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하여 말하겠다. '색 등의 5온'이란 이를테면 처음의 색온(色蘊)으로부터 시작하여 내지는 식온(識蘊)을 말한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 법은 모두 유위에 포섭되니, 다 같이 조작(造作)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 같은 다섯 가지의 법 중의 그 어떠한 법도 하나의 연(緣)에 의해 생겨난 것은 없다. 그리고 이것도 그것과 한 종류로서,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법도 [그것이 생기하는 데] 방해받는 일이 없으니, 마치 젖과 같고 땔감과 같다.20) |
| 이러한 유위법은 역시 또한 '세로(世路, adhvan)'라고도 하니, 이미 작용[已行 : 과거]하였고, 지금 바로 작용[正行 : 현재] 하며, 응당 작용[當行 : 미래] 할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며, 혹은 무상(無常)에 의해 탄식(呑食)되는 것이기 때문이다.21) 혹은 '언의(言依, kathavastu)'라고도 한다. 여기서 '언'이란 말하자면 말[語言]로서, 이러한 말의 소의는 바로 명사적 단어[名]와 함께하는 의미[義]이다.22) 즉 이와 같은 언의는 일체의 유위제법을 모두 포섭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품류족론』에서 설한 바에 위배될 것이니, 거기에서 "언의는 18계에 포섭된다"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23) |
| 혹은 유위를 '유리(有離, sani sara)'라고도 이름한다. 여기서 '리(離)'란 영원히 떠나는 것으로, 바로 열반을 말한다. 즉 일체의 유위법은 바로 그 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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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여기서 '이것'은 미래법, '그것'은 과거·현재 법을 말한다. 즉 이는 과거·현재 법은 중연(衆緣)에 의해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유위(samsk ta)라고 할 수 있겠지만 미래법은 아직 조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위라고 할 수 없지 않겠는가 하는 난문에 대한 답이다. 미래법은 아직 조작되어 생겨나지 않은 법이지만 생기의 가능성에 따라 유위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젖은 유방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유방 속에 있는 것도 젖이라 할 수 있으며, 땔감은 타고 있는 것 자체를 말하지만 일반의 연료도 그럴 가능성이 있으므로 땔감이라 할 수 있는 것과 같다는 뜻. |
| 21) 여기서 세로(adhvan)는 과정(過程)의 뜻이다. 즉 제 유위법은 삼세의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일컬은 것이다. 유부교학상에 있어 시간(k la)이란 객관적으로 독립된 실체, 이른바 '법'이 아니라 다만 생멸변천하는 유위제법을 근거로 설정된 개념일 뿐이다. 이를테면 세간에서의 시간[世]은 유위제법을 근거(路)로 하기 때문에 세로(世路)라고 하는 것이다. (보광, 『구사론기』권제1) 따라서 시간은 바로 유위의 이명(異名)일 뿐이다. |
| 22) 명(名, nama)은 책상·하늘과 같은 명사적 단어를 말하는 것으로, 말의 근거는 이 같은 단어 그 자체[전통술어로 能詮의 名]가 아니라 그것에 의해 드러나는 의미[所詮의 法]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5, p.257) 참조. |
| 23) 『품류족론(品類足論)』 권제9(대정장26, p. 728상), "言義事十八界·十二處·五蘊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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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리'를 지녔기 때문에 이같이 이름한 것이다. 혹은 유위를 '유사(有事, savastuka)'라고도 이름하니, 원인을 지녔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사'란 바로 원인의 뜻이다. |
| 비바사사(毘婆沙師)가 전(傳)하여 설(說)하는 바는 바로 이와 같으니, 이상과 같은 따위의 종류가 바로 유위법을 차별 짓는 여러 명칭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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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설하고 있는 유위법 중에서 [유루란 무엇인가?] |
| 게송으로 말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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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루를 취온(取蘊)이라고도 이름하며 |
| 역시 또한 유쟁(有諍)이라고도 설하며 |
| 아울러 고(苦)·집(集)·세간(世間) |
| 견처(見處)·3유(有) 등이라고도 한다. |
| 有漏名取蘊 亦說爲有諍 |
| 及苦集世間 見處三有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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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하여 말하겠다. |
