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_31_114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his does not mean that private morality is not important, or that the history of morals is not a legitimate part of history. But the historian does not turn aside to pronounce moral judgments on the private lives of individuals who appear in his pages. He has other things to do. The more serious ambiguity arises over the question of moral judgments on public actions. Belief in the duty of the historian to pronounce moral judgments on his dramatis personae has a long pedigree. a view based on Acton's almost mystical belief in the objectivity and supremacy of historical facts, which apparently requires and entitles the historian, in the name of History as a sort of super-historical power, to pass moral judgments on individuals participating in historical events. 이것은 도덕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또는 도덕적인 역사가 역사의 정당한 일부분이 아니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역사가는 개인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애에 대해서. 그의 페이지에 나타나는 개인들의 생애. 그는 다른 할 일이 있다. 더 심각한 모호함은 공적인 행동에 대한 도덕적 판단에 관한 문제이다. 그의 드라마 주인공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믿음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19세기 영국만큼 그렇게 강력했던 때는 없었다. 그것은 더 강화되었다. 그 시대의 도덕화 경향에 의해 그리고 절제되지 않은 개인주의의 숭배에 의해. 로즈베리는 말했다. 영국 사람들이 나폴레옹에 알고 싶었던 것은 좋은 사람이었나 하는 것이었다. 액턴은 크레이톤과의 서신에서 선언했다. 도덕적 코드의 확고함은 역사의 권위와 위신과 효용의 비밀이다. 그리고 주장했다. 역사는 논쟁의 중재자이며, 길 잃은 자에 대한 지침이며, 세속적 권력과 종교의 권력에 의해 저하 일로에 있는 도덕적 기준의 지지자이다. 이 견해는 액튼의 거의 신비로운 믿음에 기초한 견해이다. 그 믿음은 객관성과 역사적 사실들의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겉으로는 요구하고 부여한다. 역사가들에게 역사의 이름으로 일종의 초역사적인 힘을, 역사적 사건들에 참가하는 개인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할 권리들에 대한.
Chapter 3_32_115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his attitude still sometimes reappears in unexpected forms. Professor Toynbee described Mussolini's invasion of Abyssinia in 1935 as a 'deliberate personal sin';" and Sir Isaiah Berlin, in the essay already quoted, insists with great vehemence that it is the duty of the historian 'to judge Charlemagne or Napoleon or Genghis Khan or Hitler or Stalin for their massacres'. This view has been sufficiently castigated by Professor Knowles, who in his inaugural lecture quoted Motley's denunciation of Philip II('if there are vices. . . from which he was exempt, it is because it is not permitted by human nature to attain perfection even in evil') and Stubbs's description of king John('polluted with every crime that could disgrace a man') as instances of moral judgments on individuals which it is not within the competence of the historian to pronounce:’ The historian is not a judge, still less a hanging judge.' But Croce also has a fine passage on this point, which I should like to quote: 이와 같은 태도는 가끔씩 예상 못했던 형태로 다시 나타난다. 토인비 교수는 무솔니니의 아비시니아 침공(1935년)을 의도한 개인적인 죄악이라고 묘사했다. 이샤야 벌린 경은 이미 언급한 에세이에서 큰 분노로 역사가의 의무는 샤를마제 또는 나폴레옹 또는 칭기스칸이나 히틀러를 그들의 학살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은 견해는 놀즈 교수에 의해 반박되었다. 그는 그의 취임 강연에서 모틀링의 필립2세의 대한 비난(비난 내용이란 만약 악덕들이 있다면, 악에 대해서도 완벽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고 스텁스의 존 왕에 대한 기술(한 인간의 욕되게 할 수 있는 모든 죄악에 물들은)을 개인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의 예로 보았다. 그것은 역사가의 권한을 넘는 것이다. 역사가는 재판관이 아니다. 더욱이 사형 선고를 내리는 재판관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크로체는 이 문제에 대해 멋진 문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인용을 하고자 한다.
