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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VC_시즌2] 3월 8일(월)_<제8장 The Power of Empathy>

작성자Frida|작성시간22.03.13|조회수52 목록 댓글 0

제8장 The Power of Empathy 공감의 힘

Empathy that heals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공감

Empathy allows us "to reperceive [our] world in a new way and to go on."

Don't just do something. . ." 공감은 우리에게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Carl Rogers described the impact of empathy on its recipients: "When someone really hears you without passing judgment on you, without trying to take responsibility for you, without trying to mold you, it feel damn good! When I have been listened to and when I have been heard, I am able to reperceive my world in a new way and to go on. It is astonishing how elements that seem insoluable become soluable when someone listens, how confusions that seem irremediable turn into relatively clear flowing streams when one is heard." 칼 로저스는 공감의 효과를 이렇게 묘사했다. 어떤 사람이 나를 판단하지 않고, 나를 책임지려 하거나 나에게 영향을 미치려 하지 않으면서, 내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려 들어줄 때는 정말 기분이 좋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듣고 나를 이해해주면, 나는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누군가가 정으로 들어주면 암담해 보이던 일도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일도 누군가가 잘 들어 주면 맑은 시냇물 흐르듯 풀리곤 한다.

 

One of my favorite stories about empathy comes from the principal of an innovative school. She had returned after lunch one day to find Milly, an elementary school student, sitting dejectedly in her office waiting to see her. She sat down next to Milly, who began, "Mrs, Anderson, have you ever had a week when everything you did hurt somebody else, and you never intended to hurt anyone at all" "Yes, the principal replied, "I think I understand," whereupon Milly proceeded to describe her week. "By now," the principal related, "I was quite late for a very important meeting-still had my coat on-and anxious not to keep a room full of people waiting, and so I asked, Milly what can I do for you? 공감에 관해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것은 어떤 대안학교의 교장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어느 날 그녀가 점심식사 후에 교장실에 돌아와 보니, 밀리라는 초등학생이 풀이 죽은 채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다가가 앉자 밀리는 ‘앤더슨 선생님,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만 입히면서 한 주를 보낸 적이 있으세요? 그럴 생각은 전혀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하고 말했다. 그래 네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구나. 교장이 대답했다. 그러자 밀리는 자기가 한 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중요한 회에 가야 했고 외투도 그대로 입은 채였어요. 회의실에서 사람들이 나를 기다릴 텐데 하는 걱정으로 조바심이 났어요. 그래서 밀리에게 물었죠. 밀리,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주면 좋겠니?

 

Milly reached over, took both my shoulders in her hands, looked me straight in the eyes, and said very firmly, 'Mrs Anderson, I don't want you to do anything; I just want you to listen.' This wa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moments of learning in my life-taught to me by a child - so I thought, "Never mind the roomful of adults waiting for me!' Milly and I moved over to a bench that afforded us more privacy and sat, my arm around her shoulders, her head on my chest, and her arm around my waist, while she talked until she was done. And you know, it didn't take that long." 밀리는 손을 내 양어깨에 올리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앤더슨 선생님, 저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아요. 다만 선생님께서 제 말을 들어주셨으면 해요.’ 이 때가 바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어요. 어린아이가 나를 가르친 셈이죠. 나는 생각했지요. ‘회의실에서 나를 기다리는 어른들은 신경 쓰지 말자!’ 그러고는 밀리와 좀 더 조용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벤치로 자리를 옮겼어요. 밀리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때까지 나는 팔로 밀리의 어깨를 감쌌고, 밀리는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어 팔로 내 허리를 감쌌어요. 그런데 말이죠. 그게 오래 걸리지도 않았어요.

 

One of the most satisfying aspects of my work is to hear how individuals have used NVC to strengthen their ability to connect empathically with others. My friend Laurence, who lives in Switzerland, described how upset she felt when her six-year-old son had stormed away angrily while she was still talking to him. Isabelle, her ten-year-old daughter, who had accompanied her to a recent NVC workshop, remarked, "So you're really angry, Mom. You'd like for him to talk when he's angry and not run off." Laurence marveled at how, upon hearing Isabelle's words, she felt an immediate diminishing of tension, and was subsequently able to be more understanding with her son when he returned. 내 일에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NVC를 통해 다른 사람과 공감으로 연결하는 능력을 길렀다는 말을 들을 때이다. 스위스에 사는 친구 로리는 여섯 살짜리 아들이 자신이 이야기하는 도중에 화를 내며 뛰쳐나가는 바람에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최근에 엄마와 함께 NVC 워크숍에 왔던 그녀의 열 살짜리 딸 이사별이 그때 이렇게 말했다. <엄마 화 많이 나지? 엄마는 동생이 골이 났을 때 밖으로 뛰쳐나가는 대신 엄마하고 이야기하면 좋겠지?> 로리는 딸의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빨리 긴장이 사라지고, 그래서 아들이 돌아왔을 때 좀 더 그 아이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됐는지 놀랐다고 했다.

 

