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장 NVC로 감사 표현하기.
<13장 Expressing appreciation in NVC: NVC로 감사 표현하기
The intention behind the appreciation 감사하는 말 뒤에 있는 의도
Compliments are often judgments -however positive- of others.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호의적으로 들리든 간에, 칭찬은 종종 판단과 같을 수 있다.
"You did a good job on that report." "You are a very sensitive person." "It was kind of you to offer me a ride home last evening.“ Such statements are typically uttered as expressions of appreciation in life-alienating communication. Perhaps you are surprised that I regard praise and compliments to be life-alienating. Notice, however, that appreciation expressed in this form reveals little of what's going on in the speaker; it establishes the speaker as someone who sits in judgment. I define judgments-both positive and negative-as life-alienation communication. 보고서를 참 잘 쓰셨습니다. 정말 세심한 분이시군요. 어제 저녁에 저를 집까지 태워다주신 것을 보니 참 친절한 분이세요. 이러한 말은 삶을 소외시키는 대화에서 전형적으로 쓰이는 감사 표현이다. 이미 여러분은 내가 칭찬과 감사를 삶을 소외시키는 것으로 보는 것에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나타내지 않으면서 스스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자리에 앉는 것이다. 나는 판단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둘 다 삶을 소외시키는 대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말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자리에 앉는 것이다. 나는 판단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둘 다 삶을 소외시키는 대화라고 생각한다.
In corporate trainings, I often encounter managers who defended the practice of praising and complimenting by claiming that "it works", "Research shows," they assert, "that if a manger compliments employees, they work harder. And the same goes for schools: if teachers praise students, they study harder." I have reviewed this research, and my belied is that recipients of such praise do work harder, but only initially. Once they sense the manipulation behind the appreciation, their productivity drops. Express appreciation to celebrate, not to manipulate. Saying "Thank you" in NVC: "This is what you did; this is what I feel: this is the need of mine that was met. 기업을 상대로 NVC 워크숍을 하다 보면, 칭찬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칭찬하는 방법을 옹호하는 관리자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은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상사가 칭찬하면 직원들이 일을 더욱 열심히 한다고 주장한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선생님들이 칭찬하면 학생들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런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칭찬을 받는 사라마이 열심히 일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처음뿐이다. 일단 칭찬 뒤에 숨은 의도를 알아차리고 나면 이들의 생산성은 떨어진다. 어떤 보답을 원해서가 아니라 함께 기뻐하기 위해 고마운 마음을 표시한다. ‘감사합니다’를 NVC로 표현하는 방법: 당신이 ~을 했을 때, 나는 ~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내 ~욕구가 충족됐습니다.
What is most disturbing for me, however, is that the beauty of appreciation is spoiled when people begin to notice the lurking intent to get something out of them. Furthermore, when we use positive feedback as a means to influence others, it may not be clear how they are receiving the message. There is a cartoon where one Native American remarks to another, "Watch me use modern psychology on my horse!" He then leads his friend to where the horse can overhear their conversation and exclaims, "I have the fastest, most courageous horse in all the West!" The horse looks sad and says to itself. "How do you like that? He's gone and brought himself another horse." When we use NVC to express appreciation, its is purely to celebrate, not to get something in return. Our sole intention is to celebrate the way our lives have been enriched by others. 그러나 내가 특히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칭찬과 감사 표현 뒤에 숨은 의도가 자기들한테서 무언가를 얻어 내려는 것임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진정한 감사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이 손상된다는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할 때, 상대가 우리의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할 때, 상대가 우리의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분명하지 않다. 어떤 만화에서 한 아메리카 원주민이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말에게 현대 심리학을 사용하는 것을 볼래?> 그러더니 친구를 자신의 말이 있는 곳 가까이 데려가서, 말이 들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 말한다. <나는 서부에서 제일 빠르고, 용맹한 말을 가지고 있어> 그러자 말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어디 가서 다른 말을 한 마리 사 왔군. . . 좋은 대로 되라지! 우리가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NVC를 사용하는 것은 무엇인가 돌려받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 기쁨을 나누기 위함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고마워하는 의도는 오로지 그들 덕분에 충만해진 삶을 함께 기뻐하기 위해서이다.
