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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신화

자이나 철학과 교리

작성자일 행|작성시간09.10.01|조회수240 목록 댓글 0

자이나교는 처음에는 힌두교 개혁운동으로 시작되었다. 힌두교의 최고 계급인 브라만이 제사 계급으로 부패하고 무능한데 대하여 왕족 무사 계급(크샤트리아)이 개혁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무사 계급들은 후에 일어난 불교와 함께 힌두교의 개혁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였으나 다른 종교로 분리 독립하여 자이나교를 창시하였다.

2. 교조 바르다마나
힌두교는 자연 발생적 민족 종교로서 창시자가 없다. 그러나 자이나교는 인도에서 최초로 교조가 있는 종교로 시작되었다. 그의 이름은 마하비라 원이름은 바르다마나(BC 599-727)이다. 인도 제2의 계급이다.
바르다마나는 30세 때 부모가 죽자 고행의 길을 떠났다. 13년 고행 수도 끝에 성도(成道)하여 모든 카르마의 최종단계를 끊고 열반에 도달하여 케발린이 되었다. 그의 나이 42세 때였다.


바르다마나는 모든 사물의 이치 중 모르는 것 없는 완지자(完知者)요, 육체적으로도 잠의 유혹을 물리치고 잠자는 것을 극복할 정도가 되었다. 그가 BC 527년에 72세로 사망할 때 까지 50,000명의 승려들과 약 517,000명의 평신도들과 5,400여 명의 케발리를 만들었다.

3. 자이나교의 경전들
자이나교의 경전은 아가마스(계율의 뜻)인데, 마하비라로부터 여러 세대를 지나오면서 자이나교의 많은 부분이 구전에 의존해서 내려오다가 마하비라가 죽은 후 200년 후부터 기록된 것이라 한다. 그 후 구전 내용을 최후로 가장 완벽한 지경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바드라바후였다. BC 3세기 초에 그가 죽은 후 바로 경전이 재구성되었는데, 그 본체 부분을 안가스라고 하며, 전체 12부분의 교훈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제12부는 없어지고 현재는 11부분만이 전해진다.

4. 자이나교의 교리
자이나교는 인도교의 신관을 배척하였으며 사람 외에 다른 숭배 대상을 인정치 않았다. 자이나교의 교리적 기원은 힌두교의 브라만 사상보다도 더 위로 올라가서 물활론적 힌두교 안에 포함된 관념들이 자이나교의 정통 사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자이나교는 힌두교 내의 다신교 신앙을 - 그것이 자연적 신앙이든 초자연적 신앙이든 - 모두 거부한다. 그들은 어떠한 신에게든 제사하거나 기원하는 것도 거부한다. 그러나 마하비라는 사후에 신격화되어 신자들로부터 다른 23 승리자들, 혹은 성자들과 함께 예배와 기도를 받고 있다.

1) 철저한 인본주의 자력종교
자이나교는 영원, 자존, 최고의 실유로서의 창조자를  부인한다. 그 대신 그들은 인간 존재의 영원성, 생명의 보편성, 신화되고 해탈된 인간 영혼이 창조주를 대신함을 믿는다. 그들은 시조를 신으로 격상시켜서 믿고 24 티르트한카라 등 많은 구원자를 설정하였다.


자이나교가 힌두교의 차이점은 힌두교가 초자연적 능력을 믿는 유신 사상이라면 자이나교는 초자연적 능력이나 초월적 신적 존재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들은 카르마법칙의 불변성 구원의 방편으로서의 지성과 자기 의존을 믿는다. 자이나교도에게 무신론적이라고 하면 그들은 격노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현대 종교학적 의미에서 유신론적 요소는 극히 적고 무력하다.

