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_25_190p History as Progress
I have still to deal with the familiar and popular objection to any theory which finds the ultimate criterion of historical judgement in the future. Such a theory, it is said, implies that success is the ultimate criterion of judgement, and that, if not whatever is, whatever will be, is right. For the past 200 years most historians have not only assumed a direction in which history is moving, but have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believed that this direction was on the whole the right direction, that mankind was moving from the worse to the better, from the lower to the higher. The historian not only recognised the direction, but endorsed it. The test of significance which he applied in his approach to the past was not only a sense of the course on which history was moving, but a sense of his own moral involvement in that course. The alleged dichotomy between the 'is' and the 'ought', between fact and value, was resolved. It was an optimistic view, a product of an age of overwhelming confidence in the future; Whigs and Liberals, Hegelians and Marxists, theologians and rationalists, remained firmly, and more or less articulately, committed to it. For 200 years it could have been described without much exaggeration as the accepted and implicit answer to the question 'What is history?' 나는 익숙하고 인기 있는 어떤 반대를 아직 다루어야 한다. 그 반대는 어떤 이론이다. 그 이론은 궁극적인 판단을 찾는다. 미래의 역사적인 판단에서 궁극적인 기준을 찾는 것에 대한 이론을 반대하는 익숙하고 인기 있는 반대를 다루어야 한다. 그런 이론은 의미하기를 성공이 판단의 궁극적인 기준이었다. 현존하는 것은 모두 옳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미래에 있을 일은 모두 옳다고 믿는 것이었다. 지난 200년 동안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역사가 진행되고 있는 방향에 대해 가정했을 뿐만 아니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믿었다. 이 방향은 전반적으로 옳은 방향이었으며, 인류는 나쁜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진행된다고 믿었다. 역사가는 방향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증했다. 중요성의 기준, 그가 과거에 대한 그의 접근법에서 중요성을 테스트할 때 기준은 역사가 흘러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감각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그가 지니고 있는 그 자신의 도덕관념이기도 했다. 존재와 당위 사이의 이분법,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은 해결되었다. 그것은 낙관적인 견해였다. 어떤 결과였다. 미래에 대해 지난친 자신감이 넘치는 시대의 산물이었다. 휘그들 그리고 자유주의자들, 헤겔파들 그리고 마르크스들, 신학자들, 그리고 이성주의자들은 확고하게 믿었다. 그리고 다소 분명하게 그것에 믿었다. 200년 동안 그것은 서술되어 올 수 있었다. 과장됨이 없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공인된 그리고 묵시적인 대답으로서
Chapter 5_26_191p History as Progress
The reaction against it has come with the current mood of apprehension and pessimism, which has left the held clear for the theologians who seek the meaning of history outside history, and for the sceptics who find no meaning in history at all. We are assured on all hands, and with the utmost emphasis, that the dichotomy between 'is’ and 'ought' is absolute and cannot: be resolved, that 'values' cannot be derived from 'facts'. This is, I think, a false trail. Let us see how a few historians, or writers about history, chosen more or less at random, have felt about this question. Gibbon justifies the amount of space devoted in his narrative to the victories of Islam on the ground that 'the disciples of Mohammed still hold the civil and religious sceptre of the Oriental world'. 이러한 것에 대한 반동은 현재의 불안과 비관주의 경향으로부터 나왔다. 그것은 자리를 내어 주었다. 신학자들에게. 신학자들은 역사 바깥에서 역사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회의주의자들에게. 회의주의자들은 역사에서 전혀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강조 받는다. ‘존재’와 ‘당위’의 이분법은 절대적이라느니 또는 해결될 수 없다고 강조 받는다. 그리고 가치들은 사실들로부터 유추될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기엔 거짓된 경로이다. 몇 사람의 역사가나 저술가들을 생각해 본다. 다소 랜덤하게 선택되었다. 이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본 역사가나 저술가들. 기번은 정당화했다. 일정 공간을 할애하는 것을, 회교의 승리에 관한 얘기를 할 때, 왜냐하면 모하마드의 제자들이 아직 세속적, 종교적 영역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동양세계에서.
sceptre 1. 왕이 지니는 홀 2. 왕위 3. …을 왕위에 앉히다
But, he adds, ‘the same labour would be unworthily bestowed on the swarms of savages who, between the seventh and twelfth centuries, descended from the plains of Scythia', since 'the majesty of the Byzantine throne repelled and survived these disorderly attacks'. This seems not unreasonable. History is, by and large, a record of what people did, not of what they failed to do: to this extent it is inevitably a success story. Professor Tawney remarks that historians give 'an appearance of inevitableness to an existing order 'by dragging into prominence the forces which have triumphed and thrusting into the background those which they have swallowed up'. 그러나 그는 추가한다. 같은 노력을 부여할 가치가 없다고 야만인 무리들에게는. 7세기에서 18세기에 사이에 스키티아 평원에 왔던 야만인 무리들에 대해서는. 왜냐하면 비잔틴 제국의 권위가 그들을 쫓아내고 이러한 무질서한 공격들로부터 살아남았으므로. unworthily 1.진가에 어울리지 않게 2.걸맞지 않게 3.부당하게 이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얘기가 아니다. 역사가 대체로 무엇을 이룬 사람들의 기록이다. 그들이 실패한 기록이 아니라. 그리고 이와 같은 면에서는 성공 스토리라는 것은 불가피하다. 토니 교수는 언급한다. 역사가들은 불가피성의 외양을 부여한다. 현존 질서에. 전면으로 끌고 온다. 승리한 세력을. 그리고 후면으로 밀어내 버린다. 패배한 세력은.