The three components of appreciation 감사 표현의 세 가지 요소.
NVC clearly distinguishes there components in the expression of appreciation: 1. the actions that have contributed to our well-being. 2. the particular needs of ours that have been fulfilled. 3. the pleasureful feelings engendered by the fulfillment of those needs. The sequence of these ingredients may very; sometimes all three can be conveyed by a smile or a simple "Thank you." However, if we want to ensure that our appreciation has been fully received, it is valuable to develop the eloquence to express all three components verbally. The following dialogue illustrates how praise may be transformed into an appreciation that embraces all three components. NVC로 감사를 표현할 때는 다음 세 가지 요소를 명확히 한다. 1. 우리의 행복에 기여한 그 사람의 행동. 2. 그 행동으로 충족된 나의 욕구. 3. 그 욕구들이 충족되어 생기는 즐거운 느낌. 이들 요소를 표현하는 순서는 다를 수 있다. 때로는 이 세 가지 모두를 웃는 얼굴이나 간단히 ‘감사합니다’ 하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방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충분히 전하고자 한다면,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말로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다음 대화는 칭찬을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포함하는 감사의 표현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
Participant: (approaching me after a workshop) Marshall, you're brilliant! (워크숍이 끝나자, 내기 다가오면서) 마셜, 정말 훌륭하세요.
MBR: I'm not able to get as much out of your appreciation as I would like. 칭찬하시는 마음을 제가 충분히 이해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요.
Participant: Why, what do you want? 네? 무슨 말씀이세요?
MBR: In my lifetime, I've been called a multitude of names. yet I cant' recall seriously learning anything by being told what I am. I'd like to learn from your appreciation and enjoy it, but I would need more information. 제 평생 동안 사람들은 저를 여러 가지 말로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당신이 저에게 감사하는 이유를 알고 함께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려면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이 필요합니다.
participant: Life what? 어떤 구체적인 말이요?
MBR: First, I'd like to know what I said or did that life more wonderful for you. 우선 제가 한 어떤 말이나 행동이 당신의 삶을 더욱 멋지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됐는지 알고 싶습니다.
Participant: Well, you're so intelligent. 글쎄요. 선생님은 정말 현명하세요.
MBR: I'm afraid you've just given me another judgment that still leaves me wondering what I did that made life more wonderful for you. 방금 제가 또 다른 판단을 하셨어요. 그 말만 듣고는 아직도 제가 어떻게 도움이 됐는지 알 수가 없네요.
Participant: (thinks for a while, then points to notes she had taken during the workshop) Look at these town places. It was these two things you said. 참가자는 잠깐 동안 생각하고 나서 워크숍 동안 적어놓은 메모를 가리킨다. 이것을 보세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이 두 가지가 제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MBR: Ah, so it's my saying those two things that you appreciate. 아, 그 두가지에 대해 고맙게 여기시는군요.
Participant: Yes.
MBR: Next, I'd like to know how you feel in conjunction to my having said those two things. 이제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는지를 알고 싶군요.
Participant: Hopeful and relieved. 희망도 생기고 마음이 놓여요.
MBR: And now I'd like to know what needs of yours were fulfilled by my saying those two things. 그러면, 제가 그 두 가지를 말함으로써 당신의 어떤 욕구가 충족되었는지 알고 싶군요.
Participants: I have this eighteen-year-old son whom I haven't been able to communicate with. I'd been desperately searching for some direction that might help me to relate with him in a more loving manner, and those two things you said provide the direction I was looking for. 저는 열여덟살 난 아들이 있는데, 그 아이와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없어요. 아들과 좀 더 다정하게 말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두 가지를 통해 그 방향을 알게 되었어요.
