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결성과정까지 이야기 한거 같다.
2000년 10월 중순께였던가...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다.
드럼의 부재가 핸디켑이 될것을 각오하고 지호와 충섭의 의견에 따라 동린이 재대까지 드럼은 공석으로 놔두기로했다.
일단 드럼은 미디반주로 하기로 하고,,
우리의 연습장소는 당시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유치원의 지하실이었는데,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PA와 낡은 Dart엠프가 장비의 전부였다.
이 PA장비는 86년 울 친형님과의 공연때부터 활약한 나름 정이 많이 든 기재...
현재 PA메인 믹서는 2004년 연습실화재로 소실되고, 스피커와 Dart엠프는 ZOO클럽에 보관중이다.(ZOO현관 바로 옆에 있는
바로 그 2짝의 스피커..)
난 Dart엠프에 그리고 충섭,지호는 PA시스템에 그리고 CDP로 드럼 반주를 틀고,,,
그렇게 지하드의 첫합주는 시작되게 되었다.
당시 지호는 일제 프리시젼 Fender베이스를 사용하였는데,Jazz베이스의 사운드에 욕심이 생겨(내가 강력추천)
남대문쪽의 한커피숖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악기구입비도 마련중이었다.
CDP는 지호 담당이었는데.. 3달여의 아르바이트 후 모은 돈으로 낙원상가에서 Jazz베이스를 구입!
기쁨에 겨운 나머지 CDP를 챙기는 걸 깜빡...ㅋ
내가 "와우~!! 드디어 샀구나! 근데 씨디피 어여 꺼내 오늘 할거 해야지."
이순간 귀에걸린 입이 바로 쪼그라드는 일도 있었다는...ㅎㅎㅎ
(이날 어머니 유치원 1층에 있는 오디오에 원곡을 틀고 지호와 난 엠프 연결 없이, 충섭이도 육성으로 조촐하게(?)
합주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암튼 그렇게 이런저런 자잘한 사건들을 격으면서 우리들의 즐거운 합주는 이어졌다.
당시 내기타는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일제 조립펜더.... 이 기타에 대한 탄생기는 차차 올리겠다.
이펙터는 처음엔 Boss꾹꾹이 조합을 썼었는데.. 그해 11월에 다들 잘 아고 있는 Boss ME-10으로 교체하게 된다.
첫합주곡은 Deep Purple의 Burn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멤버들이 군에 있던 시절 혼자 미디작업을 하며
비교적 원곡에 가까운 드러밍과 건반솔로잉을 만든것이 있었고, 이때 작업한 다른 곡들 역시 우리 레파토리
의 중요한 역할들을 해주었다.
Burn의 베이스라인에 중간중간 싱코페이션이라는 좀 까다로운 박자의 연주가 많이 나오는데 한동안 지호가
이걸 못마춰서 입으로 자주 두~~두 두둥 읏! 두 두~~두둥.. 이렇게 박자를 세던 생각도 나고.....하하
이튼 그외 Rainbow의 Kill the king,Journey의 Separate ways등등이 우리 연주곡의 주가 되었던 곡들이었다.
모두가 음악과 연주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던 탓에 합주내내 입가엔 늘 웃음이 가득했다.
그렇게 한달여의 합주를 하던 중 슬슬 공연에 대한 얘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언더밴드로서의 출발인 만큼 홍대와 그밖의 지역의 클럽, 또 때에 따라 섭외될 여타의 공연..등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던 중..
블랙티어즈라고... 지금도 간간이 활동이 있는 블랙메틀을 하는 팀이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리더인 홍유철 형님과의
인연으로 그해 11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코카콜라 야외무대)에서의 공연이 우리의 첫무대가 되게 된다.
블랙티어즈의 공연에 우리가 오프닝을 맡고 11월의 사늘한 날씨 속에 그렇게 첫연주가 시작되었다.
메인공연이 아니었기에 많은곡은 연주하지 못했고, 그리고 수년만의 공연이어서 실수도 많았고, 무대가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첫무대에서 느꼈던 희열은 아직도 생생함이 느껴지고 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의 공연때 사진 합성한것... 유일한 자료이기도 하다.
그 무대를 시작으로 지하드는 점차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게 된다.
12월에는 연습실 가까이에 있는 Beat라는 목동에서 유일하게 있던 클럽이었는데, 그곳 사장이 나와 나이가 비슷하기도 하고,
말도 잘 통하여 드럼이 없는 3인조밴드임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공연을 수락.
본격적인 클럽 정기공연도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지하드는 각종 인터넷 음악 커뮤니티에도 활동상을 알리게 되고, 온라인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기에 이른다.
Blue noise,UGCC,Mule,다음 일렉기타동호회,Muse등이 우리가 활동하는 주 온라인 무대가 되었고,소수의 팬(?)도 점차로
확보해 나가기 시작하게 된다.
한편...
CDP로 반주한다는건 라이브에선 생각보다 큰 Risk가 따르는 연주 형태이다.
한박이라도 어긋나면 곡전체가 망가지게되고, 연주자 측에서 반주의 모니터가 안되게 되면 스테이지 위에서 대단히 큰 어려움
에 맛닿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얼연주에 비해 현장감이 떨어진다는 것...
이런 부분들은 한동안 지하드의 가장 큰 핸디캡이 되었다.
12월에 찾아간 홍대에서 가장 유명했던 클럽 Free Bird에서의 오디션 실패가 가장 큰 예였는데...
당시 그곳에 마스터로 계시던 버드형님(이전에 창현이와 지하드를 할때부터 인연이 있었던 형님)마저도
"너희는 드럼들어오면 다시 와." 라는 뜻밖의 말씀을 하시며 우리 연주시스템에 강한 불만을 표현하실
정도였다.
이후 홍유철 형님을 통해 알게된 안사장님이라는(현 페페인 제작자) 분이 기획을 하시던 대학로 SH에서의 정기적인
록페스티발에도 출연을 의뢰하게 되었는데.... 역시 드럼이 없다는 이유로 퇴짜...ㅠㅜ
결국 한동안 원래의 연주지인 Beat에서의 정기적인 연주로 우리의 연주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야 했다.
현실은 그렇게 냉정했지만, 우리는 실망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합주를 이어갔고, 인지도를 넓혀가는데 게을리 행동하지
않앗다.
그런 노력탓에.....
몇개월 뒤 지하드는 드럼이 없는 3인조였지만, 어디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팀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후 얘기 역시... 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