| 여기서는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가? |
| 취온(取蘊)에 대해 말하고자 함이다. 이를테면 역시 '온'이라고 이름하는 것 중의 혹 어떤 것은 오로지 '온'일 뿐으로 취온이 아닌 것이 있으니, 말하자면 무루의 행(行)(즉 무루온)이 바로 그것이다. 즉 번뇌를 일컬어 '취(取, up d na)'라 한 것으로, [유루의] 온은 취로부터 생겨났기 때문에 '취온'이라고 이름하였으니, 이는 마치 풀[草]이나 겨[糠]에서 생겨난 불을 초강화(草糠火)라고 하는 것과 같다. 혹은 [유루의] 온은 취에 속하기 때문에 '취온'이라고 이름하였으니, 이는 마치 신하가 왕에 속한 것을 '제왕의 신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 혹은 [유루의] 온은 취를 낳기 때문에 '취온'이라고 이름하였으니, 이는 마치 꽃이나 과실을 낳는 나무를 화과수(花果樹)라고 하는 것과 같다. |
| 이러한 유루법을 또한 역시 '유쟁(有諍, sara a)'이라고도 이름한다. 즉 번뇌를 일컬어 '쟁'이라 말한 것으로, 그것은 선한 품성을 자극하여 동요[觸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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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게 하기 때문이며, 자신과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즉 [유루법에는] 이 같은 '쟁'이 따라 증가[隨增]하기 때문에 '유쟁'이라 이름한 것으로, 이는 마치 유루의 경우와도 같다.24) |
| [유루법을] 또한 역시 '고(苦, du kha)'라고도 이름하니, 성심(聖心)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시 '집(集, samudaya)'이라고도 이름하니, 능히 괴로움을 초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시 '세간(世間, loka)'이라고도 이름하니, 가히 [생(生)·주(住)·이(異)·멸(滅)의 4상(相)에 의해] 훼손 파괴되며, [성도(聖道)에 의해] 대치(對治)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시 '견처(見處, d isth na)'라고도 이름하니, 견(見)이 거기에 머물며,25) 수면(隨眠, 번뇌의 異名)을 수증(隨增)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역시 '3유(有)'라고도 이름하니, [유루법은] 존재[有]의 원인이자 근거이며, 세 가지 존재(욕유·색유·무색유)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
| 이와 같은 종류가 바로 유루법으로서, 뜻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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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색 등의 5온을 일컬어 유위법이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색온이란 무엇인가? |
| 게송으로 말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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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이란 오로지 5근(根)과 |
| 5경(境), 그리고 무표(無表)이다. |
| 色者唯五根 五境及無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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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하여 말하겠다. 5근이라고 함은 이른바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근(根)이 바로 그것이다. 5경이라고 함은 이른바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 경(境)이 바로 그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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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앞에서 유루란 '누(漏)'를 수증(隨增)하기 때문에 '유루'라고 이름하였다고 하였다. |
| 25) 여기서 견은 유신견(有身見)·변집견(邊執見)·사견(邪見)·계금취(戒禁取)·견취(見取)의 5견을 말함.(이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19, p.861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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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송에서] '그리고 무표'라고 함은 무표색을 말하니, 오로지 바로 이 같은 수량(5근·5경·무표의 열한 가지)에 의거하여 색온이라는 명칭을 설정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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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먼저 5근의 상(相)에 대해 마땅히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