A college instructor described how relationships between students and faculty had been affected when several members of the faculty learned to listen empathically and to express themselves more vulnerably and honestly. The students opened up more and more and told us about the various personal problems that were interfering with their studies. The more they talked about it, the more work they were able to complete. Even though this kind of listening took a lot of our time, we were glad to spend it in this way. 한 대학 강사는 강사들 몇 명과 공감하면서 듣는 법과 자기 자신을 더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운 뒤, 그것이 학생들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를 미쳤는지 이야기했다. <학생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공부를 하는 데 방해가 되는 개인적인 애로사항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어요. 학생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하게 되면서 그들의 학업 성취도는 더욱 올라갔어요. 이렇게 들어주는 시간이 많이 들긴 하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Unfortunately, the dean got upset; he said we were not counselors and should spend more time teaching and less times talking with the students. When I asked how the faculty had dealt with this, the instructor replied, "we empathized with the dean's concern. We heard that he felt worried and wanted to know that we weren't getting involved in things we couldn't handle. We also heard that he needed reassurance that the time spent on talking wasn't cutting into our teaching responsibilities. He seemed relieved by the way we listened to him. We continued to talk with the students because we could see that the more we listened to them, the better they did in their studies." <그런데 불행하게도 학장은, 우리들은 상담사가 아니므로 학생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줄이고 가르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학장이 걱정하는 것을 공감으로 들어주었습니다. 그분은 혹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을까 봐 걱정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학생들의 말을 들어주어도 우리가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필요하다는 말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학장도 우리가 이렇게 그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듣자 안심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의 말을 계속 들어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학생들의 말을 더 들어줄수록 학생들이 공부도 더 잘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It's harder to empathize with those who appear to possess more power, status, or resources. The more we empathize with the other party, the safer we feel. 자신보다 권력과 지위, 그리고 재력을 더 많이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공감하기는 더 어렵다. 상대의 말에 공감할수록 우리는 더 안전한 느낌을 얻는다.

 

When we work in a hierarchically structured institution, there is a tendency to hear commands and judgments from those higher up in the hierarchy. While we may easily empathize with our peers and with those in less powerful positions, we may find ourselves being defensive or apologetic, instead of empathic, in the presence of those we identify as our "superiors." This is why I was particularly pleased that these faculty members had remembered to empathize with their dean as well as with their students. 상하관계가 있는 조직에서 일할 때는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말을 명령이나 판단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동료나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과는 비교적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반면에 우리가 ‘윗사람’으로 보는 사람들 앞에서는 공감하기보다 자신을 방어하거나 변명하는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들이 학생은 물론이고, 학장과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특히 기뻤다.

 

Empathy and the ability to Be Vulnerable 공감과 자신의 여린 면을 내보일 수 있는 능력

Because we are called to reveal our deepest feelings and needs, we may sometimes find it challenging to express ourselves in NVC. Self-expression‎ become easier, however, after we empathize with others, because we will then have touched their humanness and realized the common qualities we share. The more we connect with the feelings and needs behind their words, the less frightening it is to open up to other people. The situations where we are the most reluctant to express vulnerability are often those where we want to maintain a "touch image" for fear of losing authority or control. NVC로 우리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마음 속 깊은 곳의 느낌과 욕구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먼저 공감대를 형성하면 자기표현도 쉬워진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인간적인 측면을 접하게 되고,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점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말 뒤에 있는 느낌과 욕구에 연결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다. 우리가 자신의 어린 면을 드러내기 가장 어려운 때는 자신의 권위나 통제력을 잃을까 두려워서 ‘강인한 이미지’를 유지하려 할 때이다.

 

Once I showed my vulnerability to some members of a street gang in Cleveland by acknowledging the hurt I was feeling and my desire to be treated with more respect. "Oh, look," one of them remarked, "he's feeling hurt; isn't that too bad!" at which point all his friends chimed in laughing. Here again, I could interpret them as taking advantage of my vulnerability( ption 2: Blame others). or I could empathize with the feelings and needs behind their behavior(Option 4: Sense others' feelings and needs) If, however, I have an image that I'm being humiliated and taken advantage of, I may feel too wounded, angry, or scared to be able to empathize. At such a moment, I would need to withdraw physically in order to offer myself some empathy or to request it from a reliable source. 한 때 나는 나의 여린 면을 보였다. 거리 갱들에게. 클리브랜드에서. 상처를 인정하면서, 내가 느끼는. 그리고 나의 욕구를 보여주면서. 나를 좀 더 존중해주었으면 한다는 욕구. 그러자 그 중 한 명이 비웃었다. “오, 저~런 마음이 상하셨다네! 안됐네!” 여기서 나는 이들이 내 여린 면을 이용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었고(선택2 다른 사람을 탓하기) 아니면 이들의 행동 위에 숨은 느낌과 욕구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었다(선택4 다른 사람을 공감하기) 만약 내가 모욕과 조롱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아마 나는 상처받고 화나고 겁도 나서 이들과 공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럴 때는 우선 그 자리를 떠나 자신과 공감하거나, 혹은 다른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서 공감을 받을 필요가 있다.

 

After discovering the needs that had been so powerfully triggered in me and receiving adequate empathy for them, I would then be ready to return and empathize with the other party. In situations of pain, I recommend first getting the empathy necessary to go beyond the thoughts occupying our heads and recognize our deeper needs. As I listened closely to the gang member's remark, "Oh look, he's feeling hurt; isn't that too bad?" and the laughter that followed. I sensed that he and his friends were annoyed and not wanting to be subjected to guilt trips and manipulation. They may have been reacting to people in their pasts who used phrases like that hurts me to imply disapproval. Since I didn't verify it with them out loud I have no way of knowing if my guess was in fact accurate. Just focusing my attention there, however, kept me from either taking it personally or getting angry. Instead of judging them for ridiculing me or treating me disrespectfully, I concentrated on hearing the pain and needs behind such behavior. 내 안에서 이렇게 강하게 일고 있는 느낌과 욕구를 찾아서 이에 대해 충분히 공감을 받고 나면, 다른 돌아왔을 때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줄 마음의 자세를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욕구를 알아내기 위해서 우선 우리 머릿속의 비판적인 생각들을 넘어설 수 있는 충분한 공감을 받을 필요가 있다. '오~저런 마음이 상하셨다네 안됐네' 라는 말과 다음에 이어진 비웃음 소리를 더 주의 깊게 들었을 때, 나는 이들이 화가 나 있고 또 죄책감을 갖거나 조종당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이들은 과거에 은연중 마땅히 않다는 의미로 <그러면 내 마음이 아파> 라고 말하던 사람들에게 반응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추측이 실제로 정확한지는 그들에게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추측에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이들의 말과 행동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거나 화를 내거나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들이 나를 얼마나 무례하게 대하는가 하고 판단하는 대신, 이들의 행동 뒤에 숨은 고통과 욕구를 듣는 데 집중했다.

