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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history_시즌2

[역사란 무엇인가_시즌2] 84~90(60+6*5)p_4월 5일(화)

작성자Frida|작성시간22.04.04|조회수43 목록 댓글 0

Chapter 3_1_84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WHEN I was very young, I was suitably impressed to learn that, appearances notwithstanding, the whale is not a fish. Nowadays these questions of classification move me less; and it does not worry me unduly when I am assured that history is not a science. This terminological question is an eccentricity of the English language. In every other European language, the equivalent word to 'science' includes history without hesitation. But in the English-speaking world this question has a long past behind it, and the issues raised by it are a convenient introduction to the problems of method in history. At the end of the eighteenth century, when science had contributed so triumphantly both to man's knowledge of the world and to man's knowledge of his own physical attributes, it began to be asked whether science could not also further man's knowledge of society. 내가 젊었을 때, 나는 suitably 인상 받았다. 아래와 같은 사항을 알고 난 뒤, 그 외양에도 불구하고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지금은 이러한 분류 문제들은 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unduly 하게 날 괴롭히지 않는다. 내가 확신했을 때, 역사는 과학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와 같은 용어적인 문제는 영어라는 언어의 특이성이다. 모든 다른 유럽 언어들은 과학이라는 단어는 주저 없이 역사를 포함한다. 영어권 세계에서는 이 문제는 그 배경에 오래된 과거가 있다. 그리고 그것에 의해 제기된 이슈들은 역사에서 방법론의 문제들에 대한 편리한 기초가 된다. 18세기 말쯤에 과학은 기여했다. 너무나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식과 그 자신의 물질적 특성을 파악하는 지식 면에서, 그리고 묻기 시작했다. 과학이 인간의 사회적 지식에 대해 더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Chapter 3_2_85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he conception of the social sciences, and of history among them, gradually developed throughout the nineteenth century; and the method by which science studied the world of nature was applied to the study of human affairs. In the first part of this period the Newtonian tradition prevailed. Society, like the world of nature, was thought of as a mechanism; the title of a work by Herbert Spencer, Social Statics, published in 1951, is still remembered. Bertrand Russell, reared in this tradition, later recalled the period when he hoped that in time there would be 'a mathematics of human behaviour as precise as the mathematics of machines'.' Then Darwin made another scientific revolution; and social scientists, taking their cue from biology, began to think of society as an organism. But the real importance of the Darwinian revolution was that Darwin, completing what Lyell had already begun in geology, brought history into science. Science was concerned no longer with something static and timeless, but with a process of change and development. Nothing, however, occurred to alter the inductive view of historical method which I described in my first lecture: First collect your facts, then interpret them. Evolution in science confirmed and complemented progress in history. 사회 과학에 대한 개념, 그리고 특히 그 중에서 역사는 점진적으로 19세기를 통해서 발달되었다. 그리고 자연의 세계를 연구했던 방법은 인간의 일들을 연구하는 분야에도 응용되었다. 이 시기의 전반부는 뉴튼의 전통이 유행했다. 사회는 자연의 세계와 같이 기계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1951에 발간된 허버트 스펜서의 작품 ‘Social Statics’은 여전히 그렇게 기억된다. 버틀란드 러셀,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자랐다. 후에 그 시대를 되돌아보기를 그는 희망했다. 시간이 지나면 인간 행동을 수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계의 수학과 같이. 그리고 다윈은 또 다른 과학 혁명을 만들었다. 그리고 사회 과학자들은, 생물학으로부터 그들의 힌트를 가져오는 그리고 사회를 유기체로서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윈 혁명의 진정한 중요성은 라이엘이 지질학에서 이미 시작한 것을 완성하면서 과학에 역사를 도입한 것이다. 과학은 더 이상 정적이고 무한한 시간의 어떤 것이 아니고 변화와 발달의 과정과 관계된 것이다. 과학에서의 진화는 역사에서 진보를 확신시켰고 완성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사적인 방법의 귀납적인 관점으로는. 내가 1장에서 서술한 대로, 먼저 사실들을 모아라. 그리고 그들을 해석하라.

