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서는 제21항을 살펴봅니다.
자음과 자음이 연달아 이어지면 두 자음 간에 소리의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잎사귀[입싸귀]’에서 ‘ㅍ’은 [ㅂ]으로 ‘ㅅ’은 [ㅆ]로 소리가 바뀌는 것도 두 자음이 연이어 나타나면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자음으로 끝나는 명사나 용언 어간에 다시 자음으로 시작하는 접미사가 결합하게 되면 다양한 소리 변화가 일어나리라 예상할 수 있는데, 그때마다 소리 나는 대로 적게 되면 명사나 용언 어간의 표기 형태가 고정되지 않게 되므로 뜻을 이해하는 데에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명사나 용언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도록 규정한 것입니다.
앞에서 수차례 강조한 바 있습니다만, 소리대로 적지 않고 원형을 밝혀 적도록 하려면 표기와 소리가 다른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음화鼻音化니 유음화流音化니 하는 말이 바로 자음과 자음 사이에서 일어나는 소리 변화의 규칙성을 설명하는 용어입니다. 규칙적이라는 것은 설명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원형을 밝혀 적는 것이 가능한 것이지요.

‘펀펀하고 얇으면서 꽤 넓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형용사는 ‘넓적하다’입니다. ‘
넙쩍하다’나 ‘
널쩍하다’로 적으면 안 됩니다. 반면에 ‘실제적인 공간을 나타내는 명사와 함께 쓰여 꽤 너르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형용사는 ‘널찍하다’입니다. ‘
넓직하다’나 ‘
넙찍하다’로 적으면 안 됩니다. ‘실제적인 공간을 나타내는 명사와 함께 쓰여 꽤 넓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형용사도 ‘널따랗다’입니다. 이 역시 ‘
넓다랗다’나 ‘
넙따랗다’로 적으면 안 됩니다. 한편 흔히 ‘광어’라 일컫는 바닷물고기는 ‘넙치’로 적어야 합니다. ‘넓다’와 관련된 말의 표기가 복잡해 보이겠지만 저마다 이유가 있습니다.
용언 어간의 겹받침에서 뒤엣것이 발음되는 경우에는 겹받침을 모두 드러냄으로써 원형을 밝혀 준다는 취지가 있습니다. ‘넓적하다’의 경우, [넙쩌카다] 즉, 겹받침의 뒤엣것인 ‘ㅂ’이 발음되므로 원형을 밝혀서 적은 것입니다. ‘갉작거리다, 굵다랗다, 늙수그레하다, 얽죽얽죽하다’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의 발음은 각각 [각짝꺼리다], [국ː따랗다], [늑쑤그레하다], [억쭈걱쭈카다]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겹받침의 앞엣것만 발음되는 경우에는 뒤엣것이 발음되는 경우와 구분하기 위해서 원형을 밝혀 적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도록 하고 있습니다. ‘널따랗다’와 ‘널찍하다’의 경우, [널따라타]와 [널찌카다] 즉, 겹받침의 앞엣것인 ‘ㄹ’만 발음되므로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입니다. ‘할짝거리다, 말끔하다, 실쭉하다, 얄팍하다, 짤막하다’ 등도 원형을 밝혀 적자면 ‘
핥작거리다,
맑금하다,
싫죽하다,
얇팍하다,
짧막하다’ 등과 같이 적어야 하겠지만, 겹받침의 앞엣것만 소리가 나므로 이렇게 적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