 

"Hey," one of them burst out, "this is a bunch of crap you're offering us! Suppose there are members of another gang here and they have guns and you don't. And you say just stand there and talk to them? Crap!" Then everybody was laughing again, and again I directed my attention to their feelings and needs: "So it sounds like you're really fed up with learning something that has no relevance in those situations?" 이봐요. 하고 이들 중 한 명이 말문을 열었다. 당신은 지금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고 있어요. 여기 저쪽 갱 한 놈이 있고, 그는 총을 가지고 있는 데, 당신은 총이 없다고 상상해 봐요. 그런데도 거기 서서 그놈들하고 이야기를 하라는 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러자 모두가 다시 웃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이들의 느낌과 욕구에 주의를 집중했다. “여기 현실과 동떨어진 것을 배우는 것에 질렸다는 말처럼 들리는 군요.

 

We "say a lot" by listening for other people's feelings and needs 다른 사람의 느낌과 욕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Yeah, and if you lived in this neighborhood, you'd know this is a bunch of crap." Then everybody was laughing again, and again I directed my attention to their feelings and needs: "So you need to trust that someone teaching you something has some knowledge of your neighborhood?" "Damn right. Some of these dudes wold blast you away before you got two words of your mouth!" “And you need to trust that someone trying to teach you something understands the dangers around here?” I continued to listen in this manner, sometimes verbalizing what I heard and sometimes not. This continued for forty-five minutes, and then I sensed a shift: they felt I was truly understanding them. 당연하죠. 누구든 이 근처에 사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신이 한 말이 얼마나 허튼소린지 잘 알 거요. 그러자 모두가 다시 웃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이들의 느낌과 욕구에 주의를 집중했다. 그러니까 누군가 여러분에게 뭘 가르치려면 이곳 실정을 잘 알아야 된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어떤 녀석들은 당신 입에서 두 마디가 나오기 전에 날려 버릴 텐데. 여러분에게 뭔가를 가르치려는 사람은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는 게 중요하다는 거군요? 나는 들은 말을 때로는 반복하면서 그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우리의 대화는 약 40여 분간 이어졌다. 나는 변화를 느꼈다. 이들은 내가 진심으로 이해한다고 느낀 것이다.

 

A counselor in the program noticed that the shift, and asked them out loud, “What do you think of this man?” The gentleman who had been giving me the roughest times replied, “He’s the best speaker we’ve ever had.” Astonished, the counselor turned to me and whispered “But you haven’t said anything!” In fact, I had said a lot by demonstrating that there was nothing they could throw at me that couldn’t be translated into universal human feelings and needs. 프로그램을 담당하던 상담사가 그들의 변화를 느끼고 물어보았다. ‘여러분은 이 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이 대답했다. ‘우리가 봤던 강사 주에서 제일 낫군요.’ 상담사는 놀라며 나를 돌아보고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무슨 특별한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나 그들이 내게 던진 말들이 모두 보편적인 인간의 느낌과 욕구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줌으로써 나는 사실 많은 것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Using Empathy to defuse danger 공감으로 위기를 면하기

The ability to offer empathy to people in stressful situations can defuse potential violence. A teacher in the inner city of St. Louis related an incident where she had conscientiously stayed after school to help a student, even though teachers were warned, for their own safety, to leave the building after classes were dismissed. A stranger entered her classroom, where the following exchange took place. 긴박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공감하는 능력이 있으면 일어날 수도 있는 폭력을 막을 수 있다. 세인트루이스의 어떤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도심 빈민지역에 있는 이 학교 교사들에겐 수업이 끝나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바로 퇴근하라는 학교 측의 주의가 있었지만, 이 여교사는 방과 후에 학생을 돕기 위해 학교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한 젊은 남자가 교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 두 사람 사이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

 

Young man; Take off your clothes. 옷 다 벗어.

Teacher: (Noticing that the young man was shaking) I’m sensing this is very scary for you. (그가 몸을 떠는 것을 눈치 채고) 지금 매우 두려우시군요?

Young man: Did you hear me? God damn it, take off your clothes! 내 말 못 들었어? 옷 벗으라니깐

Teacher: I’m sensing you’re really pissed off right now and you want me to do what you’re telling me. 지금 정말 화가 나서 시키는 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Young man: You’re damned right, and you’re going to get hurt if you don’t. 그래 내가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다칠 거야!

Teacher: I’d like you to tell me if there’ is some other way of meeting your needs that wouldn't hurt me. 내가 다치지 않고 당신이 원하는 것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Young man: I said take them off. 벗으라고 했잖아.

 

Teacher: I can hear how much you want this. At the same time, I want you to know sacred and horrible I feel, and how grateful I’d be if you’d leave without hurting me. Young man: Give me your purse. The teacher handed the stranger her purse, relieved not to raped. She later described how, each time she empathized with the young man, she could sense him becoming less adamant in his intention to follow through with the rape. A metropolitan police officer attending a follow-up training in NVC once greeted me with this account. I’m sure glad you had us practicing empathy with angry people that last time. Just a few days after our session, I went to arrest someone in a public housing project. 내가 당신 말대로 따라주었으면 한다는 걸 알겠어요. 하지만 저도 지금 얼마나 겁나고 무서운지 알아주었으면 해요. 그리고 나를 해치지 않고 그냥 돌아가 준다면 정말 고맙겠어요. 지갑 내놔. 그녀는 강간당하지 않게 된 사실에 안도하며 남자에게 지갑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공감을 할 때마다 강간하려했던 그의 의지가 약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대도시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경찰관은 NVC 후속 연습모임에 참여하여 내개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려주었다. 지난 시간에 화난 사람들과 대화하는 연습을 했는데 그것에 대해 선생님께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교육을 받고 며칠이 안돼서 나는 공공주택(주로 가난한 흑인들이 사는 곳)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을 체포하러 갔지요.