Having all three pieces of information-what I did, how she felt, and what needs of hers were fulfilled-I could then celebrate the appreciation with her. Had she initially expressed her appreciation in NVC, it might have sounded like this: "Marshall, when you said these things(showing me her notes), I felt very hopeful and relieved, because I've been searching for a way to make a connection with my son, and these gave me the direction I was looking for." 이 세 가지 요소-나의 행동, 그 사람이 느낀 것, 그리고 충족된 그 사람의 욕구를 모두 들었을 때 나는 그녀와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그녀가 처음에 NVC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면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마셜, 이 두 가지(자신의 메모를 보여 주며)를 말씀하셨을 때, 저는 희망이 생기고 안심이 되었어요. 저는 아들과 좀 더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이 두 가지를 통해 제가 찾는 방법을 볼 수 있었어요.
Receiving appreciation 감사하는 말 듣기
For many of us, it is difficult to receive appreciation gracefully. We fret over whether we deserve it. We worry about what's being expected of us-especially if we have teachers or managers who use appreciation as a means to spurs productivity. Or we're nervous about living up to the appreciation. Accustomed to a culture where buying, earning, and deserving are the standard modes of interchange, we are often uncomfortable with simple giving and receiving. 우리 대부분은 감사의 말을 그대로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이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 하는 마음이 들어 불편하다. 특히 선생님이나 상사가 성적이나 생산성을 올리는 수단으로 칭찬을 사용한다면, 그들이 우리에게 걸고 있는 기대 때문에 걱정하게 된다. 또 자신이 그런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하여 긴장하게 된다.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돈을 주고 물건을 사고, 가치를 매겨 대가를 받는 것이 기본적 교환방식인 사회에서는 아무런 대가 없이 주고받는 일에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다.
NVC encourages us to receive appreciation with the same quality of empathy we express when listening to other messages. we hear what we have done that has contributed to others' well-being; we hear their feelings and the needs that fulfilled. We take into our hearts the joyous reality that we can each enhance the quality of others' lives. I was taught to receive appreciation with grace by my friend Nafez Assailey. He was a member of a Palestinian team whom I had invited to Switzerland for training in NVC at a time when security precautions made training of mixed groups of Palestinians and Israelis impossible in either of their own countries. At the end of the workshop, Nafez came up to me. "This training will be very valuable for us in working for peace in our country," he acknowledged. "I would like to thank you in a way that we sufi Muslims do when we want to express special appreciation for something." Locking his thumb onto mine, he looked me in the eye and said, "I kiss the God in you that allows you to give us what you did." He then kissed my hand. NVC에서는 감사하는 말을 들을 때도 다른 말을 들을 때와 같이 공감의 자세로 들을 것을 권한다. 곧 다른 사람의 행복에 기여한 자신의 행동, 그 행동으로 생긴 그 사람의 느낌과 충족된 욕구를 듣는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서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즐거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친구인 나페즈 아사일리한테서 감사를 우아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그는 NVC 교육을 위해 내가 스위스로 초대한 팔레스타인 팀의 한 사람이었다. 당시 팔레스타인이나 이스라엘에서는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에 두 사람 사람들이 함께 교육에 참가하기가 불가능했다. 워크숍이 끝날 무렵 나페즈가 내게 와서 우리가 이번 교육을 통해 배운 것은 우리나라에서 평화운동을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라고 감사의 말을 하면서 나는 우리 수피 이슬람교도가 특별히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당신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라고 했다고. 그는 엄지손가락을 내 엄지손가락에 걸고 내 눈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우리에게 이것을 줄 수 있도록 허락하신 당신 안에 계시는 신께 입을 맞춥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내 손에 입을 맞추었다.
