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브리태니커
마니교는 오랫동안 그리스도교의 이단으로 생각되어왔지만, 일관된 교리, 엄격한 제도와 조직으로 역사 속에서 통일성과 독특한 성격을 유지하여 그 자체가 하나의 종교가 되었다.
마니는 바빌로니아(지금의 이라크) 남부에서 태어나 24세 때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내고 교리를 선포하라는 하늘의 명령에 복종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종교가 시작되었으며, 이때부터 마니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설교를 했는데, 처음에는 방해를 받지 않다가 나중에 왕의 반대로 유죄판결을 받아 감옥에 갇혔고 그 제자들이 '빛을 비추는 자의 고통' 또는 마니의 '수난'이라 부르는 26일간의 재판을 받은 뒤 제자들에게 최후의 메시지를 남기고 죽었다(274~277년 사이로 추정됨).
마니는 자신이 아담에서 시작하여 오랫동안 붓다, 조로아스터, 예수로 이어져 내려온 예언자들의 마지막 계승자라고 생각했다. 참종교의 초기계시가 어떤 언어로 특정 민족에게 전해지므로 지역성을 띨 수밖에 없고 또한 나중에 신봉자들이 원래의 진리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그 계시효과가 제한되어 있지만, 자신은 모든 다른 종교를 대신하여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종교적인 타락을 피하고 교리의 통일성을 보장하기 위해 생전에 자신의 교리를 글로 기록하고 이를 정경으로 만들었다.
마니교는 초창기부터 전세계를 개종시키고자 정력적인 선교활동을 펼쳤다. 마니는 자신의 저술을 다른 언어로 번역할 것을 장려했고 방대한 선교사업을 조직했다. 마니교는 빠른 속도로 로마 제국 서쪽으로 퍼져 이집트에서 북아프리카(여기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청년기에 잠깐 동안 마니교에 심취했음)를 거쳐 4세기초에 로마에 전해졌다. 마니교의 서부 확장이 절정에 달해 남부 갈리아와 스페인에 교회를 설립한 것은 4세기였다.
그러나 5세기말에는 그리스도교와 로마 제국의 맹렬한 공격을 받아 서유럽에서는 완전히 사라졌으며 6세기경 동로마 제국에서도 사라졌다(→ 그리스도교). 마니의 일생 동안 마니교는 페르시아 사산 제국 동부로 퍼졌다. 페르시아에서 마니교 공동체는 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지만, 10세기에는 이슬람교도 아바시드의 박해로 마니교 지도자의 자리를 사마르칸드(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에게 내주게 되었다(→ 사산 왕조).
마니교의 동양확장은 중국이 동투르키스탄을 정복한 뒤 대상(隊商) 행로가 재개된 7세기에 이미 시작되었다. 694년 마니교 선교단은 중국왕실에 다다랐고, 732년에는 중국에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는 칙령이 내려졌다. 8세기 동투르키스탄이 위구르 투르크에 정복될 때, 투르크 지도자 중 한 사람이 마니교를 받아들여 마니교는 위구르 왕국의 패망(840) 때까지 국가종교가 되었고, 동투르키스탄에서는 13세기 몽골족 침입 때까지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중국에서는 813년에 금지되고 그뒤 박해가 계속되었지만, 적어도 14세기까지는 존속했다.
중세 유럽에서 마니교와 유사한 가르침을 가진 이른바 신(新)마니교라는 종파가 다시 나타났다. 바울로파(7세기 아르메니아), 보고밀파(10세기 불가리아), 카타르파 또는 알비파(12세기 프랑스 남부)와 같은 집단은 마니교와 매우 비슷하여 마니교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졌지만, 마니교와 직접적인 역사적 연관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마니는 선대 종교, 특히 조로아스터·붓다·예수의 계시의 진리를 부분적으로 통합시켜 보편적인 세계 종교를 창설하려 했고 단순한 혼합주의를 넘어서 다양한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해석될 수 있는 진리를 추구했다.
이렇듯 마니교는 상황의존적이었고 이 점에서 이란 및 인도 종교, 그리스도교, 불교, 도교와도 비슷하다. 마니교의 핵심은 진리에 대한 영적인 지식(靈知 gnosis)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이원론 종교인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에 속한다. 다른 모든 형태의 영지주의처럼 마니교는 이 세상 삶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고 극도로 악하며, 신의 본성을 나누어 가진 영혼이 악한 물질세계에 떨어졌지만 지혜(nous) 또는 영을 통해 구원 받을 수 있음을 내적인 조명 또는 영지가 계시해준다고 주장한다. 육체와 물질로 뒤섞여 있어서 자의식의 결핍과 무지로 흐려져 있는 진정한 자아를 회복하는 것이 자신을 아는 것이다. 마니교에서 자신을 안다는 것은 신의 본성을 공유하며 초월세계로부터 오는 영혼을 보는 것이다. 영지는 사람이 물질세계의 절망적인 현실에 있지만 영원하고 또 내재하는 끈으로 초월세계와 결합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러므로 영지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이 공동체는 엄격한 규칙을 포용할 수 있는 선별된 자와 선별된 자를 노동과 기부로 도와주는 듣는 자로 나누어진다. 마니교 성례의식의 요소는 기도·자선·단식이며, 죄의 고백과 찬미도 공동체 생활에는 중요하다. 마니교 경전에는 마니가 시리아 원어로 직접 쓴 7작품도 포함된다. 중세에 마니교가 소멸되고 경전이 분실된 뒤, 20세기에 중국에 해당하는 투르키스탄과 이집트에서 경전 일부가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