| 게송으로 말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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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한 식(識)의 근거가 되는 정색(淨色)을 |
| 이름하여 안(眼) 등의 5근이라고 한다. |
| 彼識依淨色 名眼等五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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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하여 말하겠다. [본송에서] '그러한'이라고 함은 이를테면 앞에서 논설한 색 등의 5경을 말하며, '식'이란 바로 색·성·향·미·촉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즉 '그러한 식'의 소의(所依)가 되는 다섯 가지 종류의 정색(淨色)을 그 순서대로 바로 안 등의 5근이라고 함을 알아야 할 것으로,26) 세존께서 설한 바와 같다. 즉 "필추(苾芻)들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안(眼)은 말하자면 내처(內處)로서 사대소조(四大所造)의 정색을 본질로 한다"고 이와 같이 널리 설하였던 것이다.27) |
| 혹은 다시 [본송에서] '그러한'이란 이를테면 앞에서 논설한 안 등의 5근을 말하며, '식(識)'이란 바로 안·이·비·설·신의 인식을 말한다. 즉 '그러한 식'의 근거가 되는 다섯 가지 종류의 정색을 안 등의 근이라 이름한 것으로, 이는 바로 안 등은 식의 소의지(所依止)가 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바로 『품류족론』(권제1)에 따른 것으로, 예컨대 그 논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무엇을 일컬어 안근이라고 하는가? 안식(眼識)의 소의로서, 정색을 본질[性]로 한다"고 이와 같이 널리 설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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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색에 대한 식(識)의 소의가 되는 정색(淨色)을 안근이라 하고, 내지는 촉에 대한 식의 소의가 되는 정색을 신근이라 이름한다는 뜻. 여기서 정색(r pa pras da)이란 광명이 차단됨이 없는 맑고 투명한 색이라는 정도의 의미. |
| 27) 『잡아함경』 권제13 제322경(대정장2, p. 91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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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근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
| 다음으로 5경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
| 게송으로 말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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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色)에는 두 가지, 혹은 스무 가지가 있고 |
| 성(聲)에는 오로지 여덟 가지가 있으며 |
| 미(味)에는 여섯 가지, 향(香)에는 네 종류가 있으며 |
| 촉(觸)은 열한 가지를 자성으로 한다. |
| 色二或二十 聲唯有八種 |
| 味六香四種 觸十一爲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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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하여 말하겠다. '색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함은 첫 번째가 현색(顯色, var a-r pa)이고, 두 번째가 형색(形色, sa thana-r pa)이다. 현색에는 다시 네 가지가 있으니, 청(靑)·황(黃)·적(赤)·백(白)이 바로 그것이며, 그 밖의 현색은 바로 이러한 네 가지 색의 차별이다. 또한 형색에는 여덟 가지가 있으니, 이를테면 장(長)이 첫 번째이며 부정(不正 : 평평하지 않음)이 맨 마지막이다. '혹은 스무 가지가 있다'고 함은 이러한 색처를 다시 스무 가지로 설한 것으로, 이를테면 청·황·적·백·장(長)·단(短)·방(方)·원(圓)·고(高)·하(下)·정(正)·부정(不正)·연기[煙]·구름[雲]·먼지[塵]·안개[霧]·그림자[影]·빛[光]·밝음[明]·어둠[闇]을 말한다. |
| 그런데 유여사(有餘師)는 "공(空)도 하나의 현색으로, 색처의 스물한 번째이다"고 설하기도 하였다. |
| 여기서 정(正)이란 형태의 평등함(즉 평평함)을 말하며, 형태의 평등하지 않음을 일컬어 '부정'이라고 하였다. 또한 땅으로부터 물의 기운이 비등한 것을 설하여 '안개'라고 하였으며, 태양의 불꽃을 '빛'이라고 이름하였다. 그리고 달이나 별, 화약, 보주(寶珠), 번개 등의 온갖 번쩍임[焰]을 '밝음'이라고 하였고, 광명을 장애하여 생겨난 것으로서 그 가운데로 여타의 다른 색을 볼 수 있는 것을 '그림자'라고 이름하였으며, 이와 반대되는 것을 '어둠'이라고 하였다. 그 밖의 색은 알기 쉽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더 이상 해석하지 아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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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다. |
