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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일원론적 베단타 철학파-상카라 (인도 철학자) 그는 누구인가

작성자일 행|작성시간09.09.25|조회수892 목록 댓글 0

[인류의 스승] 16. 샹카라/ 오강남 /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범아일여〈梵俄一如〉 추구한 베단타 사상의 실질적 창시자
 
 

힌두교를 기복에서 깨달음의 종교로 전환
불교 위시한 다른 사상가들과 치열한 논쟁
힌두이즘으로 ‘공’ 가르친 불교인 비판도

 
샹카라는 인도전역을 종횡으로 누비며 베단타 사상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용수의 영향을 받아 힌두교의 이름으로 불교의 공사상을 가르친 불교인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샹카라(Śankara, 기원후 788~820년경)가 인도 철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라고 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위대하고 심오한 사상가일 뿐 아니라, 자기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널리 주유천하하기도 하고, 불교를 논박하는데 앞장서기도 하고, 승단을 창설하거나 승원을 건설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는 실천적 신비주의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이룩한 최대의 공헌은 이른바 “아드바이타 베단타(Advaita Vedanta)”라는 학파를 공고한 터전 위에 세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드바이타’란 ‘불이(不二)’라는 뜻으로 영어로 ‘non-dual’이라 번역한다.

 

그는 인도 남쪽 케랄라(Kerala)의 칼라디(Kalady)에서 태어났다. 출생 및 사망 연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8세기에서 9세기에 살았던 사람으로 보고 있다. 부모가 아이가 없어 애를 태우다가 오랜 기도 끝에 아기를 낳았다고 한다. 샹카라는 5세에 ‘학생의 삶’을 시작, 8세에 베다경에 통달했다고 한다.

 

인도 남쪽 케랄라 갈라디 출생

어릴 때부터 출가 수행자가 되려는 성향을 보였지만 어머니의 허락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허가를 받자 구루를 찾으려 북쪽으로 떠났다. 나르마다 강기슭에서 가우다파다(Gaudapada)의 제자 고빈다 바가밧파다를 만났다. 그가 샹카라에게 어디에서 온 누구냐고 묻자 즉석에서 아드바이타 베단타 철학에 기초한 대답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다. 이에 깊이 감명 받은 고빈다 바가밧파다는 그를 제자로 삼았다. 그의 학문적 깊이는 날로 더해 갔다.

 

바가밧파다는 샹카라에게 브라흐마 수트라에 대한 주석서를 써서 아드바이타 베단타를 널리 전하라고 지시했다. 샹카라는 『브라흐마 수트라 Brahma Sutras』 뿐 아니라 열편의 『우파니샤드 Upanishads』 및 『바가바드 기타 Bhagavad Gita』에 대한 주석서도 썼는데, 이것이 아드바이타 베단타 학파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삼론(三論)’이 되었다.

 

샹카라는 또 아드바이타 베단타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인도 전역을 종횡으로 누비면서, 불교를 위시하여 자기 생각에 이설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논박하였다. 아드바이타 베단타 사상의 뼈대는 샹카라 이전 가우다파다에 의해 제시된 것이지만, 이처럼 샹카라가 이를 체계화하고 널리 전파하였기에 그를 실제적인 창시자라 여긴다.

 

아드바이타 베단타는 기원전 9~7세기에 나타난 『우파니샤드』라는 문헌에 기초하고 있다. 기원전 15세기 경 지금의 이란에서 인도로 들어온 아리아 족에서 유래된 인도 최초의 경전인 『베다경』이 인드라 신을 비롯하여 여러 신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복을 비는 ‘기도’를 중요시하고, 기원전 10세기경에 나타난 『브라마나스』라는 문헌이 신들에게 드리는 ‘제사’를 강조한 데 반하여 『우파니샤드』는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을 깨달으라는 것인가? 『우파니샤드』에서는 우주의 궁극 실재인 ‘브라흐만’을 깨달으라고 한다. 브라흐만은 ‘네티 네티’라고 한다. ‘이것이라 할 수도 없고 저것이라 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절대적인 실재이므로 ‘이것’이나 ‘저것’으로 한정지을 수 없고, 우리의 제약된 생각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세계 종교들의 심층차원에서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이론이다.

