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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history_시즌2

[역사란 무엇인가_시즌2] 195~200(90+22*5)p_ 6월 22일(수)

작성자Frida|작성시간22.06.22|조회수42 목록 댓글 0

[역사란 무엇인가_시즌2] 195~200(90+22*5)p_ 월 22일( )

Chapter 5_30_195p History as Progress

The business of the politician is to consider not merely what is morally or theoretically desirable, but also the forces which exist in the world, and how they can be directed or manipulated to probably partial realizations of the ends in view. Our political decisions, taken in the light of our interpretation of history, are rooted in this compromise. But our interpretation of history is rooted in the same compromise. 정치가가 해야 할 일은 도덕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바람직한가를 고려할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는 세력들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방향지워지고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 에 대해서도, 당면한 목적의 일부라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의 정치적 결정들은 역사의 해석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러한 타협에 뿌리를 둔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해석은 같은 타협에 뿌리를 둔다.

 

Nothing is more radically false than to set up some supposedly abstract standard of the desirable and condemn the past in the light of it. For the word 'success', which has come to have invidious connotations, let us by all means substitute the neutral 'that which works best'. Since I have joined issue with Sir Isaiah Berlin on several occasions during these lectures, I am glad to be able to close the account with, at any rate, this measure of agreement. But acceptance of the criterion of 'what works best' does not make its application either easy or self-evident. It is not a criterion which encourages snap verdicts, or which bows down to the view that what is, is right. Pregnant failures are not unknown in history. History recognizes what I may call 'delayed achievement': the apparent failures of today may turn out to have made a vital contribution to the achievement of tomorrow - prophets born before their time. 아무 것도 더 근본적으로 오류가 아니다. 어떤 가상적인 추상적인 기준을 세우는 것만큼, 어떤 바람직한 기준을 세워놓고 그것에 비추어 과거를 비난하는 것만큼 오류는 없다. 우리는 성공이라는 약간 불쾌한 느낌을 주는 단어를 피하고 ‘가장 소용되는 것’이라는 좀 더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기로 하자. 나는 벌린 경과 여러 번 이슈에 대해 의견 대립을 해 왔다. 진행 중인 이 강좌들에서. 가는 이 문제에 대해 이정도의 합의를 이룬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잘 작동하는 것’이라는 기준을 수용한다고 해서 이것의 응용이 쉽다거나 자명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기준이 아니다. 순간적인 판단을 내리는 곳이나 현존하는 것은 모두 옳다. 라는 기준이 아니다. 역사에는 뜻깊은 실패들도 없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인정한다. 소위 ‘지연된 성취’에 대해, 오늘 명백하게 실패인 듯한 것이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 내일은. 특히 시대를 앞서 태어난 예언자들이 그 예이다.

 

Chapter 5_31_196p History as Progress

Indeed, one of the advantages of this criterion over the criterion of a supposedly fixed and universal principle is that it may require us to postpone our judgement or to qualify it in the light of things that have not yet happened. Proudhon, who talked freely in terms of abstract moral principles, condoned the coup d'etat of Napoleon III after it had succeeded; Marx, who rejected the criterion of abstract moral principles, condemned Proudhon for condoning it. Looking back from a longer historical perspective, we shall probably agree that Proudhon was wrong and Marx right. 사실, 이와 같은 기준의 장점들 중의 하나는, 고정되었고 보편적인 원리들이라는 기준보다 이와 같은 기준들의 장점들 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판단을 연기시키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또는 정당화 하는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들의 관점에서. 프루동, 그는 추상적인 도덕적 원리들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했었다. 프루동은 용인했다.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를, 그것이 성공한 뒤에나. 그리고 마르크스는 추상적인 도덕적 원리들을 거부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용인한 프루동을 비난했다. 긴 역사적 관점에서 되돌아보면 우리는 아마 프루동이 틀렸고 마르크스가 맞았음을 동의할 것이다.

