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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신화

EO가 본 얼간이들<신은 바보다><날려버리기 게임>

작성자일 행|작성시간09.10.05|조회수191 목록 댓글 1

EO가 본 얼간이들 중

 

<신은 바보다>
  . 1992. 8. 21 EO
  . 채너링 By EO
  . 채널링 소-스=배후 우주의 시리우스 Z의 의식체!!(발음 불능)
 
  시리우스(큰개자리(Canis Major)의 으뜸별로 표준 1등성의 약 10 배 밝기의 아주 밝은 행성. 눈부시게
빛난다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는  나일강의 범람 시기를 알려준다 하여 숭배됨.
채널러들에 의해 이 별로부터 온 외계인들이 인간으로 많이 태어나 살고 있다는 내용이  보고됨 - 편집
자 주)의 난봉꾼 이성인이 지구인과 하느님을 바보라고 매도하다.
  창조자가 얼마나 바보인지, 또는 바보(였는지)에 대해 논리적 고찰을 통해  시리우스의 우주 지성체가
말한다.


  이 소논문의 타이틀에 괄호된 과거형 부분이 있는 것은 아래 이유 때문이다. 가령, 창조자<그것이 사
람인 근거도 없으므로 그저 창조의지라 해둔다>가 우주에 맨 처음 있었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존재한다
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자, 지구인아, 그대의 조상이 있었기 때문에 네가 있겠지만 그대의 조상은 지금 없다. 따라서 '네가 있
는 것은 창조주가 <지금도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 따위를 굳게 믿을 근거는 아무데도 없다. 설
령 교묘하게 작동하는 우주의 법칙이 있다 해도 창조의지(신이라 불러도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이해하
는 데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그놈>이라고 무르겠다)가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놈이 죽어 오래전에 우주에서 사라져 버렸다 해도 하나 이상할 것이  없다. 기계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진 법칙이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컴퓨터가  처리하는 모습을 당신이 지켜볼
필요는 없으며 그대로 계산을 시켜놓고, 산책을 하든가 혹  당신이 죽게 된다 해도 기계는 여전히 작동
할 것이다. 따라서 좀 말이 많아졌지만, 그놈이 가령 태고 적부터 있었다  해도 지금까지 존재한다는 증
거는 전혀 없다. 차라리 우주 법칙을 꾸며낸 직후 일지감치 꺼져버렸다는 Z909은하계 기밀정보 쪽을 믿
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체 생물, 특히 지구인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하느님이 있다고 생각할 만
큼, 전혀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지성이 없는 생물이다. 여기에 조그만 자극을 주기 위해 이  EO라는 지
구인의 언어 중추를 빌려 말한다. 당신들 역시 매일매일,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죽을 때까지 똑같은 짓
을 되풀이하는 생활이 지겹기도 할 터이고, 권태와 맞부닥치지 않으려고, 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을 지도
모르니 우리 함께 조촐한 논리 게임이라도 해보자.


  첫머리에서도 말했지만, 자네 할아버지보다  자네가 그리고 자네보다 자네  손자 쪽이 우수한 인재가
된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아니, 많은 경우 현상을 한정지어놓고 다른  측면에서 보면 뒤에 나타나
는 생물 쪽이 우수한 것은 당연하다.(무엇을 기준으로 우수한가 하는 문제는 여기선 무시하자)


  그렇다면 가령 신, 아니 실례, 그놈이  맨 처음 있었다고 해서 자네보다  우월하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놈이 최초로 우주에 존재했다는 것은 전혀 그놈의 위대성을 밝히는 근거가 되지 못한
다. 신이 바보라는 고찰의 요점은 바로 이것이다. 하여, 최초에 있었기 때문에 위대하다란 말은 오호, 비
논리적이로다! 이를 통해, 처음에  있었으니까 위대하다거나 지배자라는 논리는  사라졌다. 항상 뒷세대
쪽이 우수할 수밖에 없다.


  자네들 지구인으로부터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우주는 왜 있느냐?" 이  질문에 대해서는, 질문의
구조부터 먼저 분해해 보겠다. 우리는 이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 말한다. "왜 우주가 있느냐고 인간은 왜
묻는가?"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은하계 변두리에 있는 한 태양계의 인기 퀴즈 프로그램<왜냐? 월드> (세
상의 모든 것에 대해 왜?를 찾는 게임 - 편집자주)에서 그전까지 출제된  1천만 개에 이르는 퀴즈를 깔
아뭉개는 문제가 나왔다. 그건 <왜, 왜인가?>였다.  이 문제가 출제된 1년후, 그  태양계의 주민 절반이
자살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자네들이 죽건 살건 우리와는 상관없지만 일단 같은 논법으로 해보자.
 

왜 자네들은 <왜>라고 묻느냐? '맨 처음의  질문을 분해하자'고 한 것은 언어에  대한 정의가 없으면
질문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우주가 있느냐고, 왜 인간은 묻는가?" <왜>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
보면 까닭, 이유, 원인, 동기 등의 뜻을 지닌다. 이 가운데 자네들이 말하는 것은 <그놈>의 <동기>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의 물리적  발생과정에 대해서는 자네들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지구가 찌그러질 만큼 많은 방정식으로 이루어진 문서를  자네들의 혹성에 보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네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우주의 현상적 설명은 아닐 것이다. 단지 지구를  만든 동기, 의지의 원천을
알고 싶어할 뿐이라고 추측하여 이야기를 진행시켜 보겠다.


  우주란, 아니 대체 어디에 있는 우주를 말하는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네들이 말하는 우주란 자네
들의 지각 범위 안의 정보밖에 되지 않는 만큼, 그것은 우리 또는 우리 이외의 생명이 지각하는 우주와
는 그 본질이 다르다. 자네들은 잠꼬대처럼 <만물>을 외치지만, 자네들은 만물의 1조분의 1만큼도 보지
못한 상태이니 이건 전혀 의미가 없는 언어다. 그러므로  자네들이 묻는 그 우주의 범위를 어떻게 한정
지으면 되겠나? 이건 다음의 말에서도 문제가 된다.  있다??? 그러면 <있다>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건
가? 아마 자네들이 보고 만지고 추측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자네들은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일
터이니, 결국 자네들의 첫 질문은 좀더  엄밀하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런 표현이
될 것이다. "자네들에게 지각된다는 이유만으로, 자네들이 인식하는 감각  정보만으로 이름 붙여진 우주
(말하자면 자네들에게 보이는 것, 그러니까 아프다든가 춥다든가 하는 식으로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사
물 전체)는 어떤 동기로  만들어졌으며, 어떤 목적으로  제작되었는가? 라고, 자네들은  왜 의문을 갖는
가?" 이 정도겠지. 자, 이 질문에서 우리의 논리 회로가 받아들이는 것은 이렇다.