 

한편, 이 절대적인 실재로서의 브라흐만은 단순히 추상적인 원리만이 아니라 각 사람 속에 내재하고 있는 본질적이며 참된 ‘자아(아트만)’이기도 하다. ‘참나’는 브라흐만의 구체화된 상태로서, 이런 의미에서 “나는 곧 브라흐만이다”라는 진리가 성립된다고 한다. 이를 산스크리트어로 ‘tat tvam asi(That art thou)’라고 하는데, “그대는 바로 그것(브라흐만)”이라는 뜻이다. 한문으로 ‘범아일여(梵我一如)’라고 한다. 이렇게 내가 바로 브라흐만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곧 무명(無明)이요, 이를 몸소 체득하여 깨닫는 것이 바로 해탈(解脫)이라고 하였다.

 

샹카라의 ‘아드바이타 베단타’ 사상은 이와 같은 『우파니샤드』의 기본 가르침에 따라 성립된 것이다. ‘베단타’라는 말 자체가 ‘베다의 끝’이라는 뜻으로 그 기본 사상이 베다의 끝인 『우파니샤드』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물론 ‘아드바이타’라는 말도 『우파니샤드』의 범아일여 사상에 따른 것이다.

 

힌두교 중흥에 절대적 공헌

샹카라에 따르면 “브라흐만 만이 참 실재요, 시공의 세계는 허상에 불과하다. 궁극적으로 브라흐만과 개인적 자아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궁극 실재로서의 브라흐만은 결국 아무런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 브라흐만을 ‘니르구나 브라흐만(nirguna Brahman)’이라 한다. 너무나 절대적이기 때문에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어떤 특성도 브라흐만에는 해당될 수가 없다는 뜻이다.

 

굳이 뭐라고라도 표현해야 한다면 그것은 ‘삿 칫 아난다’ 곧 ‘순수 존재, 순수 의식, 순수 기쁨’이라고나 할 수 있다. 마치 불교에서 궁극 실재는 언설을 이(離)한다는 뜻에서 공(空)이라 하지만 그 공마저도 공하다는 생각과 비슷하다.

그러나 브라흐만을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추상적이라 한정된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어떤 관계를 맺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일종의 차선책이라 할까, 양보라고 할까, 브라흐만에 모든 아름다운 특성을 다 붙여서 생각해도 좋다고 한다. 이런 면의 브라흐만을 ‘싸구나 브라흐만(saguna Brahman)’이라 한다.

 

베단타 철학의 삼론 저술

그런데 아름다움, 위대함, 능력있음 등의 특성을 부여할 수도 있지만, 그 모든 특성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적 특성’이다. 따라서 아직도 이 허상의 세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브라흐만을 ‘주님(이슈바라)’라고 부르고 인격신으로 경배해도 좋다고 한다. 샹카라 자신도 시바나 비슈누 신을 위한 찬송시를 지었다. 스스로도 시바 신을 경배하였다.

 

그러나 샹카라에 의하면 이렇게 인격신으로 섬긴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허상의 세계에서만 허용되는 일종의 방편에 불과한 것일 뿐, 우리가 취해야 할 궁극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궁극 목표는 물론 니르구나 브라흐만을 체득해서 그로 인해 해탈을 얻는 것이다.

브라흐만이 ‘유일무이’한 절대적 궁극 실재라고 하는 주장은 동시에 브라흐만만이 참 실재이고 다른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마야’(illusion)에 의해 나타난 허상일 뿐이라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허상’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만 아니라는 사실이다.

