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문명사회와 인도에서의 윤회 김형준 khjsunya@hanmail.net 4. 동서양의 윤회관 ::::: 목 차 ::::: 들어가는 말 죽음과 윤회 윤회의 기원과 상징 동서양의 윤회관 맺음 말 영속적인 존재에 대한 추구 다시 말해서 불완전을 넘어선 완전에 대한 추구는 인도만이 아니라 시간 공간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들에게 절실한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윤회가 비록 동일한 형태는 아닐지라도 단순히 인도만의 사상이 아니라 서양을 비롯한 대부분의 다른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서양에서의 윤회관을 먼저 살펴보면 우리는 앞에서 이미 이집트의 환생 개념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집트인들은 영혼은 육체가 죽으면 태양신 라에게로 가지만 다시 육체로 되돌아 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죽은 자가 육신으로 되돌아오기 위해서는 이전에 죽은 육신이 썩지 않고 그대로 존재해야만 한다. 그래야 영혼이 되돌아 왔을 때 원형대로 보존된 육신을 자기 것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이집트인으로 하여금 죽은 시신을 보존할 수 있는 미이라를 만드는 방법을 생각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 같은 이집트인의 환생 개념은 죽은 영혼이 되돌아 올 때 다른 신체의 모습을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한다. 다시 말해서 죽은 시신을 미이라로 만들어 보존한다는 것은 영혼이 이전의 죽은 자로 다시 되돌아옴을 의미한다. 이것은 엄격한 의미에서 윤회로 번역되는 samsara의 인도적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이런 관념은 영혼이 이전과는 다른 육체로 태어날 수 있는 윤회라기보다는 일종의 부활의 개념과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은 이후 오시리스의 심판을 거쳐 죄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면 괴물에게 잡아 먹혀 버리는 반면 죄가 없다고 판정받으면 다시 인간으로 -혹은 예를 들어 새나 짐승 심지어는 벌레와 같은 자신이 원하는 다른 존재로-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 역시 도덕적 인과율에 의해 다음 생이 결정된다는 인도적 윤회관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그리스 사상 속에서는 윤회 즉 영혼의 순환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 있을까? 일반적으로 그리스의 사상과 철학을 우리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 신화를 통해서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죽은 자는 하데스의 영역으로 내려가 다시는 살아있는 자의 영역으로 되돌아 올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사람은 죽으면 그저 소멸되는 것일 뿐으로 영혼의 윤회나 환생 혹은 부활과 같은 것을 불가능하다. 비록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의 경우와 같이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죽은 자를 살아있는 영역으로 되돌아오게 하기 위해 떠난 하데스로의 모험은 결국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하지만 그리스 사상에서는 이 같은 특징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 성격의 윤회관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오르페우스 종교와 피타고라스 그리고 플라톤의 사상이다. 오르페우스 종교는 트라키아 지방에서 성행하던 디오니소스의 숭배가 기원전 8세기경 희랍지역으로 전파되면서 생겨난 종교로 그 명칭은 태양신 아폴로와 카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믿어진다. 오르페우스 종교에서는 인간이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자는 선의 요소를 후자는 악의 요소를 각각 대표한다. 원래 인간의 영혼은 완전한 존재로서 신들 가운데 하나였지만 죄를 지어 그 벌로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지상에 태어나 죄를 완전히 씻을 때까지 계속해서 지상에서의 삶을 반복해야만 한다. 죽음은 영혼을 그 감옥인 육체에서 벗어나게 만들지만 그것으로 원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육체 속으로 계속해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죄를 완전히 씻어내면 마침내 불사의 본질로 복귀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오르페우스의 윤회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의 윤회사상과 상당히 유사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오르페우스 종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아폴론적인 이성을 유지했던 피타고라스 역시 수학의 원리로 우주를 설명하면서 철저하게 윤회를 인정했다. 그는 오르페우스 종교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혼은 불멸의 실체이며 신에게 속해 있었지만 죄로 인해 그와는 전혀 다른 속성을 지닌 육체 속에 갇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두가 상반된 속성의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인해 삶은 불안정한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파악했다. 어느 날 그가 강아지를 때리고 있는 사람에게 그 개가 전생의 자기 친구의 영혼이 깃든 것이니 때리지 말 것을 간청했다는 일화를 통해 우리는 그가 윤회를 얼마나 철저하게 신봉하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윤회는 도덕적 인과율에 의해 결정된다는 관념을 가지고 철저하게 육식을 금하고 금욕생활을 지켜났다. 그의 이 같은 생각은 삶을 괴로움(duhkha)로 간주하고 까르마로서의 도덕적 인과율을 윤회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인도적 관점과 흡사하다. 