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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history_시즌2

[역사란 무엇인가_시즌2] 3월 12일(토)_145~150(90+5*12)p

작성자Frida|작성시간22.03.11|조회수409 목록 댓글 0

 

Chapter 4_14_145p Causation in History

No doubt it would have been wiser to say 'extremely probable'. But may I be excused for finding the correction a shade pedantic? In practice, historians do not assume that events are inevitable before they have taken place. They frequently discuss alternative courses available to the actors in the story, on the assumption that the option was open, though they go on quite correctly to explain why one course was eventually chosen rather than the other. Nothing in history is inevitable, except in the formal sense that, for it to have happened otherwise, the antecedent causes would have had to be different. As a historian, I am perfectly prepared to do without 'inevitable', 'unavoidable', 'inescapable', and even 'ineluctable'. Life will be drabber. 틀림없이 더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개연성이 아주 높았다’ 라고 말했었더라면, 그러나 이러한 수정에서 좀 현학적인 것을 발견한다고 말하면 용서가 될까. 사실 역사가들은 가정하지 않는다. 사건들은 불가피했다고. 그들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들은 자주 논의 한다. 대안 코스를. 그 이야기 속에 있었던 다른 인물들에게 가능했던 대안 코스를. 가정하에. 선택은 열려 있었다고. 하지만 그들은 아주 정확히 설명한다. 왜 하나의 선택이 궁극적으로 선택되었는지. 다른 선택보다. 역사에서 아무 것도 불가피하지 않다. 형식 논리적인 것 외에 ‘다르게 일어나기 위해서는 선행 원인들이 달랐어야 한다’ 것 외에 역사가로서 가는 완벽하게 할 준비가 되어 있다. 'inevitable', 'unavoidable', 'inescapable', and even 'ineluctable'. 란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는 준비. 하지만 인생이 얼마나 지루해질까.

 

But let us leave them to poets and metaphysicians. So barren and pointless does this charge of inevitability appear, and so great the vehemence with which it has been pursued in recent years, that I think we must look for the hidden motives behind it. Its principal source is, I suspect, what I may call the 'might- have-been' school of thought - or rather of emotion. It attaches itself almost exclusively to contemporary history. Last term here in Cambridge I saw a talk to some society advertised under the title 'Was the Russian Revolution Inevitable?' 그들은 시인들이나 형이상학자들에게 맡기자. 그렇게 무익하고 무의미한 불가피성에 대한 공격으로 보이지만 왜 그렇게 격렬하게 최근에 그것들이 추구되고 있는지에 대해 나는 그 뒤에 숨은 동기들을 찾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의 주 원천은 내가 생각하기에 ‘했더라면’ 이라는 학파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집착한다. 배타적으로 현대사에 지난 학기 난 이곳 캠브릿지에서 세미나 공지를 보았다. ‘러시아 혁명은 불가피했던가?’

 

