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를 걸어 놓은 글을 읽고 먹먹해진 것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접어든 현대인이 갖는 '빈곤에 대한 환상' 혹은 '픽박받는 자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먹물과 현장의 경험이 돋보이는 글이다. 하지만 한국의 철학자 심재관 교수의 글은 가장 큰 전제 조건부터 오류로 시작된다. 심재관 교수의 잘못은 아니다. 인도의 카스트는 정말 복잡하다. 그가 그걸 미처 모른 탓이다. <신도 버린 사람들>의 저자 나렌드라 자다브는 천민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불가촉천민'이다" [철학자의 서재] <신도 버린 사람들>
인도를 '정신주의의 모국'으로 그리는 이들이 있다. 이것은 서구인들이 만든 오리엔탈리즘을 아시안인 우리가 백인이 된 것 마냥 복제하는 것의 결과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일부 여행자들과 지식인들은 인도 사회속에서 핍박받는 집단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불가촉천민"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물론이고 서구 사회에서 인도의 '천민'은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의 코드가 된다.
나렌드라 자다브는 소를 치고 소의 젖을 짜는 카스트다. 당사자는 천민이라고 말하지만, 인도의 카스트에서 천민은 카스트 밖이다. 자다브란 자띠(성씨)는 엄밀히 말하면 '수드라'다. 한국에선 '수드라'를 천민으로 이해를 하고 있는데, 수드라와 천민은 엄연히 다르다. 풀란 데비를 아는가? 한국에선 그를 천민이라고 말한다. 이런 경향은 비단 한국만 국한 되지 않는다. 폴란 데비는 '도이말라'라고 하는 자띠로 우리가 알고 있는 카스트 상에선 수드라에 해당하는 신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란데비를 천민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학대받고 천대받는 자에 대한 또다른 오리엔탈리즘이 아닐까 싶다.
위 언급에서 나렌드라 자다브를 '수드라'로 단정 지어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단정도 지나친 '오컴의 면도날'이다. 인도에서 신분은 '성씨'(자띠)를 보면 알수 있다. '자다브'란 성씨는 인도 전 지역을 통틀어 드러나는 '소치기 신분'이다.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불려지는데, 북인도 비하르에서 '야다브' 다른 지역에선 '자다브' 혹은 '자도브'라고 불린다. '소치기' 신분은 근대 이전엔 '아히르'로 불가촉 천민 즉 카스트 밖 신분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식민지 통치를 겪으면서 이들은 신분 이동을 한다.
일부 혹자들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불변인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브라만을 제외하곤, 다른 카스트들은 정치적 사회적 변화에 따라 그들 신분이 하락하기도 하고 상승하기도 한다. '아히르' 라고 불리는 불가촉 천민은 그들이 관리하는 '소'가 근대로 넘어오면서 '재화가치'를 갖게 된다. 그들이 생산해된 '우유'는 교환재가 아니라 판매재가 된다. '우유'가 돈이 된 것이다.
'소를 치며 젖을 짜는 신분'인 '아히르'는 신분상승을 꿈꾼다. 그것은 돈의 힘이다. 일부 지역에선 '수드라' 혹은 '바이샤' 신분으로 격상을 한다. 최근 비하르와 우따르 프레데쉬 지역의 아히르(야다브)들은 자신들의 신분이 본래 크샤트리아(무사계급)였다고 신화를 새롭게 만들고 있다. 경전을 다루며 해석을 하는 브라만을 고용한 것이다. 북인도 지역에서 '아히르'를 천민으로 구분 지었다간 몰매 맞기 딱이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어느 지역에선 천민일 수 있고, 어느 지역에선 경우에 따라 수드라로 구분될 수 있다. 북인도와 남인도의 '아히르' 신분이 각각 다르게 구분될 수 있겠지만, 나렌드라 자다브가 속한 마하라쉬트라 지역의 경우에도 이제 '아히르' 즉 '자다브'란 성씨를 가진 이들을 천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천민으로 학대받고 핍박받던 시대는 적어도 100년은 지났다.
혹자는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나렌드라 자다브 가문은 과거에 불가촉 천민이었단 것은 맞는 말 아닌가?" 맞는 말이다. 그러면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한국의 역사에서 조선시대를 보자. 그 당시 '마,골,피'란 성은 천한 신분의 대표적인 성씨였다. 그런데 피천득 선생께서 당신의 천민 시절을 그리며 가족의 애환과 행복이 그린 자서전 형식의 수기를 썼다고 치자. 그러면 당신들은 피천득 선생의 글에 공감하겠는가?
나는 이 책에 인도 사회의 현실이나 위대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 등등의 부제를 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것이 이 책을 읽은 나의 솔직한 감정이다. 나렌드라 부모의 기억들로 채워진 이 책은 무엇보다 마치 김주영이나 이문구의 소설에 그려지는 어린 날의 풍경을 보는 것처럼 즐겁다.
