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구원입니다.
구원은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대하시는 방식입니다.
출애굽과 홍해 건넘은 구약적 거듭남과 세례받음을 가리킵니다.
홍해 사건에 대해 바울 사도는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분명하게 적었습니다.
그 세례는 세례자가 완전하지 못하기에 거듭나지 못하였을 수도 있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과는 다릅니다.
세례의 주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홍해를 건넌 후에 홍해를 건넌 이들을 지칭하시면서 하나님과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고 기록하고 있음을 보아야 확실합니다.
홍해 건넘이 구약적 세례 받음이라면 그 이전의 사건인 출애굽은 구약적 거듭남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홍해를 건넘으로 이스라엘은 애굽에서의 삶에 대해 죽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신약적 거듭남은 성령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열어 복음을 청종하게 하시는 역사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스스로 믿습니다. 능동태로 사용되는 이유입니다.
그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게 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외적인 표입니다.
세례는 죄에 대하여서는 죽은 자가 되었고 의에 대하여서 산 자가 되었음에 대한 도장을 찍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인 선을 향하여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구약적이 아니라 신약적 거듭남이 요구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적 상태에 있는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오심을 열린 새 시대에 맞게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과 홍해 건넘 이후에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향한 진군 과정에서 여러 일들을 겪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들을 생각을 앞세우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가나안을 앞둔 가데스바네아에서는 열정탐꾼의 보고를 받아들이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런 모습에 대해 하나님은 "믿지 아니하고"라고 선언하십니다.
구약적 거듭남과 세례를 받은 이들에 대해 "믿지 아니하고"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거듭나고 세례를 받았지만 그 삶에 의해 하나님께 "믿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삶에 대해 하나님은 "믿지 아니하고"라고 평하십니다.
이 불신앙은 그 자체로 거듭나지 못했거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없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거듭나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이루어졌는데, 현재에 의지하지 않음에 대하여 내려지는 평가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믿지 아니함에 대해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하나님의 회개 촉구를 받아들이고 돌이키면 그 관계가 회복됩니다.
하나님은 돌이키는 것을 책임지시지는 않으십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몫입니다.
반면에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집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촛대를 옮기시겠다는 선언이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토하여 내치리라는 선언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행하지 않을 말씀을 하지도 않으십니다. 하신 말씀을 실천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래참으시는데 영원히 참으시지는 않으십니다.
때로는 살아있는 동안에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떠나가시고 때로는 죽음 이후의 최후 심판 때에 썩어진 것을 거두게 하십니다.
물론 애초에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이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의 교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고서 살았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믿지 않을 것일 뿐입니다.
신앙적인 삶과 동떨어진 삶이거나 신앙적으로 여겨지는 삶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믿지 않은 것일 뿐입니다.
거듭난 이는 하나님과 그분의 역사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자리를 알고 지키며 자신의 본분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매 순간마다 중단없이.
혹시라도 자신의 생각을 앞세워 자리와 본분을 이탈하였다면 하나님께서 오래참으시는 기간 안에 회개하여야 합니다.
구원에 있어서 다른 길이나 방도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