  자네들은 언제부터, 우주 또는 그 창조의지 <그놈>을 인격적인 존재로 인식했는가? 자네들 인간에게
는 무엇이든 자네들과 같은 것으로 의인화하는 나쁜 버릇이 있는 것같다. 무엇 때문에 그놈이 인간적인
존재여야 하는가? 왜 그런지 한번 대답해보라. 자네들이  말하는 자연계의 어디에 대체 인간적인 것 따
위가 있는가 말이다? 자네들 이외의 모든 것, 아니 자네들 육체의 세포 하나하나 조차 애당초 인간적인
것도 인격적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만물의 제작자가 인간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말이다. 자
네들이 갖고 있는 사고의 망상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우주를 창조한 그놈이 피조물보다 상위에 있다는
망상이다. 그런데 대체 <상위>란 무얼 말하는건가? 대답해보라. 모르겠다면, 내가 간단한 역설 또는 가
설을 말해볼까.


  불도저는 자네들 인간보다 힘이 약한가? 자네들 대가리는 쇠망치보다 단단한가?  자네들이 갖고 다니
는 전자수첩에 입력된 주소와 전화번호를 자네들은 기억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모두 NO지.
그렇다면, 이렇게된다. 우주를 만든 그놈이 자네보다 물리적으로 혹은 지적으로 강하다는 근거는 아무데
도 없다. 자네가 할 수 있는 것을 그놈도 할 수 있다고 볼 순 없다. 자네들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 하
기 싫은 것을 시키려고 도구나 연장을 만들어내지.


  그렇다면, 우주도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자네들이 아주 이해하기 쉬운
논리적인 비유겠지. 즉, 창조의 동기는 제작자의 대행 업무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행을 위해 만들어진 제품은 항상 창조자보다 상위 수준에 있을 필요가 있다.
  전자수첩이 자네 머리통보다 늦게 계산한다면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만다. 따라서 목적을 제대로 수행
하도록 만들어지기 때문에 모든 제품은  그놈보다 기능적으로 우수하다는 말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미 폐품이 되어 있을 테니까. 단,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그놈은 뭐든 조금씩은 할 수 있는 놈이라고.
자네들이 암산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비유하면, 자네들도 50미터쯤은 잠수할 수 있는 것과 같
다. 하지만 400미터까지 잠수해야 할 때는 구질구질하게 강철통을  만들어야만 하겠지. 여기서 잠수함은
잠수기능에 있어서는 자네들보다 우수한 것이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부분적 기능성의 차원>에
서는 그놈이 자네들위에 있다거나 상위 존재라는 논리는 간단히 무너져버린다. 별게 아닌 것이 되고 만
다.


  때문에 신을 피조물과 비교한다면 거의 무능하다고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이 두 번째 요점이다. 그놈은
솜씨가 없거나 능력이 없다. 


  앞서 말한 대로 먼저 있었다고 해서 우월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바퀴벌레는 자네들보다 훨씬 전부터
있었지만 살충제로 당하는 것을 보면 자네들보다 상위에  있다고 하긴 어렵다. 하긴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네들이 생각하는 생물의 분류이론이다. 참된 우세종이나 상위 존재는 시간적으로  앞서 있지 않다. 때
문에 그놈, 곧 신이 태초에 있었으니까 위대하다는 근거는 전혀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상위 존재는 실제로 어떤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로써 신이 만능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재정의할 수 있다.


  또한 그놈이 만물을 창조했다는 논리도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놈이 우리를  만들고, 자네들을
만들었다 해도 빌딩이나 자동차는 자네들이 만든 것이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산이나 바다나 별이나 태
양을 그놈이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증거는 아무데도 없다.  예컨대 그놈이 만든 창조 로봇이 우주를 제
작, 관리하고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자네들은 이성과 침대에서  삐걱거리며 아이를 만들지
만, 그 아이가 백사장에서 만든 모래산까지 관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의
하나에서 열까지 그놈이 만들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그놈은 멍청이 지성체를 만든 것인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문제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우주를 만들었고 지금은 어떤 목적으로 누가 관리하고 있는가? 그런데 지구
인들아, 목적이란 것은 본래 목적과 달라진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자네들의 일상생활을 보라.
우주도 마찬가지다. 우주도 처음에는 어떤 목적이 있었다. 해도, 지금까지 그것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
는 없다. 벌써 오래 전에 다른 목적을 향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왜 우주가 먼저 만들어졌느
냐는 의문은 무의미해지고, 그보다도 왜 지금 유지되고 있느냐, 또 앞으로는 어떤  목적을 향해 가게 되
느냐가 자네들이 고민하기에 알맞은 문제가 될 것이다. 자, 그놈이 자네들, 또는 자네들을 만든 다른 생
물, 나아가 그 생물을 만든 근원의  지성체를 만든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단지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그놈이 위대하다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그저 창조자를 창조했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에도 없는 존경심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그것은 자네 자식이 자네를 존경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이제 마음이 조금 편해졌나? 지구인이여.
  자, 그럼 자네들은 상위 존재에 대해 어떻게 정의할 작정이지? 그놈을 존경할 필요는 전혀 없어. 대체
지금 무엇이 그놈의 <부권성의 모가지>가 붙어 있게 하는냐 말이다.  이런 일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놈은 다급해지면 자네들에게 딱 한 마디밖엔 하지 못한다. 그것은, 자네들이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어본
말이다. 