이외에도 우리는 그리스의 대표적 사상가 가운데 한명인 플라톤에게서도 윤회사상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그의 저서 파이돈에서 케베스의 물음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답변 형식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먼저 사람이 죽은 후에 그 영혼이 하데스에 있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생각해 보기로 하세. 아주 오래된 설에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에 갔다가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와 죽었던 가운데 다시 살아난다고 하는 것이 있음을 우리는 기억하지 만일 산 사람이 죽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우리의 영혼은 저세상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고 하면 영혼이 다시 날 수는 없을테니까." 그는 계속해서 생성은 되살아나는 것이며 되살아나는 것이 삶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라면 죽은 자가 산 자로부터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 자도 죽은 자로부터 생긴다고 결론짓는다. 플라톤의 사상 역시 앞에서 언급한 인간의 영혼의 본질과 육체와 영혼을 선과 악으로 대비한 오르페우스 종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학자들에 따라서는 이러한 그리스의 윤회관이 이집트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헤로도투스는 피타고라스가 이집트로부터 환생의 이론을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라다끄리슈난은 이미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이집트의 사상이 윤회보다는 일종의 복사의 개념과 유사한 부활의 의미에 가깝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보다는 동양 사상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주장한다. 그리스의 윤회사상은 라다끄리슈난의 말을 그대로 빌리면 상당히 반그리스적이라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 진위가 어찌되었든 그것이 적어도 인도의 윤회사상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사실에 주목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유대교의 카발라에서도 우리는 윤회사상의 흔적을 상당히 많이 찾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초기 기독교에서도 널리 인정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47년 사해지방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사본은 예수의 가르침이 그보다 적어도 100여년 앞서 있던 에세네파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사해 사본에 의하면 에세네파는 윤회설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유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 오리게네스 등과 같은 초기 기독교인들에게서도 윤회관념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하지만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니케아 회의를 거쳐 윤회사상을 부정하기 시작하다가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그의 부인 데오도라가 기독교 단성론자들과 결탁하여 콘스탄티노플에서 제 5차 공의회를 개최하고 여기서 플라톤 사상에 입각하여 윤회사상을 가르쳤던 오리게네스의 이론을 이단으로 결정함으로써 기독교에서 윤회라는 관념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자연히 영혼이 탄생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영혼의 선재론도 부정되면서 생은 오직 1회적인 것으로 고착된다. 아마도 윤회론이 부정된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여러 번 반복된 생을 통해 결국은 모든 인간이 괴로움 혹은 자신의 잘못을 벗어나 완전한 구원 혹은 해탈을 얻을 수 있다는 윤회의 이상적 관념이 황제나 교회 또는 기독교 사제들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들의 권위를 약화시킬 수 있는 위험한 요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이후 오늘 날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사상에 근거한 서구 사회에서 윤회 사상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서양의 고대 윤회 사상이 위와 같다면 동양에서는 과연 어떠했을까? 여기서는 중국보다는 그것의 특성상 인도 사상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윤회 또는 다시 태어남이라는 개념이 언제 본격적으로 인도에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마다 견해가 다르다. 어떤 이들은 초기 베다에는 영혼이 이승으로 환생한다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반면 또 다른 이들은 리그베다와 브라흐마나스에서 그런 개념이 발견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가운데 브라흐마나스에서 영혼의 윤회관념이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 시대의 사제들이 선한 행위를 통해 좋은 가정에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했다는 사실을 들어 이미 윤회가 도덕적 인과율인 까르마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기도 하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2장의 내용을 토대로 비록 뚜렷한 가시적 증거는 없을지라도 모헨조 다로와 하랍빠의 인더스 문명을 건설한 초기 때부터 이미 그러한 관념이 존재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욱 타당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기원에 대한 논란을 별개로 하더라도 우리는 적어도 브라흐마나스에서 윤회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고 우빠니샤드에 이르면 보다 분명한 형태로 드러난다고 말할 수 있다. 