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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신화

[스크랩] 박석 교수 : 무묘앙 에오의 사인선에 대하여...

작성자일 행|작성시간09.10.03|조회수758 목록 댓글 1

에오의 깨달음의 핵심은 철저하게 '지금 여기'에 깨어 있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라즈니쉬보다 훨씬 더 치열하다고 할 수 있다. 라즈니쉬가 다소 시적이고 달콤한 언어로서 사람들을 몽상적인 분위기에 빠지게 하는 면이 있다면 에오는 그런 것마저 부정하고 더욱 치열하게 적나라하게 '지금 여기'에 깨어 있으려고 하였다.


그렇게 치열하게 '지금 여기'에 깨어있게 되면 자연 '아무 것도 없음'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된다. 그렇게 될 때는 자연 세상의 모든 짓거리들이 우습게 보이게 된다. 특히 도를 닦았다는 사람들이 하는 짓거리들이 더욱 우습게 보인다. 에오의 글이 독설적이고 냉소적인 측면이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인선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만들어진 수행법이다. 사인선 속에는 여러 가지 복잡하고 다양한 수행법들이 숨어 있다. 인도의 요가나 티벳의 탄트라의 비법도 있고 선종의 화두선의 원리도 있다. 에오는 이러한 여러 수행법들을 자신의 깨달음에 비추어 재해석하고 새롭게 활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중요한 것은 테크닉이 아니다.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세계관이다. 사인선을 깊게 하게 되면 결국 에오가 체험하였던 그 세계에 가깝게 다가가게 될 것이며 결국 그와 유사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사인선 명상법의 핵심은 완전한 죽음, 즉 완전한 허무와 적정의 세계로 다가서려고 하는 것이다. 그 세계가 진정으로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인지 아닌지는 각자가 판단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그것은 사실 어쩌면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 주관의 세계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주관 속에는 개인의 주관과 아울러 집단주관도 포함되어 있다. 에오의 글을 읽고 있으면 에오 특유의 개성도 있지만 그 속에는 일본 문화의 특유의 냄새도 짙게 깔려 있다. 특히 죽음에 대한 사고방식은 일본식 죽음의 미학 냄새가 풀풀 난다.


모든 깨달음 속에는 개인주관과 집단주관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한 것이 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체험할 수는 없다. 어차피 깨달음이 주관의 세계의 틀을 완전히 초극할 수 없다면 거기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할 때 객관적인 삶의 현실을 무시하고 자신의 세계에 도취되어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것이다. 에오 또한 이 부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명상법으로서의 에오의 사인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세계의 명상법에는 많은 종류가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의식을 어느 한 군데 집중하여 특정한 의식 상태를 만들어가는 지법과 자기 의식을 있는 그대로 관조하는 관법이 있다.


에오의 명상법은 비록 상당히 고급스러운 명상법이지만 지법에 속하는 명상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지법의 가장 큰 장점은 빠른 시간 내에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에오의 사인선 또한 빠른 시간 내에 강력한 효과를 볼 수 있는 명상법이라고 본다. 특히 우리 의식 깊은 곳에 있는 텅비어 있음과 지고의 정적을 맛보는 데는 매우 강력한 방법이다.

 

지법은 강력하지만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의식세계를 좀 더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어느 한 영역의 세계에 고착되기가 쉽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삶의 전체성을 보지 못하고 한 쪽으로 치우치기가 쉽다. 에오의 사인선 또한 예외는 아니다. 텅비어 있음이 전부는 아니다. 이 우주는 텅비어 있음과 고요함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수없이 많은 존재들로 가득 차 있고 끊임없는 활동하고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전체성을 보지 못하고 한쪽에 치우쳐 있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 특히 에오의 사인선은 허무주의적이고 냉소주의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어 이런 면에서는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내가 볼 때 에오는 불쌍한 친구다. 나름대로 샤프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성격이 지극히 반항적이고 냉소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이 우주의 한 쪽부분, 특히 니힐니스틱한 부분만을 중점적으로 계속 바라보다가 절망한 나머지 죽어버린 친구이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모름지기 전체를 바라보는 눈을 지녀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박석 교수님께서 2003년 12월 25일자로 http://www.paraboki.net/ 에 올린 명상에세이 글입니다. 지은이의 허락은 받지 않고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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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道論道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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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일 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0.04 사회에 만연된 상업적 종교에 대한 독설이 마음에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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