PART 3_33_116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he accusation forgets the great difference that our tribunals(whether juridical or moral) are present-day tribunals designed for living, active and dangerous men, while those other men have already appeared before the tribunal of their day, and cannot be condemned or absolved twice. They cannot be held responsible before any tribunal whatsoever, just because they are men of the past who belong to the peace of the past and as such can only be subjects of history, and can suffer no other judgment than that which penetrates and understands the spirit of their work. . . Those who, on the plea of narrating history, bustle about as judges, condemning here and giving absolution there, because they think that this is the office of history. . . are generally recognized as devoid of historical sense. 법정 고발은 큰 차이를 잊고 있다. 우리의 법정은(사법체계건 또는 도덕적이건) 현재의 법정이다. 현재의 법정은 살아있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위험한 사람들을 위해 설계된 법정이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이미 나타났었다. 그들 시대의 법정에, 그리고 두 번째로 단죄나 사면을 받을 수 없다. 그들은 책임지지 않는다. 어떠한 법정에서건, 왜냐하면 그들은 과거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과거의 평화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다. 역사의 인물들이다. 그리고 어떤 판단도 받을 수 없다. 꿰뚤어 보고 이해해 보려는 그들의 작업을 꿰뚤어 보고 이해해 보려는 것외에는 어떠한 (도덕) 판단을 받을 수 없다. 역사를 쓴다는 구실하에 (도덕적) 판단들을 부산하게 하고 다니는 사람들, 여기서는 비난하고 저기서는 무죄 판결을 내리는 등 부산하게 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간주된다. 역사적 감각이 부족한 것으로.
Chapter 3_34_117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Let us therefore reject the notion of the historian as a hanging judge, and turn to the more difficult but more profitable question of the passing of moral judgments not on individuals, but on events, institutions, or policies of the past. These are the important judgments of the historian; and those who insist so fervently on the moral condemnation of the individual sometimes unconsciously provide an alibi for whole groups and societies. The French historian Lefebvre, seeking to exonerate the French revolution from responsibility for the disasters and bloodshed of the Napoleonic wars, attributed them to 'the dictatorship of a general. . . whose temperament. . . could not easily acquiesce in peace and moderation'. 그러므로 역사가가 사형 언도를 내리는 재판관이라는 생각을 버리자. 그리고 좀 더 어렵고 더 많은 이익을 남기는 문제로 관심을 돌리자. 개인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건들, 제도들, 과거의 정책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리자. 역사가의 중요한 판단들이 있다. 개인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아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집단이나 사회의 책임에 대한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프랑스 역사가인 러페르는 면제 시킬려고 찾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책임, 재난과 유혈의 책임,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재난과 유혈의 책임, 그들에 대한 책임을 장군의 독재에 기인했다. 쉽사리 양보하지 않는. 평화와 안온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장군의 기질에 원인을 돌렸다.
Germans today welcome the denunciation of Hitler's individual wickedness as a satisfactory alternative to the moral judgment of the historian on the society which produced him. Russians, Englishmen, and Americans readily join in personal attacks on Stalin, Neville Chamberlain, or McCarthy as scapegoats for their collective misdeeds. Moreover, laudatory moral judgments on individuals can be just as misleading and mischievous as the moral denunciation of individuals. 독일 사람들은 오늘날 비난을 환영한다. 히틀러의 개인적인 악덕에 대한 비난을 환영한다. 만족한 대안으로서 히틀러를 배출했던 독일 사회에 대한 도덕적 판단 대신에 히틀러 개인에 대한 비난을 환영한다. 러시아사람들, 영국 사람들, 그리고 미국인들은 쉽게 동참한다. 스탈린이나, 챔벌레인, 매카시에 대한 개인적인 도덕 공격에. 그들을 희생한 삼는다. 그들의 집단적인 악행에 대한. 더욱이 개인적인 도덕적 칭찬들은 똑같이 오도하기 쉽고 해롭다. 개인들에 대한 도덕적 비난 만큼이다.
