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화이야기 162 -
'아리랑'의 유래는 신라 멸망을 아쉬워한 '아리령(娥利英) 고개'
- '아리랑 고개'는 아리령(알영)과 선도성모를 모신 제단 -
아리랑 아리랑 아라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요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우리민족의 고고한 '서민적 애족가'라 할 <아리랑> 가사이다. 아리랑의 어원에 대한 연구는 수없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아리랑은 신라 시조신화에 등장하는 박혁거세 부인 '알영(閼英)'에서 '아리랑'이 유래했다는 학설은 주목을 받는다.
'알영'은 '아리영(娥利英)'이라고도 한다고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언급했다. '아리영'과 '아리랑'은 그대로 음운적으로 연결된다.
필자는 이러한 '알영 - 아리영 - 아리랑'의 음운적 연관 외에 <아리랑> 가사가 보여주는 내용이 천년 신라의 멸망을 아쉬워하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풀이해 내고자 한다.
신라가 멸망된 뒤에 신라의 서민들은 고려왕조에서 신라 시조에 대한 숭배의식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신라 시조 신화는 종교적인 뿌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태양숭배 사상을 가졌던 신라인들의 깊은 뿌리 의식은 불교를 국교로 하던 고려시대 치하에서 산신령으로 남아 있던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의 신화적인 숭배를 노래로 담아 이어 불렀을 것이다.
'아리랑'은 구한말이 아니라 적어도 고려초기에 나온 노래였을 개연성이 높다는 필자의 생각은 그래서 더욱 <아리랑> 가사에 관심을 갖게 한다.
1) 신라의 태양신 숭배는 고개말랭이(고갯마루) 산신령 문화를 수반하고 있었다. 노고단은 물론 치술신령처럼 박혁거세 어머니인 선도성모(동성신모)도 서술신령(西述神嶺)의 고갯마루 산신령 숭배에 연결되어 있다. 아리랑 '고개'는 '신령고개'였다는 것을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고갯마루에는 태양이 뜨는 산 고개이다.
2) '알영(閼英)'이라는 한자는 후대적인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알에서 태어난 난생신화에 연결되는 태양숭배의 해님 즉 '알'을 의미한다. 알영이란 '빛나는 알' 즉 신라 시조가 태양이라는 의미이다.
'태양의 여신'이 솟아오르면 태양의 광채가 여신이라면 거기에서 아기가 '알'처럼 태어나듯 해가 솟으면 그 해는 신라 시조의 탄생으로 보았을 것이다.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고려시대 불교적 사서에 나타나는 표현은 태양숭배 잔재를 말살한 터 위에 간단하게 기록한 것이다.
3)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란 멸망한 신라의 태양의 신을 의미한다. 신라를 정복한 고려는 태양의 '아리랑 고개'를 넘어 병이 날 것이라는 의미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에 들어 있다.
4) 태양이 지면 하늘엔 잔별만 남는다. 그래서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요"라고 노래했으며, 태양의 아리랑 고개 산신령을 잃어버린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고 노래한 것이다.
6.25 때 남한의 인사들이 북한 괴뢰군들에게 '철사줄에 꽁꽁 묶여 끌려가던' 미아리 고개의 한을 생각해본다면 고려에 멸망한 신라의 '아리랑 고개'의 한이 아리랑 가사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5) 일연이 언급한 '아리영(娥利英)'은 본래 한자가 아닌 우리의 토속 언어인 '알 이엉'었을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엉'이란 지붕 마루에 올리는 짚으로 된 지붕 덮개이다. 지붕마루는 일종의 산마루를 상징하는 '고갯마루'의 의미를 가진다. 지붕마루에 알이 솟아오른다는 것은 고갯마루에 해가 솟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우리 민족의 문화 가운데 가장 오래 남아 있는 토속적 문화적 잔재는 중국적 유교문화인 조선문화나 불교문화인 고려문화가 아닌 신라문화이다. 현재 '무속적 전통'의 대부분은 신라문화에서 유래했다고 할 수 있다. 유불선에서 선도(仙道)는 토속적 태양숭배 사상을 바탕한 신라의 화랑도에 그 뿌리가 있다. '아리랑 고개'는 그러한 신라문화의 아쉬움을 노래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도 우리나라에서 '고개 문화' 또는 '산꼭대기 문화'의 대표적인 곳은 문경 새재와 지리산 노고단일 것이다. 문경 새재에는 신라 때부터 내려오는 산신각이 있고 산신할머니를 모시고 있다.