  "누가 먹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러나 자네들은 그놈이 있건 말건, 그저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놈은 어쩌면 오직 하나의 능력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도 추측하고  있다. 그것은 <전우주의
파괴능력>이다. 그놈에게 남아 있는 능력과 부권을 유지하는 협박은 아마 그것뿐일 것이다. "언제든  이
우주와 너희들의 즐거운 생활을 때려부술 수 있단 말이다"하며 그놈은 항상 스위치에 손을 대고 있는 9
천억의 나이를 먹은 <꼰대>일지도 모른다.


  자, 이렇듯 그놈, 곧 신은 존경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인데 대체 자네들은 무엇 때문에 그놈 앞에서 알
랑방귀를 뀌며 두손 모아 우러러 섬기는지 한번  생각해보라. 그놈에게 만약 우주의 <관리 권한>이 있
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관리하고 있는 것인가? 관리한다는 것은 아주 성가신 일이다. 따라
서 그놈이 그 일을 할 까닭이  없다. 애써 말 안 듣는  우주를 만들어놓고는 그걸 어떻게든 지배하려고
할 만큼 그놈이 바보라면 또 모르겠지만 원래 관리할 필요 따윈 없는 것이다.
  법칙만 만들어놓으면 자동적으로 관리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그놈도 마지막 주장을 할 것이다. "나
는 우주에서 발상을 하는 것이다." 발상이라는군. 그놈은 대체 무얼  발상하는 걸까? 거꾸로 생각해보면
어떻겠는가?


  애당초 그놈은 발상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가? 그놈은 아무래도  권태를 싫어하는 서성대는 애인지
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주란 그놈의 심심풀이 부산물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나온다. 그 작자는 따분함
을 아주 싫어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한가하기를 바라고 또 아주 좋아하는 우리들 순수 의식체는 이 우
주의 산물은 아닌 것이 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그놈에게 "심심한 것은 좋은 일이다"라고 포교하고 있
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뇌파를 빌려 쓰고 있는 채널러 역시 마찬가지다.  자네들의 우주란 것도 따져보
면 시시한 발상의 산물이다. 더구나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창조 원숭이의 산물이다.


  요점을 정리해보자.
  1. 그놈은 최초에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있다는 증거는 없다.
  2. 그놈은 처음에 있었다 해도 별로 위대하지 않다.
  3. 그놈의 기능이 우월하다는 증거는 없다.
  4. 그놈이 만물을 만든 것은 아니다.
  5. 그놈이 관리하고 있는 것 또한 아니다.
  6. 그놈은 그저 어찌하면 따분하지 않게 영원이라는 시간을 넘길까를 생각하고 아니면 과거에 생각했
건 안했건, 지금은 이미 <뒈져>, 꺼져버렸을지도 모른다.
  7. 지금의 우주는 전혀 무목적이고 각각의 우주에서 관리자라고 자처하는 지성체에 의해 제멋대로 운
영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8. 그놈이 만약 살아 있다면 "우주는 내가 생각해낸 거야"하고 특허권 소송을 지금도 벌이고  있는 늙
어빠진 멍청이거나,
  9. "나는 우주를 언제든지 지워버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얼간이>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하여 신은 어리석은 자이다. 그놈이 위대하다는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끝으로 자네들
의 문화에 대해 우리들이 관찰한 소감을 말해보겠다.
    <자네들이 좋아하는 것, 우주의 지성체가 싫어하는 것>
  사회란, 자네들의 것이든, 우주 민족의 것이든, <죽고  싶지 않다>와 <고통을 겪고 싶지 않다>는  두
가지의 공포 신경신호에 의해 운영된다. 그것은  생명체가 평균적 생존 상태를 유지하려는 <몸부림>의
집합이다.


  발전, 성장 또는 진화라는 전혀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이  말을 맹목적으로 믿고 자네들은 오늘도
내일도 죽기 직전까지도 같은 짓을  되풀이한다. 자네들은 때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나날이 새로운
자극과 오락, 철학을 만들어낸다"고, 그러나 이것은 자네들 스스로의 내부에 품게 된 <호기심을  현상유
지하고 싶다>는 심리적 충동으로 여겨진다. 이런 사실을 놓고 보더라도 기본적으로 자네들과 같은 사고
체 생물에게 발전같은 것은 없으며, 사전에 프로그램 되었고 지금도 작동하는 충동의 유지에 중점이 놓
여져 있을 뿐이다.


  발전해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 자네들이 <발달>시키고 있는 것은  생존을 위해 호기심을 유지
하기 위한 수단밖에는 되지 못한다. 즉, 특대형 바보의 충동을 자네들은 <호기심>이라고 부리는 프로그
램으로 간직하고, 심심하고 따분한 것을 싫어하도록 설계되어  자네들의 문명이란 것은 다음과 같이 뭉
뚱그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육체의 정상적 기능, 지성이라고 하는 호기심의 유지, 형성이라는 자기  자신을 몰아세우는 기능을 중
요한 의무로 짊어지고 살게끔 만들어진 것이 자네들이고, 우주가 존속하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의 수단으
로 만들어 낸 무수한 부산물을 자네들의 문명이라고 한다.  이렇듯 지구의 사고체 생물은 지금 있는 내
부의 프로그램(나쁘게 말하면 욕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며, 자기가 대단하다는 것,
그리고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망상과 착각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시시하고 쓰잘 데 없는 짓을 벌임
으로써 쾌감을 갖는 참으로 불쌍한 생물이다.