 

When I brought him out, my car was surrounded by about sixty people screaming things at me like, ‘Let him go! He didn’t do anything! You police are a bunch of racist pigs!’ Although I was skeptical that empathy would help, I didn't have many other options. So I reflected back the feelings that were coming at me; I said things like, ‘So you don’t trust my reasons for arresting this man? you think it has to do with race? After several minutes of my continuing to reflect their feelings, the group became less hostile. In the end they opened a path so I could get to my car. 내가 그를 데리고 나왔을 때, 6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내 자동차를 둘러싸고 있었어요. 이들은 <그 사람을 놔 줘 그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어. 너희 경찰들은 모두 인종 차별주의 돼지들이야> 라면 소리를 질렀어요. 이 상황에서 공감하며 들어주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그 때 내겐 다른 방법이 없었지요. 그래서 나를 향해 쏟아내는 그 사람들의 느낌을 반영해주는 방식으로 말했지요. <내가 이 남자를 체포하는 이유를 믿지 못하시는군요. 여러분은 이 일이 인종차별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몇 분 동안 내가 계속 이런 식으로 그들의 느낌을 받아주자 적대감이 조금 누그러진 듯했어요. 결국 이들을 내가 차에 탈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어요.

 

Finally, I’d like to illustrate how a young woman used empathy to bypass violence during her night shift at a drug detoxification center in Toronto. The young woman recounted this story during the second NVC workshop she attended. At eleven o’clock one night, a few weeks after her first NVC training, a man who’d obviously been taking drugs walked in off the street and demanded a room. The young woman started to explain to him that all rooms had been filled for the night. She was about to hand the man the address of another detox center when he hurled her into the ground. “The next thing I knew, he was sitting across my chest holding a knife to my throat and shouting, ‘You bitch, don’t lie to me! You do too have a room!’ She then proceeded to apply her training by listening for his feelings and needs. You remembered to do that under those conditions? I asked, impressed. “What choice did I have? 마지막으로 어느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녀는 토론토에 있는 약물중독센터에 근무하고 있는데 야간 근무시간에 공감을 활용하여 폭력을 피할 수 있었다. 이 여성은 두 번째 NVC 워크숍에 참석해서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녀가 처음 NVC 교육을 받은지 2~3주 지난 어느 날 밤 11시쯤에 마약을 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남자가 들어와서 방을 달라고 했다. 이 여성이 남은 방이 없다고 하나도 없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른 상담소의 주소를 건네주려는 순간, 남자가 덤벼들어 그녀는 바닥에 쓰러뜨렸다. 그런 다음에 그 남자는 내 위에 올라타고 앉아서 목에 칼을 들이 됐어요. 그리고 소리쳤어요. ‘거짓말하지 마, 나쁜 년! 방 있는 거 다 알아’ 이 여성은 느낌과 욕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이 배운 NVC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걸 기억해낼 수 있었나요? 내게 무슨 방법이 있었겠어요?

 

Rather than put your “but” in the face of an angry person empathize. 화난 사람에게는 ‘하지만’하고 말하기보다 공감을 할 것.

 

Desperation sometimes makes good communicators of us all! You know, Marshall,” she added, “that joke you told in the workshop really helped me. In fact, I think it saved my life.” “What joke?” “Remember when you said never to put your ‘but’ in the face of an angry person? I was all ready to start arguing with him; I was about to say, ‘But I don’t have a room!’ when I remembered your joke. It had really stayed with me because only the week before, I was arguing with my mother and she’d said to me, ‘I could kill you when you answer but to everything I say!’ 때로는 절망적인 상황이 도움이 되지요. 안 그래요, 마셜? 그리고 그녀가 덧붙여서 말했다. 워크숍에서 하셨던 농담이 정말로 도움이 되었어요. 사실, 그 농담이 내 목숨을 구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무슨 농담이었죠? 화난 사람 얼굴 앞에는 절대로 ‘하지만’ 이란 말을 들이대지 말라고 한 것 기억나세요? (영어의 ‘but'은 ’butt'(엉덩이)'와 발음이 같다) 그와 논쟁을 벌일 생각으로 ‘하지만 방이 없어요’ 라고 막 말하려던 참에 선생님의 농담이 생각났어요. 그 농담이 특히 기억난 것은 이 일이 있기 일주일 전에 어머니와 말다툼을 했는데 그 때 어머니가 제게 ‘말끝마다 네가 하지만. . .’ 하고 말대꾸 할 때는 정말 죽여 버리고 싶다니까!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에요.

 

Imagine, if my own mother was angry enough to kill me for using that word, what would this man have done? If I’d said, ‘But I don’t have a room! when he was screaming at me, I have no doubt he would have slit my throat. “So instead, I took a deep breath and said, It sounds like you’re really angry and you want to be given a room.‘ 제 어머니가 ‘하지만. . .’ 이라는 말 때문에 저를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났다면, 이 남자가 저를 어떻게 했을지 상상해 보세요. 그 남자가 고함칠 때, 내가 ‘하지만 방이 없어요’ 라고 말했다면 그는 분명 그 칼로 내 목을 찔렀을 거예요. 대신 저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말했어요. ’정말 방이 필요하기 때문에 화가 많이 나신 것 같군요.