| 그런데 혹 어떤 경우 색처(色處)로서 현색은 갖지만 형색은 갖지 않는 것 있으니, 이를테면 청·황·적·백·그림자·빛·밝음·어둠이 바로 그것이다. 혹은 어떤 경우 색처로서 형색은 갖지만 현색은 갖지 않는 것이 있으니, 이를테면 장(長) 등의 일부인 신표업(身表業)의 자성이 바로 그것이다.28) 혹은 어떤 경우 색처로서 현색도 갖으며 형색도 갖는 것이 있으니, 이를테면 그 밖의 색이 바로 그러하다. |
| 그렇지만 유여사(有餘師)는 설하기를, "오로지 빛과 밝음에는 현색 만이 존재하고 형색은 존재하지 않으니(그 밖의 청·황·적·백·그림자·어둠에는 형색도 존재한다), 현재 세간을 보건대 청 등의 색처에는 길이[長] 따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
| 그렇다면 하나의 실체[一事, eka dravya]에 어떻게 현색과 형색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29) |
| 이러한 하나의 실체 중에서 두 가지가 모두 알려질 수 있기 때문에 [이같이 설한 것으로], 이 같은 하나의 실체 가운데 [현·형의 두 색이] 존재한다고 한 것은 유지의(有智義) 즉 인식론적 의미에서이지 유경의(有境義) 즉 존재론적 의미에서가 아니다.(비바사사의 대답) |
|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신표업 중에도 역시 마땅히 현색에 대한 앎이 존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신표업 역시 현·형의 두 가지 색을 본질로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논주 세친의 평석)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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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수족의 굴신[身表業] 등은 오로지 형색[身形]을 본질로 하는 것으로서(이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13, p.598 참조), 색채 즉 현색을 갖지 않은 것이다. |
| 29) 이는 法寶의 『구사론소』 권제1여(餘)(대정장41, p. 478중)에 의하면 경부(經部)의 난문(難問). 여기서 실체[事, dravya]는 극미(極微, param u: 5근 5경 등의 물질을 분할하여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최소 단위, 주52를 참조할 것)를 말함. 식유필경(識有必境)의 전제에서 출발한 유부는 존재론적 의미(有境義, the sense of 'to exist')에서가 아니라 인식론적 의미(有智義, the sense of 'to know')에서 현색과 형색은 동시에 알려지기 때문에 안처소섭색(眼處所攝色)은 이 두 가지를 본질로 한다고 주장한데 반해 경량부에서는 현색만이 실재할 뿐 형색은 그것에 의해 일시 설정된 언어적 가설일 뿐이라고 주장한다.(본론 권제13, p.598 참조.) |
| 30) 이는 앞의 답이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밝힌 것으로, 만약 인식론적 의미[有智義]에서 현색·형색의 구별을 설하였다면, 앞에서 형색만이 있고 현색을 갖지 않는다고 한 신표업의 경우에도 흰손이 때리고 검은 발이 찬다고 하듯이 현색의 인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무현유형[無顯唯形]이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하는 힐난. 이는 곧 논주 세친이 경량부의 형색가립론[形色假立論]에 동조함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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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처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
| 이제 마땅히 성처(聲處)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하리라. |
| 소리[聲]에는 오로지 여덟 가지의 종류가 있으니, 이를테면 유집수(有執受) 혹은 무집수(無執受)의 대종(大種)을 근거로 한 것과 아울러 유정명(有情名)과 비유정명(非有情名)의 차별에 따라 네 가지가 되며, 이를 다시 가의(可意)와 불가의(不可意)로 차별하여 여덟 가지가 되는 것이다.31) |
| 여기서 유집수의 대종을 근거로 한 소리란 이를테면 말이나 손 따위에 의해 발성되는 음성을 말하며, 바람·숲·강 등에 의해 일어나는 음성을 무집수 대종을 근거로 한 소리라고 한다. 그리고 유정명의 소리란 이를테면 어표업(語表業)을 말하며, 그 밖의 소리는 바로 비유정명의 소리이다. |
| 그런데 어떤 이는 설하기를, "어떤 소리는 유집수 대종과 무집수 대종 모두를 근거로 하는 경우가 있으니, 손과 북 등이 결합하여 생겨나는 소리와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비바사사들이] 하나의 현색 극미가 [내외의] 두 가지 종류의 사대소조(四大所造)라고는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32) 소리도 역시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이다. |
| 성처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