  한편, 우리 의식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심심하지도 않다. 자신이
아무것도 못하는 <얼간이>라는 <사실>에 안주하기에 또 많은 일들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없는
평온함을 누리고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자네들의  자유지만 자유라는 말의 정의를 내리는 데에
는 자네들의 언어를 구사해 설명해도 40세기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쯤에서 마치겠다.
  PS : 우리들 시리우스의 지성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지적 생물에 대하여 언제나  간단하게 테스트를
한다. 먼저 우리는 짧은 시간에 상대방이 갖는 취미, 기호, 사고방식, 외모,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 아무
근거 없이 부정하고 욕한다. 나아가 상대방이  가장 듣기 싫어할 말을 찾아내어  퍼붓는다. 이렇게 하면
상대방은 즉각 반론을 펴면서 자기 주장을 한다. 또 혐오나 격노하는 따위 유치한 반응을 보일 때 우리
는 그 생물을 파리 또는 원숭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지적 생물일 경우 자기 자신이 부정될 때 보이는 정상적 반응은 <저들의 어떤 경험이 나를
부정하게 만드는 것일까?>하고 <판단의 이유>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지적  생물은 "왜 나를 그렇게 판
단하느냐"고 반문한다. 지적 생물은 항상 인식의 근거에 주목한다. 그러나 원숭이나 파리는 자기 보존본
능을 반사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그리하여 우리는  나날이 고독한 삶을 산다. 조금  불쾌한 것은 이따금
예고도 없이 "당신의 고요함을 어지럽혀도 괜찮을까요?"하고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파리들의 존재이
다.
  그런 우리에게도 즐기는 것은 있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완전 소멸이라는 죽음을 맛보는 것이
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것은 잠자기이다. 세 번째로 좋아하는 것은 그저 <있는 것>이다. 네 번째는 좋
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 것인데 그저 <보는  것>이다. 따라서 거꾸로 우리가 싫어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우리가 세 번째로 싫어하는 것은 사고하기이다. 우리가 두 번째로 싫어하는 것은 지껄이는 것
이다.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사는 재미이다.
 

<함께 즐기기를 마쳤노라>
  1992. 8. 23, 채널러 : EO, 채널소스 : 정의 불가능,  천체위치 : 시리우스 A의 뒤, 지성체 이름 : 발음
불가능
  앞서 빌린 이 채널러의 뇌파를 통로로 삼아, 이 논문을 자네들 지구인의 집합의식의 평균적 지성속으
로 던져넣어 보았다. 그리고 하룻밤을 기다렸다. 다음날 아침 채널러의 뇌에 회수된 자네들의 반론은 <
기분이 울적해질 만큼> 바보같은 것들이었다. 그것은 이랬다.
  자네들 : 그래도 하느님은 존재한단 말이오. 옛부터 문헌에 나와 있소.
  우리들 : 그글은 누가 썼지?
  자네들 : 하느님을 본 사람이지.
  우리들 : 자네들이 얘기하는 건 지겨울 정도로 많이 보아왔다. 그리고 얘기를  들어봤자 모두 다 전혀
다른 견해들이었다. 하지만 공통되는 특징은 있었지. <우리 민족이 인식한 것만이 제일이다>라는 각 종
족의 주장뿐이었다. 그 중에는 힘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지배력이 그 다음이고, 애정, 파괴력 순으
로... 결국 그놈은 관념의 경쟁표적이 되어 버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네들 : 그러니까 신이지. 우리들 : 그렇다면 왜 으뜸만 되고 둘째는 안 되는 거지?
  자네들 : 둘째는 궁극적으로 지배자가 아니기 때문이야.
  우리들 : 봐라. 역시 자네들은 으뜸 찾아내는 걸 좋아해. 그러면, 그 으뜸인 놈이 있기 전에는 뭐가 있
었지?
  자네들 :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들 : 그럼 무가 으뜸이잖아?
  자네들 : 그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논할 가치가 없다.
  우리들 : 좋아. 그럼 다시 으뜸놀이를 가지고 얘기해보자. 그래, 그놈은 어떤 모습인가?
  자네들 : 장소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더부룩한 머리에 길쭉한 눈을 지닌 모습일 때도 있고, 수염이 있
는 장로로 나타날 때도 있다. 그러나 그건 우리의 눈에 비치는 것일뿐 신에게는 모습이 없다.
  우리들 : 그럼 그 작자에겐 뭐가 있는가?
  자네들 : 지혜, 지식, 힘이다.
  우리들 : 어느만큼 갖고 있는가?
  자네들 : 무한이다.
  우리들 : 바보같은 소리만 하는군. 자넨 무한을 본 일이 있는가? 설마 별이  빛나는 공간 저편도 아마
그럴 거라고 짐작해서 무한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겠지?


  자네들 : 아, 아니, 맞아, 네말대로야.
  우리들 : 그렇다면 무한이 작은 공간은 얼마나 탐색했나?
  자네들 : 기계를 통해서밖에는 보이지 않지만 논리적으로는 어느 정도...
  우리들 : 그럴테지. 자네들이 본 것은 무한한 세계가  아니라 제한된 세계야. 그러니까 자네들은 무한
이란 말을 쓸 자격이 없어. 무한이란 것도 자네들의 환상에 불과한 게 아닌가?
  자네들 : 좋다. 그럼 당신들은 무한을 알고 있는가?


  우리들 : 알 턱이 없잖은가. 하지만 무한 그 자체가 된 적은 있지. 이  봐, 잘 들어, 원숭이, 무한이 된
다는 건 무한해진다는 거야. 자네들이 말하는  시각이니 인식이니 하는 것의 범위나  내용 등, 무엇이든
다 무한이야. 한없이 퍼져나가는가 하면  또 무한 마이크로까지 오므라들기도  해. 한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끝이 없다. 끝이 없는 무한 속에서 인식같은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무한 속에서는 합치는 것도
나누는 것도 없다. 어디서 어디까지라는 제한도 없어. 따라서  무한이 될 수 있어도 그걸 볼 수는 없어.
알겠나, 원숭이?
  자네들 : 그럭저럭
  우리들 : 그럼 논점을 되돌려보자. 자네들은 그 우주에서 맨 처음 생겨난 자를 신이라고 부르나?
  자네들 : 그런 말이 되겠지.
  우리들 : 단지 최초라고 해서 존경하거나 복종할 가치가 있는 존재인 것은 아니지 않나?
  자네들 : 아니, 아니, 신은 모든  시간 속에 두루 퍼져있다. 최초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을 뿐 아니라
최후에도 있다.


  우리들 : 그저 있는 것뿐인가?
  자네들 : 우주를 운영하고, 스스로 만들어 낸 생명체를 진화시키는 것이 그의 의무야.
  우리들 : 이봐, 원숭이. 최초에 있던 놈이, 더구나  최후까지 남아있는 놈이, 대체 다른 어떤 존재에게
의무 따위를 강요당하겠는가? 이 멍청이야!
  자네들 : 아니, 의무는 아니야.  그건 즐거움... 그래, 맞아.  취미야. 창조는 신의 즐거움이라고 동양의
경전에도 씌어 있지.
  우리들 : 그래? 그렇다면 좋다. 그 즐거움이란 무얼 말하지?
  자네들 : 우리가 웃을 때의 감정으로 대표되는 마음의 작용.
  우리들 : 허허...? 그럼 이런 말인가? 자네들이 포르노 잡지를 보면서 '이거 정말 끝내주는군'하며 침을
흘리고, 아니면 하느님인지 뭔지가 만들어 낸 창조물을 잡아먹기도 하고,  또는 먹지도 않으면서 낚시질
을 하거나 깔아뭉개고 살육한단 말이지. 그런가, 신이란  그런 것인가... 요컨대 수단이야 어떻든 자신만
좋으면 된단 말이지?