신라 때부터 제사를 지내왔다는 문경새재 산신각의 그 산신 할머니가 누구겠는가? 단순한 지방적 산신 할머니가 아니라 신라 시조 박혁거세 어머니 선도성모와 관련된 박혁거세 부인 '알영'의 '아리랑'일 수 있다.
특히 '새재'에 대하여 나는 분명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문경 새재의 '새 재'가 새가 쉬어간다 해서 오늘날 한자로 조령(鳥嶺)으로 쓴다는 것은 후대적인 윤색일 수 있다.
본래는 신라의 新(신)이 '새'다. 그 '새'는 동시에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순수한 우리말은 '새한마노'에서 해돋는 동쪽을 의미한다. 새재란 신라의 고개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문경새재의 '새재'는 '아리랑 고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영남지방의 영남(嶺南)을 단순히 추풍령으로 보지만, 거기에는 박혁거세와 알영 즉 신라 시조를 모시던 산신령 고갯마루의 영(嶺)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앞선 장에서 논했지만, 선도성모(仙桃聖母)는 송나라에서 동신성모(東神聖母)라고 한 것은 '東神' 즉 태양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동쪽 즉 '새재'의 성모라는 것으로 풀이된다.
노고단과 선도성모에 대하여서는 앞선 장에서 많이 논하여서 여기에서는 생략하겠다. 신라 신화는 그 어느 신화보다 여신 신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신라가 망한지 천년이 지났지만, 그 강력한 전통은 여러 곳에 남아 있다. 특히 신라 시조신화에 등장하는 박혁거세의 부인과 박혁거세 어머니의 신화는 여타의 우리 민족의 신화들이 보여주는 것과 다른 면이 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어머니 선도성모가 모셔진 성모사가 있는 경주의 서술산(西述山)
박혁거세가 13세 왕위에 올랐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박혁거세 신화 등을 보면 이미 그가 태어날 때부터 시조왕으로 찾아세운 내용으로 박혁거세 신화는 나타나고 있다.
특히 박혁거세를 낳았다는 선도성모(仙桃聖母)는 조선시대에도 그 사당인 성모사가 있었고 70년대 복원하여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은 신라 시조 신화는 대단히 입체적이며 여신 신화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혁거세 어머니 선도성모(동신성모 또는 서술신모)가 모셔진 경주 서술산 성모사(聖母祠)
현판에 뚜렷이 聖母祠라 쓰여져 있는 이 성모라는 말이 바이블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에도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선도성모(仙桃聖母)의 '仙桃'는 본래 '仙道' 즉 화랑도의 의미를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고려시대에 통치자들에게 거슬리게 보일 수 있어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먹은 불교적인 서왕모 신화에 맞추어 '仙道'를 '仙桃'로 바꾸어 불렀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박혁거세가 태어난 뒤인 5년뒤 그 부인 알영이 태어났다고 <삼국사기>는 말한다. 박혁거세 부인 '알영'은 분명 산신으로 받들어졌을 것이다. 그 시대의 아기들은 산신령에게 빌어서 태어났다.
신라인들은 중간에 불교를 받아들였으나 그들의 시조가 태양숭배의 난생신화에 깊이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선도문화를 없애지 않았다. 그러나 불교를 국교로 시작한 고려왕조는 신라의 잔재를 없애는 방편으로 태양숭배의 모든 신화들을 억압하거나 왜곡 윤색시켜 불교적으로 재해석했다.