허상도 브라흐만에서 나온 것이므로 브라흐만은 일종의 허상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마술사라고도 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가 영적 눈을 뜰 수 있다면 마야의 허상을 통해 브라흐만을 볼 수도 있다.

 

“어두움이 태양의 광채 속에서 녹아 없어지듯 만물도 영원한 실재 속에서 녹아 없어진다.” 여기에서 샹카라의 생각이 ‘모든 것이 신’이라는 범신론(汎神論)과 반대된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샹카라에게 있어서 현상 세계는 브라흐만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샹카라에 의하면 우리가 그 영원한 실재와 하나가 되면 신기루 같은 이 현상 세계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사상을 확대해서 삶과 죽음과 다시 태어남, 몸부림과 고통, 선과 악, 속박과 해방 등도 결국은 허상이라고 했다.

 

“묶임도 그 묶임에서 벗어남도 모두 신기루 같은 것... 제한도 놓음도, 묶임도 성공도 없고, 자유를 찾는 이도, 자유스러운 이도 없으니, 이것이야 말로 궁극 진리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모두 마야의 세계에 속한 허상일 뿐이라고 한다. 깨친 이들만이 자기의 참 자아를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고 즐기는’ 자기의 개인적 자아에서 자기의 참 자아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반야심경』을 연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샹카라에 의하면 절대적인 궁극 실재는 꿈이 없는 수면(dreamless sleep) 상태에서 체득될 수 있다고 한다. 꿈이 없는 수면 상태란 편안한 즐거움의 상태를 말하는데, 이런 상태에서 궁극 실재에 대한 계시가 올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샹카라에 있어서 더욱 중요한 것은 ‘아누바바(anubhava)’, 곧 궁극 실재에 대한 직관이다. 이것이야 말로 ‘완전한 앎’ ‘완전한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이런 직관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우주적 정신과 하나라는 것을 터득하게 된다. 우리의 개별적 자아 인식은 사라지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우주 의식을 경험하게 된다.

 

샹카라는 우리가 살아 있을 동안에도 해탈의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살아서 정신적 해방을 경험하는 것을 ‘지반묵티(jivanmukti)’라고 하고, 이렇게 해방된 사람을 지반묵타(jivanmukta), 혹은 마하트마(mahatma)라 한다.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되 꿈에서 본 땅에 사는 것처럼’ 살고, ‘이 몸이 계속되는 동안 그것을 그림자처럼’ 여긴다. 이렇게 살다가 이 몸이 끝나는 날 개별적 존재로서의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나 영원의 찬연한 광채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용수에 영향 …“모든 것은 공”

샹카라는 힌두교의 이름으로 불교의 공사상을 가르친 ‘숨은 불교인(crypto-Buddhist)’이 아니었는가 하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어느 면에서 일리 있는 관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이들의 말에 의하면 불교가 기본적으로 인간 경험에 대한 관찰에서 공사상을 전개해 나간 데 반하여 샹카라는 처음부터 유일무이한 브라흐만이라는 절대적 실재를 전재로 하고 모든 것이 허상이라는 그의 사상을 구성했다고 하는 점이 다르다고 한다.

 

그 출발점이 어떠하든, 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면에서 중관론의 창시자 나가르주나의 영향이 컸던 것만큼은 확실한 사실이라 볼 수 있다.

샹카라는 힌두교를 중흥시키는데 절대적으로 공헌한 인물이다. 서양에서 힌두교나 인도 철학에 관심을 가지는 많은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우파니샤드와 샹카라의 사상에 관심을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게서 세계 종교의 심층에 흐르는 기본적 가르침의 전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해 본다.
 
오강남 /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1010호 [2009년 08월 17일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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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일원론적 베단타 철학파-상카라 (인도 철학자) 그는 누구인가
 
Shaṅkara라고도 쓰며, Saṅkarācārya라고도 함.
700(?) 인도 칼라디(?)~750(?) 케다르나트.
 
