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_19_102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o learn about the present in the light of the past means also to learn about the past in the light of the present. The function of history is to promote a profounder understanding of both past and present through the interrelation between them. My third point is the role of prediction in history: no lessons, it is said, can be learned from history because history, unlike science, cannot predict the future. This question is involved in a tissue of misunderstandings. As we have seen, scientists are no longer so eager as they used to be to talk about the laws of nature. The so-called laws of sciences which affect our ordinary life are in fact statements of tendency, statements of what will happen other things being equal or in laboratory conditions. They do not claim to predict what will happen in concrete cases. The law of gravity does not prove that particular apple will fall to the ground: somebody may catch it in a basket. The law of optics that light travels in a straight line does not prove that a particular ray of light may not be refracted or scattered by some intervening object. But this does not mean that these laws are worthless, or not in principle valid. Modern physical theories, we are told, deal only with the probabilities of events taking place. Today science is more inclined to remember that induction can logically lead only to probabilities or to reasonable belief, and is more anxious to treat its pronouncements as general rules or guides, the validity of which can be tested only in specific action. 과거에 비추어 현재에 관해서 배운다는 것은 현재 관점에서 과거를 또한 배운다는 것이다. 역사의 기능은 더 깊은 이해를 높이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에 관한 이해. 그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나의 세 번째 포인트는 역사에서 예언에 관한 역할이다. 역사에서는 어떠한 교훈도 얻을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역사는 과학과 달리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고 말해진. 이 문제는 여러 가지 오해의 계층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보았듯이 과학자들은 더 이상 자연의 법칙들에 관하여 말하는 것에 열중하지 않는다. 소위 과학의 법칙들, 우리 일상에 영향을 주는 과학의 법칙들은 사실 경향의 진술이거나 실험실 조건에서 모든 것이 같다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들은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예측하지 않는다. 중력 법칙은 특정한 사과가 꼭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증명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빛이 직진으로 진행한다는 광학 법칙은 특정한 빛이 중간의 방해물에 의해 굴절되거나 산란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런 법칙이 소용없다거나 원리적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현대 물리 이론들은 우리가 듣기에는 오직 어떤 사건이 일어날 확률들만 다룬다고 한다. 오늘날 과학은 더 아래와 같은 것을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다. 연역은 논리적으로 오직 확률적으로나 이성적인 믿음으로 유도한다고. 그리고 더 열중한다. 그 선언들은 일반적인 규칙이든가 또는 가이드 정도로 간주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의 유효성은 오직 특정한 행동속에서만 테스트 될 수 있다고 한다.
Chapter 3_20_103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Science, d'ou prevoyance; preyance, d'ou action ', as Comte puts it. The clue to the question of prediction in history lies in this distinction between the general and the specific, between the universal and the unique. The historian, as we have seen, is bound to generalize; and, in so doing, he provides general guides for future action which, though not specific predictions, are both valid and useful. But he cannot predict specific events, because the specific is unique and because the element of accident enters into it. This distinction, which worries philosophers, is perfectly clear to the ordinary man. If two or three children in a school develop measles, you will conclude that the epidemic will spread; and this prediction, if you care to call it such, is based on a generalization from past experience and is a valid and useful guide to action. But you cannot make the specific prediction that Charles or Mary will catch measles. The historian proceeds in the same way. People do not expect the historian to predict that revolution will break out in Ruritania next month. 과학으로부터 예견이 나오고, 예견으로부터 행동이 나온다 라고 꽁뜨가 얘기했다. 역사에서 예언의 문제에 대한 단서는 일반적인 것과 특별한 것, 보편적인 것과 독특한 것들 사이의 구별이다. 역사가는 우리가 보았듯이 일반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하는 것에 의해 그는 일반적인 가이드를 제공한다. 미래 행동에 대한. 물론 특정한 예언들은 아니지만, 그 예측들은 유효하고 사용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는 특정한 사건들은 예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특정하다는 것은 독특하다. 그리고 우연의 요소가 끼어든다. 이와 같은 구별은 철학자들을 괴롭힌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는 완벽하게 분명하다. 