Nafez's expression of gratitude showed me a different way to receive appreciation. Usually it is received from one of two polar positions. At one end is egotism, believing ourselves to be superior because we've been appreciated. At the other extreme is false humility, denying the importance of the appreciation by shrugging it off: "Oh, it was nothing." Nafez showed me that I could receive appreciation joyfully, in the awareness that God has given everyone the power to enrich the lives of others. If I am aware that it is this power of God working through me that gives me the power to enrich life for others, then I may avoid both the ego trap and the false humility. Golda Meikr, when she was the Israeli prime minister, once chided one of her ministers: "Don't be so humble, you're not that great." The following lines, attributed to contemporary writer Marianne Williamson, serve as another reminder for me to avoid the pitfall of false humility: 나페즈의 감사 표현은 나에게 감사를 받아들이는 다른 방법을 보여준 것이었다. 우리는 보통 감사를 상반되는 두 가지 중 하나의 태도로 받아들인다. 하나는 자만이다.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우월하다고 믿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아 아무것도 아닌걸요’ 와 같은 말을 하면서 감사의 중요성을 부인하거나 무시하는 거짓 겸손이다. 하지만 나페즈는 내게, 산이 우리 모두에게 다른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는 인식 속에서 그 감사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더 충만하게 하는 것이 신의 힘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자만의 덫이나 거짓 겸손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수상이렀던 ‘Golda Meikr’는 그녀의 각료들을 꾸짖었다. <겸손하지 마라. 당신들은 위대하지 않다> 작가 매리앤 윌리엄슨이 쓴 다음 시는 내게 거짓 겸손의 함정을 피할 수 있게 도와준다.
Our deepest fear is not that we are inadequate. Our deepest fear is that we are powerful beyond measure. It is our light, not our darkness, that frightens us. You are a child of God. Your playing small doesn't serve the world. There's nothing enlightened about shrinking so that other people won't feel insecure around you. We were born to make manifest the glory of God that is within us. It's not just in some of us, it is in everyone. And as we let our own light shine, we unconsciously give other people permission to do the same. 우리의 가장 깊은 두려움은 우리가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다. 우리의 가장 깊은 두려움은 우리에게 측량할 수 없는 힘이 있다는 데 있다. 우리를 겁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어둠이 아니라 우리의 빛이다. 당신은 신의 아이, 스스로 움츠려 작게 행동하는 것은 세상을 위하는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당신 옆에서 불안하지 않도록 스스로 위축되어 행동하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태어났다. 그것은 몇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안에 있다. 우리가 자신의 빛을 빛나도록 하면, 저절로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빛을 빛나게 할 것이다. 우리가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되면, 우리 존재 자체가 저절로 다른 사람도 자유롭게 된다.
As we are liberated from our fear, our presence automatically liberates others. Paradoxically, despite our unease in receiving appreciation, most of us yearn to be genuinely recognized and appreciated. During a surprise party for me, a twelve-year-old friend of mine suggested a party game to help introduce the guests to each other. We were to write down a question, drop it in a box, and then take turns, each person drawing out a question and responding to it out loud. Having recently consulted with various social service agencies and industrial organizations, I was feeling struck by how often people expressed a hunger for appreciation on the job. "No matter how hard you work," they would sigh, "you never hear a good word from anyone. But make one mistake and there's always someone jumping all over you." So for the game, I wrote this question: "What appreciation might someone give you that would leave you jumping for joy?" 우리가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되면, 우리 존재 자체가 저절로 다른 사람도 자유롭게 된다. 감사의 말을 들을 때 불편해하면서도 우리 대부분은 진심에서 우러난 인정과 감사를 받고 싶어 한다. 나를 위한 깜짝 파티에서 열두 살짜리 친구가 파티에 참석한 손님들이 서로를 소개할 수 있는 게임을 하나 제안했다. 쪽지에 각자 묻고 싶은 말을 적어서 그것을 상자에 넣고 섞은 후에, 돌아가면서 상자에서 쪽지를 하나씩 꺼내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최근 사회복지기관과 산업체 관계자들을 상담하면서, 그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감사하는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 하는지 알고 놀랐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누구한테서 좋은 말 한마디를 못 들어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당장 야단이 나지요. 라며 이들을 한숨지었다. 그래서 나는 쪽지에 이런 질문을 적었다. 여러분은 어떤 감사의 말을 들으면 뛸 듯이 기쁘시겠습니까?