 

He yelled back. I may be an addict, but by God, I deserve respect. I’m tired of nobody giving me respect. My parents don’t give me respect. I’m gonna get respect! I just focused on his feelings and needs ad said, ‘Are you fed up, not getting the respect that you want? “How long did this go on?” I asked. “Oh, about another thirty-five minutes,” she replied. “That must have been terrifying.” It may be difficult to empathize with those are closest to us. When we listen for feelings and needs, we no longer see people as monsters. 그는 내게 큰소리로 말했어요. ’내가 비록 중독자일지는 몰라도 사람대접 받을 자격이 있어. 모두가 나를 깔보는 데 이제 신물이 나. 부모도 나를 사람 취급 해 주지 않아. 나는 사람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단 말이야. 그래서 저는 그의 느낌과 욕구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말했어요. ‘사람들에게서 원하는 인정을 받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시군요.’ 그 상황이 얼마나 계속되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한 30분 정도요. 그녀가 대답했다. 정말 무서웠겠군요.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과 공감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 사람들의 느낌과 욕구에 귀를 기울이면 그들이 더 이상 괴물로 보이지 않는다.

 

"No, not after the first couple of interchanges, because then something else we'd learned here became apparent. When I concentrated on listening for his feelings and needs, I stopped seeing him as a monster. I could see, just as you'd said, how people who seem like monsters are simply human beings whose language and behavior sometimes keep us from seeing their humanness. The more I was able to focus my attention on his feelings and needs, the more I saw him as a person full of despair whose needs weren't being met. I became confident that if I held my attention there, I wouldn't be hurt. After he'd received the empathy he needed, he got off me, put the knife away, and I helped him find a room at another center." 아니에요. 대화가 몇 번 오간 뒤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여기서 우리가 배웠던 한 가지가 명백해졌기 때문이에요. 제가 집중하여 그의 느낌과 욕구에 귀를 기울이자 그가 더 이상 괴물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괴물처럼 보이는 사람도 그 말과 행동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인간적인 면을 보기 어려울 뿐이지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 남자의 욕구와 느낌에 집중할수록 저는 그 사람을 채워지지 않은 욕구 때문에 절망에 빠진 한 인간으로 볼 수 있게 되었어요. 거기에 주의를 두는 한 다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 사람은 자신이 필요로 했던 공감을 받자 칼을 거두었고, 저는 그 사람이 다른 센터에서 방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Delighted that she'd learned to respond empathically in such an extreme situation, I asked curiously, "What are you doing back here? It sounds like you've mastered NVC and should be out teaching others what you've learned." "Now I need you to help me with a hard one," she said. "I'm almost afraid to ask. What could be harder than that?" "Now I need you to help me with my mother. Despite all the insight I got into that 'but' phenomenon, you know what happened? At supper the next evening when I told my mother what had happened, she said, 'You're going to cause your father and me to have a heart attack if you keep that job. You simply have to find different work!' So guess what I said to her? 'But, mother, it's my life!" I couldn't have asked for a more compelling example of how difficult it can be to respond empathically to one's own family member. 이 여성이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공감으로 반응할 수 있었다는 것이 흐뭇하면서도 궁금해서 나는 물어보았다. 그럼 여긴 왜 다시 오셨나요? 내가 보기에 당신은 이미 NVC에 능숙하여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도 되겠는데요. 저는 좀 더 어려운 문제로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어떤 것인지 물어보기가 두려운데요. 방금 이야기한 것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라니요? 이제는 어머니 도움이 필요해요. ‘하지만’ 에 대하여 배운 것에도 불구하고 그 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다음날 저녁에 어머니께 센터에서 그 남자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을 때 어머니는 ‘네가 그 일을 계속한다면 너 때문에 네 아버지와 나는 심장마디를 일으키고 말 거다. 두말 말고 다른 일을 찾아봐’ 라고 하셨어요. 그 때 제가 어머니께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하지만 엄마 그건 제 인생이예요. 자기 가족에게 공감으로 반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보다 더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을까?

 

Empathy in hearing someone's "NO!" ‘아니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공감하기.

Because of our tendency to read rejection into someone else's "no" and "I don't want to. . ." these are important messages for us to be able to empathize with. 대부분 사람들이 ‘아니오’ 또는 ‘~하고 싶지 않아요’ 라는 말을 거절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공감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8장: The Power of Empathy

Empathizing with someone's "no" protects us from taking it personally. ‘아니오’ 라는 말에 공감함으로써 이 말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we take them personally, we may feel hurt without understanding what's actually going on within the other person. When we shine the light of consciousness on the feelings and needs behind someone else's "no." however we become cognizant of what they are wanting that prevents them from responding as we would like. One time I asked a woman during a workshop break to join me and other participants for some ice cream nearby. "No!" she replied brusquely. The tone of her voice led me to interpret her answer as a rejection, until I reminded myself to tune in to the feelings and needs she might be expressing through her "no." "I sense that you are angry," I said. "Is that so?" "No." she replied, "it's just that I don't want to be corrected every time I open my mouth." Now I sensed that she was fearful rather than angry. I checked this out by asking. 이런 말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며 상대방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때 우리가 누군가의 ‘아니오’ 뒤에 있는 느낌과 욕구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고 있으며, 또 무엇 때문에 우리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는지 인식할 수 있다. 한번은 워크숍 도중 쉬는 기간에 어떤 여성에게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가까운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싫어요.> 그녀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억양에서 그 여자가 거절을 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나는 곧 ‘싫어요’ 라는 대답을 통해서 그녀가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과 욕구에 귀 기울일 것을 기억했다. 그래서 <화가 난 것처럼 들리는데 그런가요?> 라고 물었다. <아니오, 내가 입 열 때마다 잘못을 지적당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이제 나는 그녀가 화났다기보다는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So you're feeling fearful and want to protect yourself from being in a situation where you might be judged for how you communicate?" "Yes, she affirmed," "I can imagine sitting in the ice cream shop with you and having you notice everything I say." I then discovered that the way I'd been providing feedback in the workshop had been frightening to her. My empathy for her message had taken the sting out of her "no" for me: I heard her desire to avoid receiving similar feedback in public. Assuring her that I wouldn't eval‎uate her communication in public, I then conferred with her on ways to give feedback that would leave her feeling safe. And yes, she joined the group for ice cream. 지금 두려우시죠. 워크숍에서 말할 때마다 지적당하다 보니 이제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으시신가요? 라고 물어서 이를 확인했다. 네 아이스크림 가게에 앉아서 제가 말할 때마다 선생님이 주목하시는 것을 생각하기도 싫어요. 워크숍에서 내가 반응하는 방식이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제 그녀가 ‘싫어요.’ 라고 한 말에서 가시를 느끼지 않게 되었고 그 대신 공개된 장소에서 그런 지적을 받고 싶지 않은 그녀의 욕구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다른 장소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안심시켰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녀가 편하게 느낄 수 있는 식으로 조언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의논을 했고, 우리는 다 같이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다.

