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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도인은 죽어서 법을 남긴다.

작성자眞明|작성시간06.12.16|조회수49 목록 댓글 4
 

도인은 죽어서 법을 남긴다.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도인은 죽어서 법(法)을 남깁니다.


도력이 높은 수행자들이 열반에 들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수행자가 앉아서 죽었는지, 서서 죽었는지, 사리가 얼마나 나오는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관심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 수행자를 살아 생전에 존경을 했고 또한 많은 보시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 더 깊이  황전이 안목으로 통찰해 보면 본인도 잘 알지 못한 대리 만족을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조사어록을 보면, 스승님이 열반에 들자 스승님의 자리를 앉으려는 수좌와 스승님을 시봉했던 행자가 스승님이 남기고간 법에 대해서 수좌와 행자가 법거량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승님의 법에 대해서 행자가 수좌에게 묻습니다.  스승님 법의 뜻을 수좌가 제대로 안다면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좌가 그 법에 대해서 답을 하자, 행자는 그 답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자 수좌는 행자의 말을 인정치 않고, 자신의 생사가 자유로움의 경지에 와 있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향 하나를 피워놓고 그 향이 다 타기 전에 죽음을 보입니다.  그러자 행자는 죽은 수좌의 등을 만지면서 한 마디 합니다.

“사형이 이런다고 해서 스승님이 남기신 법의 도리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이 이야기의 생사자유를 황전이의 안목으로 파설해 보면, 이 수좌는 생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능력자입니다. 법이 없이 생사를 마음대로 한다고 해서 진정한 생사해탈이 아닙니다.   그저 능력자일 뿐입니다.  이 도리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황전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극한 통찰력이 없이는 큰 스님들의 죽음에 대해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앉아서 죽건, 서서 죽건 결국에는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생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 또한 아닙니다.  설사 능력이라 할지라도 대단한 수행력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모두 죽습니다. 그가 누구이던...

거역할 수없는 이 죽음 앞에서 업을 닦지 못한 사람은 그 업장의 힘으로 죽음이 순조롭지 못합니다.  다행이 수행을 잘해서 업에 걸림이 없는 자는 그 죽음이 자유자재합니다.

이 자유자재한 죽음에 대해서 황전이의 안목으로 파설해 보겠습니다.

 

어떤 큰 스님은 앉아서 죽습니다.  어떤 큰 스님은 몇 달 동안 아파서 고통을 받다가 죽습니다.

이 두 큰 스님 모두 자신의 세운 원력에 의해 죽는 것  뿐입니다. 자신이 세운 원력대로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 죽음이 앉아서 죽던 아파서 죽던 생사가 자유로운 것입니다.


앉아서 죽는 모습을 보인 큰 스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기 위함입니까?  아무리 생사가 자유롭다고 해도 누어서 죽는 것이 훨씬 편한데...  그러나 앉아서 죽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우리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은, 큰 스님의 자비 입니다.

누구든지 끝없이 정진을 하면 생사가 자유롭다는 것을 몸소 보여 주시는...


그리고 몸이 아파서 돌아가시는 큰 스님은 이생에 닦은 수행의 힘으로 내생에 받아야 할 업장을 미리 끌어 당겨서 받습니다.  그래서 몸이 아픈 것입니다.  얼마나 생사가 자유로운 분입니까?  다음 생의 업장을 죽음의 직전에 미리 끌어 당겨 받아 버리는 도력,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들어 큰 스님들께서 열반에 드실 때 몸이 아파 큰 고통을 받고 돌아가신 것에 대해서 의아해 한 수행자들이 많습니다.  그 의아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수행자들은 그 동안 큰 스님을 의지해 왔기 때문에 그 큰 스님들이 그 의아함을 남기지 않기를 참으로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기대한 만큼 실망도 큰 법이니까요.

  

어록을 보면 마조선사님께서 몸이 아파서 쉬고 있는데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찾아 와서 

“스님, 몸이 좀 어떠십니까?” 하니

마조선사님께서

“일면불, 월면불이네.” 하였습니다.

 

얼마나 생사가 자유로운 분입니까?  문병을 하려온 스님에게 법을 들어내 보이지 않습니까?

이것이 진정한 생사해탈인 것입니다.

임제 선사님도 임종 직전에 삼성스님에게 묻습니다.

“누가, 나의 법을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 할 것인가?” 하고

삼성스님이 할! 을 하자

“나의 법이 눈먼 당나귀에게 가버렸구나!”

하고 법을 남깁니다.

얼마나 생사가 자유로운 분입니까?

 

두 선사님이 남기신 법의 도리는 무엇인가?

 

[도인은 죽어서 법을 남긴다.]

 

업의 걸림이 없는 경지에서

생사를 마음대로 할지라도


법을 갖추지 못했다면

진정한 생사해탈이 아니네.


업의 걸림이 없다고 해서

업이 없는 것은 아니네.


부처가 되기 전에는...


도인은 죽어서 법을 남긴다.

얼마나 가슴이 뭉클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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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오도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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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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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보디삿트와 | 작성시간 06.12.16 마하반야바라밀 ().......
  • 작성자香正 | 작성시간 06.12.16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호량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 도인이 세상을 뜰 때는 도를 남긴다고 하는데,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人死留名 虎死留皮 道人留法 吾何留矣 ).
  • 작성자염경희 | 작성시간 06.12.16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 작성자일 행 | 작성시간 06.12.18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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