A woman drew that question out of the box, read it, and started to cry. As director of a shelter for battered women, she would put considerable energy each month into creating a schedule to please as many people as possible. Yet each time the schedule was presented, at least a couple of individuals would complain. She couldn't remember ever receiving appreciation for her efforts to design a fair schedule. All this had flashed through her mind as she read my question, and hunger for appreciation brought tears to her eyes. Upon hearing the woman's story, another friend of mine said that he, too, would like to answer the question. Everyone else then requested a turn; as they responded to the question, several people wept. 한 여성이 내 질문이 적힌 쪽지를 집어서 읽더니 울기 시작했다. 매 맞는 여성들을 위한 쉼터의 소장으로 일하는 그녀는 날마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계획을 짜느라 치선을 다했다. 하지만 일정을 짤 때마다 적어도 두어 사람은 불평을 한다고 했다. 그녀는 이 일정을 짜느라 자신이 기울인 노력에 대해 감사하는 표현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질문을 읽은 동안 이런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고, 감사의 말을 듣고 싶은 그녀의 깊은 바람 때문에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이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친구가 자기도 이 질문에 대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고 이 질문에 답하고 싶다고 했고, 그렇게 하면서 몇몇은 눈물을 흘렸다.
While the craving for appreciation-as opposed to manipulative "strokes"-is particularly evident in the workplace, it affects family life as well. One evening when I pointed out his failure to perform a house chore, my son Brett retorted, "Dad, are you aware how often you bring up what's gone wrong but almost never bring up what's gone right?" His observation stayed with me. I realized how I was continually searching for improvements, while barely stopping to celebrate things that were going well.조종하는 감언이 아닌 진정한 감사를 받고 싶은 마음은 직장에서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그것은 가정에서도 다르지 않다. 어느 날 저녁 내가 아들 브렛이 하기로 했던 집안일을 하지 않은 것을 지적했을 때 브렛은 이렇게 반박했다. “아빠, 아빠는 내가 뭘 잘못했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아세요? 하지만 아빠는 내가 뭘 잘했다는 이야기는 절대 하시지 않아요.” 아들의 관찰은 나를 생각하게 했다. 나는 늘 더 나아지는 것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 잠깐이라도 멈춘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I had just completed a workshop with more than a hundred participants, all of whom had evaluated it very high, with the exception of one person. However, what lingered in my mind was that one person's dissatisfaction. That evening I wrote a song that began like this: If I'm ninety-eight percent perfect in anything I do, it's the two percent I've messed up I'll remember when I'm through. 나는 100여 명이 참가한 워크숍을 얼마 전에 마쳤다.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연수 결과를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남은 것은 바로 그 한 사람의 불만이었다. 그날 저녁 난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노래를 지었다. 만약 내가 한 일이 98% 잘 됐더라도 끝나고 나서 내가 기억하는 것은 내가 망친 2%.