 

Empathy to revive a lifeless conversation 대화에 생기를 되살리는 공감

We have all found ourselves in the midst of a lifeless conversation. Perhaps we're at a social event, hearing words without feeling any connection to the speaker. Or we're listening to someone my friend Kelly Bryson would call a "babble-on-ian" someone who elicits in their listeners the fear of interminable conversation. Vitality drains out of conversations when we lose connection with the feelings and needs generating the speaker's words, and with the requests associated with those needs. This effect is common when people talk without consciousness of what they are feeling, needing, or requesting. 우리는 생기 없는 대화의 한 가운데에 있을 때가 있다. 가령 사교모임에서 말하는 사람들과 아무런 연결도 느끼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있는 경우이다. 우리는 생기 없는 대화의 한 가운데에 있을 때가 있다. 가령 사교 모임에 참석해서 말하는 사람들과 아무런 연결도 느끼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있는 경우 등이다. 이런 일은 말하는 사람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필요로 하고, 부탁하는지에 대한 의식 없이 말할 때 흔히 일어난다.

 

Instead of being engaged in an exchange of life energy with other human beings, we see ourselves becoming wastebaskets for their words. How and when do we interrupt a dread conversation to bring it back to life? I'd suggest the best time to interrupt is when we've heard one word more than we want to hear. The longer we wait, the harder it is to be civil when we do step in. Our intention in interrupting is not to claim the floor for ourselves, but to help the speaker connect to the life energy behind the words being spoken. We do this by tuning in to possible feelings and needs. 이럴 때 우리는 상대방과 생동감 있게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이 그들의 말을 담는 휴지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화를 되살리기 위해 언제, 어떻게 끼어들 것인가? 끼어들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는 우리가 듣고 싶은 것보다 한 마디라도 더 들었을 때이다. 오래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정중하게 끼어들기가 어려워진다. 상대가 말할 때 끼어드는 의도는 우리가 대화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그 자신의 말 뒤에 있는 삶의 에너지와 연결하도록 돕기 위해서이다. 상대방의 말 속에 있는 느낌과 욕구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런 연결을 도울 수 있다.

 

Thus, If an aunt is repeating the story about how twenty years ago her husband deserted her and her two small children we might interrupt by saying, “So Auntie, it sounds like you are still feeling hurt, wishing you’d been treated more fairly.” People are not aware that empathy is often what they are needing. Neither do they realize that they are more likely to receive that empathy by expressing the feelings and needs that are alive in them than by recounting tales of past injustice and hardship. 예를 들어 이모가 20여 년 전에 자신과 두 아이를 떠난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되풀이한다면, 이 때 우리는 “이모, 아직도 마음이 많이 아프신 것 같네요. 좀 더 많은 배려와 돌봄을 원하셨는데 말이죠.”라며 끼어들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공감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과거에 겪었던 부당한 대우와 어려움을 되뇌이기 보다 자신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느낌과 욕구를 표현하면 더 쉽게 공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Another way to bring a conversation on life is to openly express our desire to be more connected, and to request information that would help us establish that connection. Once I was a cocktail party, I was in the midst of an abundant flow of words that to me seem lifeless. “Excuse me,” I broke in, addressing the group of nine other people I’d found myself with, “I’m feeling impatient because I’d like to be more connected with you, but our conversation isn't creating the kind of connection I’m wanting. I’d like to know if the conversation we've been having is meeting your needs and if so what needs of yours are being met through it.” 대화에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방법은, 말하는 사람과 좀 더 연결되고 싶은 자신의 욕구를 숨김없이 표현하고, 연결이 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을 부탁하는 것이다. 한 번은 칵테일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많은 말이 오가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대화에 생기가 전혀 없어 보였다. 나는 같이 있던 아홉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며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여러분과 점 더 연결하고 싶은데 지금은 제가 원하는 그런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지금 하는 대화가 만족스러운지 알고 싶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떤 욕구가 충족되었는지요?>

 

What bores the listener bores the speaker too. Speakers prefer that listeners interrupt rather than pretend to listen.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가 지루할 때 듣는 사람이 듣는 척하기보다 중단시켜주기를 바란다.

 

All nine people stared at me as if I had thrown a rat in the punch bowl. Fortunately, I remembered to tune in to the feelings and needs being expressed because you would have liked to continue the conversation?" I asked. After another silence, one of the men replied, "No, I'm not annoyed. I was thinking about what you were asking. And no, I wasn't enjoying the conversation; in fact, I was totally bored with it." 이 말을 듣고 아홉 사람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져 나를 쳐다보았다. 다행히 나는 그들이 침묵을 통해 표현하는 느낌과 욕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기억했다. 대화를 계속하시기 원하는데 제가 방해를 해서 불쾌하십니까? 다시 침묵이 흐르고 난 뒤 한 남자가 대답했다. 아니오. 불쾌하지 않아요. 저도 당신과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저도 이 대화를 즐기고 있지 않았어요. 사실 아주 지루했어요.