까타 우빠니샤드(Katha Upanisad)에서는 죽음의 신 야마와 나찌께따의 대화를 통해 윤회의 관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는 산 사람은 곡식과 같이 익어서(죽은 다음) 다시 곡식과 같이 태어난다고 말한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죽음의 탄생에 관한 인도신화에서 밝힌 것처럼 죽음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존재 형태의 변화일 뿐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인도에서의 윤회가 단순히 물질적 육체의 순환만이 아닌 영혼의 회귀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물질로서의 육체와 영혼의 재결합이라고 할 수 있는 다시 태어남 또는 윤회란 과연 어떤 상태인가? 그것은 이집트의 부활처럼 동일한 신체와의 결합인가? 아니면 다른 신체와의 결합인가? 만일 후자라면 어떻게 이전의 존재와 다시 태어난 존재 사이에 동일성을 주장할 수 있는가? 또한 어떤 방법으로 인간이나 동물처럼 특정한 신체와 결합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연적 결합인가 아니면 어떤 필연적인 조건이 있기 때문인가? 이에 대한 인도적인 해결책은 바로 까르마(karma)라는 개념이다. '행위하다'라는 동사어근 kri에서 파생된 까르마는 베다시대 제식 속에 들어있는 주술적인 힘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여 후에 존재적 관점에서는 우주적 인과율 그리고 도덕적 관점에서는 도덕적 인과율로 발전한다. 그 결과 업으로 번역되는 까르마는 일상적 행위의 개념을 넘어 그 이면에 있는 행위의 동기와 그에 뒤따르는 일련의 객관적인 결과를 의미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행위의 결과로 쌓여진 까르마가 영혼에 육체를 끌어당기는 일종의 견인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의 견인력으로서의 까르마는 신체가 가시적인 물질인데 비해 비가시적인 비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영혼의 비물질성과 동일한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상캬철학에 의하면 뿌루샤인 영혼은 결코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순수주체인데 비해 까르마는 쁘라끄리띠의 요소로서 비록 비물질적이기는 하지만 인식의 대상될 수 있는 물적 대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인도에서의 인간관은 서양을 비롯한 일반적 관점에서 물질과 영혼이라는 이원적 요소의 결합인데 비해 인식의 주체로서의 영혼(뿌루샤 또는 아뜨만)과 이기적 자아와 같은 인식 대상으로서의 비물질적 사유와 물질로서의 신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영혼은 영원불멸하는 본질인 반면 육체는 흙, 물, 불, 바람의 네 가지 요소의 결합과 분리를 통해 개별자의 소멸과 생성을 그리고 까르마는 바로 불변하는 영혼과 변화하는 물질을 상호 결합시키는 매개물로 작용한다. 이러한 관념은 후에 불교에 이르면 업에 의한 연기설로 나타난다. 이 까르마는 개별자가 특정한 시간 공간적 환경 속에서 태어날 수 있는 조건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면서 인도에서 자연스럽게 도덕적 인과율의 형태로 확립되어 나간다. 이 때문에 바가바드기따에서는 '죽음의 순간에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다음 생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이같은 도덕적 인과율로서의 까르마가 윤회와 결합하면서 까르마의 완전한 소멸이 바로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는 해탈의 이상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출처 - 불교평론 2004년 가을호 제20호 :불교평론은 현대불교신문에서 발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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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바드기타 (힌두교 문학) [Bhagavadgita]
(산스크리트로 '신의 노래'라는 뜻)
힌두 문헌에 나오는 서사시.
〈마하바라타 Mahābhārata〉('바라타 왕조의 대서사시'라는 뜻)라는 인도 서사시 제6권에 속하며, 전사 아르주나 왕자와 그의 친구이자 마부인 크리슈나(비슈누 신의 화신이기도 함)가 대화하는 형식으로 씌어졌다. 〈바가바드기타〉는 〈마하바라타〉의 주요부분보다 늦게 형성되었으며, AD 1~2세기에 씌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시는 700개의 산스크리트 송(頌)이 18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시의 대화는 판다바족과 카우라바족 사이에 대전이 발발하려고 하는 전쟁터에서 이루어진다. 두 나라 군대가 서로 대치해 있고, 많은 친구와 친척들이 적군에 정렬해 있는 것을 보고 아르주나 왕자는 주저한다. 그는 정의롭지만 잔인한 전쟁에 참가하느니보다 적군에 항복하여 살해당하는 것이 더 나은 일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그는 크리슈나에 의해 전사로서 의무감을 회복하게 되는데, 크리슈나는 사적인 승리나 전리품 획득과 같은 이기심없이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전쟁에 임하며, 자신의 의무를 냉정히 수행하는 것이 더 위대한 길이라고 그에게 지적해준다.
〈바가바드기타〉는 윤리문제로 출발하지만 그것을 훨씬 넘어서서 신의 본질과 인간이 어떻게 신을 알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광범위하게 고찰한다. 이 문헌의 위대함은 목적과 수단 2가지를 모두 서술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 문헌은 인도 전 시대의 종교사상과 실천의 개요를 제시한다. 확실히 유신론적 작품이기 때문에 이 문헌은 흔히 궁극적 실재를 크리슈나와 동일시되는 인격신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최고신을 내재정신(內在精神), 초월적 절대자, 즉 궁극적으로는 각 개인의 영혼이 자각된 상태로도 자주 언급한다. 힌두교 전통에서 신과의 신비한 합일로 이끄는 3가지 방법은 모두 신에 접근하는 1가지 방법의 다른 측면으로 묘사된다.
〈바가바드기타〉의 인기는 고대와 현대에 걸쳐 그것에 대해 주석서·용어사전·해설서가 많이 씌어진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석서는 위대한 철학자 샹카라의 것이다. 고대의 다른 중요한 주석서로는 바스카라·라마누자·마드바·닐라캉타·슈리다라·마두수다나의 것이 있고, 현대의 탁월한 주석서는 B. G. 틸락, 슈리 오로빈도, 마하트마 간디, 사르베팔리 라다크리슈난의 것이 있다. 〈바가바드기타〉는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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