만약 어떤 학교에서 2~3명의 어린 아이들이 홍역에 걸린다면 당신은 그 홍역이 학교 전체에 곧 퍼질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예언은 만약 당신이 그것을 예언이라고 부르기 좋아한다면, 과거 경험으로부터 일반화에 기초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어떤 행동에 대해 타당하고 유용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특별한 예언은 할 수 없다. 찰스나 메리가 홍역에 걸릴 것이라고. 역사가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한다. 사람들은 역사가가 예언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루리타니아에서 다음 달에 혁명이 일어날 것이고 예언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Chapter 3_21_104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he kind of conclusion which they will seek to draw, partly from specific knowledge of Ruritanian affairs and partly from a study of history, is that conditions in Ruritania are such that a revolution is likely to occur in the near future if somebody touches it off, or unless somebody on the government side does something to stop it; and this conclusion might be accompanied by estimates, based partly on the analogy of other revolutions, of the attitude which different sectors of the population may be expected to adopt. The prediction, if such it can be called, can be realized only through the occurrence of unique events, which cannot themselves be predicted. But this does not mean that inferences drawn from history about the future are worthless, or that they do not possess a conditional validity which serves both as a guide to action and a key to our understanding of how things happen. I do not wish to suggest that the inferences of the social scientist or of the historian can match those of the physical scientist in precision, or that their inferiority in this respect is due merely to the greater backwardness of the social sciences. The human being is on any view the most complex natural entity known to us, and the study of his behaviour may well involve difficulties different in kind from those confronting the physical scientist. All I wish to establish is that their aims and methods are not fundamentally dissimilar. 그들이 내리려는 결론의 일부는 루리타니아의 특별한 상황에 의존하고 일부는 역사 연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현재 루리타니아의 상황은 혁명이 곧 일어날지도 모른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불을 붙인다든가 또는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결론은 추정을 동반한다. 다른 혁명들을 유추한 것에 기초해서, 또는 국민의 각 계층들이 취하리라 생각되는 태도에도 의존한다. 그 예언은 이렇게 부를 수 있다면 오직 특별한 사건들의 발생들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예언될 수 없는. 그러나 이것은 의미하지 않는다. 역사로부터 끌어낸 추론들이 가치 없다거나 또는 조건부 유효성을 가진다고 해서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행동에 대한 가이드 역할을 하며 앞으로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대한 열쇠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는 제안하지 않는다. 사회 과학자나 역사가의 추론이 정확성 면에서 물리 과학자들의 추론만큼이나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는 이러한 면에서 그들의 모자라는 부분이 사회 과학의 더 큰 후진성에 기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면에서는 가장 복잡한 자연적 존재이고 그들의 행동을 연구하는 것은 물리 과학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종류와는 다른 어려움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그들의 목표와 방법들은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Chapter 3_22_105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My fourth point introduces a far more cogent argument for drawing a line of demarcation between the social sciences, including history, and the physical sciences. This is the argument that in the social sciences subject and object belong to the same category and interact reciprocally on each other. Human beings are not only the most complex and variable of natural entities, but they have to be studied by other human beings, not by independent observers of another species. Here man is no longer content, as in the biological sciences, to study his own physical make-up and physical reactions. The sociologist, the economist, or the historian needs to penetrate into forms of human behaviour in which the will is active, to ascertain why the human beings who are the object of his study willed to act as they did. This sets up a relation, which is peculiar to history and the social sciences, between the observer and what is observed. 나의 네 번째 포인트는 한층 더 유력한 주장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구분선을 긋자는 역사를 포함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과의 이것은 주장이다. 사회 과학에서는 주체와 객체가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다. 서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물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다변화하는 존재일뿐만 아니라 그들은 다른 인간들에 의해 연구되어야 한다. 다른 독립적인 다른 종의 관찰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기서 인간은 더 이상 만족하지 않는다. 그 자신의 물리적 구조나 물리적 반등만 연구하는 것으로는. 사회학자, 경제학자, 역사가는 인간 행동의 형태를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행동에서 의지가 살아있고, 인간의 왜 그렇게 행동하는 가에 대해 밝혀야만 한다. 이것은 관계를 세운다. 역사와 사회과학에서만 특별한 관계를 세운다. 관찰자가 관찰 대상이 되는 관계.