 

At the time, I was surprised to hear his response because he had been the one doing most of the talking! Now I am no longer surprised: I have since discovered that conversations that are lifeless for the listener are equally so for the speaker. You may wonder how we can muster the courage to flatly interrupt someone in the middle of a sentence. I once conduct an informal survey, posing the following question: "If you are using more words than somebody want to hear, do you want that person to pretend to listen or to stop you?" 그 대답에 나는 놀랐다. 왜냐하면 그 남자가 바로 제일 많이 말을 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듣는 사람이 생기를 느끼지 못하는 대화는 말하는 사람에게도 똑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말 중간에 과감히 끼어드는 용기를 어떻게 낼지 궁금해 할지도 모른다. 한 번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가지고 비공식적으로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만약 당신이 상대가 듣고 싶은 말보다 더 많이 하고 있을 때 상대방이 듣는 척하기 바라십니까? 아니면 중단시켜주길 바랍니까?

 

Empathy for silence

One of the hardest messages for many of us to empathize with is silence. This is especially true when we've expressed ourselves vulnerably and need to know how others are reacting to our words. At such times, it's easy to project our worst fears onto the lack of response and forget to connect with the feelings and needs being expressed through the silence. 우리가 제일 공감하기 힘든 것 중 하나는 침묵이다. 특히 우리가 자신의 드러내기 힘든 면을 말하고 난 뒤, 상대방이 우리의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알고 싶을 때 침묵은 더욱 견디기 힘들다. 이런 경우 상대방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가장 두려운 상황을 상상하기 쉽기 때문에 그 침묵을 통해 표현되고 있는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와 연결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Empathize with silence by listening for the feelings and needs behind it. ㅌ침묵 뒤에 숨겨진 느낌과 욕구에 귀를 기울림으로써 공감한다.

 

One time when I was working with the staff of a business organization, I was talking about something deeply emotional and began to cry. When I looked up, I received a response from the organization's director that was not easy for me to receive: silence. He turned his face from me with what I interpreted to be an expression‎ of disgust. Fortunately, I remembered to put my attention on what might be going on within him, and said, "I'm sensing from your response to my crying that you're feeling disgusted, and you'd prefer to have someone more in control of his feelings consulting with your staff." If he had answered yes, I would have been able to accept that we had different values around expressing emotions, without somehow thinking that I was wrong for having expressed my emotions as I did. But instead of "yes", the director replied, "No, not at all. I was just thinking of how my wife wished I could cry." He went on to reveal that his wife, who was divorcing him, had been complaining that living with him was like living with a rock. 한 번은 어느 기업의 관리자 교육을 할 때인데 교육 중에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감정이 북 받혀 눈물을 흘렸다. 다시 고개들 들었을 때, 그 회사의 이사는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반응을 보였다. 바로 침묵이었다. 그는 얼굴을 돌리고 내가 보기에는 혐오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도 나는 그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기억했다. <제가 우는 것을 보고 실망하셨나요?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직원교육을 해주었으면 하시는 것 같네요.“ 만약 그가 그렇다라고 대답했더라도 나는 그것을 내가 느낌을 그렇게 표현한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우리가 느낌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아니오. 전혀 그렇게 아니에요. 내가 울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는 아내의 말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는 이어서 이혼 수속 중인 부인이 자신과 사는 것이 마치 바위와 사는 것 같다고 불평해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During my practice as psychotherapist, I was contacted by the parents of a twenty-year-old woman under psychiatric care. She had been undergoing medication, hospitalization, and shock treatments for several months, and had become mute three months before her parents contacted me. When they brought her to my office, she had to be assisted because, left to herself, she didn't move. In my office, she crouched in her chair, shaking her eyes on the floor. Trying to connect empathically with the feelings and needs being expressed through her nonverbal message, I said, "I'm sensing that you are frightened and would like to be sure that it's safe to talk. Is that accurate? 심리치료사로 일할 때, 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스무 살 난 딸을 둔 부모와 만난 적이 있다. 딸은 약물치료, 입원, 충격요법을 몇 달간 받고 있었는데, 나를 찾아오기 전 3개월 동안은 말을 한 마디로 하지 않았다고 했다. 부모가 딸을 데리고 왔을 때, 그녀 혼자서는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도움을 받아야 했다. 상담실에서 딸은 시선을 바닥에 둔 채 떨면서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침묵을 통해 나타나는 그녀의 느낌과 욕구에 공감으로 연결하려고 노력하면서 이렇게 물어보았다. “좀 겁이 나나요? 말을 해도 안전하리라는 확신이 필요해요, 내 말이 맞나요?”

 