| 이제 마땅히 미처(味處)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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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여기서 유집수 대종(大種)이란 감각이 있는 유정물의 지·수·화·풍 4대종을 말하며, 무집수 대종은 감각이 없는 무정물의 4대종을 말한다. 유정명과 비유정명은 유정의 말과 비유정의 말이며, 가의성(聲)과 불가의성은 듣기에 즐거운 소리와 불쾌한 소리이다. 따라서 성처의 8종이란 유집수 대종에 근거한 소리로서 언어적인 즐거운 소리[有情名·可意聲 : 이를테면 노래소리], 언어적인 불쾌한 소리[有情名·不可意聲 : 꾸짖는 소리], 비언어적인 즐거운 소리[非有情名·可意聲 : 장단에 맞춘 손뼉소리], 비언어적인 불쾌한 소리[非有情名·不可意聲 : 주위를 환기시키는 손뼉소리], 그리고 무집수의 대종에 근거한 소리로서, 언어적인 즐거운 소리(이를테면 변화인의 부드러운 소리), 언어적인 불쾌한 소리(변화인의 꾸짖는 소리), 비언어적인 즐거운 소리(악기 소리), 비언어적인 불쾌한 소리(천둥소리)가 그것이다. |
| 32) 하나의 현색극미는 한 조의 4대종(大種)을 근거로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소리 만이 예외적으로 두 대종(무집수의 북과 유집수의 손)에 의해 생겨날 이유가 없다는 뜻. 이는 논주 세친의 평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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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味]에는 여섯 가지의 종류가 있으니, 달고[甘], 시고[酢], 짜고[鹹], 맵고[辛], 쓰고[苦], 담백함[淡]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
| 미처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
| 이제 마땅히 향처(香處)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하리라. |
| 향에는 네 가지의 종류가 있으니, 호향(好香)·오향(惡香)·등향(等香)·부등향(不等香)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33) 그러나 본론(本論) 중에서는 향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설하고 있으니, 호향과 오향과 평등향이 바로 그것이다.34) |
| 향처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
| 이제 마땅히 촉처(觸處)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하리라. |
| 촉에는 열한 가지가 있으니, 4대종(大種)과 매끄러운 성질[滑性], 거친 성질[澁性], 무거운 성질[重性], 가벼운 성질[輕性], 그리고 차가움[冷], 허기짐[飢], 목마름[渴]을 말한다. 이 중의 대종에 대해서는 마땅히 뒤에서 널리 논설하리라. 그리고 유연(柔軟)함을 일컬어 '매끄러운 것'이라 하였고, 거칠고 강함[?强]을 '거친 것'이라고 하였으며, 칭량(稱量)할 수 있는 것을 '무거운 것'이라 하였고, 그 반대를 '가벼운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따뜻하기를 바라는 것을 일컬어 '차가움'이라 하였고, 먹기를 바라는 것을 일컬어 '허기짐'이라고 하였으며, 마시기를 바라는 것을 일컬어 '목마름'이라고 하였다. 즉 이러한 세 가지의 촉은 모두 원인에 따라 결과의 명칭을 설정한 것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차가움·허기짐·목마름이라고] 설하게 된 것으로, 어떤 게송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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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불(諸佛)이 출현하심은 즐거움이며 |
| 정법(正法)을 연설하시는 것도 즐거움이며 |
| 승가의 대중이 화합하는 것도 즐거움이며 |
| 다 함께 수행하며 용맹정진하는 것도 즐거움이라네.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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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여기서 등향이란 소의신(所依身)을 증장시키는 향을 말하고, 부등향이란 감손시키는 향을 말한다. |
| 34) 여기서 본론은 『품류족론』을 말함. 즉 이 논 권제1(대정장26, p. 692하)에 나온다. |
| 35) 『불설신세경(佛說新歲經)』 (대정장1, p. 860하)에 이와 유사한 게송이 나온다. 이는 즉 불타의 출현 그 자체는 즐거움이 아니지만 능히 줄거움을 낳기 때문에 제불의 출현을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다시 말해 원인에 대해 결과의 명칭을 설정할 수 있다는 사실의 예증으로 인용된 게송일 뿐 아비달마교학 상의 별도의 의미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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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색계(色界) 중에는 허기짐과 목마름의 촉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 밖의 촉은 존재한다. 즉 그 세계에서 입는 의복은 유별나서 칭량할 수 없는 것이지만 많이 쌓이게 되면 칭량할 수 있다. [따라서 무거움 등도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거기에서는 차가움의 촉이 능히 [소의신을] 감손(減損)시키는 일은 없을지라도 능히 이익 되게 하는 일은 있으니, 전(傳)하여 설(說)하는 바가 이와 같다.36) |
| 이상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종류의 색처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