Chapter 5_27_192p History as Progress
But is not this in a sense the essence of the historian's job? The historian must not underestimate the opposition; he must not represent the victory as a walk-over if it was touch-and-go. Sometimes those who were defeated have made as great a contribution to the ultimate result as the victors. These are familiar maxims to every historian. But, by and large, the historian is concerned with those who, whether victorious or defeated, achieved something. I am not a specialist in the history of cricket. But its pages are presumably studded with the names of those who made centuries rather than of those who made ducks and were left out of the side. Hegel's famous statement that in history 'only those peoples can come under our notice which form a state', has been justly criticised as attaching an exclusive value to one form of social organization and paving the way for an obnoxious state-worship. But, in principle, what Hegel is trying to say is correct, and reflects the familiar distinction between prehistory and history; only those peoples which have succeeded in organizing their society in some degree cease to be primitive savages and enter into history. Carlyle in his French Revolution called Louis XV 'a very World Solecism incarnate'. 이것이 역사가가 해야 할 본질적인 일이 아닐까? 역사가는 반대편을 경시하면 안 된다. 그는 간신히 이길 수 있었던 것을 독주했다고 하면 안 된다. 때때로 패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승자만큼이나 궁극적인 결과에. 이것은 역사가들에게 익숙한 금언이다. 그러나 대체로 역사가는 승리자건 패배자건 어떤 것을 획득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나는 크리켓 역사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다. 크리켓에 관한 역사 페이지에는 이름들로 가드가 있을 것이다. 수 백점을 딴 사람들의 이름이. 0점이나 실격한 사람들의 이름은 빠져 있을 것이다. 헤겔의 유명한 말인 ‘오직 국가를 형성한 사람들만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라는 표현은 정당하게 비판받는다. 독점적인 가치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사회조직을 형성한 사람들에게 독점적인 가치를 부여하여 혐오스런 국가 숭배를 길을 열었다는 의미해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헤겔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옳다. 그리고 선사시대와 역사시대 사이의 익숙한 구별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들의 사회를 형성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만 어떤 면에서는 원시 상태를 끝내고 역사 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카알라일은 ‘프랑스 혁명사’ 속에서 루이 14세를 세계적 무법의 화신이고 불렀다
Chapter 5_28_193p History as Progress
He evidently liked the phrase, for he embroidered it later in a longer passage: What new universal vertiginous movement is this: of institutions, social arrangements, individual minds, which once worked co-operative, now rolling and grinding in distracted collision? Inevitable; it is the breaking-up of a World Solecism, worn out at last. The criterion is once more historical: what fitted one epoch had become a solecism in another, and is condemned on that account. Even Sir Isaiah Berlin, when he descends from the heights of philosophical abstraction and considers concrete historical situations, appears to have come round to this view. In a broadcast delivered some time after the publication of his essay on Historical Inevitability, he praised Bismarck, in spite of moral shortcomings, as a 'genius' and 'the greatest example in the last century of a politician of the highest powers of political judgement', and contrasted him favourably in this respect with such men as Joseph II of Austria, Robespierre, Lenin, and Hitler, who failed to realise 'their positive ends'. I find this verdict odd. 그는 분명히 이 구절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을 후에 더 길게 부여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어지러운 운동인가? 제도들, 사회 조직, 개인적인 마음들 이런 것들이 한 때는 서로 협조적이었지만 지금은 미친 듯이 충돌하고 있다. 이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세계적 무법 정신이 붕괴되어 버렸다. 이 기준은 다시 한 번 역사적이다. 한 시대에 맞던 것들이 다른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 이유로 비난받는다. 이샤야 벌린 경조차도 철학적 추상의 세계의 언덕에서 내려온 뒤 그리고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을 생각하게 되면 위와 같은 견해에 동조하게 된다. 한 방송에서 그의 에세이 ‘역사적 불가피성’ 책 발간 후 얼마 지나 한 방송에서 그는 비스마르크를 칭찬했다. 그의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재이고 가장 위대한 예 중의 하나이다라고. 전 세기의 정치적 판단의 최고 수준의 높은 힘을 부여준 정치가 중의 가장 위대한 예중의 하나라고. 그리고 그를 비교했다. 요세프 2세, 로베스피에르, 레닌, 히틀러와 같은 ‘자기들의 적극적인 목적’을 실현하지 못한 사람들과 비교했다.