 

The achievement of Bismarck provides an excellent starting-point for an examination of this problem of historical judgement; and, while I accept Sir Isaiah's criterion of 'what works best', I am still puzzled by the narrow and short-term limits within which he is apparently content to apply it. Did what Bismarck created really work well? I should have thought that it led to an immense disaster. This does not mean that I am seeking to condemn Bismarck, who created the German Reich, or the mass of Germans who wanted it and helped to create it. But, as a historian, I still have many questions to ask. 비스마르크의 업적은 좋은 출발점을 제공해 준다. 역사적 판단의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조사할 때, 그리고 나는 이샤야 벌린경의 가장 제대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만 나는 여전히 당황스럽다. 좁고 단기간의 한계에 그가 그것을 적용하는듯하게 보일 때. 비스마르크는 참으로 유용했을까? 나는 그가 큰 재난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비스마르크를 비난한다고, 그는 독일 제국을 건설한 비스마르크를. 그리고 나는 독일 국민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스마르크를 원했고 그를 도와 제국 건설을 도왔다. 그러나 나는 역사가로서, 나는 여전히 물어볼 많은 질문들이 있다.

 

Chapter 5_32_197p History as Progress

Did the eventual disaster occur because some hidden flaws existed in the structure of the Reich I or because something in the internal conditions which brought it to birth destined it to become self-assertive and aggressive? or because, when the Reich was created, the European or world scene was already so crowded, and expansive tendencies among the existing Great Powers already so strong, that the emergence of another expansive Great Power was sufficient to cause a major collision and bring down the whole system in ruins? On the last hypothesis, it may be wrong to hold Bismarck and the German people responsible, or solely responsible, for the disaster: you cannot really blame the last straw. 종국적인 그 재앙은 일어났는가? 어떤 숨겨진 결함들이 제국의 구조에 있었기 때문에, 또는 내부적인 어떤 조건들 때문에 이기적이고 공격적이 될 운명이었을까? 또는 제국이 건설되었을 때, 유럽이나 세계는 너무나 이미 꽉 차 있었고, 그리고 현존하는 강대국 사이에서 팽창적인 경향도 이미 너무나 강해 있었기 때문에, 다른 팽창하는 강대국의 등장은 대규모 충돌을 불러오기에 충분했고 조직 전체가 붕괴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마지막 가정에 의한 것이라면 비스마르크와 독일 국민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은 잘못이다. 그 재난에 대해 온전히 책임을 지우는 것은. 우리는 마지막 지푸라기(낙타 등에 얹혀진)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But an objective judgement on Bismarck’s achievement and how it worked awaits an answer from the historian to these questions, and I am not sure that he is yet in a position to answer them all definitively. What I would say is that the historian of the 1920s was nearer to objective judgement than the historian of the 1880s, and that the historian of today is nearer than the historian of the 1920s; the historian of the year 2000 may be nearer still. 객관적인 판단. 비스마르크의 업적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잘 작용했느냐에 대한 것은 역사가로부터의 답변을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나는 확신이 없다. 그는 아직 이런 위치에 있지 않다고 그들에 대해 확정적으로 답한 위치에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1920년대의 역사가는 더 객관적인 판단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1980년대의 역사가보다는. 그리고 오늘날의 역사가는 더 가까워진다. 1920년대의 역사가보다는. 그리고 서기 2000년의 역사가는 더욱 더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This illustrates my thesis that objectivity in history does not and cannot rest on some fixed and immovable standard of judgement existing here and now, but only on a standard which is laid up in the future and is evolved as the course of history advances. History acquires meaning and objectivity only when it establishes a coherent relation between past and future. 이것은 나의 주제를 선명하게 한다. 역사에서 객관성은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어떤 고정된 움직이지 않는 판단기준에 의존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오직 미래에 설정되는 기준에 의존한다. 그리고 점점 더 진화한다. 역사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역사는 의미와 객관성을 획득한다. 오직 과거와 미래의 일관성 있는 관계를 정리할 때.

 