It occurred to me that I had a choice to adopt instead the outlook of a teacher I knew. One of her students, having neglected to study for an exam, had resigned himself to turning in a blank piece of paper with his name at the top. He was surprised wen she later returned the test to him with a grade of 14 percent. "What did I get 14 percent for?" he asked incredulously. "Neatness," she replied. Ever since hearing my son Brett's wake-up call, I've tried to be more aware of what others around me are doing that enriched my life, and to hone my skills in expressing this appreciation.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선생님의 방법을 따르는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시험공부를 소홀히 한 학생이 포기하고 이름만 쓴 백지 답안지를 제출했다. 그런데 나중에 답안지를 돌려받았을 때 14점을 받은 것을 보고 놀랐다. 그 학생은 믿을 수가 없어서 “제가 무엇 때문에 14점을 받았죠? 하고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깨끗함> 이라고 선생님은 대답했다. 아들 브렛이 내게 ‘일깨워준 말’을 들을 다음부터 나는 주위 사람들이 무엇으로 내 인생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는가에 더욱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또 그것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는 기술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Overcoming the reluctance to express appreciation 감사 표현을 주저하는 마음 극복하기
I was deeply touched by a passage in John Powell' book <The Secret of Staying in Love>, in which Powell describes his sadness over having been unable, during his father's lifetime, to express the appreciation he felt for his father to his father. How grievous it seemed to me to miss the chance of appreciating the people who have been the greatest positive influences in our lives! Immediately an uncle of mine, Julius Fox, came to mind. When I was a boy, he dame daily to offer nursing came to my grandmother, who was totally paralyzed. 나는 존 파월이 쓴 <사랑에 머무는 비밀> 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이 책에서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에 대하여 썼다. 우리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할 기회를 놓치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는 이 책을 읽고 바로 삼촌 줄리어스 폭스가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때 삼촌은 온 몸이 마비된 할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매일 우리 집에 왔다.
While he cared for my grandmother, he always had a warm and loving smile on his face. No matter how unpleasant the task may have appeared to my boyish eyes, he treated her as if she were doing him the greatest favor in the world by letting him care for her. This provided a wonderful model of masculine strength for me-one that I've often called upon in the years since. 할머니를 돌보는 동안 삼촌은 얼굴에 항상 따뜻하고 애정 어린 웃음을 띠었다. 어린 내 눈에 할머니를 돌보는 일은 매우 하기 싫고 어려운 일로 보였다. 하지만 삼촌은 할머니가 자신에게 돌볼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감사하다는 듯이 할머니를 간호했다. 그것은 내게 남자의 힘에 대한 훌륭한 귀감이 되었고, 나는 두고두고 이 경험을 마음에 떠올려 의지할 수 있었다.
I realized that I had never expressed my appreciation for my uncle, who himself was now ill and near death. I considered doing so, but sensed my own resistance: "I'm sure he already knows how much he means to me, I don't need to express it out loud; besides, it might embarrass him if I put it into word." 하지만 나는 이제는 병상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삼촌에게 감사의 마음을 한 번도 표현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삼촌에게 감사하고 싶었지만, 그 때마다 내 안에 어떤 망설임을 느꼈다. 나한테 삼촌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삼촌은 알고 있을 거야. 일부러 말로 표현할 필요는 없어. 그러면 오히려 무안해할지도 몰라.
As soon as these thoughts entered my head, I already knew they weren't true. Too often I had assumed that others knew the intensity of my appreciation for them only to discover otherwise. And ever when people were embarrassed, they still wanted to hear appreciation verbalized. Still hesitant, I told myself that words couldn't do justice to the depth of what I wished to communicate. I quickly saw through that one, though: yes, words may be poor vehicles in conveying our heartfelt realities, but as I have learned, "Anything that is worth doing is worth doing poorly!"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 같은 생각이 사실이 아님을 벌써 알고 있었다. 감사하고 있는 내 마음의 깊이를 그들이 알고 있으리라 믿어왔지만 결국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자주 발견하였다. 사람들은 쑥스러운 느낌이 들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의 표현을 말로 듣고 싶어 한다. 말로써는 내 마음의 깊이를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순간, 그 생각도 곧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말은 가슴 깊이 느끼는 진실을 전하기에는 불충분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배웠듯이 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서투르게라도 할 가치가 있다.’
