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세계종교&신화

[스크랩]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신문기사)

작성자일 행|작성시간09.10.11|조회수160 목록 댓글 0
"종교-집단 통해 진리 이를 수 없어" 14세에 '세계의 스승' 칭호 얻어... 추앙 거부 33세에 교단해산 선언
사람은 숭배받기를 원한다. 그 때문에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 그 유혹은 수도자에게도 역시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크리슈나무 르티(1895~1986)는 자신에게 주어진 추앙과 명예를 거부했던 사람이 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서구에서는 새로운 사상과 가르침으로 세계를 구하겠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런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신지 학회(Theosophy Society)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 기 속에서 신지학회는 서양의 지성사회에 꽤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 었다.

이 단체에 의해 새로운 시대의 메시아로 크리슈나무르티가 선택됐다. 불과 14세의 어린 나이에 '세계의 스승'이라는 어마어마한 칭호를 얻 은 것이다. 그 전까지 그는 소심하고 조금 둔해 보이기까지 한 소년 이었다. 아버지가 근무하는 인도 마드라스의 신지학회 사무실에 놀러 갔다가 운명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신지학회의 2대 회장이던 애니 베 산트 여사는 그 소년에게서 종교적 천재성과 카리스마를 발견했다.

베산트 여사는 크리슈나무르티를 곧바로 유럽으로 데려갔다. '세계의 스승'에 걸맞은 최고의 교육을 위해서였다. 크리슈나무르티에게 사람 의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추종자도 생겼다. 신지학회에서는 그 를 후원하기 위해 '동방 별의 교단(The Order of Star in the East)' 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일종의 종교집단이다. 수만의 사람이 교단 에 가입했다.

공부하는 틈틈이 크리슈나무르티는 유럽 각지에서 강연했다. 명징하 고 직관적이며 호소력 넘치는 어린 스승의 말은 유럽인을 사로잡아 버렸다.

환호와 열광이 있었지만 그 시절의 크리슈나무르티는 대학입시를 두 번이나 떨어진 낙방생이다. 유럽 최고 수준의 개인교습도 학업에 우 둔한 그에게는 소용이 없었던 것 같다. 대학 진학에는 실패했지만 그 에게는 이미 막대한 재산과 권력-권위가 주어져 있었다.

▲대학입시 두 번이나 떨어진 낙방생

1929년 33세에 크리슈나무르티는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것을 홀연 히 포기해버렸다. 네덜란드에서 열린 집회에서였다. 3,000명이 넘는 추종자가 그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운집해 있었고 라디오 방송을 통 해 그의 육성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날 강연의 주제는 '진리는 길 이 없는 곳'이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군중을 향해서 잠시 안타까운 미소를 짓다가 입을 열었다.

"오늘 별의 교단을 해산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르고자 하는 진리는 길이 없는 곳입니다. 어떤 통로를 통해서, 어떤 종교나 교단을 통해 서도 진리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합니 다. 진리란 무한하며 제약이 없고, 조건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특 정한 종교를 통해서 도달할 곳이 아니라 개인이 뼈저린 노력을 통해 서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제게는 이제 단 하나의 목표만 있습니다. 사람이 자유를 향해서 나아가도록 돕고, 저마다 가진 한계를 깨뜨릴 수 있도록 돕는 일만이 앞으로 제가 해나갈 일입니다."

진리란 결코 종교나 집단 따위를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 라는 고백이었다. 진리를 향해서 다가가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자유로워지려는 결단과 끝없는 노력이라고 그는 주장한 것이 다. 18년 동안 메시아를 기대하고 준비했던 '동방 별의 교단'은 그렇 게 해산하고 말았다. 실로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를 찾아내 고 키워왔던 신지학회 회장 베산트 여사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 다. 충격적인 포기 선언이 있은 지 50년이 지난 후에 크리슈나무르티 는 그날 있었던 일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교단을 해체하고 그 때까지 몸담고 있던 신지학회를 떠나겠다 고 결정했을 때 베산트 여사는 걱정부터 했어요. '어떻게 살려고 그 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까지 먹고살 기 위한 교육이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50년이 지났는데도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믿고 있습니다. 바른 일을 행하면 반드시 모 든 것이 바르게 된다는 것을."

크리슈나무르티는 사랑이야말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런 그가 젊은 시절에 사랑에 빠진 상대가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조화로운 삶〉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알려지기 시작한 자연주의자 헬렌 니어링이 그의 영혼을 사로잡았던 여인이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암스테르담에서 여학생이었던 헬렌을 처음 보았다. 청중에게 강연할 때도 헬렌을 위해서 따로 강연 노트를 건네주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인도로 떠나가면서 헬렌을 위해서 이렇게 삶의 지표를 적어주었다.

▲유랑의 자유인으로 살며 33권 저서 내

"당신은 위대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권력과 쾌락을 가져다주기 때문 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르기 때문입니다. 크거나 작은 일 모두에서 위대하고 훌륭해져야 합니다.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이 말할 수 없이 크고 순수하고 고귀하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랑은 언제나 당신 안에 있는 위대하고 순수한 근원을 이끌어냅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때문인지 헬렌 니어링은 결국 위대해졌다. 남편인 스콧 니어링과 함께 물질적인 삶을 포기하고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에게 삶의 가치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별의 교단을 해산한 후에 크리슈나무르티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사 람을 만나고 강연을 한다. 그야말로 유랑의 자유인이 된 것이다. 33 권에 이르는 저서가 나왔고 수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지만 어떤 추 종 집단도 남기지 않았다. 체계화된 교리와 종교 행위-제도를 부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수천 년 동안 온갖 종교와 교리가 있어 왔지만 인간은 아직도 불행 합니다. 그런 것은 모두 낡았습니다. 저는 제도도 믿지 않고 공식도 믿지 않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야말로 불 행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혁명도 결국 자기로부 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만년의 크리슈나무르티에게 어린 소녀가 찾아와서 물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그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삽시다. 지금 이 순간이 내게 주어진 마 지막 순간인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