Chapter 4_15_146p Causation in History

I am sure it was intended as a perfectly serious talk. But if you had seen a talk advertised on 'Were the Wars of the Roses Inevitable?' you would at once have suspected some joke. The historian writes of the Norman Conquest or the American War of Independence as if what happened was in fact bound to happen, and as if it was his business simply to explain what happened and why; and nobody accuses him of being a determinist and of failing to discuss the alternative possibility that William the Conqueror or the American insurgents might have been defeated. When, however, I write about the Russian revolution of 1917 in precisely this way - the only proper way to the historian I find myself under attack from my critics for having by implication depicted what happened as something that was bound to happen, and failed to examine all the other things that might have happened. Suppose, it is said, that Stolypin had had time to complete his agrarian reform, or that Russia had not gone to war, perhaps the revolution would not have occurred; or suppose that the Kerensky government had made good, and that the leadership of the revolution had been assumed by the Mensheviks or the Social Revolutionaries instead of by the Bolsheviks. These suppositions are theoretically conceivable; and one can always play a parlour game with the might-have-beens of history. 나는 확신한다. 그것은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그러나 만약 당신이 세미나 공지를 보았다면 ‘장미 전쟁은 불가피했던가?’ 당신은 즉각적으로 무슨 조크하는 가 아닌가 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역사가는 노르만 정복이나 미국 독립 전쟁을 당연하게 일어났어야 하는 사건으로 서술한다. ‘일어났던 일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그리고 역사가로서 그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일어났고.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가 결정주의자라고. 그리고 다르게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다. 노르만 정복이나 미국 독립 전쟁이 실패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시도해 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쓴다면 - 사실 이것은 정확히 옳은 방법이다. 역사가 입장에서는 - 나는 비판 아래 놓이게 된다. 암시적으로 가졌다는 비판. 러시아 혁명시 일어났던 모든 것은 그 당신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다른 가능성을 조사하는데 실패했다는 비난. 러시아 혁명이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살펴보지 않았다고 비난당한다. 스톨핀이 농지 개혁을 완수할 시간을 가졌더라면, 또는 러시아가 전쟁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는 가정해보자 케렌스키 정부가 잘 했다고. 그리고 혁명의 리더쉽이 멘세비키나 사회혁명당에 의해 장악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볼세비키 대신에. 이러한 가정들은 이론적으로는 상상 가능하다. 그리고 사람들을 언제 가상을 즐길 수 있다. 이와 같은 역사의 ‘했더라면’ 이라는 것 가지고.

 

Chapter 4_16_147p Causation in History

But they have nothing to do with determinism; for the determinist will only reply that, for these things to have happened, the causes would also have had to be different. Nor have they anything to do with history. The point is that today nobody seriously wishes to reverse the results of the Norman Conquest or of American independence, or to express a passionate protest against these events; and nobody objects when the historian treats them as a closed chapter. But plenty of people, who have suffered directly or vicariously from the results of the Bolshevik victory, or still fear its remoter consequences, desire To register their protest against it; and this takes the form, when they read history, of letting their imagination run riot on all the more agreeable things that might have happened, and of being indignant with the historian who goes on quietly with his job of explaining what did happen and why their agreeable wish-dreams remain unfulfilled. 그러나 그들은 결정주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왜냐하면, 결정주의자들은 오직 대답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일어났기 위해서는 원인들이 달랐어야 된다고. 그리고 그들은 역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요점은 오늘날 아무도 진지하게 '노르만 정복'이나 '미국 독립 전쟁'의 결과를 되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사건들에 대해 열정적인 항의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역사가가 이 사건들을 종결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해서. 그러나 많은 사람들, 직접적으로 고생해 왔거나 간접적으로 고생한 사람들, 볼세비키 승리로부터, 또는 아직 두려워하는 더 멀리 바라본 결과에 대해서. 고생한 사람들은 등록하기 원한다. 그들의 항의를. 볼세비키 승리에 대한 항의를 등록. 그리고 이것은 형태를 띤다. 그들이 역사책을 읽을 때, 그들이 상상을 마음껏 펼친다.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분노한다. 역사가에게, 그 역사가들은 조용히 그의 일을 수행해 나간다. 설명하면서 ‘무엇이 일어났고’ 왜 상상하는 사람들의 꿈은 이루지 못했는지에 대해 조용히 설명한다.

 

The trouble about contemporary history is that people remember the time when all the options were still open, and find it difficult to adopt the attitude of the historian for whom they have been closed by the fait accompli. This is a purely emotional and unhistorical reaction. But it has furnished most of the fuel for the recent campaign against the supposed doctrine of ‘historical inevitability’. Let us get rid of this red herring once and for all. 현대사에 관련해 어려움은 사람들이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선택들이 아직 열려 있었던 때를. 그리고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한다. 역사가의 태도에 대해. 역사가들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 사건을 이미 ‘종결된 사실’로 간주한다. 이것은 완전히 감정적이고 비역사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기름을 퍼부었다. 최근에 캠페인에 ‘역사적 불가피성’이라는 학설에 반대하는 캠페인에. 우리는 이러한 함정으로부터 빠져 나와야 한다.