  자네들 : 아니, 그게 아니야. 신의 유희는 건전하다.
  우리들 : 와하하하하... 건전하다고? 그래? 그럼 건전이란 걸 여기서 정의해보라.
  자네들 : 그것은... 말하자면 좋은 놀이이다. 악의없는
  우리들 : 우린 자네 아이들이 악의도 없이 곤충의 다리를 부러뜨리면서 즐기는  것을 보는데, 바로 그
건가?
  자네들 : 아니야, 그건 달라. 그들은 생물의 아픔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건 결코 신의 유희
가 아니다.
  우리들 : 이봐, 원숭이. 벌레에겐  아픔이 없어. 몸부림을 치긴 하지.  왜냐하면 자네들이 싫어하는 그
꿈틀거리는 발이 없어지니 말이야. 하지만 곤충에겐 아픔이 없어.
  자네들 : 하느님은 생물이 아파하는 짓을 하지 않는다.
  우리들 : 그럼 자네들에게 잡아먹히는 생물들은 아파하지 않는단 말이군?
  자네들 : 그... 그건 아니야. 신이 먹이사슬이라는 법칙을 만들었으니까. 그런 것까지 우리가 생각할 필
요는 없어. 그것 역시 하느님의 뜻이지.
  우리들 :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신은, 잡아먹히는 것과 잡아먹는 것  두 가지를 만들어놓고는, 한쪽
편을 들어주는 놀이를 하고 있다고 말해도 되겠군.


  자네들 : 이봐, 우주인, 잠깐만. 그건 육체 차원의 이야기야. 영의 세계에서는  먹고 먹힐 필요가 없어.
영의 세계는 누구에게도 고통이 없을 뿐 아니라, 모두 즐기는 것들뿐이다. 물질세계란 것은 우리가 초월
해야 하는 저차원의 세계다.
  우리들 : 저차원의 세계도 신의 산물이잖아? 그것 역시 그놈의 즐거움의 하나지.
  자네들 : 그러니까 만물을 만들었지.
  우리들 : 물론 고통까지도. 자,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만물을 만들었지?
  자네들 : 배우기 위하여.
  우리들 : 무엇을?
  자네들 : 만물에 대하여.
  우리들 : 누가?
  자네들 : 우리들이지.
  우리들 : 그놈이 만물에 대해 뭐든 다 알고 있다면, 왜 우리에게 그런 걸 배우게 하지?
  자네들 : 아니, 우리가 틀렸어. 정정한다. 신은 우리와  함께 배우고 있는 것이다. 우주를 창조한 것은
신의 자기 인식을 위해서라고 서양 경전에 씌어 있었다.


  우리들 : 그럼 그 으뜸이라는 것은 어떻게 되었나? 원숭이
  자네들 : 우리와 함께 으뜸이란 말이다. 동양의 경전에 있듯이, 신과 우리는 하나이다.
  우리들 : 함께 으뜸이라... 흥, 그럼 순위를 따질 필요가 없어졌군 그래?
  자네들 : 동양의 경전에는 무차별, 무변별이 깨달음이라고 씌어 있다.
  우리들 : 이봐, 아무도 깨달음에 대해서 말하지 않아. 이 원숭이들아.  논점을 하나하나 우리가 되돌려
놓게 하다니. 그래 자네들의 신이란 것이 어떤 거지? 어떻게 그놈이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지?
  자네들 :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만물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들 : 너희들, 대체 누구에게 배웠기에 그런 말도 안 되는 말만 하지?  어떻게 그런 공식이 성립되
냔 말야? 채널러를 통해 이미 말했지. 태고엔 존재했을지 몰라도 지금까지 있을 필요는 전혀 없다고 말
이야.


  자네들 : 아니, 신은 법칙 자체 속에 살아 있다.
  우리들 : 좋아. 그렇다면 말이야. 자네들의 사생활에 대한 카운슬링이라든가,  나아가 그놈이 제멋대로
만들어놓은 자네들이 그 빈약한 육체를 치료해야 할 정도로, 그놈이 인격이나 자비심을 지니고 있을 의
무는 없겠지? 대체 그놈이 남겨놓은 건 어떤 법칙이지?
  자네들 : 전부 다 남겨놓은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지켜보며 관리하고 있다.
  우리들 : 무엇 때문에?
  자네들 : 즐기기 위해.
  우리들 : 누가?
  자네들 : 우리와 함께 말이다.
  우리들 : 그 표현이 그놈의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똑같은  슬로건이 시리우스 인공두뇌 개발회사에도
있었지. <함께 즐깁시다> 이거였어. 얼마 전 우리는 그 기업을 한 순간에 소멸시켜버렸다. 그리고 수백
광년의 공백으로 남은 우주의 빈곳에 이렇게 기록해놓았다. <함께 즐기기를 마쳤노라>고.
    <왜 파리를 죽이는 걸까>
  자, 이젠 자네들과의 쓸데없는 논의를 끝맺기 위해, 이제까지의 자네들 이론을 종합하고, 우리가 지각
한 자네들에 대해 말해보겠다.
  자네들이 구축해놓은 <으뜸인 놈>의 개념은, 그 개념의  논리 자체가 충분치 못할 뿐 아니라 모순투
성이다. 그리고 많은 제약과 한계가  보이기 때문에, 개념이라기보다는 맹신에  가깝다. 여기서 <맹신의
정의>는 이렇다.