인도의 철학자·신학자.
 
불이일원론적(不二一元論的) 베단타 철학파의 가장 유명한 대표자이다. 오늘날 인도 사상의 주요흐름은 그의 학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는 〈브라마 수트라 Brahma-sūtra〉와 주요 〈우파니샤드 Upaniṣads〉에 대한 주석서를 써서 유일하고 영원불변한 실재인 브라만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고 다양성과 차별성은 환상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힌두교).

 
상카라의 전기라고 알려진 저서는 적어도 11가지가 넘는다. 이 전기들은 모두 상카라가 죽은 뒤 수백 년이 지나 저술되었기 때문에 전설적인 이야기와 믿을 수 없는 일화로 가득 차 있으며, 일부는 서로 모순되기도 한다. 오늘날 상카라의 일생을 확실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자료는 전혀 없다. 당연히 그가 태어난 연대도 논쟁거리이다. 전에는 그가 788년에 태어나 820년에 죽었다는 주장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20세기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700년경에 태어나 750년경에 죽었을 가능성이 더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전승에 따르면, 상카라는 남인도 케랄라 주의 추르나 강(또는 푸르나 강이나 페리야르 강) 근처 칼라디라는 조용한 마을에서 브라만 계급으로 신앙심깊은 남부디리 가문에 태어났다. 어린시절에 아버지 시바구루를 잃은 그는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속세를 떠나 산니아신('세속적 욕망을 포기한 자'라는 뜻)이 되었다. 그는 가우다파다의 제자인 고빈다 밑에서 공부했다. 고빈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지만, 가우다파다는 베단타 철학의 중요한 저서인 〈망두키아 카리카 Māṇḍukya-kārikā〉를 저술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이 저서에는 모든 중생의 구원을 목표로 삼고 비이원론적이거나 일원론적인 사상을 추구하는 대승불교의 영향이 뚜렷하며, 특히 마지막 장에는 그 영향이 아주 극단적으로 드러나 있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힌두교의 주요신인 시바 신이 상카라 가문의 수호신이었고, 상카라는 태어날 때부터 샤크타(시바 신의 아내이자 聖力의 여성적 화신인 샤크티의 숭배자)가 되어야 할 운명을 짊어졌었다. 나중에 그는 시바 신의 숭배자로 여겨지게 되었고 심지어는 시바 신의 화신으로 간주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학설은 시바파나 샤크티파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저서를 보면, 그는 비슈누 신을 숭배하는 비슈누파에 속했거나 그 종파에 호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가 구원을 얻는 기술인 동시에 인도의 전통적 철학 체계의 하나인 요가를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어느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그는 처음에 요가 신봉자였다가 나중에 불이일원론을 지지하게 되었다(→ 불이원론).

 
전기 작가들의 말에 따르면, 상카라는 처음에 학문과 정신적 기풍으로 유명한 카시(바라나시)로 갔다가 그뒤 인도 전역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신조를 가진 철학자들과 토론했다. 그는 미망사(논구) 학파의 철학자인 망다나 미슈라와 뜨거운 논쟁을 벌였고 미슈라의 아내가 심판 역할을 맡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의 전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화이며 어쩌면 실제로 있었던 사건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즉, 상카라는 브라만을 인식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탈을 얻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규정된 의무의 수행과 베다 의식을 강조하는 미망사 학파의 추종자들과 날카롭게 대립하여 불꽃튀는 논쟁을 벌였을 것이다.