 

Chapter 4_17_148p Causation in History

The other source of the attack is the famous crux of Cleopatra's nose. This is the theory that history is, by and large, a chapter of accidents, a series of events determined by chance coincidences, and attributable only to the most casual causes. The result of the Battle of Actium was due not to the sort of causes commonly postulated by historians, but to Antony's infatuation with Cleopatra. When Bajazet was deterred by an attack of gout from marching into central Europe, Gibbon observed that 'an acrimonious humor falling on a single fibre of one man may prevent or suspend the misery of nations'. When King Alexander of Greece died in the autumn of 1920 from the bite of a pet monkey, this accident touched off a train of events which led Sir Winston Churchill to remark that 'a quarter of a million persons died of this monkey's bite'. Or take again Trotsky's comment on the fever contracted while shooting ducks which put him out of action at a critical point of his quarrel with Zinoviev, Kamenev, and Stalin in the autumn of 1923: 'One can foresee a revolution or a war, but it is impossible to foresee the consequences of an autumn shooting-trip for wild ducks.'" The first thing to be made clear is that this question has nothing to do with the issue of determinism. 공격의 또 다른 원천은 클레오파트라 코의 난문이다. 이것은 이론이다. 역사는 대체로 우연들로 이루어져 있고, 일련의 사건들이다. 우연적인 사건들에 의해 결정되는. 그리고 우발적인 원인들에 의해 역사적 사건들은 결정된다. 악티움 전투의 결과는 보통 역사가들에 의해 설정되는 원인들이 아니라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져 있었던 게 원인이라는 것이다. 바자제트가 통풍 때문에 중앙 유럽에의 진격을 중단했을 때, 기번은 ‘한 사람이 한 가닥의 힘줄에 심한 종기가 생겼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불행이 예방되었거나 연기되었다. 고 말했다. 그리스의 알렉산더 왕이 1920년 가을 애완 원숭이에게 물려 죽었다. 이것은 우발적 사건들을 연달이 촉발시켰다. 윈스턴 처칠 경은 이것을 두고 언급하기를 25만명이 이 원숭이에게 물려 죽었다. 라고 표현했다. 트로츠키의 코멘트를 들어 보자. 열병에 걸렸던 오리 사냥 동안에, 결과적으로 결정적인 시간에 활동을 못하게 되었다. 지노비에프, 카메네프, 그리고 스탈린 등과 논쟁을 하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간에 행동을 못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혁명이나 전쟁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예측은 불가능하다. 가을철 들오리 사냥의 결과를 추측하는 것은”. 분명히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이 문제는 결정주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Chapter 4_18_149p Causation in History

Antony's infatuation with Cleopatra, or Bajazet's attack of gout, or Trotsky's feverish chill, were just as much causally determined as anything else that happens. It is unnecessarily discourteous to Cleopatra's beauty to suggest that Antony's infatuation had no cause. The connexion between female beauty and male infatuation is one of the most regular sequences of cause and effect observable in everyday life. 안토니우스의 클레오파트라 대한 열정, 바자제트가 통풍에 걸린 것, 또는 트로츠키가 몸살이 난 것들은 인과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다른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렇듯이. 안토니우스의 열정에 아무런 원인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클레오파트라의 아름다움에 공연한 실례를 범하는 것이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남성의 반함은 가장 일반적인 원인과 결과의 연쇄 중의 하나이다.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These so-called accidents in history represent a sequence of cause and effect interrupting - and, so to speak, clashing with - the sequence which the historian is primarily concerned to investigate. Bury, quite rightly, speaks of a 'collision of two independent causal chains'.' Sir Isaiah Berlin, who opens his essay on Historical Inevitability by citing with praise an article of Bernard Berenson on 'The Accidental View of History, is one of those who confuse accident in this sense with an absence of causal determination. But, this confusion apart, we have a real problem on our hands. How can one discover in history a coherent sequence of cause and effect, how can we find any meaning in history, when our sequence is liable to be broken or deflected at any moment by some other, and from our point of view irrelevant, sequence? 이와 같은 역사에서의 인과는 표현한다. 원인과 결과의 연쇄를, 방해하는 - 말하자면 충돌하는 - 연쇄. 그 연쇄 고리에 대해 역사가가 중점적으로 찾으려 하고 있는 원인과 결과의 연쇄 고리를 방해하는 또 다른 연쇄 고리. ‘베리’는 아주 적절하게 표현한다. 두 개의 독립된 인과 사슬의 충돌이라고. 이샤야 벌린 경은 ‘역사적 불가피성’이라는 그의 에세이를 시작하면서 인용했다. 칭찬하면서 ‘버나드 베렌손’의 논문 ‘The Accidental View of History’(우연사관)을 인용했다. 이것은 우연과 인과적 결정의 결여를 혼동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은 차치하고, 우리는 진짜 문제에 직면한다. 어떻게 우리가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일관된 연쇄고리. 원인과 결과의 일관적 연쇄 고리를. 그리고 어떻게 우리는 어떤 의미를 발견할 것인가? 역사에서. 우리의 연쇄가 쉽게 끊어지거나 왜곡될 때, 어떤 다른 그리고 우리가 볼 때는 부적절한 연쇄들에 의해