Chapter 5_33_198p History as Progress

Let us now take another look at this alleged dichotomy between fact and value. Values cannot be derived from facts. This statement is partly true, but partly false. You have only to examine the system of values prevailing in any period or in any country to realize how much of it is moulded by the facts of the environment. In an earlier lecture I drew attention to the changing historical content of value-words like liberty, equality, or justice. Or take the Christian church as an institution largely concerned with the propagation of moral values. 여기서 잠깐 눈을 다르게 돌려 보자. 사실과 가치 사이의 이분법이라는 것. 가치들은 사실들로부터 유추될 수 없다. 이것은 일부 사실이고 일부는 거짓이다. 당신은 단지 가치들의 체계를 조사해 보면 된다. 어떤 시대의 또는 어떤 나라의, 그것들이 얼마나 환경의 사실들에 의해 형성되는지를 깨닫기 위해서 어떤 시대, 어떤 나라들의 지배적인 가치 시스템을 조사해 보면 된다. 지난 강좌에서 나는 관심을 쏟은 적이 있다. 변해가는 역사적 내용들에 관해서, 가치를 나타내는 단어들인 자유, 평등, 정의등에 대한 가치를 나타내는 단어들의 변해가는 역사적 내용들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킨 적이 있다. 기독교 교회를 예를 들어보자. 기독교 교회는 주로 관련해 왔다. 도덕적 가치의 보급기관으로.

 

Contrast the values of primitive Christianity with those of the medieval papacy, or the values of the medieval papacy with those of the Protestant churches of the nineteenth century. Or contrast the values promulgated today by, say, the Christian church in Spain, with the values promulgated by the Christian churches in the United States. These differences in values spring from differences of historical fact. Or consider the historical facts which in the last century and a half have caused slavery or racial inequality or the exploitation of child labour - all once accepted as morally neutral or reputable - to be generally regarded as immoral.비교해 보라. 초기 기독교의 가치들과 중세 교황 시대의 가치들을, 그리고 중세 교황시대의 가치들과 19세기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가치들을. 가치들을 비교해 보라. 오늘날 전파된. 스페인의 교회들에 의해 전파된 가치들과 미국의 기독교 교회들에 의해 전파된 가치들을 비교해 보라. 이러한 차이들을 역사적 사실의 차이들로부터 생겨난다. 또는 역사적 사실들을 고려해 보라. 지난 1세기 반 동안에 노예제도와 인종차별과 아동 노동의 착취들을 유발시켰던 역사적 사실들, 이런 것들은 모두 도덕적으로 중립적으로 훌륭한 것으로 인정되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도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고려해 보라.

 

Chapter 5_34_199p History as Progress

The proposition that values cannot be derived from facts is, to say the least, one-sided and misleading. Or let us reverse the statement. Facts cannot be derived from values. This is partly true, but may also be misleading, and requires qualification. When we seek to know the facts, the questions which we ask, and therefore the answers which we obtain, are prompted by our system of values. Our picture of the facts of our environment is moulded by our values, i.e. by the categories through which we approach the facts; and this picture is one of the important facts which we have to take into account. Values enter into the facts and are an essential part of them. Our values are an essential part of our equipment as human beings. 가치들은 사실들로부터 유도될 수 없다는 명제는 일방적이고 오해를 부른다. 또는 그 진술을 거꾸로 해 보자. 사실들은 가치들로부터 유추될 수 없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다. 그러나 또한 잘못된 곳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조건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사실들을 알고자 할 때, 우리는 던지는 질문들은 그리고 우리가 찾고자 하는 해답들은 우리의 가치 체계에 의해 결정된다. 환경에 대한 사실들의 우리의 그림은 우리의 가치들에 의해 형성된다. 즉, 카테고리를 통해서 우리는 사실들에 접근한다. 그리고 이 그림은 가치들은 사실들 속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중요한 부분이 된다. 우리의 가치들은 중요한 부분이다. 인간으로서 우리들 구조의 일부분으로서

 

It is through our values that we have that capacity to adapt ourselves to our environment, and to adapt our environment to ourselves, to acquire that mastery over our environment, which has made history a record of progress. But do not, in dramatizing the struggle of man with his environment, set up a false antithesis and a false separation between facts and values. Progress in history is achieved through the interdependence and interaction of facts and values. The objective historian is the historian who penetrates most deeply into this reciprocal process. 우리의 가치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환경에 우리 스스로 적응하는 능력을 가진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 환경들을 적응시키기도 한다. 환경에 대한 지배력을 획득하여 역사를 진보의 기록으로 만드는 것도 우리의 가치들을 통해서이다. 그의 환경과 인간과의 투쟁을 과장하여 사실들과 가치들의 대립과 거짓된 분리를 세우지 마라. 역사에서의 진보는 획득된다.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사실들과 가치들의. 그리고 객관적인 역사가는 이와 같은 상호 작용을 깊게 꿰뚫어 보는 역사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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