As it happened, I soon found myself seated next to Uncle Julius at a family gathering, and the words simply flowed out of me. He took them in joyfully, without embarrassment. Brimming over with feelings from the evening, I went home, composed a poem and sent it to him, I was later told that each day until he died three weeks later, my uncle had asked that the poem be read to him. 얼마 뒤 가족 모임에서 나는 줄리어스 삼촌 옆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그를 향해 감사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삼촌은 무안해하지 않고 내 말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그날 저녁에 느낀 넘치는 감동으로 시를 지어서 삼촌에게 보내드렸다. 그리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삼촌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날마나 그 시를 읽어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Summary
Conventional compliments ofter take the form of judgments, however positive, and are sometimes intended to manipulate the behavior of others. NVC encourages the expression of appreciation solely for celebration. We state (1)the action that has contributed to our well-being, (2)the particular need of ours that has been fulfilled, and (3)the feelings of pleasure engendered as a result. When we receive appreciation expressed in this way, we can do so without any feeling of superiority or false humility-instead we can celebrate along with the person is offering the appreciation. 일반적인 칭찬은 아무리 긍정적이라도 판단형식으로 나타나고 다른 사람의 행동을 조종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다. NVC는 단순히 서로 기쁜 마음을 나누려는 목적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1)우리 행복에 기여한 상대방의 행동 (2)충족된 나의 욕구 (3)그 결과 우리가 느끼는 기쁨을 말함으로써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다. 감사의 말을 들을 때도 이런 식으로 듣게 되면, 거짓 겸손이나 우월감 없이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서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과 함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
Epilogue 에필로그
I once asked my uncle Julius how he had developed such a remarkable capacity to give compassionately. He seemed honored by my question, which he pondered before replying, "I've been blessed with good teachers." When I asked who these were, he recalled, "your grandmother was the best teacher I had. You lived with her when she was already ill, so you didn't know what she really like. For example, did your grandmother brought a tailor and his wife and two children to live with her for three years, after he lost his house and business? I remembered the story well. It had left a deep impression when my mother first told it to me because I could never figure out where grandmother had found space for the tailor's family when she was raising nine children of her own in a modest-sized house! Uncle Julius recollected my grandmother's compassion in a few more anecdotes, all of which I had heard as a child. Then he asked, "Surely your mother told you about Jesus." "About who?" "Jesus" "No, she never told me about Jesus." The story about Jesu was the final precious gift I received from my uncle before he died. It's a true story of a time when a man came to my grandmother's back door asking for some food. This wasn't unusual. 한번은 줄리어스 삼촌에게 다른 사람을 연민으로 대하는 그런 능력을 어떻게 키웠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내 질문에 뿌듯함을 느끼는 듯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나는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는 축복을 받았단다.> 네 할머니가 그 중에서 제일 훌륭한 선생님이었지. 너는 할머니가 아픈 다음에만 같이 살아서 할머니가 어떤 분인지 잘 모를 거야. 혹시 네 엄마가 대공황 시절 얘기를 해 주었니? 집과 직업을 잃은 재단사와 그의 부인, 그리고 두 아이까지 집에 데리고 와서 3년간 같이 살게 해주신 일이 있었는데. 나는 어머니가 처음 그 이야기를 해 주셨을 때를 잘 기억했다. 할머니는 작은 집에서 이미 아이를 아홉 명이나 키우고 있었는데, 어떻게 재단사네 식구가 살 자리를 마련해주었는지 나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줄리어스 삼촌은 내게 몇 가지 일화를 통해서 할머니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이야기했다. 대부분 내가 어렸을 때 들은 이야기였다. 그러고 나서 삼촌은 “네 엄마가 예수에 대해서는 당연히 이야기를 했겠지”라고 했다. <누구요?> <예수> <아니오 어머니는 예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신 적이 없어요> 예수에 관한 이야기는 돌아가시기 전 내가 삼촌에게서 마지막으로 받은 소중한 선물이다. 