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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_시즌2] 12월 26일(월)_37~39p(18일차)

작성자Frida|작성시간22.12.27|조회수16 목록 댓글 0

[영문판_37p, Realizing that he would have the wind in his face all the way to the power station, he decided to make use of his bit of rag. To meet the contingency of a head-wind he, like many other prisoners, had got himself a cloth with a long tape at each end. The prisoners admitted that these helped a bit. Shukhov covered his face up to the eyes, brought the tapes around below his ears, and fastened the ends together at the back of his neck. Then he covered his nape with the flap of his bat and raised his coat collar. The next thing was to pull the front flap of the hat down onto his brow. Thus in front only his eyes remained unprotected. He fixed his coat tightly at the waist with the rope. Now everything was in order except for his hands, which were already stiff with cold (his mittens were worthless). He rubbed them, ho clapped them together, for he knew that in a moment he'd have to put them behind his back and keep them there for the entire march. The chief of the escort guard recited the "morning prayer," which every prisoner was heartily sick of: "Attention, prisoners. Marching orders must be strictly obeyed. Keep to your ranks. No hurrying, keep a steady pace. No talking. Keep your eyes fixed ahead and your hands behind your backs. A step to right or left is considered an attempt to escape and the escort has orders to shoot without warning. Leading guards, on the double." The two guards in the lead of the escort must have set out along the road. The column heaved forward, shoulders swaying, and the escorts, some twenty paces to the right and left of the column, each man at a distance of ten paces from the next, machine guns held at the ready, set off too. It hadn't snowed for a week and the road was worn hard and smooth. They skirted the camp and the wind caught their faces sideways. 발전소로 가는 길은 내내 바람을 안고 가야 할 것 같았으므로, 그는 천 조각을 사용하기로 작정했다. 뜻밖의 맞바람에 대처하기 위해서, 그도 다른 죄수들과 마찬가지로, 두 끝에 긴 끈이 달리 천 조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슈호프는 눈까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끈을 귀 밑으로 가지고 가서 목 뒤에서 두 끝을 묶었다. 그리고 나서 모자의 귀덮개로 목덜미를 가리고 외투깃을 세웠다. 그 다음에는 모자의 앞테를 이마 위까지 끌어 내렸다. 앞에서 보면 두 눈만이 무방비로 남아 있었다. 그는 끈으로 외투를 허리에서 단단하게 묶었다. 이제 손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 손을 벌써 추위로 굳어 있었다.(그의 벙어리 장갑은 초라했다) 그는 두 손을 서로 두드렸다. 왜냐하면 잠시 후면 두 손을 등 뒤로 해서 행군하는 동안 쭉 그대로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호송 대장이 아침 기도문을 외웠다. 모든 죄수들은 그것에 정말로 신물이 나 있었다. 잘 들어 죄수들. 행군 명령을 엄격히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줄을 잘 맞추어라. 서두르지 말고,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라. 잡담하지 말아라. 눈은 똑바로 앞을 보고 손을 등 뒤로 하라. 한 발짝이라도 좌우로 나가면 탈주로 간주하고 호송원은 경고없이 발포한다. 선두, 앞으로 갓. 2명의 앞장 선 호송원이 출발한 모양이었다. 어깨들이 흔들리면서 대열이 앞으로 움직였고, 호송원들은 대열 좌우로 약 20, 앞 사람과의 상호거리 10보를 유지하면 경기관총을 거총의 자세로 들고 역시 출발했다. 일주일 동안 눈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길은 딱딱하고 매끄럽게 다져져 있었다. 그들이 수용소 밖을 돌아가자 바람은 엇비슷이 불어왔다.

 

[영문판_38p, Hands clasped behind their backs, heads lowered, the column of prisoners moved on, as though at a funeral. All you saw was the feet of two or three men ahead of you and the patch of trodden ground where your own feet were stepping. From time to time one of the escorts would cry: "U-48. Hands behind back," or "B-502. Keep up." But they shouted less and less; the slashing wind made it difficult to see. The guards weren't allowed to tie cloth over their faces. Theirs was not much of a job either. In warmer weather everybody in the column talked, no matter how much the escort might shout at them. But today every prisoner hunched his shoulders, hid behind the back of the man in front of him, and plunged into his own thoughts. The thoughts of a prisoner-they're not free either. They kept returning to the same things. A single idea keeps stirring. Would they feel that piece of bread in the mattress? Would he have any luck at the dispensary that evening? Would they put Buinovsky in the cells? And how did Tsezar get his hands on that warm vest? He'd probably greased a palm or two in the warehouse for peoples private belongings. How else? Because he had breakfasted without bread and eaten his food cold, Shukhov's belly felt unsatisfied that morning. And to prevent it complaining and begging for food, he stopped thinking about the camp and let his mind dwell on the letter he'd soon be writing home. 두 손을 뒷쪽 허리에 가져가서 꽉 잡고, 머리들은 푹 숙인 채, 마치 장례식 행렬처럼 죄수들의 대열은 계속 움직였다.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앞서 걸어가는 2~3명의 발과 그들의 발리 밟고 다져진 땅 뿐이었다. 때때로 호송원들 중의 하나가 소리치곤 했다. “U-48. 손을 뒤로 해라. 혹은 B-502 줄을 맞춰. 그러나 그들의 고함소리도 점점 뜸해졌다. 칼로 베는 듯한 바람 때문에 앞을 보기가 어려웠다. 간수들은 천으로 얼굴을 감쌀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경호병 노릇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간수라는 직업도 역시 좋은 것은 아니었다. 보다 따뜻한 날에는 대열의 모든 죄수들이 잡담을 했다. 호송원이 아무리 고함을 쳐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모든 죄수들이 어깨를 웅크리고, 앞 사람의 등 뒤에 숨어 자신들의 생각에 빠졌다. 죄수들의 생각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똑같은 일을 늘 반복해서 생각한다. 한결같은 생각을 한다. 매트 속에 있는 그 빵조각을 찾고 있는 것인가? 행여 저녁에 진료소에 입원되는 행운을 얻는 건 아닐까? 브로노프스끼를 영창에 집어넣을 것일까? 그리고 쎄자리는 그 따뜻한 샤쓰를 어떻게 손에 넣었을까? 그는 아마 사물보관소에 한 두 번 뇌물을 주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슈호프는 그날 아침 빵도 없이 식은 음식으로 아침을 먹었기 때문에, 그날 아침 그의 배는 든듣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배로 하여금 불평을 하거나 음식을 빌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는 수용소에 대한 생각은 그만하고 그가 곧 집에 쓸 편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기로 했다.