  근거가 될 만한 검토자료나 정보가 충분히 쌓이기도 전에, 이미 사실의 검토  따윈 상관하지 않고, 처
음부터 무턱대고 그것을 믿음으로써 뇌파의 쾌락을 목표로 하는 본능, 물론 그  반대 역시 참이다. 의혹
과 부정에 대한 맹신도 마찬가지다. 그저 말만 뒤집어 놓은 것일 뿐,  일단 부정하겠다고 작정하면 우선
어떻게 부정할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뇌파의 쾌락중추가 자극을  받게 되고, 그것을 부정하는 자료를 다
모으기도 전에 <무조건 부정해 버리는 거야>하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다.


  이때는 온전한 정신으로 논리를 따르거나 검토할 수 없다. 단지 어떻게  하면 <가정으로서 준비한 논
리>에 많은 응원단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하는 게임이 시작될 뿐이다.  이 게임은 아직도 안드로메다의
민족이 하등생물에게 프로그램시켜 <함께 즐기고>  있는 게임이지. 자네들 세계에서는 이것을  <포고>
또는 <선거>라고 부르지. 논리의 정당성이 아니라, 정당한 논리를  추구하는 지성체를 어떻게든 설득하
여, 자기의 가설을 믿도록 만드느냐 하는 거지. 자네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 같은데 틀렸는가?
  자네들 : 나는 다르다. 논리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 뿐이다.


  우리들 : 그렇다면 그 논리를 따라가보기로 하자.  그 전에, 쓸데없는 전제이긴 하지만 멍청한 원숭이
가 70억이나 자네들 행성에 배치되어 있어 말해두는 것인데,  설령 관념의 유희라 해도 신의 개념과 자
네들이 보기에 유능한 지성체나 생물체 또는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 지성체와 혼동하지 말라, 이 말이다.
신이라는 것을 정의해보라고 하면, 평소에는 평온하고 고요한 우리들마저도 <기분이 울적해지는 대답>
이 자네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거든. 자네들이 믿는 하느님 즉, 그놈의 이미지는 이런 거야.
  병을 고쳐준다. 하지만 병은 병원에서도 고칠 수 있어. 따라서 백신이 신이다

 

 무엇이든 다 꿰뚫어본다. 하지만 그놈이 자네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을 꿰뚫어본다 해도 자네들에
게는 그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다. 따라서 그놈이 뭘 꿰뚫어보는지를 자네들은 알 턱이 없어. 자
네들이 생각하는 것은 이른바 EPS(Extra Sensory perception : 초감각 지각, 오감을 벗어난 지각능력 -
편집자 주)를 지닌 능력자의 완성체 이미지 같은데, 그건 단지 지각 시스템의 연장일 뿐  이해력이나 통
찰력과는 다른 것이다. 이런 대화를 우리는 흔히 듣는다.
  능력자 : 저... 당신의 집 마당에 이런게 보이는데요.
  질문자 : 와, 정말? 어떻게 그런 걸 볼 수 있지요?
  우리들 : 와, 정말? 어떻게 그런 걸 모르지요?
  잘 살펴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자네들이 갖는 이런 류의 경의나 존경, 숭배에는 반드시 그것을 떠받
치는 근거가 있다. 단, 숭배에는 양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에 주목하라. 즉,  이 부분은 나보다 능력이 있
으니 숭배한다든가, 이 부분은 나보다 처지니 경멸(이때는 마이너스의 숭배치 = 경멸)한다는 따위. 숭배
나 존경의 바탕에는 언제나 하나의 기준이 자네들에게 있다.


  때문에, 자네들이 지금처럼 아무 쓸모없는 파리떼인 한, 자네들은 우주의 모든 것을 숭배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자네들이 사는 목적은, 당분간 자네들의 바보같은 자식들과  바보같은 자네들 이웃들과 자
네의 멍청이 제자, 그리고 자네들 자신을  경멸하는 대신, 다른 모든 존재를  숭배하고 존경해야만 하는
것이다. 열심히 해보라, 이 원숭이들아.

 

<날려버리기 게임>
  1993. 11. 20 아침 10:00 나는 육체로 돌아왔다.
  그리고 <신>인지 뭔지 하는 자와의 대면은 3일 후에 있었다.
  그 때 아로가 돌연 산산이 갈라지면서 한 줄기  빛이 되었다. 그리고는 뾰족한 원추형이 되더니 무서
운 속도로 직선을 그리며 날아가  공중에서 번쩍 파란 불꽃을 튕겼다.  그리고 90도의 지그재그를 열번
반복하면서 날아가 또 불꽃을 튕기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로 : 어때 재미있어?
  EO : 뭘 하는 거지?
  아로 : <날려버리기>라는 게임이야. 상대방에게 가서 쾅  부딪치는 거야. 모양이 무너지지 않은 쪽이
이기는 거지. 모양이 무너져도 또 부딪쳐. 그렇게 해서 상대를 날려버려. 그런데 직선만으로는 재미없으
니까 춤을 추는 거야. 여러 가지 동작으로 날면서. 그러면 움직일 땐 뭔가 이상하게 찌릿한 감각이 전해
져오거든. 하지만 이젠 하나도 재미없어. 시시하지도 않아. 흥미를 잃었단 말야.  그런 놀이보다 난 아저
씨 같은 새까만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고 싶어.


  EO : 아까 말하던 그 부서져버린 사람들은 어떻게 되지? 너도 그렇게 날아가본 적이 있니?
  아로 : 어떻게 되는지는 나도 몰라, 그런 일을 아직 당해보지 않아서 말야. 어디로 사라지는지도 모르
고 재미있는지 어떤지도 난 몰라. 그렇듯 이 거리 사람들은 죄다 <날려버리기> 게임을 해. 그렇게 해서
다른 거리에서 오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  하지만 난 여기서 나간 적이 없으니까  다른 세계는 모르고,
또 흥미없어.


  EO : 그 게임은 누구에서 배웠지?
  아로 : 생각 안 나.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모두 하게 됐어. 하지만 언제  그만두었는지는 알고 있어. 브
하릭 박사가 그래선 안 된다고 했어. 난 잘 모르지만  그걸 하면 우주라든가 시간, 차원, 은하계, 별, 세
계, 이런 것들이 자꾸 망가진다고 했어. 망가지는 것만 아니라 태어나기도 한다고 했어. 그리고 그것 때
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어. 그러니까 생각나. 아저씨가 아까 말한 <괴로워한다>는 말을 브하
릭 박사가 많이 했어. 난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그냥 잊어버렸지. 어쨌든 박사가 그  게임은 안 된다고
해서 그만둔 거야.