앞선 장에서 논한대로 단군신화가 그랬듯이 고려시대는 신라의 모든 신성한 것을 왜곡하고 바꾸었다.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아리영'의 '영'이 신라인들에게는 산신제를 드리는 고개를 의미하는 영(嶺)인 동시에 화랑도의 '랑'과 같은 의미로 '아리랑'이라는 음운의 '랑'의 비밀이 숨어 있을 것이다.
'아리랑'의 랑이 고갯말루의 영(嶺)이라 해도 '아리랑 고개'는 '아리령(嶺)'에서 한자 '령'을 우리말로 다시 붙이는 '역전 앞'과 같은 '아리랑 고개'가 되었을 것이다.
'원술랑' 등의 화랑들의 이름에서 나오는 '랑'은 본래 화랑들이 산신령을 모시는 산중의 상선(上仙)에게 축복받은 그 '고갯마루' 또는 '산마루' 산신령 이름을 본땄을 수가 있다. 화랑이 태어나는 마복자 문화와 산중의 상선과의 관계에 대하여서는 김대문의 <화랑세기>에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아리랑 고개는 우리민족의 모든 산신령을 대표하는 태양이 떠오르는 산마루 고개의 의미이며 그 지방의 산신령 고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알영(閼英)' 또한 '알영(閼嶺)'이면서 '아리 령(嶺'이기도 한 '아리랑 고개'라 할 수 있다.
같은 신라시대의 박제상의 이야기에서 박제상의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는 고갯마루도 치술령(
述嶺)이다. 불교식으로 표현하여 '망부석'이지 사실은 신라의 태양숭배사상인 '신국의 도'로 해석하면 망부석이 아니라 '산신령 할머니'가 된 것이다. 그래서 또 다른 기록들에는 '치술신모'가 되었다고 했다. '아리랑 고개'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 부인인 알영신령(신모)를 모신 고개라는 것은 확연해지는 것이다.
박혁거세는 큰 박과 같은 알에서 태어났으며 그 부인 알영은 계룡의 옆구리에서 태어나 새부리를 하고 있었다.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나왔다는 신화와 계룡의 옆구리에서 알영부인이 나왔다는 것은 같은 신화적 코드이다. 따라서 알영부인이 나왔다는 '계룡'은 박혁거세 자신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남성의 옆구리에서 부인이 나왔다'는 것은 남성신화화된 내용이 아닐까? 본래는 '여성의 옆구리에서 남성이 태어났다'는 것이 바른 표현일 것이다.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싯타르타의 신화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때 '마야부인의 옆구리'란 산신령의 옆구리 즉 '여성의 몸'인 산맥의 명당에서 태어났다는 산신령의 자식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신화로 보면 여성의 몸인 명당은 어머니이자 부인이다. 그 명당에서 후손이 태어난다는 것은 그 산신령의 아들이자 남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명당에 묻힌다는 것은 다시 음양이 합일하여 부부가 일체의 산신령이 되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산신령'의 령(靈)이 신화적으로 '고갯마루'란 한자의 '령(嶺)'이기도 하기에 '산신령'이란 산신이 거하는 '산신령(山神嶺) 고개'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한 '산신령(山神嶺)'의 옆구리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산신령의 옆구리이며 산맥의 명당에서 태어난 '알영 - 아리영(령) 고개'는 신라 시조 신화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산신령 옆구리'의 의미가 '아리랑 고개'란 여 산신의 몸을 말한다. 그 고갯마루에서 해가 뜨는 것은 신화적으로 아들이자 남편인 아기가 알처럼(해 모양)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기(햇님)'가 태어나는 고갯마루는 그래서 해맞이 고갯마루이다.