 

[영문판_39p, The column passed the wood-processing factory, built by prison labor, the workers' settlement(the huts had been assembled by prisoners too, but the inhabitants were civilians), the new club (convict-built in entirety, from the foundations to the mural decorations-but it wasn't they who saw the films there), and then moved out into the steppe, straight into the wind heading for the reddening dawn. Bare white snow stretched to the horizon, to the left, to the right, and not a single tree could be seen on the whole expanse of steppe. A new year, 1951, had begun, and Shukhov had the right to two letters that year. He had sent his last letter in July and got an answer to it in October. At Ust-Izhma the rules had been different: you could write once a month. But what was the sense of writing? He'd written no more often then than now. Ivan Shukhov had left home on June 23, 1941. On the previous Sunday the people who'd been to Polomnya to attend Mass had said: War! At Polomnya they'd learned it at the post office but at Temnenovo no one had a radio in those days. Now, they wrote, the radio roared in every cottage-it was piped in. There was little sense in writing. Writing now was like dropping stones in some deep, bottomless pool. They drop; they sink-but there is no answer. You couldn't write and describe the squad you were working with and what kind of squad leader Andrei Prokofievich was. Just now he had a good deal more to talk about with Kilgas the Lett than with his family at home. Neither did the two letters a year they sent him throw much light on the way they were living. The kolkhoz had a new chairman-as if that hadn't happened regularly! It'd been amalgamated with neighboring farms-that'd happened before, too, but afterward they'dreduced it to its former condition. And what else? The farmers were failing to fulfill their quota of work days-or the individual plots had been cut down to one third acre, and some people's right back to the cottage walls. 대열은 죄수들이 지은 목공소와, 노동자 부락(그 오막살이들도 역시 죄수들이 지었다. 그러나 거주자는 민간인들이었다), 새 클법을(기초 공사에서 벽장식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죄수들의 손으로 지은 것이다)-그러나 거기에서 영화는 보는 사람은 그들이 아니었다) 지나서, 이윽고 스텝지대로 나와, 바람을 정면으로 받고, 붉어지는 동쪽을 향해 전진했다. 흰 눈이 벌거벗은 듯이 지평선까지,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뻗혀 있다. 저 멀리까지 눈 덮인 광야가 펼쳐져 있다. 좌우로는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스텝의 어느 지역에도 나무 한 그루 볼 수 없었다. 1951년 새해가 시작되었었다. 그런데 그 해에 슈호프는 2통의 편지를 쓸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 편지를 7월에 보냈었다. 그리고 10월에 그 편지의 답장을 받았다. 우스찌 이지마에서는 규칙이 달랐었다. 한 달에 한 통씩 쓸 수 있다. 그러나 편지를 써서 무엇을 하겠는가? 그는 그 때도 지금보다 더 자주 쓰지 않았었다. 이반 슈호프는 1941623일 고향을 떠났었다. 그 전 일요일에 미사에 참석하러 뽈롬냐에 갔다 온 사람들이 말했었다. 전쟁이 났다. 뽈롬냐에서 그들은 그 사실을 우체국에서 들었다. 그러나 그 당시네 템네뇨보에는 라디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지금은 편지에 의하면 집집마다-유선방송이 설치되어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고 했다. 요즘에는 편지 쓰는 것이 어떤 심연에 돌을 던지는 것처럼 별 의미가 없었다. 돌은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런 반향이 없다. 함께 일하고 있는 팀과 팀장 안드레이 쁘로꼬피예치가 어떤 사람인지를 편지에는 자세히 쓸 필요가 없었다. 바로 지금은 그는 고향의 가족들보다 라뜨비아인 낄리가스와 함께 할 이야기가 훨씬 더 많았다. 고향에서도 그에게 1년에 2통씩 편지를 보냈으나 가족들의 생활상을 많이는 알지 못했다. 콜호스 위원장은 한 해에 한 번씩 바뀌는 모양이었고, 콜호스는 예전에도 한 번 합쳐졌다가 다시 분할되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집단 농장에 새로운 위원장이 생겼다느니-마치 그런 일이 정기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집단 농장을 이웃 농장들과 병합했었으나-그런 일은 역시 전에도 있어 왔다. 그리고 그 밖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작업량을 완수하지 못한 농부들은-개인 용지를 1,500 평방미터로 축소 당했고, 어떤 사람들은 바로 집 담까지 용지를 축소당했다느니 하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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