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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history_시즌2

[역사란 무엇인가_시즌2] 7월 21일(목)_180~186p

작성자Frida|작성시간22.07.21|조회수10 목록 댓글 0

Chapter 5_15_180p

Such periods are always times of violent upheavals and struggles for power. The old authorities weaken, the old landmarks disappear; out of a bitter clash of ambitions and resentments the new order emerges. What I would suggest is that we are now passing through such a period. It appears to me simply untrue to say that our understanding of the problems of social organization or our good will to organize society in the light of that understanding have regressed: indeed, I should venture to say that they have greatly increased. It is not that our capacities have diminished, or our moral qualities declined. 그런 시기들은 언제나 격렬한 전복들이 있고 권력을 탈취하기 위한 투쟁의 시기이다. 구 권력들은 약해지고, 새로운 방향지표들은 사라진다. 야망들과 분노들의 격렬한 충돌로부터 새로운 질서가 나타난다. 내가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그런 시기를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닌 듯하다. 우리의 이해도, 사회 조직 또한 우리의 선한 의지의 문제들의 이해도가 퇴보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사실 난 과감히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크게 증가되어 왔다고 우리의 잠재적인 능력들이 감소되어 온 것은 어니다. 또한 우리의 도덕적 자실들이 쇠퇴해온 것은 아니다.

 

But the period of conflict and upheaval, due to the shifting balance of power between continents, nations, and classes, through which we are living has enormously increased the strain on these capacities and qualities, and limited and frustrated their effectiveness for positive achievement. While I do not wish to underestimate the force of the challenge of the past fifty years to the belief in progress in the western world, I am still not convinced that progress in history has come to an end. But, if you press me further on the content of progress, I think I can only reply something like this. The notion of a finite and clearly definable goal of progress in history, so often postulated by nineteenth-century thinkers, has proved inapplicable and barren. 갈등과 전복의 시기들, 권력의 균형이 이동하면서, 대륙간, 국가간, 계급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그렇다. 이런 권력의 균형 이동 시기는 크게 증가시킨다. 우리의 능력들이나 자질들에 크게 부하를 가져온다. 그리고 제한하고 좌절시킨다. 긍정적인 성취를 향한 우리의 효과성을 좌절시킨다. 나는 과소평가하길 원하지 않는다. 지난 50년간의 도전의 힘에 대해서. 서방에서 진보의 믿음에 대한 도전의 힘에 대해서 과소평가하진 않지만 아는 확신하지 않는다. 역사에서 우리의 진보가 끝나가고 있다고는 확신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진보의 내용에 대해 더 나한테 압력을 가한다면 가는 오직 이렇게 답변할 수 있다. 유한하고 분명하게 정의된 진보의 목표라는 개념, 이것은 19세기 사상가들에 의해 많이 정립되었었다. 진보의 목표라는 개념은 실현가능하지 않고 또는 공허하다.

 

Chapter 5_16_181p

Belief in progress means belief not in any automatic or inevitable process, but in the progressive development of human potentialities. Progress is an abstract term; and the concrete ends pursued by mankind arise from time to time out of the course of history, not from some source outside it. I profess no belief in the perfectibility of man or in a future paradise on earth. To this extent I would agree with the theologians and the mystics who assert that perfection is not realizable in history. 진보에 대한 믿음은 자동적이다거나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잠재 가능성에 대한 진보적인 발달을 믿는 다는 것이다. 진보는 추상적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목표는 인간에 의해 추구되는 데 때때로 역사의 진행 과정속에서 생겨난다. 역사 밖의 어떤 원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시인한다. 인간의 완벽함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또는 미래 사회에 지구의 파라다이스에 대해서. 이런 관점에서 나는 신학자들에게 동의한다. 그리고 신비주의자들도. 그들은 역사에서 완벽함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But I shall be content with the possibility of unlimited progress-or progress subject to no limits that we can or need envisage-towards goals which can be defined only as we advance towards them, and the validity of which can be verified only in a process of attaining them. Nor do I know how, without some such conception of progress, society can survive. Every civilized society imposes sacrifices on the living generation for the sake of generations yet unborn. To justify these sacrifices in the name of a better world in the future is the secular counterpart of justifying them in the name of some divine purpose. In Bury's words, ‘the principle of duty to posterity is a direct corollary of the idea of progress'.' Perhaps this duty does not require justification. If it does, I know of no other way to justify it. 그 대신 난 만족할 것이다. 끝없는 진보의 가능성에 대해 - 또는 어떤 한계에 규정되지 않는 진보, 우리는 그려낼 수 있거나 필요로 하는 진보가 아닌 - 그 목표들에 향해서 나아가는 진보. 그리고 그 목표들은 오직 정의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 나아갈 때만 정의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의 유효성은 증명될 것이다. 그들을 달성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 있어서만 증명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한 진보의 개념 없이 어떻게 사회가 살아남을지에 대해. 모든 문명화된 사회는 희생들을 부과한다. 현재 살아있는 세대들에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들을 위해서. 이러한 희생들을 정당화하는 것은 더 좋은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를 시도한다. 미래 세계에서의. 그리고 이런 시도는 세속화한 것이다.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던 것의 세속화된 부분이다. 베리의 말들에서 후세에 대한 의무의 원리는 진보의 관념에서 직접적으로 도출되는 것이다. 아마 이와 의무는 정당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필요하다 해도 난 정당화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Chapter 5_17_182p