 
상카라가 활동한 시기는 정치적 혼란기였다. 그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자기 학설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 불교 세력이 이미 쇠퇴하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도시에서는 여전히 그 세력이 강했고 상인과 제조업자들 사이에는 금욕적·무신론적인 자이나교가 널리 퍼져 있었다. 대중적인 힌두교는 서민들의 마음을 차지했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안락함과 쾌락을 추구하고 있었다. 도시에는 또한 향락주의자들도 있었다. 상카라가 이런 사람들에게 베단타 철학을 전파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상카라는 주로 시골의 산니아신들과 지식인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폈으며, 차츰 브라만 계급과 봉건 영주들도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는 당시의 평범한 힌두교도들한테 깊은 인상을 준 박티(신에 대한 헌신) 운동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정통 바라문교의 전통을 회복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상카라는 수많은 제자들을 거느렸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파드마파다·수레슈바라·토타카(트로타카)·하스타말라카 등 4명만이 그들이 쓴 저서를 통해 알려져 있다. 상카라는 슈링게리(남쪽)·푸리(동쪽)·드바라카(서쪽)·바다리나타(북쪽)에 각각 하나씩 4개의 수도원을 세웠다고 하는데, 이 수도원들은 아마 불교의 '비하라'(승방·절) 체제를 모방한 것 같다. 이 수도원들을 세운 것은 그의 가르침이 인도의 주도 철학으로 발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는 산스크리트로 주석·해설·시 등 300편이 넘는 저서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저서들은 대부분 그의 작품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은 베단타 학파의 기본경전인 〈브라마 수트라〉를 주석한 〈브라마 수트라 바시아 Brahma-sūtra-bhāṣya〉이다. 상카라가 썼다는 주요 〈우파니샤드〉에 대한 주석서들은 아마 〈슈베타슈바타라 우파니샤드 Śvetāśvatara Upaniṣad〉에 대한 주석서를 제외하고는 모두 진짜인 것이 분명하다. 〈망두키아 카리카〉에 대한 주석서도 역시 상카라가 직접 쓴 것이다. 요가 학파의 기본교재인 〈요가 수트라 Yoga-sūtra〉에 대한 비아사의 주석을 해설한 〈요가 수트라 바시아 비바라나 Yoga-sūtra-bhāṣya-vivaraṇa〉도 상카라가 썼을 가능성이 많다. 상카라 철학의 훌륭한 입문서인 〈우파데샤사하스리 Upadeśasāhasrῑ〉는 주석서가 아닌 유일한 저서인데, 이것은 상카라가 쓴 것이 분명하다.

 
상카라의 문체는 명쾌하고 심오하다. 날카로운 통찰과 분석 기술이 그의 저서의 특징이다. 진리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은 논리적이라기보다 심리적이고 종교적이다. 그가 20세기의 시각으로 철학자라기보다는 뛰어난 종교적 스승으로 여겨지는 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그의 저서를 보면, 그가 정통 브라만교 전통에 통달해 있을 뿐만 아니라 대승 불교에도 정통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의 반대자들은 그의 학설과 불교 사상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를 '위장한 불교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불교에 대한 지식을 불교의 가르침을 가혹하게 공격하거나 불교 사상을 베단타 철학의 불이일원론으로 변형시키는 데 최대한 이용했으며, 선배 철학자들이 지나치게 불교적으로 만들었던 베단타 철학을 '베단타화'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의 철학의 기본구조는 불교 사상보다는 오히려 무신론적 이원론 철학 체계인 상키아 요가 학파와 더 비슷하다. 상카라는 히말라야 산맥의 케다르나트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가 창시한 불이일원론적 베단타 학파는 그뒤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도의 지식인 사회에서 가장 우세한 철학파가 되어왔다.
Se. Mayeda 글
 
 

베단타

샹카라 이전의 망두키아 송(頌) 단편들

샹카라와 라마누자가 보다야나와 우파바르샤에 의해 지어졌다고 여겨지는 〈평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나, 샹카라 이전에 지어진 〈베단타 수트라〉에 대한 주석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샹카라 이전에도 경전에 대한 일원론적 해석가들은 있었다. 바르트리하리·만다나· 가우다파다가 그중에서 중요하다. 샹카라는 가우다파다를 그의 스승인 고빈다의 스승으로, 베다에서 불이론(advaita)을 발견했던 사람으로 칭송하고 있으며, 샹카라 자신은 가우다파다의 주요저작인 망두키아 우파니샤드 송에 대해서 주석을 달았다.