 

Chapter 3_3_86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It was assumed without question that this was also the method of science. This was the view which Bury evidently had in mind when, in the closing words of his inaugural lecture of January 1903, he described history as 'a science, no more and no less'. The fifty years after Bury's inaugural lecture witnessed a strong reaction against this view of history. Collingwood, when he wrote in the 1930s, was particularly anxious to draw a sharp line between the world of nature, which was the object of scientific inquiry, and the world of history; and during this period Bury's dictum was rarely quoted except in terms of derision. But what historians failed to notice at the time was that science itself had undergone a profound revolution, which makes it seem that Bury may have been more nearly right than we had supposed, though for the wrong reason. What Lyell did for geology and Darwin for biology has now been done for astronomy, which has become a science of how the universe came to be what it is; and modern physicists constantly tell us that what they investigate are not facts, but events. The historian has some excuse for feeling himself more at home in the world of science today than he could have done a hundred years ago. 의문의 여지없이 이것은 과학적인 방법이었다. 이것은 견해였다. 뷰리가 분명히 마음에 가지고 있던, 그가 1903년 취임사에서 마무리 발언으로 했던, 역사는 과학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뷰리의 취임사 이후 50년이 흘렀다. 역사에 대한 이와 같은 견해에 대해 강력한 반발이 보인다. 콜링우드는 1930년대 글을 썼다. 그는 특별히 선명한 선을 긋고 싶어 했다. 자연의 세계, 이것은 과학적 탐구의 세계이다. 자연의 세계와 역사의 세계, 그리고 이 시기 동안에는 뷰리의 경구는 조롱거리 외에는 거의 인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가들이 알아차리는 것에 실패한 것은 그 당시 과학자체도 엄청난 혁명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베리가 거의 맞다는 것을 보여 줄지도 몰랐다. 물론 그 맞는 이유가 틀렸을 수도 있었지만. 라이엘은 지질학에서 했던 것, 그리고 다윈이 생물학에서 했던 것을 지금 천문학에서 해 오고 있었다. 그것은 우주가 어디서 왔으며, 우주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대 물리학자들은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얘기한다. 그들은 조사하는 것은 사실들이 아니라, 사건들이라고 역사가는 약간의 변명을 가지고 있다. 더 편하다고 과학의 세계에서 오늘날은 100년 전에 할 수 있었던 것들 보다는.

 

Chapter 3_4_87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Let us look first at the concept of laws. Throughout the eighteenth and nineteenth centuries, scientists assumed that laws of nature-Newton's laws of motion, the law of gravitation, Boyle's law, the law of evolution, and so forth-had been discovered and definitely established, and that the business of the scientist was to discover and establish more such laws by process of induction from observed facts. The word 'law' came down trailing clouds of glory from Galileo and Newton. Students of society,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desiring to assert the scientific status of their studies, adopted the same language and believed themselves to be following the same procedure. The political economists seem to have been first in the field with Gresham's law, and Adam Smith's laws of the market. Burke appealed to 'the laws of commerce, which are the laws of nature, and consequently the Laws of God'. Malthus propounded a law of population; Lassalle an iron law of wages; and Marx in the preface to Capital claimed to have discovered 'the economic law of motion of modern society'. Buckle in the concluding words of his History of Civilization expressed the conviction that the course of human affairs was 'permeated by one glorious principle of universal and undeviating regularity'. Today this terminology sounds as old-fashioned as it is presumptuous; but it sounds almost as old-fashioned to the physical scientist as it does to the social scientist. 먼저 법칙들의 개념에 대해 살펴보자. 18~19세기에 과학자들은 가정했다. 자연의 법칙-뉴튼의 운동법칙, 중력법칙, 보일의 법칙, 진화의 법칙등등 들이 발견되었고 확정적으로 정립되어 왔다고 과학자들을 가정했다. 그리고 과학자가 해야 할 일은 발견하고 정립하는 것이다. 더 많은 법칙들을 연역 과정을 통해서. 발견된 사실들로부터 연역과정을 통해서 더 많은 법칙들을 발견하고 정립하는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가정했다. 법칙이라는 단어는 지상으로 내려왔다. 갈릴레오 뉴튼의 영광으로부터 사회학도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원하고 있었다. 주장하기를 과학적인 지위, 그들의 학문의 과학적인 지위, 그리고 도입했다. 같은 언어를. 그리고 믿었다. 그들 스스로 같은 절차를 따라가고 있다고. 먼저 법칙들의 개념들을 살펴보자. 18세기와 19세기를 통해서, 과학자들은 가정했다. 자연의 법칙들-뉴튼의 운동법칙, 중력법칙, 보일의 법칙, 진화의 법칙, 등등 들이 발견되어 왔고, 단정적으로 정립되었으며 그리고 과학자들의 임무는 발견하고 정립하는 것이었다. 더 많은 그러한 법칙들을 귀납적인 과정들을 통해서, 발견된 사실들로부터. 정치적인 경제학자들은 그 분야에서 아마 첫 번째 일 것이다. 그레샴의 법칙, 아담 스미스의 시장 법칙, 그리고 버크는 상업의 법칙을 호소했다. 이것들은 자연의 법칙이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신의 법칙이었다. 멜더스는 인구법칙을 주장했다. 라살레는 임금의 관한 철의 법칙을, 그리고 마르크스는 자본론의 서문에서 현대 사회의 경제 운동 법칙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버클은 결론적인 말에서 그의 ‘문명의 역사’라는 책에서 결론적인 말로 표현했다. 인간사의 진행에 스며드는 하나의 영광스런 원리가 있다. 그것은 보편적이고 옆으로 벗어나지 않는 정규성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이와 같은 단어들은 들린다. 약간 구식으로 그리고 주제넘은 듯하게. 그러나 그것은 물리학자들에게 거의 구식으로 보인다. 그것이 사회 과학자들에게 그러듯이