  EO : 이 거리에 있는 너희들은 아무래도 고차원 생명체라는  존재들 같구나. 말하자면 너희의 움직임
하나로 우주가 변하는 거야. 네 한 걸음이 몇 만의 항성군의 흐름을 지배하고, 몇억 년의 시간을 지배하
고 있는 거야. 아니, 지배한다기보다는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지. 이 거리는 말하자면 우주활동의 근본
적인 화신인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 거리에 정기적으로 들르는 뭔가 어마어마한 놈이 있을 것 같은데?
  아로 : 있어. 신이라는 괴상한 모양의 사람이야. 만유의 지배자라고도 불려.


  EO : 절대무한광이라는 자지. 이런 곳에서 만날 수 있다니. 그런데 아로, 그자는 언제 오지?
  아로 : 저기 탑이 보이지? 저 탑의 빛이 자주색으로 변할 때야. 지금 파랑이니까 곧 올 때가 됐어.
  EO : 그자가 오거든 나를 불러줘. 이제 곧 지구의 육체로 돌아갈 시간이니까 오늘은 이렇게 헤어지지
만, 그 자가 오면 상관없으니까 날 불러줘. EO 앞에다가 뭐뭐라는  암호를 붙여서 나를 부르면 너와 연
결되니까 말이야. 부탁한다.
 
   
  아로가 부르는 소리에 이끌려 나는 다시 그 거리로 갔다.

아로 옆에  선 내 눈앞엔, 지구에서는 <개>로 인식되는 생물이 <거꾸로> 서 있었다.


  개 :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게 자네였나?
  EO : 뭐야. 이 물구나무 선 멍멍이는?
  멍멍이 : 물구나무를 서면 나는 개가 되는 거다.
  EO : 그럼 물구나무를 서지 않으면 뭐가 되지?
  멍멍이 : 이렇게 되지...
  그놈은 빛나는 방사선 덩어리가 되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눈부셔 난 아로 뒤에 숨었다.
  EO : 이봐, 그 이상한 특수효과 연출을 멈춰줘. 다시 멍멍이가  돼줘. 이래서야 방사선 때문에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겠어... GOD씨.
  그랬더니 그놈은 다시 멍멍이가 됐다.


  조물주와의 대화
  개 : 또 자네인가? 자네는 여기저기 온 우주를 돌아다니며 시스템을 들쑤셔 혼란시키기만 하는군
  EO : 혼란시킨 것은 오히려 당신 쪽이 아닌가?
  개 : 그게 무슨 말인가? 이 우주는 훌륭히 관리 운영되고 있지 않는가?
  EO : 예를 들면 나의 행성에는 회사라는 것이 있다.  당신이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지만, 그
회사란 것은 집단이 조직적으로 상호 의존하며 우리의 육체 생존을 관리하기  위한 에너지를 얻는 곳이
다. 그리고...


  아로 : 아저씨 그건 무슨 말이지?
  EO : 그건 말이야, 전에 네게 말해준 것처럼 우리는 생존, 즉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물질을 몸으
로 흡수하고 있어. 왜냐하면 우리의 몸, 존재는  그냥 있으면 에너지가 부족해지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
걸 보충하기 위해 다른 물질을 찾아내어 섭취하는 것이지. 그런데 그 행위를 늘 하고 있어야 한단 말이
다. 그리고 우리들 거리에서는 그 에너지를 모아둘  수 있어. 그것을 돈이라든가, 냉장고에 넣어둔 식품
이라든가, 수표라든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지만, 결국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에너지로 바뀌고 말
지. 그것을 한 사람이 아니라 몇 사람이 하는 것을 회사나 사회라고 하는 거야.
  아로 : 흐응, 난 통 모르겠네.


  개 : 그 말이 나의 우주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지?
  EO : 딴청 피우지마. 멍멍씨. 예컨대 그런 회사가 있는데 거기서 일하는 <사원>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은 아침부터 <노동하는 것이 얼마나 옳은  일이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원하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세뇌당한 채 일하고 있어.  회사안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노동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일한 만큼 보수를 받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어. 그런데 그런 회사에 꼭 하나 맹점이 있다. 그것은 '회
사가 존재하는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에는 해답이 전혀  없단 말이다. 지구에는 의식주
에 전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산업이 무수히  많다. 생존을 위해서일 뿐이라면 없어도 되는 직종들
이지. 그러나 일단 회사 안에 들어가면, 거기서 일하는 것이 당연지사가 되면서 기본적인 의문은 잊혀지
고 말아.


  즉, '회사가 애당초 필요한가?'라는 의문말이야. 또  우리의 행성 지구에는 화폐제도라는 것이 있는데,
직접 에너지가 아니라 에너지와 교환할 수 있는 보증서를 화폐라고 부른다. 실제 전체적인 식량 공급이
줄어들고 있는데도 화폐라는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바보같은 착각을 하기도 한단 말이다.
그런 착각 때문에 의식주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산업이든 아니든 단지  화폐라는 한낱 보증서나 예금을
증가시키기 위해 전혀 무익한 산업이 생겨나는 거야.  그런데 본질적으로 전혀 무익한 산업과 회사밖을
나와 생각해보면 이런 의문이 나온다. 그속에 있을 때는 의미가 있는 것같이  생각되는데. 과연 그 산업
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 이 의문을 당신에게 들이대보겠어. 모든 우주를 유지하고 생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그곳에 서
식하는 어떤 생물에게나 공통되는 영위이다. 그런데도 과연 이 우주라는  산업, 회사가 존재한다는 일에
근본적으로 어떤 가치나 당위, 목적이 있다고 하겠느냐  말이다? 그러므로 단 한 마디로 당신같은 멍멍
이는 그 존재가치가 사라진단 말이다.
  그저 이 한 마디, 우주같은 건 뭐 없어도 된다! 그곳에 서식하게 된 것들은 그 서식을 당연한 일로 지
각하고, 또 지탱하기 위해 우리처럼 에너지 보급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활동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
다고 생각하는가?