 

 

Chapter 4_19_150p Causation in History

We may pause here for a moment to notice the origin of this recent widespread insistence on the role of chance in history. Polybius appears to have been the first historian to occupy himself with it in any systematic way; and Gibbon was quick to unmask the reason. ‘The Greeks', observed Gibbon, ‘after their country had been reduced to a province, imputed the triumphs of Rome not to the merit, but to the fortune, of the republic.' Tacitus, also a historian of the decay of his country, was another ancient historian to indulge in extensive reflexions on chance. The renewed insistence by British writers on the importance of accident in history dates from the growth of a mood of uncertainty and apprehension which set in with the present century and became marked after 1914. 우리는 여기서 잠시 쉬자. 알아보기 위해 이와 같은 최근의 광범위하게 등장하는 주장. 역사에 있어서 우연의 역할에 대한 원천을 알아보기 위해. 폴리비우는 아마 첫 번째 역사가인 듯하다. 그 스스로 우연에 대해 빠져 든 역사가 중. 그리고 기번은 재빨리 그 이유를 말하기를 그리스 사람들은, 기번이 말하기를, 그들 나라가 지방으로 격하되고 난 뒤 로마의 승리를 공화국의 장점으로 보지 않고 그냥 행운의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 타키투스는 또한 저물어가는 그의 조국의 역사가였다. 그는 또 다른 고대의 역사가였다. 우연에 대해 광범위한 고찰을 한 역사가. 새로운 강조, 영국의 역사 서술가들의, 역사에서 우연의 역할에 관해서 영국의 저술가들의 새삼스러운 강조는 불확실하고 불안한 분위기의 증가로부터 시작된다. 그 불안과 불확실성은 현 세기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1914년 이후에 더 현저해졌다.

 

The first British historian to sound this note after a long interval appears to have been Bury, who, in an article of 1909 on 'Darwinism in History', drew attention to 'the element of chance coincidence' which in large measure 'helps to determine events in social evolution'; and a separate article was devoted to this theme in 1916 under the title 'Cleopatra's Nose'.' H.A.L. Fisher, in the passage already quoted, which reflects his disillusionment over the failure of liberal dreams after the First World War, begs his readers to recognize 'the play of the contingent and the unforeseen' in history." 첫 번째 영국인은 이러한 논조에 대해서 말한. 오랜 침묵 뒤에. 아마 ‘베리’인 듯하다. 그는 1909년 ‘Darwinism in History’ 이라는 책에서 관심을 끌었다. 우연의 일치라는 요소에 대해서. 우연의 일치라는 요소는 전반적으로 크게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준다. 사회 혁명에서. 그리고 독자적인 논문에서 1916년 'Cleopatra's Nose' 라는 제목으로 이 문제에 대한 독립된 논문을 썼다. H.A.L 피셔는 앞에 인용한 구절에서 그의 환멸을 반영한다. 자유주의 꿈의 실패에 대해. 1차 세계대전 후에 그리고 독자들에게 요청했다. 역사에서 우연한 것과 예견할 수 없는 것의 작용을 인정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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