Chapter 3_23_106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And this can happen in two opposite ways. The human beings whose behaviour is made the object of analysis and prediction may be warned in advance, by the prediction of consequences unwelcome to them, and be induced by it to modify their action, so that the prediction, however correctly based on the analysis, proves self-frustrating. One reason why history rarely repeats itself among historically conscious people is that the dramatis personae are aware at the second performance of the denouement of the first, and their action is affected by that knowledge.' The Bolsheviks knew that the French revolution had ended in a Napoleon, and feared that their own revolution might end in the same way. They therefore mistrusted Trotsky, who among their leaders looked most like a Napoleon, and trusted Stalin, who looked least like a Napoleon. But this process may work in a converse direction. The economist who, by a scientific analysis of existing economic conditions, predicts an approaching boom or slump may, if his authority is great and his arguments cogent, contribute by the very fact of his prediction to the occurrence of the phenomenon predicted. The political scientist who, on the strength of historical observations, nourishes the conviction that despotism is short-lived, may contribute to the downfall of the despot. 그리고 이것은 두 가지 반대 방향으로 일어날 수 있다. 인간은 그의 행동이 분석의 대상이 된다. 예언이 미리 경고되고, 그 예언의 결과가 그들에게 환영받지 못한 것이라면, 그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아무리 정확한 분석에 의한 예언이라도 틀릴 수가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이유, 역사가 거의 반복되지 않는 한 가지 이유,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1장의 denouement 의 두 번째 공연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은 그 지식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볼셰비키들은 알았다. 프랑스 혁명이 나폴레옹에서 끝났다는 걸. 그리고 그들은 두려워했다. 그들 자신의 혁명도 같은 방식으로 끝날까 봐. 그들은 그러므로 트로츠키를 불신했다. 그들 리더 중 가장 나폴레옹을 닯은 사람인. 그리고 스탈린을 믿었다. 가장 나폴레옹과 닮지 않아서. 그러나 이것은 반대 방향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 경제학자, 과학적 지식으로 현재 경제 조건들의 분석을 통해서 다가오는 슬럼프를 예언했다면, 그리고 만약 그의 권위가 크고, 그의 주장이 일관성 있게 논리적이라면, 기여한다. 그의 예언 바로 그것에 의해 예언의 실현에 기여할 수도 있다. 정치적인 과학자는, 역사적인 관찰에 의해 아래와 같은 믿음에 확신을 부여한다. 독재는 단명하고 독재자의 몰락에 기여할 지도 모른다.
Chapter 3_24_107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Everyone is familiar with the behaviour of candidates at elections, who predict their own victory for the conscious purpose of rendering the fulfillment of the prediction more likely; and one suspects that economists, political scientists, and historians, when they venture on prediction, are sometimes inspired by the unconscious hope of hastening the realization of the prediction. All that one can perhaps safely say about these complex relations is that interaction between the observer and what is observed, between the social scientist and his data,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is continuous, and continuously varies; and that this appears to be a distinctive feature of history and of the social sciences. I should perhaps note here that some physicists in recent years have spoken of their science in terms which appear to suggest more striking analogies between the physical universe and the world of the historian. In the first place, their results are said to involve a principle of uncertainty or indeterminacy. I shall speak in my next lecture of the nature and limits of so-called determinism in history. But whether the indeterminacy of modern physics resides in the nature of the universe, or is merely an index of our own hitherto imperfect understanding of it (this point is still in debate), I should have the same doubts about finding in it significant analogies with our ability to make historical predictions as one had a few years ago about the attempts of some enthusiasts to find proof in it of the operation of free will in the universe. 모든 사람은 익숙하다. 선거 후보자들의 행동. 그들 자신의 승리를 예언함으로써 의식적으로 예언의 달성을 더 가능성 있게 하려는. 그리고 우리는 생각한다. 경제학자, 정치적 과학자들이 그리고 역사가들은 그들이 어떤 예언을 할 때, 가끔 무의식적인 희망을 갖는다는 것을 그 예언의 실현을 앞당기려는 희망에 부풀어서. 이와 같은 복잡한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상호작용, 그리고 사회 사회자와 그의 데이타와의 상호작용, 그리고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과의 상호작용은 끊임없다. 그리고 끊임없이 변한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와 사회과학의 독특한 특징인 듯 보인다. 나는 여기서 주목해 보고자 한다. 일부의 물리학자들은 최근에 그들의 과학에 대해 말해 왔다. 물리 세계와 역사가의 세계사이의 눈에 띄는 유사성들에 대해 보이는 것을. 첫 번째, 그들의 결과들은 불확실성 또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다음 강의에서 역사에서의 결정론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현대 물리학의 불확정성이 우주의 본질에 존재하는 것인지 또는 단지 우리가 아직 이것에 대해 불완전한 이해의 지표인지(이것은 아직까지 논란 중이다). 나는 같은 의심을 갖고 있다. 중요한 유사성들을 발견하는 것에 관해서 의심을 갖고 있다. 물리학의 불확정성에서 역사적 예언들을 하려는 우리의 능력과 유사성(중대한)을 발견하려는. 우리가 몇 년 전에 보았던 열광주의자들의 시도만큼이나. 그들은 물리학적 불확정성으로부터 우주에서의 자유의지를 찾으려고 시도하는 열광주의자들 만큼.
*** <현대 물리학은 불확정적이다. 현대 물리학이 불확정인 것이 본래 우주의 본질인지, 우리가 우주에 대해 아는 것이 부족해서인지 아직 우리는 모른다. 현대의 물리학의 불확정성과 역사적 예언 능력(어려움)과 의미 있는 유사성을 찾으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의심이 간다. 그리고 우주의 불확정적이라는 이유로 우주에서 자유의지 작동의 증명을 찾으려는 일부 열렬주의자들의 시도도 당연히 말이 안 된다. 몇 년 전에 이런 시도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