난생신화가 태양신화인 것은 태양 즉 알이 태어나는 것을 시조신화에서 태양신의 아들이자 태양 그 자체임을 보여주기 위함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라 때부터 중요한 삼산오악(三山五嶽) 고갯마루 산마루에서 신라 시조를 위한 제사를 지냈다는 것은 민요 <아리랑>이 어쩌면 신라인들의 시조 제사 때 불렀던 노래의 잔재로서 신라가 멸망한 뒤에 그렇게 슬픈 가사로 남아진 민요였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에서 신라시대 이래 우리 민족이 삼산오악(三山五嶽)에 제사를 지낸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제사의 중심은 '태양의 여신' 선도성모(동신성모)에 대한 제사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랑 고개'는 선도성모를 모신 제단
조선시대 제사 기록에 따르면 신라의 제사에서 삼산오악(三山五嶽) 즉 다섯 봉우리 즉 오악(五嶽)에 모셔진 신라의 제사 관행을 이어받는 내용이 나온다. 그 중에 큰 제사인 대사는 분명 신라시조와 박혁거세 어머니 선도성모를 모시는 제사였다.
이에 관하여서는 이미 필자의 <신화이야기 116 고려시대의 박혁거세신사와 중국(宋)의 박혁거세신사: 경주 선도산의 박혁거세 성모사와 지리산 노고단의 선도성모 신단>에서 상세하게 다룬 바가 있다.
조선시대의 산천단(山川壇)·산천성황(山川城隍)의 제도는 신라시대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태종실록≫ 권28 태종 13년 6월 을묘의 기록에는 "본조(本朝)에서는 전조(前朝)의 제도를 이어받고도 산천에 올리는 제사의 등급을 나누지 않았으니, 나라 안의 명산대천 및 여러 산천을 옛날 제도 그대로 등급을 나누기를 바란다.”라고 신라시대의 제도 그대로 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 권32 잡지1 제사에 보면, 신라의 제례로 “삼산오악(三山五嶽)과 그 밖의 명산대천(名山大川)을 나누어서 대중소(大中小)의 제사를 올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임금들의 용좌 뒷편의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는 신라의 태양과 달의 신을 제사하는 오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의 제사는 기본적으로 태양의 여신 선도성모에게 올리는 제사였다고 할 수 있다.
서술산의 선도성모는 사소(娑蘇)라는 별명을 지닌 성모(聖母)다. 일연이 <감통(感通)>편에서 '선도산 성모가 불교 행사를 좋아했다(仙桃聖母隨喜佛事)'는 제목으로 실어 놓은 글은 고려시대 일연 스님이 신라의 풍류 선도에서 받들어 온 태양의 여신이 마치 불교를 애호한 것으로 표현하려 애쓴 기록에 불과하다.
특히 일연은 그 주석에서 혹자는 서술성모(西述聖母)가 혁거세를 낳았다고 한다는 간접표현을 하고 있다. 혹자가 아니라 신라인들은 그렇게 받들어 왔으나 이미 불교 정권 고려시대에서 신라문화는 마이너리티가 되어 있는 상황을 일연의 묘사에서 볼 수 있다.
왕조가 달라지고 불교가 강조되던 고려시대에 신라의 제사만 약화시킨 것이 아니라 서술신모를 모시던 성모사마저 없앴다. 이것을 조선시대에 복원했다가 다시 없어지자 지나 1970년대에 서술산에를 성모사(聖母祠)를 복원해두었다. 신라의 태양신이 복원된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일본의 일장기에 그려진 태양은 일본의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심볼이다. 그것은 신라의 태양의 여신 선도성모 여신을 모시는 것이다.
아리랑의 '랑'을 낭자의 '娘'으로 볼 수도 있지만, 화랑의 '郞'으로 볼 수도 있다. 화랑은 본래 여성으로 시작했던 것은 선도성모에 의하여 신라 시조신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보다 원천적으로 화랑의 기원이었던 원화(源花)가 여성이었다는 것은 신라의 신화가 박혁거세 어머니 선도성모에 대한 여신적 배경이 크게 자리잡고 있는 방증이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신궁의 신관(神官)이 여성인 '아로(阿老)'였다는 그 '아로' 또한 '알리영'과 연관되는 이름으로 볼 수 있다. '아로'는 아리랑 산신령의 신들린 무녀 제사장일 수 있다. 그래서 그 이름이 '아로'라고 할 수 있다. 선도성모를 모시는 제단인 지리산의 노고단(老姑壇)의 '老'와 '아로(阿老)'의 '老'는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아리랑 고개'는 화려한 신라시대에는 해돋는 '동신령(東神嶺)'이었을 것이다. 그 아리랑 고개가 신라가 멸망했을 때 해는 서산에 진 상황으로 서술산에 안식하는 것으로 표현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본래의 선도성모는 해를 토하는 동쪽의 산 '토함산' 특히 석굴암 자리에 그 사당이 있었을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추측이다. 석굴암의 평면도는 해돋는 모양의 전방후원분의 원형이라는 것을 필자는 이미 밝혔다.