| 그런데 어떤 때의 안식(眼識)은 하나의 사물[一事]을 반연(攀緣)하여 생겨나는 경우가 있으니, 그럴 때에는 그것을 각기 다르게 요별(了別)한다. 또 어떤 때의 안식은 다수의 사물을 반연하여 생겨나는 경우가 있으니, 그럴 때에는 그것을 다르게 요별하지 않는다.37) 예컨대 군인들의 무리나 산림 등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현색·형색, 그리고 구슬이나 보석의 무더기 따위를 멀리서 관찰할 때가 바로 그러하다. 그리고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이(耳) 등의 온갖 식(識)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다. |
| 그런데 유여사(有餘師)는 설하기를, "신식(身識)은 지극히 많은 [실체를 반연하여 일어나는] 것 같지만 다섯 가지 촉을 반연하여 일어나니, 이를테면 4대종과 매끄러운 성질 따위 가운데 어느 한 가지이다"고 하였다. 또한 어떤 이는 설하기를, "[신식이 반연하는 실체는] 지극히 많으니, 열한 가지 촉 모두를 반연하여 일어난다"고 하였다.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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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보광(普光)에 의하면 경부는 '색계에는 차가움의 촉이 존재하지 않는다.' 논주 세친은 이에 따라 비바사사의 이 같은 주장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전설(傳說)'이라 논설한 것이다. |
| 37) 청·황 등의 각각의 색을 개별적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고, 그러한 개개 색의 집합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는 뜻. 그럴 때 전자는 그 차별이 분명하지만 후자의 경우 분명하지 않다. |
| 38) 『대비바사론』 권128(대정장27, p. 665)에는, 신식(身識)은 열한 가지 촉 각각을 반연하여 생겨난다, 4대종과 그 밖의 어느 하나 등 다섯 가지를 반연하여 생겨난다, 열한 가지 모두를 반연하여 생겨난다는 3설이 등장하는데, 여기서의 설은 제2설과 제3설이다. 바사(婆沙)에서는 제3설을 정의(正義)로 평취한다.(같은 논, 권13, p. 65상에도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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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5식은 경계를 모두 반연하기 때문에 5식신(識身)은 응당 마땅히 공상(共相)의 경계만을 취하고 자상(自相)의 경계는 취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39) |
| 처(處)의 자상에 근거[約]하여 5식신이 자상의 경계를 취한다고 인정[許]하기 때문에 사물의 자상을 취하는 것이 아니니,40) 여기에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
| 여기서 마땅히 생각하고 헤아려 보아야 할 것이다. 신(身)과 설(舌)의 두 근에 양 경계(촉경·미경)가 동시에 이르렀을 때 어느 것의 인식이 먼저 일어나게 되는 것인가? |
| 경계의 강성(强盛)함에 따라 그것(강성한 것)에 대한 인식이 먼저 생겨난다. 그러나 만약 경계의 강성함이 균등한 것이라고 한다면 설식이 먼저 일어나니, 먹고 마심[食飮]이 신식을 인기(引起)하여 상속하게 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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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根)과 경(境), 그리고 경계를 취하는 것의 상(相)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
| 이제 다음으로 마땅히 무표색(無表色, avij~apti-r pa)의 상(相)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
| 게송으로 말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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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전5식은 개념적 언어적 한정을 떠나 다른 어떤 것과도 관계하지 않는 사물 그 자체의 상(自相, svalak a a)만을 인식할 뿐 보편상(共相, s m nya lak a a)을 인식하는 것이 아닌데, 지금의 어떤 이의 설처럼 5식이 다수의 대상을 동시에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공상에 대한 인식이라고 해야 한다는 난문. |
| 40) 자상에는 6근·6경의 12처 각각의 자상(處自相, 이를테면 색·성·향 등)과 처의 자상이 더욱 세분된 사물의 자상(事自相, 이를테면 청·황·적·백 등)이 있는데, 지금 여기서 '5식신은 자상만을 취(요별)한다'고 하는 일반적 규칙은 처의 자상에 대해 말한 것이지 사물에 자상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며, 또한 역시 5식신이 공상을 취한다고 하는 것도 보다 세분된 사물의 공상에 대해 말한 것일 뿐이지 처의 공상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는 어떠한 과실도 없다는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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