새 옷이나 신을 얻게 되었을 때의 흥분, 더럽지만 한없이 달콤했던 불량과자, 처음 보는 라디오, 고무줄을 만들어 보려고 장독대에 말렸던 거머리, 훔쳐 먹었던 계란, 철로 위에 연탄 부스러기를 얹어놓고 자석을 만들어보려 했던 어리석음, 언젠가 외증조 할머니가 전기불이 처음 들어오던 날 전구에 대고 담뱃불을 붙이려했던 기억들. 이런 기억들을 1900년대 전반 쯤으로 탈색시키고 지형을 인도로 둔갑시키면 나의 추억 일부는 나렌드라의 그것과 비슷할 것이다.
우리는 풍요로워졌지만, 다시는 그 때의 흥분과 황홀한 맛과 감사함을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가난하지만 소중한 기억을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으므로 역설적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언터쳐블'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감상을 늘어놓는다면 사회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은 목에 힘을 주면서 하층민들의 고난을 은폐하거나 희화화한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엄숙주의는 대부분 인도 하층민의 생활을 묘사하고 분석하며 그들이 처한 사회적 부조리를 비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사힙(선생님)'들이 만들어낸 관찰의 결과물들이 하층민의 삶을 규정해버린다.
그래서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우리는 인도의 최하층민을 도비가트(빨래터)나 채석장, 철로보수 광경 속의 사진 속에서나 보게 되었다. 남편에게 얻어맞거나 혹은 불태워지는 여편네, 마약에 쪄들은 얼굴들, 사창가로 떠밀려온 어린 소녀들, 화장실의 대소변을 쓸어내는 장면이 이들을 대변해왔다.
인도 최하층민의 가난과 더러움에 대한 측은지심은 충분할 정도로 익혀왔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고 소박한 행복이 어떤 것인지는 거의 들어본 바가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책에 묘사된 자다브 가족사는 인도 최하층민의 생활을 내밀하게 읽어낼 수 있는 교과서가 될 수 있다. 인류학적인 관찰 보고서보다 이 기록은 더 정직한 것이다.
인도 최하층민의 가난과 더러움에 대한 측은지심은 충분할 정도로 익혀왔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고 소박한 행복이 어떤 것인지는 거의 들어본 바가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책에 묘사된 자다브 가족사는 인도 최하층민의 생활을 내밀하게 읽어낼 수 있는 교과서가 될 수 있다. 인류학적인 관찰 보고서보다 이 기록은 더 정직한 것이다.
- 프레시안에 오른 심재관 교수의 글 가운데
심교수는 먹물이 갖는 엄숙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그것은 지식인에 대한 거부일지도 모른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진실은 무엇일까?란 생각을 잠시 해본다. 글쎄, 글을 쓴 이가 잘못알고 있다고 나는 단언하고 있지만 어찌보면 이것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도.... 좀 폼을 잡고 말하면 이 세상은 '마야'(환상)다. 매트릭스다.
나이 들면서 인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점차 조심스러워진다. 나름 인도에 대해 그런대로의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상당한 부분에서 혼란스러운 곳이 인도다. 나렌드라 자다브가 분명 입지전적인 인물임엔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책이 인도 최하층민의 생활을 내밀하게 읽어낼 수 있는 교과서란 심교수의 언급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나렌드라 자다브는 상당부분에서 비약을 하고 있다.
몇 년전 '불가촉천민'이란 제목의 사진전을 간 적이 있다. 좋은 사진들이었다. 하지만 그 사진들 속에 불가촉 천민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작가는 '불가촉 천민'이란 제목의 사진전을 열었다. 어느덧 인도의 '불가촉천민'은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이 되고 있었다. 빈곤에 대한 환상, 그리고 그들 사이에도 행복이 있다고 여기는 순진한 생각들... 인도의 불가촉천민 문제는 과거 우리사회가 겪었던 가난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가 그걸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후기 자본주의란 것. 그리고 그만큼 가난으로 인한 기억을 추억으로 여길만큼 많은 것을 가졌다는 반증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또 다른 비약일까?
어찌됐든 프레시안에 오른 글은 틀림없이 좋은 글이다. 좋은 글을 쓴 분, 그리고 그 글을 소개해 준 라모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우리는 모두 불가촉 천민이다" 그래서 어쩌자고... 거리에 나가 싸울 것인가? 어차피 싸우지도 않을 것이지 않은가? 엄숙주의란 행동하지 않는 지식을 의미한다. 인도의 최하층이 겪는 빈곤과 신분 문제는 결코 '가난한 날의 행복'이란 낭만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2009년 3월 16일 새벽 1시 17분 즈음
여의도 작업실 618에서 다소 취기가 있는 상태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