성모사가 서술산에 세워진 후 지난 1970년대 말 토함산의 석굴암에서 동짓날 해돋는 방향을 따라 가면 대왕암을 거쳐 일본의 천황가의 제사를 올리는 이세신궁에 일직선으로 연결되는 것을 NHK방송이 방송했다.
동짓날 해돋는 방향이 연결되는 석굴암이 경주의 서술산의 성모사에로 해가 지는 일직선으로 연결되는지 다시 명확하게 살펴볼 일이다. 그것이 틀리다면 1974년도에 성모사를 복원할 당시의 정확한 위치가 확실한지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김부식은 선도성모를 왜곡하여 중국 고대 왕실의 공주라고 왜곡한다. 선도성모가 난데없이 중국 왕실의 딸로 묘사되어 그 이름이 사소이며, 우리나라인 진한(신라의 옛 지역)에 와서 성자(聖子)를 낳았고, 이 성자가 동쪽나라의 첫 임금이 되었다는 식이다. 신화적인 여신을 격하시킨 것이며 사대화한 것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권 12 경순왕편 사론(史論)에 나오는대로 김부식이 송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서기 1111~1117년) 그곳의 우신관(佑神館)이란 곳에서 김부식이 보았다는 동신성모상은 신라의 선도성모였다. 동신성모는 신라시조 박혁거세를 낳은 어머니이다. 다시 말하여 동신(東神)은 동쪽의 해돋는 태양신을 말한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123년 고려에 왔던 중국 송나라 사신인 서긍이 기록한 <고려도경>에는 개성에서 동신성모지당(東神聖母之堂)이 있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도 마땅히 동신성모가 모셔지고 있었던 것이다. 신라의 태양신은 고려의 수도 개경에도 '東神'이란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는 신라의 태양신이다. 동쪽에서 뜨는 신이 동신이다.
앞장에서 논했지만, 이러한 신라의 동신사상을 김부식은 중국화하거나 모른다고 무시했고, 일연은 불교식으로 웅녀신화를 도입하여 신라의 동신사상 즉 선도성모 신화를 멸실시키려 했다.

*서긍의 <고려도경>의 동신사 부분
신라의 태양숭배 사상인 선도성모 신화는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고려의 개성 뿐만이 아니라 송나라에도 동신성모가 모셔지고 있었던 것이다. 송나라 동신성모에 대한 <삼국사기>의 내용을 보다 상세히 볼 필요가 있겠다.
政和中
我朝遣尙書李資諒 入宋朝貢
臣富軾以文翰之任輔行 詣佑神 見一堂設女仙像
伴學士王曰
“此貴國之神 公等知之乎”
遂言曰
“古有帝室之女 不夫而孕 爲人所疑 乃泛海抵辰韓生子
爲海東始主 帝女爲地仙 長在仙桃山 此其像也”
臣又見大宋國信使王襄祭東神聖母文
有娠賢肇邦之句 乃知東神則仙桃山神聖者也
然而不知其子王於何時
고려 조정에서 상서(尙書) 이자량(李資諒)을 송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는데, 신(臣)
부식(富軾)이 문한(文翰)의 임무를 띠고 보좌하여 따라갔다가 우신관(佑神館)에
나아가 한 집에 선녀상을 모셔둔 것을 본 적이 있다.