Chapter 5_29_194p History as Progress
But what interests me at the moment is the criterion of judgement. Bismarck, says Sir Isaiah, understood the material in which he was working; the others were led away by abstract theories which failed to work. The moral is that 'failure comes from resisting that which works best ... in favour of some systematic method or principle claiming universal validity'." In other words the criterion of judgement in history is not some 'principle claiming universal validity', but 'that which works best'. It is not only-I need hardly say-when analysing the past that we invoke this criterion of 'what works best'. 그러나 그 당시 나를 흥미 있게 한 것은 판단의 기준이었다. 비스마르크는 이샤야 벌린 경이 말하기를 사물을 이해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그의 작업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추상적인 이론들에 휩쓸려서 그의 일을 수행하는 데 실패했다고 한다. 교훈은 어떤 실패이다. 그 실패는 저항하는 것으로부터 온다. 가장 소용되는 것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온다. 체계적인 방법이나 원리를 선호하다 보니. 보편적인 타탕성을 주장하는 체계적인 방법이나 원리등을 선호하다 보니 가장 소용되는 것에 대한 저항이 나오고 이것일 실패의 원인이라는 교훈이다. 다시 말해 역사에서 판단의 기준은 보편적인 타당성을 주장하는 원리가 아니라 가장 소용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가장 소용되는 것이라는 기준을 환기 시킬 때 과거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If someone informed you that he thought that, at the present juncture, the union of Great Britain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in a single state under a single sovereignty was desirable, you might agree that this was quite a sensible view. If he went on to say that constitutional monarchy was preferable to presidential democracy as a form of government, you might also agree that this was quite sensible. But suppose he then told you that he proposed to devote himself to conducting a campaign for the reunion of the two countries under the British crown; you would probably reply that he would be wasting his time. If you tried to explain why, you would have to tell him that issues of this kind have to be debated on the basis not of some principle of general application, but of what would work in given historical conditions; you might even commit the cardinal sin of speaking of history with a capital H and tell him that History was against him.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말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현 시점에서 영국과 미국의 단일 주권국가로의 통합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면 당신은 이것은 현명한 생각이라고 찬성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입헌적 군주제가 대통령제보다 더 선호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 정부의 형태로 당신은 또한 이것이 말이 된다고 동의할지 모른다. 그러나 가정해 보자 그가 당신에게 말하기를 그는 헌신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하자. 어떤 캠패인에 두 나라(미국과 영국)을 합치되 영국의 주권 하에 합치자고 주장한다면 당신은 아마 그에게 말하기를 시간 낭비일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만약 왜라고 설명을 시도한다면 당신은 아마 그에게 이렇게 말하지 모른다. 이와 같은 종류의 이슈는 토론되어야 한다. 일반적인 응용의 원리에 기초에서가 아니라 역사적 조건에서 그것이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에 기초해서 다루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당신은 큰 죄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대문자로 쓴 역사를 얘기하면서, 그리고 그에게 말하기를 역사는 그에게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Chapter 5_30_195p History as Progress
The business of the politician is to consider not merely what is morally or theoretically desirable, but also the forces which exist in the world, and how they can be directed or manipulated to probably partial realizations of the ends in view. Our political decisions, taken in the light of our interpretation of history, are rooted in this compromise. But our interpretation of history is rooted in the same compromise. 정치가가 해야 할 일은 도덕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바람직한가를 고려할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는 세력들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방향지워지고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 에 대해서도, 당면한 목적의 일부라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의 정치적 결정들은 역사의 해석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러한 타협에 뿌리를 둔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해석은 같은 타협에 뿌리를 둔다.
Nothing is more radically false than to set up some supposedly abstract standard of the desirable and condemn the past in the light of it. For the word 'success', which has come to have invidious connotations, let us by all means substitute the neutral 'that which works best'. Since I have joined issue with Sir Isaiah Berlin on several occasions during these lectures, I am glad to be able to close the account with, at any rate, this measure of agreement. But acceptance of the criterion of 'what works best' does not make its application either easy or self-evident. It is not a criterion which encourages snap verdicts, or which bows down to the view that what is, is right. Pregnant failures are not unknown in history. History recognizes what I may call 'delayed achievement': the apparent failures of today may turn out to have made a vital contribution to the achievement of tomorrow - prophets born before their time. 아무 것도 더 근본적으로 오류가 아니다. 어떤 가상적인 추상적인 기준을 세우는 것만큼, 어떤 바람직한 기준을 세워놓고 그것에 비추어 과거를 비난하는 것만큼 오류는 없다. 우리는 성공이라는 약간 불쾌한 느낌을 주는 단어를 피하고 ‘가장 소용되는 것’이라는 좀 더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기로 하자. 나는 벌린 경과 여러 번 이슈에 대해 의견 대립을 해 왔다. 진행 중인 이 강좌들에서. 가는 이 문제에 대해 이정도의 합의를 이룬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잘 작동하는 것’이라는 기준을 수용한다고 해서 이것의 응용이 쉽다거나 자명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기준이 아니다. 순간적인 판단을 내리는 곳이나 현존하는 것은 모두 옳다. 라는 기준이 아니다. 역사에는 뜻깊은 실패들도 없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인정한다. 소위 ‘지연된 성취’에 대해, 오늘 명백하게 실패인 듯한 것이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 내일은. 특히 시대를 앞서 태어난 예언자들이 그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