 의하면, 저항이론은 지배계급의 위치를 정당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와 공동체 문화 형성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해방을 위한 투쟁과 거부형태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를 통해 이데올로기의 모순구조를 철저히 분석하고, 집단적인 현실참여 즉, 실천(praxis)을 통해 이들의 모순형태를 철저히 분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항이론가들의 관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은 이데올로기의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거부․선별하고 비판적 사고를 지닌 능동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둘째, 능동적 의지를 지닌 인간은 불평등한 모순구조에 대항하고 저항함으로써 개인의 해방된 삶을 추구할 수 있다. 셋째,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학교는 핵심적인 역학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는 이들의 저항의지를 극대화함으로써 기존의 불평등한 위계구조를 개혁할 수 있다. 아울러 개인의 해방된 삶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교육을 통해 제도화된 모순구조를 개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학교교육의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저항이론에 따르면, 학교교육은 학생들에게 사회적 모순구조를 인식시키고 비판적이고, 반성적 사고를 고양해야 하며, 학생 개개인을 자율적이고, 주체적 의지를 지닌 존재로서 인격적으로 대우를 해야 한다.

 

5) 지위경쟁이론

막스 베버의 전통에 따라 학교교육의 팽창과정을 지위, 권력 및 명예를 위한 집단간 경쟁의 결과로 교육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콜린스(R. Colins, 1977)와 헌(C. Hurn)이다.

우월한 지위집단이 그들의 특권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교육적 요구를 한층 더 상승시킴에 따라 보다 낮은 사회적 지위집단은 보다 많은 교육기회를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학력은 높은 지위를 획득하는 수단이며, 지금까지 학력이 부족하여 낮은 계층에 남아 있었던 집단은 보다 높은 학력을 획득하며 높은 지위를 얻으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높은 지위을 점유하고 있던 집단은 위협을 느끼고 자신들의 학력을 더욱 높일 것이다. 이것은 다시 낮은 지위집단에게는 보다 높은 학력을 요구하는 환경으로 작용하여 학력상승과 학교교육의 팽창을 부채질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일련의 관점이 지위경쟁이론의 교육현상에 대한 설명 방식이다. 이 같은 시각에서 보면 앞으로도 고학력 사회는 계속될 것으로 본다.

 

 

3. 갈등론적 교육이론의 공헌과 비판

 

1) 갈등론적 교육이론의 공헌

① 학교교육을 통한 사회적 불평등의 재생산, 특정 문화와 이념의 표준화 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공.

② 현행 학교제도의 문제점을 학교제도 내에서만 찾기보다 사회구조적 문제와 연결시킨 점.

③ 기존에 당연시 되어오던 문제들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그 허구성을 지적한 점.

④ 학교교육의 사회적 성격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해석들을 제공해 준 점.

 

2) 갈등론적 교육이론의 비판

첫째, 갈등론적 교육이론은 경제결정론 빠져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교육이 경제구조에 일방적으로 결정된다고 역설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육행위의 설명에 있어서도 개인의 의지를 무시하고 사회적 조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람시와 같은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은 윌리스, 애플 등은 경제 결정론을 배격하고 학교의 ‘상대적 자율성’을 입증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들도 교육의 재생산기능론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구조주의적 관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성과도 상당수준 올리기는 하였으나, 행위자의 능력과 그에 기초한 사회변혁가능성에 대하여는 여전히 회의적인 태도이다(김신일, 2003).

둘째, 사회구조를 단순히 이분법에 따라 설명한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등으로 사회구성원을 양분하고 교육이 지배자와 가진 자에게만 봉사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교육의 본질적 모습을 왜곡하거나 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학교교육의 공헌을 전혀 무시하고 있다. 학교교육이 전통사회의 구속적인 신분세습제도를 약화시키고 업적주의적 사회이동을 가능하게 해준 공헌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넷째, 갈등과 세력 경쟁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교육이 사회적 결속력을 높이고 국가 공동체적 의식을 높이는데 기여한 점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한편, 사회를 두 계층의 대립관계로만 보아 사회체제의 존속에 어느 정도 필요와 조화와 질서를 부정하고 나아가서는 기존 제도의 부정에까지 이르렀으나, 그에 대한 충분한 대안 제시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다섯째, 교육선발의 불평등 요소를 너무 강조함으로써 교육을 통한 능력과 재능의 선별을 인정하지 않으며, 사회적 상승이동에 기여한 학교교육의 공헌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1) 상부구조는 ‘억압적 국가기구’(RSA)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ISA)로 구성되어있다. 억압적 국가기구는 강제적 힘을 행사함으로써 사회질서를 통제하는 기구로서 군대․경찰․행정부․교도소 등을 말하며,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는 사회구성원들의 자발적 동의를 구하여 암묵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조정․통제하는 곳으로 가족․종교․문화․미디어․교육 등을 들 수 있다. 알뛰쎄에 의하면 상부구조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 학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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