관반학사(伴學士) 왕보(王)가 말하기를 “이는 그대들 나라의 신(神)인데 공들은
그것을 아는가?”하고는 마침내 일러주었다.
“옛날에 황실의 딸이 남편 없이 임신하게 되었으므로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다 건너 진한(辰韓)에 이르러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해동(海東)의 첫 임금이 되었고 황제의 딸은 지선(地仙)이 되어 오래도록
선도산(仙桃山) 있었으니 이것이 그의 상(像)입니다.”
나는 또 송나라 사신 왕양(王襄)의 동신성모(東神聖母) 제문(祭文)을 보았는데,
『어진 이를 낳아 나라를 처음 열었다.』는 구절이 있었으므로 동신(東神)은 곧
선도산의 신성(神聖)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 아들이 어느 때 왕노릇을
했는지는 알지 못하겠다.
여기에서 마지막 줄에 보이는 김부식의 외면은 신라의 왕조를 애써 무시하려 '어느 때 왕노릇을 했는지는 알지 못하겠다'고 고려왕조에 대한 곡학아세하여 왜곡하여 쓰고 있다.
위서의 논쟁을 받고 있는 <한단고기>에서도 선도성모에 대한 기록을 포함시키고 있다. <한단고기>는 "사로(斯盧)의 시왕은 선도산의 성모의 아들이다."라고 한 것으로 사로(斯盧) 즉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선도성모의 아들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강화도 마니산은 북방계 신화인 웅녀신화의 영향을 가진 산신제단이라면, 지리산 노고단은 남방계 신화인 박혁거세 어머니 선도성모 신화의 영향을 가진 산신제단이다. 노고할미 제단이 노고단인 것이다.
고려시대에 개경에 동신성모 사당이 있었다는 것은 신라의 동신성모(선도성모) 사당이 북쪽으로 멀리까지 확대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려 왕조가 단군신화를 이디올로기화한 것은 이러한 신라 신화를 제어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고단이 있는 지리산을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하는 것은 전설 속의 봉래산(蓬萊山), 영주산(瀛洲山)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높여 부르고자 했기 때문이다
방장산 즉 지리산의‘노고단(老姑壇)’은 선도성모의 높임말인 노고(老姑)와 제사를 모시는 신단(神壇)이 합친 말로 박혁거세 제단 이름이 봉우리 이름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빨치산들의 아지트 이미지의 피아골의 지리산이 아니라 화랑들의 성산이 지리산이었다. 그러니까 지리산은 박혁거세 어머니를 국모신 또는 산신으로 모신 거룩한 제단으로 삼아 화랑들이 민족정신으로 심신을 단련하고 수련했던 성지가 노고단이 있던 지리산이었다.
그런 곳이 일제시대 이후에 오히려 수난을 당했다. 여순사건 때(1948년) 빨치산들의 은거지가 되지 못하도록 모든 제단의 흔적들이 파괴되고 불태워졌다. 그 이후에도 1988년 성삼재 관광도로 등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하여 노고단 지역은 황폐화되어 왔다.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 노고단의 등산은 알아도 박혁거세 신단인 지리산 노고단이 강화도의 참성단보다 제대로 인지되어 있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

* 지리산 노고단. '노고(老姑)'란 '선도성모할미'를 제사하는 제단을 말한다.
지리산의 노고단(老姑壇)의 ‘老姑’가 '오래된 시어머니'라는 말 속에 신비한 비밀이 숨어 있다. 박혁거세 어머니 선도성모를 '노고(老姑)' 즉 '늙은 시어미'라고 한 것은 알영부인의 시어머니임을 말한 것이 아닐까?
민요 <아리랑>의 아리랑 고개는 태양을 맞이하던 '알 고개'이며 '아리영 고개'였다. 일연의 <삼국유사>의 박혁거세 부인 '알영(閼英)'을 '아리영(娥利英)'이기도 했다는 기록은 아리랑 고개의 한많은 신라 멸망의 한이 담긴 내용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02/19/09 오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