 

Chapter 3_5_88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In the year before Bury delivered his inaugural lecture, the French mathematician Henri Poincare published a small volume called ‘La Science et I'hypothese’ which started a revolution in scientific thinking. Poincare's main thesis was that the general propositions enunciated by scientists, where they were not mere definitions or disguised conventions about the use of language, were hypotheses designed to crystallize and organize further thinking, and were subject to verification, modification, or refutation. All this has now become something of a commonplace. Newton's boast 'Hypotheses non fingo' rings hollow today; and though scientists, and even social scientists, still sometimes speak of laws, so to speak, for old time's sake, they no longer believe in their existence in the sense in which scientists of the eighteenth and nineteenth century universally believed in them. It is recognized that scientists make discoveries and acquire fresh knowledge, not by establishing precise and comprehensive laws, but by enunciating hypotheses which open the way to fresh inquiry. A standard text-book on scientific method by two American philosophers describes the method of science as 'essentially circular': 뷰리가 그의 취임 강연을 하기 전에 프랑스 수학자 헨리 포앙카레는 작은 책자를 출판했다. ‘과학과 가설’ 이라 부르는. 그 책에서는 그는 과학적 사고에 있어서의 혁명을 시작했다. 포앙카레의 메인 주제는 과학자들에 의해 언명된 선언들은 가정들이다. 그들은 단순한 정의들이나 위장된 관습들이 아닌 한 그 가정들은 장차의 사고를 더 분명하게 하고 더 많은 사고를 조직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은 증명이나, 변형, 반박에 의해 수정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모든 것들은 요즘은 일반적인 것이다. 뉴튼의 ‘나는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 라는 자부는 요즘은 공허하게 들린다. 그리고 과학자들, 특히나 사회 과학자들도 아직 때때로 법칙들에 대해 얘기하지만 옛정 때문에(for old time's sake), 그들은 더 이상 법칙들의 존재에 대해 믿지 않는다. 아래와 같은 의미에서 18~19세기 사람들이 믿었던 의미로서의 법칙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받아들여진다. 과학자들은 발견해 나간다. 그리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한다. 정확하고 광범위한 법칙들을 정립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설들을 천명함으로써, 그 가설들은 길을 열어준다. 새로운 지식에 대한. 표준적인 텍스북인, 과학적인 방법에 관한, 두 명의 미국 철학자들에 의해 씌어진 묘사한다. 과학자의 방법을 본질적으로 순환적이라고

 