This brings me to the famous crux of objectivity in history. The word itself is misleading and question-begging. In an earlier lecture I have already argued that the social sciences-and history among them-cannot accommodate themselves to a theory of knowledge which puts subject and object asunder, and enforces a rigid separation between the observer and the thing observed. We need a new model which does justice to the complex process of interrelation and interaction between them. The facts of history cannot be purely objective, since they become facts of history only in virtue of the significance attached to them by the historian. Objectivity in history-if we are still to use the conventional term-cannot be an objectivity of fact, but only of relation, of the relation between fact and interpretation, between past, present, and future. 이것은 나에게 그 유명한 역사에서의 객관성이라는 난문에 들어서게 한다. 객관성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오도하기 쉽고 의문(질문?)투성이다. 앞 강좌에서 나는 이미 주장했다. 사회과학들-역사를 포함하는-은 그들 스스로 지식의 이론이다. 객체와 주체를 분리할 수 없는. 그리고 강제한다. 엄격한 분리, 관찰자와 피 관찰자를 분리하는 지식체계와는 조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앞 장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그 모델은 복잡한 과정들을 정당화한다. 상호관계 과정의 복잡한 가정과 그들 사이의 상호성을 정당화한다. 역사의 사실들은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 그들은 역사적 사실들이다. 오직 역사가에 의해 그들에게 부여된 중요성과 관계해서만이. 역사에서의 객관성이란 만약 우리가 아직 이 전통적인 용어를 사용한다면, 사실의 객관성이 아니다. 관계의 객관성이고 사실과 해석의 관계의 객관성이다.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I need not revert to the reasons which led me to reject as unhistorical the attempt to judge historical events by erecting an absolute standard of value outside history and independent of it. But the concept of absolute truth is also not appropriate to the world of history-or, I suspect, to the world of science. It is only the simplest kind of historical statement that can be adjudged absolutely true or absolutely false. At a more sophisticated level, the historian who contests, say, the verdict of one of his predecessors will normally condemn it, not as absolutely false, but as inadequate or one-sided or misleading, or the product of a point of view which has been rendered obsolete or irrelevant by later evidence. 나는 이유들에 돌아갈 필요가 없다. 그 이유들은 나로 하여금 비역사적인 시도라고 거절하게 했다. 역사적 사건들을 판단하는 것에 대해 절대적인 기준이나 가치들을 세워놓고 역사적 사건들을 판단하는 시도에 대해. 역사밖에 역사와는 독립적인 기준의 가치를 세워놓고 역사적 사건들을 판단하려는 비역사적인 시도. 그러나 절대적 진리의 개념은 역사 세계에서는 적절하지 않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엔 과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오직 간단한 역사적인 진술만이 절대적으로 진실이라든가 절대적으로 거짓이라고 판정되는 것이다. 더 고급스런 수준에서, 전임자들의 어떤 견해에 대해 비판하는 역사가는 그 선임자들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거짓이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부적절하다든가 또는 일방적이라든가 또는 의견을 오도하기 쉽다고 말한다. 또는 선임자들의 의견은 이미 퍠기된 것으로 간주된 의견의 결과라고 말한다. 또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나중에 발견된 증거들에 의해

 

