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_12_215p The widening horizon
This transition to what I have called the contemporary world-the extension to new spheres of the function and power of reason-is not yet complete: it is part of the revolutionary change through which the twentieth-century world is passing. I should like to examine some of the main symptoms of the transition. Let me begin with economics. Down to 1914 belief in objective economic laws, which governed the economic behaviour of men and nations, and which they could defy only to their own detriment, was still virtually unchallenged. Trade cycles, price fluctuations, unemployment, were determined by those laws. As late as 1930, when the great depression set in, this was still the dominant view. Thereafter things moved fast. 내가 소위 현대 세계라 부르는 곳으로 이행-이성의 기능과 힘의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장-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것은 혁명적인 변화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20세기는 그 혁명적인 변화를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 전환의 주요한 현상들의 일부분에 대해 조사해 보고자 한다. 먼저 경제학으로부터 시작해 보자. 1914년까지 경제적인 법칙들에 대한 믿음은 개인과 국가의 경제적인 행위들을 지배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무시하면 오직 손해만 입을 것이라는 믿음이 아직까지도 거의 실제로 도전받지 않은 채 있었다. 경기순환, 가격 변동들, 실업과 같은 것들은 이러한 법칙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대공황이 시작된 1930년까지도 이와 같은 견해는 지배적이었다. 그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In the 1930s, people began to talk of ‘the end of economic man', meaning the man who consistently pursued his economic interests in accordance with economic laws; and since then nobody, except a few Rip Van Winkles of the nineteenth century, believes in economic laws in this sense. Today economics has become either a series of theoretical mathematical equations, or a practical study of how some people push others around. The change is mainly a product of the transition from individual to large-scale capitalism. 1930년에 사람들은 경제적인 인간의 종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인간이라 끊임없이 그의 경제 이익들을 추구하는 사람을 말한다. 경제 법칙에 따라서 그리고 그 이후 아무도 믿지 않았다. 립 반 윙클 외에는, 그는 19세기 사람이었다. 19세기 사람인 립 반 윙클외에는 아무도 이와 같은 의미의 경제 법칙들을 믿지 않는다. 오늘날 경제학은 일련의 이론적인 수학방정식으로 되어 왔다. 또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밀어 낼 수 있을까라는 실제적인 연구가 되어 왔다. 이와 같은 변화는 주로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대규모의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산물이다.
Chapter 6_13_216p The widening horizon
So long as the individual entrepreneur and merchant predominated, nobody seemed in control of the economy or capable of influencing it in any significant way; and the illusion of impersonal laws and processes was preserved. Even the Bank of England, in the days of its greatest power, was thought of not as a skilful operator and manipulator, but as an objective and quasi-automatic registrar of economic trends. 개인적인 기업가나 상인들이 지배력을 갖던 시대에는 경제를 통제한다든지,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리고 비개인적인 법칙과 과정이라는 환상이 보존되었다. 최전성기의 영국 은행조차도 능숙한 조작자나 조종자로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반자동적인 기록가로서 생각되었다. 경제 동향에 대해서.
But with the transition from a laissez-faire economy to a managed economy(whether a managed capitalist economy or a socialist economy, whether the management is done by large-scale capitalist and, nominally private, concerns or by the state), this illusion is dissolved. It becomes clear that certain people are taking certain decisions for certain ends, and that these decisions set our economic course for us. Everyone knows today that the price of oil or soap does not vary in response to some objective law of supply and demand. Everyone knows, or thinks he knows, that slumps and unemployment are man-made: governments admit, indeed claim, that they know how to cure them. The transition has been made from laissez-faire to planning, from the unconscious to the self-conscious, from belief in objective economic laws to belief that man by his own action can be the master of his economic destiny. 그러나 자유 방임주의 경제가 통제 경제(그것이 자본주의적 통제 경제이건 혹은 사회주의적 경제이건, 즉 통제가 대중의 대자본가에 의해 행해지건 혹은 국가에 의해 행해지건. 분명하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취한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 그리고 이러한 결정들이 우리의 경제적 진행을 결정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안다. 오일이나 비누의 가격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객관적인 수요 법칙에 대응하면서 변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안다. 그리고 안다고 생각한다. 슬럼프나 실업은 인간의 만든 것이라고. 정부는 인정한다. 사실 주장한다. 그들은 어떻게 그들을 치유할 것인지에 대해. 그 전환은 자유방임에서 계획 경제로, 무의식에서 의식적으로, 객관적인 경제법칙으로부터 인간의 그 자신에 의해 그의 경제에 대한 운명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Chapter 6_14_217p The widening horizon
Social policy has gone hand in hand with economic policy: indeed economic policy has been incorporated in social policy. Let me quote from the last volume of the first Cambridge Modern History, published in 1910, a highly perceptive comment from a writer who was anything but a Marxist and had probably never heard of Lenin: The belief in the possibility of social reform by conscious effort is the dominant current of the European mind; it has superseded the belief in liberty as the one panacea. . . Its currency in the present is as significant and as pregnant as the belief in the rights of man about the time of the French revolution. 사회 정책은 경제 정책과 손잡고 진행되어 왔다. 사실, 경제 정책은 사회 정책안에 포함되었다. CMS의 마지막 권에서 인용하기로 한다. 1910년에 발간되었다. 지각 높은 구절이다. 이것을 쓴 이는 마르크스주의자인 적은 결코 없고 레닌은 아마 결코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 사회 혁명을 달성할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유럽인들의 주류적인 추세이다. 그것은 자유를 만병통치약이라고 하던 믿음을 대체했다. 오늘날 이러한 추세는 똑같이 의미 있고 믿음을 품고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시대에 인권에 관한 믿음만큼이나.