Chapter 3_6_89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We obtain evidence for principles by appealing to empirical material, to what is alleged to be 'fact'; and we select, analyze, and interpret empirical material on the basis of principles.' The word 'reciprocal' would perhaps have been preferable to 'circular'; for the result is not to return to the same place, but to move forward to fresh discoveries through thi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principles and facts, between theory and practice. Ah thinking requires acceptance of certain presuppositions based on observation, which make scientific thinking possible but are subject to revision in the light of that thinking. These hypotheses may well be valid in some contexts or for some purposes, though they turn out to be invalid in others. The test in all cases is the empirical one whether they are in fact effective in promoting fresh insights and adding to our knowledge. The methods of Rutherford were recently described by one of his most distinguished pupils and fellow- workers: He had a driving urge to know how nuclear phenomena worked, in the sense in which one could speak of knowing what went on in the kitchen. I do not believe that he searched for an explanation in the classical manner of a theory using certain basic laws; as long as he knew what was happening he was content." 우리는 증거를 얻는다. 원리들에 대한, 경험적인 물질에 호소하는 것에 의해. ‘사실’이라는 부르는. 그리고 우리는 선택하고, 분석하고, 그리고 해석한다. 경험적인 물질을. 원리에 기초해서. 단어 ‘상호적’이라는 말이 ‘순환적’이라는 말보다 더 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결과가 같은 장소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간다. 새로운 발견들을 하면서 이와 같은 상호작용을 통해서 원리들과 사실들 사이에서, 이론과 실제 사이에서. 모든 사고는 필요로 한다. 어떤 전제들의 인정을. 관찰에 기초한 전제들. 그리고 그 전제들을 과학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그 사고에 비추어 다시 수정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이 가정들은 어떤 맥락에서는 유효하다. 또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유효하다. 또 다른 맥락에서는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지만. 러더포드의 방법들은 최근에 그의 가장 뛰어난 제자들과 동료들에 의해 서술되었다. 그는 치고 나가려는 열정이 있었다. 핵 현상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아래와 같은 의미에서 어떤 사람이 부엌에서 일어나는 것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의미로. 나는 모른다. 그는 설명들을 찾았었는지. 고전적인 방법으로. 어떤 기초법칙들을 사용해서. 그가 아는 한 일어나고 있었던 것에 대해 그는 만족했다.

 

Chapter 3_7_90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his description equally fits the historian, who has abandoned the search for basic laws, and is content to inquire how things work. The status of the hypotheses used by the historian in the process of his inquiry seems remarkably similar to that of the hypotheses used by the scientist. Take, for example, Max Weber's famous diagnosis of a relation between Protestantism and capitalism. Nobody today would call this a law, though it might have been hailed as such in an earlier period. It is a hypothesis which, though modified to some extent in the course of the inquiries which it inspired, has beyond doubt enlarged our understanding of both these movements. Or take a statement like that of Marx: 'The hand-mill gives us a society with a feudal lord; the steam-mill gives us a society with an industrial capitalist.'' This is not in modern terminology a law, though Marx would probably have claimed it as such, but a fruitful hypothesis pointing the way to further inquiry and fresh understanding. Such hypotheses are indispensable tools of thought. The well-known German economist of the early 1900s, Werner Sombart, confessed to a 'troubled feeling' which overtook those who had abandoned Marxism. 이와 같은 서술은 똑같이 역사가들에게 맞아 떨어진다. 이 역사가는 기본적인 법칙들을 찾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탐구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가설들의 지위, 역사가에 의해 사용되는 가설들의 지위는 그의 탐구 과정이다. 그리고 이 가설들은 과학자들에 의해 사용되는 가설들과 눈에 띌 정도로 유사하다. 예들 들어보자. 막스 베버의 유명한 진단,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의 관계라는 유명한 진다. 오늘날 아무도 이것을 법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전시대에는 법칙이라고 환호 받았다. 가설이다. 약간의 변형이 가해졌지만, 탐구 과정에 이 가설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의 이해를 넓혀줬다. 이 운동의 이해를 위한. 또는 마르크스가 말한 것을 예를 들어보자. 방앗간은 봉건 사회를 가져왔고, 증기기관차는 근대 자본가를 가지는 사회를 가져왔다. 이것은 근대적인 용어로 법칙이 아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법칙이라고 주장했고, 이것은 풍성한 가설을 낳았다. 어떤 길을 가리키는 가설로서, 더 많은 탐구와 신선한 이해로 가는 길을 가리켰다. 그러한 가설들은 사고를 위한 필수적인 툴이다. 잘 알려진 독일 경제학자, 1900년대 초의, 바그너 솜바르트는 고백했다. 혼란스런 감정을, 덮쳐온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덮쳐온 사람들의 혼란스런 감정을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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