 

가우다파다 송은 4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제1부는 우파니샤드 자체에 대한 설명이며, 제2부는 세계의 허망을 수립하고, 제3부는 실재의 유일성을 옹호하며, 제4부는 고(苦)로부터의 해탈 상태를 다루고 있다. '불타는 연료의 지멸'이라는 제4부의 제목이 시사하는 대로, 가우다파다의 철학적 견해는 불교의 중관철학, 유식학파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는데, 그의 기본목표 중의 하나는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이 불교관념론자들의 주요이론과 부합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주요 철학적 원리에는, 만물은 꿈속에 보여진 것처럼 비실재적이며, 실재에는 생성도 소멸도 없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변화와 인과론에 대한 그의 비판은 용수를 상기시킨다. 이분법이란 망상의 생산력인 마야가 유일의 실재 위에 부탁(附託)한 것이다. 진정한 생성이란 없으므로, 가우다파다의 철학은 흔히 무생론(無生論 ajātivāda)으로 불렸다. 여기까지 그는 불교의 유식학파에 동의하지만, 유식학파에서의 마음(citta)이 실재하고 정신적 관념의 실재적 흐름이 있다는 주장은 거부하고 있다.

 

샹카라는 가우다파다의 극단적인 환영주의(幻影主義)를 완화시켰다. 비록 그는 현상세계를 잘못된 현상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꿈을 비유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세계의 객관성을 꿈과 환영의 주관성과 대조시키고 있다. 둘 다 초월적인 것과는 반대되지만, 경험계와 환영계의 차이는 그의 사유방식에 중심적인 것이었다.

 

베단타의 여러 학파들

베단타가 흔히 하나의 철학체계로 지칭되지만, 여기에는 서로 매우 다른 여러 학파들이 존재한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일련의 공통경전에 대한 충성일 것이다. 이들은 〈우파니샤드〉· 〈베단타 수트라〉· 〈바가바드기타〉 즉 베단타의 3개의 근본경전(prasthāna)이다. 베단타의 여러 학파들은 모두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기 위해서 이들 3가지 근본자료들에 주석을 달았다. 그 차이점들의 핵심이 되는 문제 속에는 브라만의 본성, 현상계의 지위, 유한한 개인과 브라만과의 관계, 해탈의 본성과 수단이 포함되어 있다. 주요학파로는 샹카라의 무제한적 불이론(śuddhādvaita), 라마누자의 제한불이론(viśiṣṭādvaita), 마드바의 이원론(dvaita), 바스카라의 불일불이설(不一不異說 bhedābheda), 그리고 동일과 차별을 다른 방식으로 강조하는 님바르카·발라바 학파들이 있다.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샹카라는 해탈의 유일한 수단으로써 형이상학적 지식을 찬양하고 신의 관념조차도 잘못으로 간주하고 있다. 라마누자는 반면에 지식에 수반된 박티(bhakti 信愛)의 길을 추천하고, 베다의 제식주의에 대해서 보다 관용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마드바·님바르카·발라바는 모두 인격주의적 유신론을 주창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인격신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최고로 여겨졌다. 비록 인도철학에 대한 샹카라의 영향은 다른 학파들이 따라갈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실제의 종교적 삶에서는 유신론적 베단타가 샹카라의 추상적인 형이상학보다 훨씬 큰 영향을 행사했다.