Today, fifty years after this passage was written, more than forty years after the Russian revolution, and thirty years after the great depression, this belief has become a commonplace; and the transition from submission to objective economic laws which, though supposedly rational, were beyond man's control to belief in the capacity of man to control his economic destiny by conscious action seems to me to represent an advance in the application of reason to human affairs, an increased capacity in man to understand and master himself and his environment which I should be prepared, if necessary, to call by the old-fashioned name of progress. 오늘날(1961년), 이 문장이 씌어진지(1910년) 50년, 러시아 혁명(1917년)이 있는 지 40년 이상, 대공황(1929년)이 있은 지 30년 후, 이와 같은 믿음은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객관적인 경제법칙에 대한 종속(그 객관적인 법칙들을 합리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통제 밖에 있었다)부터 인간의 능력에 대한 믿음(자신의 의식적인 행동에 의해 그의 경제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는)으로의 전환은 나에게는 진전으로 보인다. 사람들의 일에 있어서 이성의 응용에 있어서 진전이다. 그리고 증가된 능력을 보여준다. 인간은 그 증가된 능력으로 스스로 그 자신과 환경을 이해하고 지배할 능력을 증가시킨다. 나는 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필요하다면 이것을 오래된 용어로 진보라고 부를 준비가 되어 있다.
Chapter 6_15_218p The widening horizon
I have no space to touch in detail on the similar processes at work in other fields. Even science, as we have seen, is now less concerned to investigate and establish objective laws of nature, than to frame working hypotheses by which man may be enabled to harness nature to his purposes and transform his environment. More significant, man has begun, through the conscious exercise of reason, not only to transform his environment but to transform himself. 나는 충분한 여력이 없다. 좀 더 자세히 다룰. 다른 영역에서 진행 중인 유사한 과정들을 다룰 충분한 여력이 없다. 우리가 보아 왔듯이, 과학 분야에서도 지금은 덜 조사하려하고 자연의 객관적인 법칙들을 정립하려는 것에 덜 관심을 쏟는다. 반면에 작업 가설을 만들려 한다. 그 작업 가설에 의해 인간은 자연을 가공할 수 있다. 그 자신의 목적들에 맞게. 그리고 그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은 시작해 왔다. 이성의 의식적인 사용을 통해서 그의 환경을 바꿀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At the end of the eighteenth century Malthus, in an epoch-making work, attempted to establish objective laws of population, working, like Adam Smith's laws of the market, without anyone being conscious of the process. Today nobody believes in such objective laws; but the control of population has become a matter of rational and conscious social policy. We have seen in our time the lengthening by human effort of the span of human life and the altering of the balance between the generations in our population. We have heard of drugs consciously used to influence human behaviour, and surgical operations designed to alter human character. Both man and society have changed, and have been changed by conscious human effort, before our eyes. 18세기 말에 맬더스는 획기적인 저작에서 인구에 관한 객관적인 법칙을 정립하려고 시도했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이 작용하는. 어떤 사람도 그 과정에 의식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법칙. 오늘날 아무도 그런 객관적인 법칙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인구의 조절은 합리적인, 의식적인 사회 정책의 문제가 되어 왔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서 보아왔다. 노력에 의해 인간 수명을 늘리는 것을, 그리고 세대들 사이의 인구의 균형을 바꾸는 것을 보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들어왔다. 어떤 약들에 대해서. 그 약들은 의식적으로 인간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성격을 변화시키기 위한 의도로 외과 수술을 한다는 것을 들었다. 인간과 사회는 변화해 오고 있다. 그리고 변화되고 있다. 인간의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
Chapter 6_16_219p The widening horizon
But the most significant of these changes have probably been those brought about by the development and use of modern methods of persuasion and indoctrination. Educators at all levels are nowadays more and more consciously concerned to make their contribution to the shaping of society in a particular mould, and to inculcate in the rising generation the attitudes, loyalties, and opinions appropriate to that type of society; educational policy is an integral part of any rationally planned social policy. The primary function of reason, as applied to man in society, is no longer merely to investigate, but to transform; and this heightened consciousness of the power of man to improve the management of his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affairs by the application of rational processes seems to me one of the major aspects of the twentieth-century revolution. 이와 같은 변화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 설득과 교화의 현대적 방법들의 발달과 사용의 의해 가져온 결과들일 것이다. 오늘날 모든 계층에서 교육가들은 점점 더 의식적으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그들의 기여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져왔다. 특별한 형식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그리고 자라는 세대들에게 주입시키고자 한다. 그 사회의 타입에 맞는 태도, 충성심, 그리고 견해들을 주입시키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즉, 교육 정책은 합리적으로 계획된 사회 정책의 핵심 부분인 것이다. 이성의 주 기능은 사회에 있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이성의 주 기능은 더 이상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고양된 힘의 의식, 그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사안들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개선하고자 하는 인간 힘의 고양된 의식은 이성의 과정들의 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20세기 혁명의 주요한 축면들 중의 하나인 듯하다.
This expansion of reason is merely part of the process which I called in an earlier lecture 'individualization'-the diversification of individual skills and occupations and opportunities which is the concomitant of an advancing civilization. Perhaps the most far-reaching social consequence of the industrial revolution has been the progressive increase in the numbers of those who learn to think, to use their reason. In Great Britain our passion for gradualism is such that the movement is sometimes scarcely perceptible. 이성의 확장은 내가 전 강좌에서 말했던 소위 개인화 과정의 일부분이다. 개인화란 개인적인 기술들, 직업들, 그리고 기회들의 분화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문명화가 진행되면서 수반된다. 아마 산업혁명의 사회적 결과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점진적인 증가일 것이다. 이성을 생각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의 점진적인 증가에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점진주의에 대한 열정이 강해서 그 움직임이 가끔씩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