2) 이원론적 세계관
자이나교의 우주관은 두 독립된 범주들의 영원 공존 우주관이다.
과거에 있고 현재에 있고 미래에 있을 생물과 무생물로 이분된다. 이것은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적 세계관이다. 인간에 있어서도 악한 물질과 순수한 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영혼을 가진 생물들은 그 각자의 신체를 갖고 있고 무생물은 식물, 불, 물, 바람, 땅의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생물과 무생물을 통하여 창조주 없는 우주가 존재한다. 자이나교의 철학이 불교나 힌두교와 비교해 볼 때 우주를 생물과 무생물의 두 본체로 보는 이원론적 체계가 불교나 힌두교의 체계들과는 중요한 내용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우주에 살고 있는 영혼의 수는 무한한데, 그들 중 대부분은 영원히 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윤회의 과정 안에서 끊임없는 윤회를 강요당할 것이다. 이 세상은 자체가 흥왕과 쇠퇴를 반복하게 되어 있다. 이 세계는 우주의 일부분이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무수한 우주적 기복을 되풀이하면서, 문명의 발달과 쇠퇴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 현재 우리는 문명이 하강하는 단계 가운데 다섯 번째 단계 와 있다고 보고 있다.

3) 영혼
영혼의 본질적 특징은 지각과 지식이다.
영혼은 제1단계에서 시작해서 다른 단계로 끊임없이 여행을 한다.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면서 카르마라는 냉혹한 법칙에 따라서 움직인다.

4) 업(業)과 전생(轉生)
업의 교리를 따른다는 점에서는 자이나교가 힌두교와 같다. 인도교의 인과법칙과 윤회전생설을 믿는다. 이 교리에 의하면 모든 행동, 사상, 언어, 행위는 반드시 다른 행동, 사상, 언어, 행위를 생산하게 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다.


자이나교는 윤회와 전생교리에 동의하기 하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 주어진 영혼의 상태는 업 때문에 항상 영접의 긴 세월 동안 계속된다는 교리를 따르는 것이 된다.
자이나교의 세계관은 염세주의적이다. 이 세상은 비참하고, 슬프고, 인생의 행복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또한 이 세상의 삶에 대한 보상의 길도 없다.

5) 구원의 길
우주에 있는 영혼의 수가 무한하고 전생의 사이클의 길이가 또한 무한하기 때문에 영혼이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희귀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기간 동안을 매우 좋은 기회로 여기고 세 가지 보화를 가짐으로써 구원의 길을 추구해야 한다. 세 가지 보물이란 정지(正知), 정신(正信), 정행(正行)을 말한다.


자이나교에서는 영혼이 모든 속박을 벗어나는 최종 해방을 열반이라고 한다. 이 3보를 통해 인간의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5. 자이나교의 신앙생활
자이나교에서는 어떠한 생명이든지 해하거나 죽이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윤리는 금욕을 통한 고행이다. 이 고행의 목적은 욕망과의 싸움이다. 카르마가 이 욕망이라는 더러운 길로 인간의 영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외면적 참회와 내면적 참회가 있는데 전자에는 금식, 소식, 절식, 소음, 굴욕, 고독 등이 있고, 후자에는 예의, 봉사, 소유감 포기, 공부, 묵상, 죄의 회개 등이 있다.


자이나교에서는 절기와 순례를 엄격하고도 엄숙하게 지키고 있다.
자이나교에서는 회개를 중요시하여, 가장은 월 2회 임시 승려가 되어 고행․봉헌하고 한다. 순례는 행위를 중요시하는 자이나교에서는 절대 필수의 신앙생활로 규정하고 있다. 

 

자이나 철학의 개요

 

  Jainism은 고대의 비베다적․비정통적 사상과 실천체계이며 베다의 Brahmanism에 대한 반동이자 개혁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Vardhamāna가 자이나교의 창립자로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자이나교의 전통에 따르면 Tīrthaṁkara(완전한 영혼, 인류의 안내자) 중에서 스물 네 번째 인물이다. 