그것은 어느 날 할머리 집 뒷문으로 찾아와 음식을 청한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런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Although grandmother was very poor, the entire neighborhood knew that she would feed anyone who showed up at her door. This man has a beard and wild, scraggly black hair; his clothes wee ragged, and he wore a cross around his neck fashioned out of branches ties with rope. My grandmother invited him into her kitchen for some food, and while he was eating she asked his name. "My name is Jesus," he replied. "Do you have a last name?" she inquired. "I am Jesus the Lord." (My grandmother's English wasn't too good. Another uncle, Isidor, later told me he had come into the kitchen while the man was eating, and grandmother had introduced the stranger as Mr. The lord.) As the man continued to eat, my grandmother asked where he lived. "I don't have a home." "Well, where are you going to stay tonight? It's cold." "I don't know." "Would you like to stay here?" she offered. He stayed seven years. 할머니는 가난했지만,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어 준다는 것을 동네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머리는 덥수룩하고 턱수염은 길고 해진 옷을 입은 그 남자의 목에는 나뭇가지를 끈으로 묶어 만든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할머니는 그 사람을 부엌으로 불러들여 음식을 주었다. 그리고 그가 음식을 먹는 동안 이름을 물었다. <제 이름은 예수입니다>ㅏ<성은 어떻게 되지요?> <저는 주 예수요> (할머니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이시도어 삼촌이 나중에 나에게 얘기해 주기를, 삼촌이 부엌에 들어갔을 때 식사 중인 이 낯선 사람을 할머니는 삼촌에게 ‘주님씨’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그 남자가 식사를 하는 동안 할머니는 어디 사는지 물었다. <저는 집이 없어요>, <그럼 오늘 밤은 어디서 지낼 건가요? 밖은 추운데. . .> <몰라요>, <여기서 오늘 주무시겠어요?> 할머니가 그에게 제안했다. 그 뒤로 그는 7년간을 머물렀다.
When it came to communicating nonviolently, my grandmother was a natural. She didn't think of what this man "was." If she had, she probably would have judged his as crazy and gotten rid of him. No she thought in terms of what people feel and what they need. If they're hungry, feed them. If they're without roof over their head, give them a place to sleep. My grandmother loved to dance, and my mother remembers her saying often, "Never walk when you can dance." And thus I end this book on a language of compassion with a song about my grandmother, who spoke and lived the language of Nonviolent Communication. One day a man named Jesus came around to my grandmother's door. He asked for a little food, she gave him more. 할머니는 NVC를 타고난 분이셨다. 할머니는 이 남자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그런 생각을 했다면 그를 미쳤다고 판단하고 내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할머니는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필요로 하는가를 기준으로 생각했다.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음식을 주었고, 머리 위에 지붕이 없는 사람에게는 잘 곳을 마련해 주었다. 할머니는 춤추는 것을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할머니께서 생전에 <춤을 출 수 있을 때는 절대 걷지 마라>고 하셨던 말을 자주 회상하셨다. NVC로 말하고 살았던 할머니에 대한 노래로 연민의 대화에 관한 이 책을 마치고자 한다. 어느 날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우리 할머니 집에 찾아 왔습니다. 그는 먹을 것을 조금 원했습니다. 할머니는 그에게 더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He said he was Jesus the Lord; she didn't check him out with Rome. He stayed for several years, as did many without a home. It was in her Jewish way, she taught me what Jesus had to say. In that precious way, She taught me what Jesus had to say. And that's: "Feed the hungry, heal the sick, then take a rest. Never walk when you dance; make your home a cozy nest." It was in her Jewish way. she taught me what Jesus had to say. In her precious way, she taught me what Jesus had to say." 그는 이름이 주 예수라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그에 대하여 로마에 조회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몇 년을 더 머물렀습니다. 집 없는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는 유대인의 방식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내게 가르치셨습니다. 이런 고귀한 방식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내게 가르치셨습니다. 할머니는 예수님의 말씀을 내게 가르치셨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아픈 사람을 돌보고, 그러고 나서 쉬어라. 춤을 출 수 있을 때는 절대 걷지 말고 네 집을 아늑한 둥지로 만들어라. 할머니는 유대인의 방식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내게 가르치셨습니다. 이런 근사한 방식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Grandma & Jesus" by Marshall B. Rosenbe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