 

샹카라 철학의 근본주장은 자아(유일하고 보편적이며, 영원하고 자증적인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아의 본성은 초월적인 관점에서는 주관(āśraya)과 객관(viṣaya)이 없는 순수의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르트리하리의 어불이론(語不二論 śabdādvaita), 불교도의 식불이론(識不二論), 가우다파다의 무생불이론(無生不二論)과 나란히 샹카라의 불이론은 자아불이론(ātmādvaita)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현상계와 유한 개별적 자아는 경험적으로 실재하지만 고차적인 관점에서는 단순한 화현(化現)일 뿐이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샹카라는 논증과 성전의 해석에 의존했다. 그의 방법론적 원리에 의하면, 이성은 성전에 나타난 진리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해서 주로 부정적 용법이었다. 그는 적수의 이론들을 반박하는 데 탁월한 논리적 기술을 보여주었으나, 그의 제자들은 불이론의 주장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성적 토대부여를 시도했다.

 

샹카라의 형이상학은 실재의 기준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공식화될 수 있다. 실재는 부정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 기준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것은 의식이다. 왜냐하면 의식의 부정도 부정하는 의식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정은 상호부정(차이)이거나 부재일 것이다. 부재는 생성 이전 또는 소멸 이후의 어떤 사물의 부재이거나 또는 어떤 다른 장소에서의 부재일 것이다. 의식의 부정은 생각될 수 없으며, 어떤 종류의 부정도 의식의 술어가 될 수 없다. 의식은 자증적이다. 모든 다른 대상의 현현은 의식에 의존해야 한다. 의식에는 차별성도, 다(多)에 대한 의식도 없다.

 

복수의 의식 중심체들로 보이는 것은 화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의식 이외에 진실로 존재하는 프라크리트 같은 것은 없다. 그런 것은 비실재적 타자이다. 의식에는 내적 부분들이나, 복수의 의식적 상태란 없다. 푸름의 의식과 노랑의 의식의 차이는 의식 내의 차이가 아니라 대상 사이의 차별이 의식에 부탁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상키야·불교유식론·니아야 - 바이셰시카의 다원론은 반박되었다. 실재는 유일, 무한, 영원, 자기조명적 정신이다. 이것은 어떤 한정도 갖지 않는다. 한정은 곧 부정이기 때문이다.

 

샹카라 철학의 근본문제는 순수자아가 어떻게 일상적 경험에서 '나의 의식'이라는 방식으로 개별화될까? 또는 '푸름에 대한 의식'에서처럼 의식이 어떻게 대상과 관계를 맺을까 하는 점이다. 어떤 것이 경험적 사실이나 동시에 그것이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면, 그것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샹카라의 오류이론에 따르면 잘못된 화현(예를 들면 뱀으로 보인 새끼줄)은 적극적인 것이며, 제시된 실체이므로 존재도 비존재도 아니다. 오류는 따라서 둥근 4각형 같은 허구가 아니다. 샹카라는 존재·비존재라는 범주 이외에 오류라는 또하나의 범주를 설정했다. 세계와 제한된 개인들은 이런 의미에서 오류인 것이다. 이들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이들은 브라만으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또한 그들에 대한 경험은 브라만에 대한 명지(明知 vidyā)로 지양(止揚)되는 것이다. 그들은 무명(avidyā)에 의해서 브라만의 존재 위에 부탁된 화현인 것이다. 무명은 무시(無始)이며, 실재의 본성을 숨기고 그 위에 오류의 화현을 제시하는 어떤 적극적인 것이다.

 

샹카라에 따르면 해탈은 획득해야 하는 완전은 아니다. 자아의 참된 본성을 숨기고 있는 무명의 파괴를 통해서 그것이 실현되는 것이다. 신(神)이란 세상을 참으로 간주하고 그 창조주와 지배자를 찾으려고 하는 무명의 마음을 가진 자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종교적 삶은 인간과 신, 덕과 악, 금생과 내생이라는 이분법적 관념들에 의해서 유지된다. 해탈의 상태에서는 이러한 이분법은 극복된다. 해탈이 육신을 지닌 상태에서 가능하다는 것도 샹카라 신념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지고의 상태를 가져오는 것은 무명의 파괴이므로 신체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정신에 대한 비실재적 한계일 따름이다. 모셔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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