She showed no reaction, so I expressed my own feeling by saying, "I'm very concerned about you, and I'd like you to tell me if there's something I could say or do to make you feel safer." Still no response. For the next forty minutes, I continued to either reflect her feelings and needs or express my own. There was no visible response, nor even the slightest recognition that I was trying to communicate with her. Finally I expressed that I was tired, and that I wanted her to return the following day. The next few days were like the first, I continued focusing my attention on her feelings and needs, sometimes doing so silently. From time to time I would express what was going on in myself. She sat shaking in her chair, saying nothing. On the fourth day, when she still didn't respond, reached over and held her hand. Not knowing whether my words were communicating my concern, I hoped the physical contact might do so more effectively. At first contact, her muscles tensed and she shrank further back into her chair. I was able about to release her hand when I sensed a light yielding, so I Kept my hold; after a few moments I noticed a progressive relaxation on her part. I held her hand for several minutes while I talked to her as I had the first few day. Still she said nothing. 그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느낌을 표현했다. 그래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 후 40여 분간, 그녀의 느낌과 욕구를 짐작해 말해보거나 내 느낌을 표현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했지만, 눈에 띄는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대화하려고 하는 나의 노력을 알아주는 아무런 기미도 없었다. 마침내 나는 피곤하다고 말하고, 그녀에게 내일 다시 와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2,3일은 첫날과 비슷했다. 내가 이해한 것을 때로는 말로, 때로는 침묵으로 표현하면서 나는 그녀의 느낌과 욕구에 계속 주의를 집중했다. 이따금 나는 내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녀에게 얘기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앉아 떨고 있었다. 4일째 되던 날, 여전이 반응이 없자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걱정하는 마음이 말로 전달되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신체 접촉이 좀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에서였다. 처음 손을 잡았을 때 그녀의 근육은 긴장했고, 그녀는 의자에 더 깊숙이 웅크려 앉았다. 손을 놓으려고 하자 그녀가 손을 조금 내어주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손을 잡고 좀 더 그래도 있었다. 몇 분이 지난 후, 나는 그녀의 손에서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몇 분간 손을 잡은 채로 처음 며칠 동안 한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When she arrived the next day, she appeared even more tense than before, but there was one difference: she extended a clenched fist toward me while turning her face away from me. I was at first confused by the gesture, but then sensed she had something in her hand she wanted me to have. Taking her fist in my hand, I pried open her fingers. In her palm was a crumpled note with the following message: “Please help me say what’s inside.” I was elated to receive this sign of her desire to communicate. After another hour of encouragement, she finally expressed a first sentence, slowly and fearfully. When I reflected back what I had heard her saying, she appeared relieved and then continued, slowly and fearfully, to talk. A year later, she sent me a copy of the following entries from her journal: I came out of the hospital, away from shock treatments and strong medicine. That was about April. The three months before that are completely blank in my mind, as well as the three and a half years before April. They say that after getting out of the hospital, I went through a time at home of not eating, not talking, and want to stay in bed all the time. Then I was referred to Dr. Rosenberg for counseling. I don't remember much of those next two or three months other than being in Dr.Rosenberg's office and talking with him. 다음날 그녀가 도착했을 때는 전보다 더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뭔가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돌린 채 꼭 움켜쥔 손을 내게 내밀었다. 처음에 나는 그녀의 행동에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그 손에 내게 주고 싶어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녀의 주먹 쥔 손을 잡고 손가락을 하나씩 펼쳤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힌 종이가 들어 있었다. “내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제발 나를 도와주세요.” 그녀로부터 소통하고 싶다는 신호를 받았다는 것에 나는 힘이 나고 용기가 생겼다. 내가 한 시간 동안 용기를 북돋워주자 그녀는 두려워하면 천천히 첫 마디를 말했다. 내가 그 말을 되풀이하면서 확인해주자, 그녀는 안심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1년 후에 그녀는 내게 다음과 같은 일기의 한 부분을 보내주었다. 나는 충격요법과 독한 약물치료를 끝내고 퇴원했다. 그 때가 4월쯤이었다. 지난 3년간의 시간처럼 그 전 3개월도 내 머릿속은 완전히 텅 빈 공백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에 온 뒤, 말하지도 먹지도 않으면서 내내 침대에만 있으려 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나는 로젠버그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그 2,3개월 동안 로젠버그 선생님의 사무실에서 이야기한 것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

 

I'd begun 'waking up' since that first session with him. I'd begun sharing with him things that bothered me-things that I would never have dreamed of telling anyone about. And I remember how much that meant to me. It was so hard to talk. But Dr. Rosenberg cared about me and showed it. and I wanted to talk with him. I was always glad afterwards that I had let something out. I remember counting the days, even the hours, until my next appointment with him. 나는 선생님과 상담한 뒤 ‘깨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생각조차 못하던, 나를 괴롭히던 것들에 대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기억한다. 그러나 로젠버그 선생님은 나를 배려하며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선생님과 약속한 다음 상담 시간을 기다리며 날짜, 심지어 시간까지 세었던 것을 기억한다.

 

I've also learned that facing reality is not all bad. I am realizing more and more of the things that I need to stand up to, things that I need to get out and do on my own. This is scary. And it's very hard. And it's so discouraging that when I am trying really a lot, I can still fail so terribly. But the good part of reality is that I've been seeing that it includes wonderful things, too. I've learned in the past year about how wonderful it can be to share myself with other people. I think it was mostly just one part that I learned, about the thrill of my talking to other people and having them actually listen-even really understand at times. 그리고 현실에 부딪히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도 배웠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이 맞서야할 문제들, 스스로 해야 할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있다. 이런 일들이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용기를 잃게 된다. 하지만 현실 속에는 멋진 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1년을 통해 나는 다른 사람들과 내 자신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그 사람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때로 내 말을 진정으로 이해해 줄 때 느껴지는 기쁨이다.

 

Empathy lies in our ability to be present. 공감은 우리가 존재로 있을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I continue to be amazed by the healing power of empathy. Time and again I have witnessed people transcended the paralyzing effects of psychological pain when they have suffered contact with someone who can hear them empathically. As listeners, we don't need insights into psychological dynamics or training in psychotherapy. What is essential is our ability to be present to what's really going on within-to the unique feelings and needs a person is experiencing in that very moment. 나는 공감이 가진 치유의 힘에 계속 놀라고 있다. 공감으로 들어줄 수 있는 사람과 충분한 연결을 가지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마음의 상처도 극복하는 경우를 여러 차례 보았다. 우리가 공감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기 위해서 [심리이론이나 심리 치료를 위한 특별한 훈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속에 실제로 일어나는 것-그 순간에 그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특정한 느낌과 욕구-에 함께 있어줄 수 있는 능력이다.

 

Summary

Our ability to offer empathy can allow us to stay vulnerable, defuse potential violence, hear the word ‘no’ without taking it as a rejection, revive a lifeless conversation, and even hear the feelings and needs expressed through silence. Time and again, people transcend the paralyzing effects of psychological pain when they have sufficient contact with someone who can hear them empathically.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은 자신의 솔직한 내면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며 폭력을 미리 막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아니오’란 말을 들을 수 있고 생기 잃은 대화를 되살리도록 도와준다.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공감으로 들어주는 사람과 충분한 접촉을 가지면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심리적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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