Chapter 3_35_118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Recognition that some individual slave-owners were high-minded was constantly used as an excuse for not condemning slavery as immoral. Marx Weber refers to 'the masterless slavery in which capitalism enmeshes the worker or the debtor', and rightly argues that the historian should pass moral judgment on the institution, but not on the individuals who created it. The historian does not sit in judgment on an individual oriental despot. But he is not required to remain indifferent and impartial between, say, oriental despotism and the institutions of Periclean Athens. He will not pass judgment on the individual slave-owner. But this does not prevent him from condemning a slave-owning society. 어떤 노예 주인들은 인간적이었다는 사실이 끊임없이 노예제도가 꼭 비도덕적이 아니라는 변명으로 사용된다.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를 주인 없는 노예제도라고 불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와 빚쟁이를 옭아매고 자본주의를. 그리고 정당하게 주장한다. 역사가는 제도에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것을 만든 개인에게 아닌. 역사가는 개인적인 동양의 독재자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동양적 독재와 페리크레스의 제도의 비교와 관련해서는. 그는 개별적인 노예 소유자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노예를 소유하는 사회를 비난하는 데는 참지 않는다.
Historical facts, as we saw, presuppose some measure of interpretation; and historical interpretations always involve moral judgments - or, if you prefer a more neutral-sounding term, value judgments. This is, however, only the beginning of our difficulties. History is a process of struggle, in which results, whether we judge them good or bad, are achieved by some groups directly or indirectly - and more often directly than indirectly - at the expense of others. The losers pay. Suffering is indigenous in history. 역사적 사실들은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어느 정도의 해석을 전제한다. 그리고 역사적 해석들은 언제나 도덕적 판단들을 포함한다. 만약 당신이 좀 더 중립적으로 들리도록 원한다면 가치 판단이 포함된다. 이것은 하지만 우리의 어려움들의 시작에 불과하다. 역사는 투쟁과정이다. 그 결과 우리가 그들은 좋게, 또는 나쁘게 판단하건 어떤 그룹들에 의해 성취된다. 간접적으로 그리고 자주는 더 직접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희생으로 성취된다. 실패자는 대가를 치른다. 고통은 역사에서 고유하다(토착적이다)
Chapter 3_36_119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Every great period of history has its casualties as well as its victories. This is an exceedingly complicated question, because we have no measure which enables us to balance the greater good of some against the sacrifices of others: yet some such balance must be struck. It is not exclusively a problem of history. In ordinary life we are more often involved than we sometimes care to admit in the necessity of preferring the lesser evil, or of doing evil that good may come. In history the question is sometimes discussed under the rubric 'the cost of progress' or 'the price of revolution'. This is misleading. 역사에서 모든 위대한 시대에는 패배자가 있다. 당연히 승리자들도 있다. 이것은 지극히 복잡한 문제이다. 우리는 척도가 없다. 그 척도로 일부 사람들의 이익과 다른 사람들의 희생에 대해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척도가 없다. 물론 그 균형점은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은 역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자주 개입한다.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더 적은 악을 선택할 요. 또는 악을 행해야 하는 경우. 그 악이 선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역사에서 이 문제는 때때로 ‘진보의 대가’ 또는 ‘혁명의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논의된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As Bacon says in the essay ‘On Innovations’, 'the froward retention of custom is as turbulent a thing as an innovation'. The cost of conservation falls just as heavily on the underprivileged as the cost of innovation on those who are deprived of their privileges. The thesis that the good of some justifies the sufferings of others is implicit in all government, and is just as much a conservative as a radical doctrine. Dr Johnson robustly invoked the argument of the lesser evil to justify the maintenance of existing inequalities. It is better that some should be unhappy than that none should be happy, which would be the case in a general state of equality.' 라는 에세이에서 말했듯이 ‘관습의 완강한 지속력은 혁신과 같이 난폭한 것이다.’ 특권 없는 사람들 위에 부과되는 보수의 대가는 특권을 박탈당한 사람들 위에 부과되는 혁신의 대가만큼이나 무거운 것이다. 어떤 사람들의 이익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정당화 한다는 전제는 모든 정부에서 묵시적이다. 그리고 똑같이 보수적이다. 급진적인 교리만큼이나. 존슨 박사는 강경하게 보다 ‘적은 악’이라는 주장을 환기시켰다. 현존하는 불평등의 유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것이 더 낫다. 어떤 사람들이 불행한 것이.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것보다는. 모두가 평등한 상태에서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므로 일부의 사람들이 불행한 것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