 


  Vardhamāna는 B.C. 540년에 Bihar의 Kundagrāma에서 왕족으로 태어났다. 실존의 뚜렷한 특징으로서 고통과 질병과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 30세에 출가한다. 수년간의 모색 끝에 해탈의 길을 발견했다고 선언한다. 이 발견에 의해 그는 Jina(정복자) 혹은 Mahāvīra가 되었다. B.C. 468년에 입적한다. 

 


  자이나의 형이상학은 생명적 실체(jīva)와 무생명적 실체(ajīva)라는 dualism의 형식을 취한다. 영혼(jīva)․물질(pudgala)․공간(ākāśa)․다르마(dharma)․아다르마(adharma)․시간(kala)의 5가지 실체 중에서 맨 앞의 것만이 생명적이며 나머지는 비생명적이다. 또한 앞의 네 가지는 延長된 것으로 나타나지만 맨 마지막의 시간은 비연장적 실체이다.

 

  실체(dravya)란 여러 성질을 소유한다. 또한 거기에서 성질은 본연적인 속성(guna)과 우연적인 양태(paryāya)로 구분된다. 본연적인 속성이란 특정한 실체가 그로 인해 그것답게 되는 것을 말하고, 양태란 실체가 한 때 소유했다가도 다른 때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세계의 영구성은 본연적인 성질에 의한 것이며, 세계의 변화성은 실체가 지닌 우연적 성질에 기인한다.

 


  예컨대 영혼의 경우 그것은 의식을 본연적 성질로 하며 고통이나 쾌락 따위를 우연적 성질로 지닌다. 그러므로 영혼은 영구적이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자이나는 우빠니샤드에 나타나는 변치 않는 절대자로서의 브라흐만과 더불어, 불교의 찰나 생멸의 흐름과 같은 절대적 변화의 개념도 거부한다. 

 


  자이나의 형이상학에 따르면 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영원한 jīva(命我)들이 각각 그들을 내포하고 있는 물체나 몸들의 크기에 따라 한계 지어진 크기를 가지고 있다. 이 jīva는 그들이 거주하는 물체에 따라 크기를 가지고 존재하며, 돌이나 흙과 같은 것도 살아있는 것으로서 그 안에 jīva를 지닌다. jīva는 우리의 모든 정신적인 작용의 주체로서 행동의 주체이기도 하다. 우주는 가득찬 영혼으로 맥박친다.

 


  물질(pudgala)은 궁극에 있어서 원자적이다. 관찰되는 대상은 구성원자의 수와 배열의 차이에 기인한다. 地․水․火․風의 요소들은 구분이 불가능한 원자들의 배합의 산물이다. 다르마(dharma)란 사물의 운동 조건이며, 아다르마(adharma)는 정지의 조건이다. 이들은 현실에서 경험하는 사물의 운동과 정지로부터 추리된다. 예컨대 물은 물고기가 운동할 수 있는 조건이 되며, 땅은 그 반대의 역할을 해준다.

 


  한편 시간(kala)은 공간 속에 연장되지 않는 실체라는 점에서 지와와도 다르며 나머지 비지와와도 구분된다. 이것은 허공과 같이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가지적이지만, 사물의 지속성, 변화, 활동, 새로움, 낡음 등으로부터 추리된다. 시간은 분할할 수 없는 단일한 존재이지만 경험세계 속에서의 시간은 사물의 변화를 통해 각각의 단위로 나누어진다. 

 


  jīva는 본래적으로 다 같으며 jñāna(無限智), darśana(見), vīriya(力), sukha(樂) 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karma로 인하여 이러한 성품들이 가리워져 있고 서로간에 차이를 나타낸다. jīva에 달라붙은 까르마는 미세한 물질의 일종으로서, 이것에 의해 jīva가 제 성품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까르마는 인간의 여러 행위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다시 태어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현세에서의 삶을 통해 전생에 쌓은 업은 소진하게 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업이 jīva로 유입되어 새로운 삶을 계속하게 된다. jīva는 karma-śarīra(業身)라는 업의 물질로 구성된 미세한 몸과 더불어 윤회를 거듭하게 된다.