  멍멍이 : 특별한 의미 같은 건 없어. 그저 심심풀이  삼아 벌이는 움직임이지. 나는 무한한 무에 진력
이 났을 뿐이야. 그래서 만물을 창조했다.
  EO : 가만 가만... 지구의 물리학자나 신학자 모두가 결국 어떤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
이다. 그것은 바로 이런 의문이다. <빅뱅(Big Bang)>이건 뭐건 아무튼 그런 일로부터 우주가  시작되었
다고 하자. 설령 그렇다 해도 첫째, 그 최초의  시발점이 되는 질량은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둘째, 그것
이 그렇게 폭발한 요인은 어디서 왔는가? 또 그 목적 내지 의도는? 폭발은  무엇을 목적으로 또는 어떤
계기로 일어났는가? 이 두 가지 의문에 당신은 답할 수 있는가?


  멍멍이 : 말할 것도 없이, 그 최초의 질량이란 것을  꼭 물질이라고 가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가령
의식의 점이라 해도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모두가 꿈 같은 세계였다고...
  EO : 이봐, 이봐, 잠깐. <꿈>이란 것은 정보일 뿐이야. 그 정보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점으로
정지해 있는 우주에 꿈이야기 따윈 꺼내지 말라. 내가  묻는 것은 그<의식의 점>은 어디서 왔느냐? 그
것이 나온 근원은 무엇이냐 하는 거야? 나아가 그 근원의  근원은 어디에 있느냐? ... 이렇게 무한한 의
문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개 : 무 속에서 돌연 생겨난 것이다.
  EO : 넌 바보냐? 무 석에는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는 데서 무엇이 생겨날 턱이 없지.
  개 : 그것 잘 모른다.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나는 전 우주의  기억을 갖고 있었다. 그것을 조합하여
현재의 우주를 만들었다. 나의 발생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억이 없단 말이다.
  EO : 그렇다면 결국 이 우주는 몇 대씩 이어져오고 있는 셈이군.  그렇다면 그 최초의 존재를 만나고
싶다.
  개 : 그건 불가능하다. 최초의 절대 존재자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네가 네 조상과 만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EO : 그렇다면 우주 최초의 발생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도 없다는 건가?
  개 : 아마 그럴 것이다. 


  EO : 내가 추론하는 바로는 , 우주는 처음에는 존재도 아니고 무도  아닌 그저 질량의 존재였을 것이
다. 즉, <무>란 것은 없어. 처음부터 모든 것이 존재 그 자체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
다. 거기에 인식으로서의 의식이 투영된 순간에 존재라는 의식이 발생하는데, 존재라는 의식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무라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있다>는 것은 <없다>는  의식을 필요로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절대의 유의식과 절대의 무의식으로 의식이  분열했다. 그리고 우주는 회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의문은
계속된다. 그 최초의 절대적 존재성인 질량의 바다는 왜 있었는가? 다음으로 그 바다를 두 개의 소용돌
이로 분열시킨 의식이란 무엇이냐? 그리고 최초의 질량의 바다를 둘로 나눈 존재와 무의 의식도 애당초
필요없는 것이 아닌가? 당신 생각은 어떤가?


  개 : 그것은 내 소관이 아니다.
  EO : 그렇다면 당신은 창조주가 아니야. 그저<우주라는 나라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개 : 그렇게 되나? 그래, 자네는 무얼 원하나?
  EO : 최초의 질량을 체험하고 싶을 뿐이지. 이렇게 된 마당에 의미니  의의니 목적 따윈 아무래도 좋
아. 다만 그 발생 원점의 의식이나 질량이 원래 존재하고 있던, 물질이나 인식이나 시간이 없는 곳을 경
험하고 싶다.


  개 : 그런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 인식은 불가능하다고  자네는 자네의 지론으로 결론
짓지 않았는가? 즉, 발생의 중심은 절대 인식 불가능이고, 그저 그 자체일 뿐이라고 말이야.


  EO : 그건 <인간>이란 한정된 의식이 도달하는 최후의 극한, 곧 깨달음일 뿐이야. 내가 말하는  것은
깨달음 그것의 의식 발생점이야.


  ---------------


   그때 갑자기 그놈의 방사선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리 전체가 사라졌다. 거기에 있
는 것은 오직 어둠뿐이었다. 그것은 무한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둘은 어딘가에 갇혀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캄캄한 무로 보이는 세계에, 나와 아로만 남겨져 있었다... ... ...  ... ... ... ... ... ... ... ... ...
... ... ... ... ... ... ... ... ... ...
  EO : 아로, ...시작의 시작이란 뭘까?
  아로 : 뭐긴 뭐야, 끝의 끝이지... 이 말귀도 못 알아듣는 아가야.
 
    <저자후기, 어떤 탐구자에게 부치는 편지>
  나는 결코 복잡한 것은 말하고 싶지 않다.  그냥 인류가 불필요하게 만든 <엉클어짐>을 설명하려 한
결과, 복잡하게 보이는 말로 되고 말았다. 그래도 나는 복잡한 것은 무엇 하나 쓰지 않았다.
  가끔 나를 통해 씌어진 것들을 흘깃 보고, 난해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
폐허의 붓다들>과 그 잡다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본서만큼 정중한,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종교서는 존재
하지 않았을 터이다. 왜냐하면, 난 항상 현실속에서 우리들의 내면에  일어나는 심리적인 에고와 공포와
그 투영으로서의 행동패턴을 그래서 모두 실례를 들어가며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
었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귀가 따가울 정도로 말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현실적 차
원을 다루고 있다.


  시적 표현도 아니며 심령의 세계도 학문의 세계도  아니다. 그야말로 사회와 개인의 혼란스런 모순을
난 그냥 그대로 말했을 뿐이다. 그러한 내 지적에 대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반론을 난 전부 앞질러
그냥 뭉개나간다. 왜냐하면 사고가 어떻게 반론하는지는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문서에는
가끔 우회적 표현이 나온다. <이렇게 말하면, 세상에서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하는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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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일 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0.06 신 GOD ===꺼꾸로 하면 DOG=개===멍멍이...이렇게 기독교신을 비하했으니 기독인들이 펄펄뜀이 눈에 선하지만 독설이 맘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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