       

  해탈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jīva가 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것을 위해 더 이상 새로운 업이 유입되지 않도록 차단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감각기관의 제어를 통해 격정과 업을 줄여야 한다. 다음에는 이미 들어와 있는 까르마를 tapas(苦行)을 통해 제거해야 한다. 의식적으로 행하는 고행을 통해 이미 쌓여 있는 업이 자연적인 소멸보다 빨리 소멸된다.

 


  고행에는 내적 고행과 내적 고행의 두 가지가 있다. 특정한 자세를 취하거나 더위와 추위 등에 맞서는 것이 내적 고행이라면, 티르탕카라에 대한 예배라든가 봉사 혹은 명상이나 참회는 내적 고행이다. 이들은 모두 영혼의 정화를 위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jīva가 까르마로부터 정화되면 다시 환생하는 일이 없이, 우주의 맨 꼭대기로 승천하여 거기에서 영원하고 행복한 전지의 삶을 영위한다. 이것이 자이나교의 해탈이다.  

 

 

 

  ** 자이나의 인식론

  자이나에서는 인식에 필수적인 감각기관을 지식의 장애물로 간주한다. 그 이유는 jīva가 원래의 상태에서는 전지하지만, 감관에 의존하는 윤회의 삶에서는 까르마와의 결합되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완전한 인식수단으로 작용하는 감관이란 jīva로부터 원래의 전지성을 빼앗는 장애물로 여겨진다.

 


  jīva는 까르마로부터 생기는 제한과 장애를 극복하고 순수․완전․전포괄적인 본래의 인식상태를 회복해야만 한다. 그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jīva에 드러나는 까닭에 존재의 다양한 측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지식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jīva의 그러한 상태는 지각이나 사고와 같은 일상적인 인식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재에 대한 직접적․직관적․비지각적․비개념적 파악을 통해 얻어진다.  

 


  자이나에서는 모든 인식을 간접적인 것(parokṣa)과 직접적인 것(aparokṣa)로 구분한다. 간접적인 인식은 jīva 이외의 다른 것에 연루되어 획득되는 인식을 말하고, 직접적인 것은 jīva가 감관의 개입 없이 획득하는 것을 가르킨다. 다른 대부분의 학파에서 감관에 의해 획득되는 지식을 직접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반면에, 자이나에서는 이를 간접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jīva 자체가 아니라 까르마의 영향 하에 있는 감각이나 마음을 통해 인식하기 때문이다.

 


  자이나에서는 감관에 의한 지각을 ‘상대적으로 직접적인 인식’이라고 부른다. 그들에 따르면 오직 해탈한 jīva만이 사물의 모든 측면을 알 수 있다. 세속적인 차원의 까르마적 그물에 사로잡힌 영혼은 포괄적이고 완전한 인식을 가질 수 없다. 이러한 생각은 syādvāda(syād 관점에 상대적인, vāda 교설)라는 7가지 판단 형식으로 구체화한다.

 


        1. R, S는 P이다.

        2. R, S는 P가 아니다.

        3. R, S는 P이며, S는 P가 아니다.

        4. R, S는 진술 불가능하다.

        5. R, S는 P이며, S는 진술 불가능하다.

        6. R, S는 P가 아니며, S는 진술 불가능하다.

        7. R, S는 P이고, S는 P가 아니며, S는 진술 불가능하다.

 


  자이나의 인식론은 인식의 상대성에 주의를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다음과 같은 약점을 지닌다. ㉠상대성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절대적인 것에 비추어서만이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7가지 판단형식은 판단 가능성의 종합이 아니라 단지 기계적인 조합에 불과하다. ㉢은연 중에 인식의 상대성을 절대화하는 오류를 범한다. ㉣인식의 상대성에 대한 절대화는 스스로의 교리체계에 내재하는 keva-kajñāna(獨存智)의 개념과 상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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