Chapter 5_18_183p

To say that the Russian revolution was due to the stupidity of Nicholas II or to the genius of Lenin is altogether inadequate-so inadequate as to be altogether misleading. But it cannot be called absolutely false. The historian does not deal in absolutes of this kind. Let us go back to the sad case of Robinson's death. The objectivity of our inquiry into that event depended not on getting our facts right-these were not in dispute - but on distinguishing between the real or significant facts, in which we were interested, and the accidental facts, which we could afford to ignore. We found it easy to draw this distinction, because our standard or test of significance, the basis of our objectivity was clear, and consisted of relevance to the goal in view, i.e. reduction of deaths on the roads. But the historian is a less fortunate person than the investigator who has before him the simple and finite purpose of reducing traffic casualties. The historian, too, in his task of interpretation needs his standard of significance, which is also his standard of objectivity, in order to distinguish between the significant and the accidental; and he too can find it only in relevance to the end in view. 러시아 혁명이 니콜라스 2세의 어리석음이나 레닌의 천재성에 기인한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너무 부적절해서 전적으로 오해할 만큼이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적으로 거짓이라고는 부를 수 없다. 역사가는 이러한 종류의 절대성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로빈슨의 죽음이라는 슬픈 경우로 돌아가 보자.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객관성이라는 문제는 사실들을 바로 잡는 것이 아니라-이것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진짜 또는 의미 있는 사실들인가? 이것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관심이 있다. 그리고 우연적인 사실들인가? 이것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무시할 것이다. 우리는 쉬운 것을 발견했다. 이 구별들을 결론짓는 것을. 왜냐하면 우리의 기준이나 중요성의 테스트, 우리의 객관성의 기초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목표에 관련된 것들과 연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도로에서 교통사고 사망자 수 감소라는 목표와 관련이 있느냐가 중요성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는 덜 행운아 이다. 교통사고 조사자보다는. 교통사고 조사다는 그 앞에 간단하고 명백한 목적이 있다. 교통사고를 줄인다는. 역사가는 또한 그의 해석과정에서 중요성의 기준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중요성의 기준은 객관성의 기준이 된다. 의미 있는 것인가? 우연적인 것인가를 구별하기 위한 객관성의 기준이 된다. 그리고 또는 그는 미래의 목적에 관계된 것들 만에서 중요성이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Chapter 5_19_184p

But this is necessarily an evolving end, since the evolving interpretation of the past is a necessary function of history. The traditional assumption that change has always to be explained in terms of something fixed and unchangeable is contrary to the experience of the historian. 'For the historian', says Professor Butterfield, perhaps implicitly reserving for himself a sphere into which historians need not follow him, ‘the only absolute is change.'' The absolute in history is not something in the past from which we start; it is not something in the present, since all present thinking is necessarily relative. 그러나 이것을 진화하는 목표(목적)이다. 왜냐하면 과거에 대한 진화하는 해석은 역사의 필수적인 기능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가정, 변화는 언제나 설명되어야 한다. 어떤 고정된 그리고 변하지 않는다는 기준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가정은 역사가의 경험에 반대된다. 역사가인 버터필드 교수가 말하기를 아마 묵시적으로 남겨놓는다. 그 자신을 위해 어떤 공간을, 그 공간은 역사가들이 따라갈 필요가 없는. 오직 절대적인 것은 변화다. 즉,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사실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역사에서 절대적인 것은 과거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 과거로부터 우리가 출발한다. 그것은 현재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현재 생각은 필연적으로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It is something still incomplete and in process of becoming - something in the future towards which we move, which begins to take shape only as we move towards it, and in the light of which, as we move forward, we gradually shape our interpretation of the past. This is the secular truth behind the religious myth that the meaning of history will be revealed in the Day of Judgement. Our criterion is not an absolute in the static sense of something that is the same yesterday, today, and for ever: such an absolute is incompatible with the nature of history. But it is an absolute in respect of our interpretation of the past. 그것은 아직 미완성인 어떤 것이다. 그리고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있는 어떤 것이다. 그리고 그 미래를 향하여 우리는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오직 우리가 그것을 향해 나아갈 때만, 그리고 그것에 비추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점차 과거에 대한 우리의 해석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속세적인 진실이다. 종교적인 신화 뒤에 있는. 그리고 역사의 의미는 심판의 나라에 나타난다는 종교에서의 속세적 진실이다. 우리의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정적인 의미에서의 어떤 것. 어제도 같고, 오늘도 같고 영원히 똑 같은. 그런 절대성은 역사의 성질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성이다. 과거의 해석에 관점에서는.

 

Chapter 5_20_185p

It rejects the relativist view that one interpretation is as good as another, or that every interpretation is true in its own time and place, and it provides the touchstone by which our interpretation of the past will ultimately be judged. It is this sense of direction in history which alone enables us to order and interpret the events of the past-the task of the historian-and to liberate and organise human energies in the present with a view to the future-the task of the statesman, the economist, and the social reformer. But the process itself remains progressive and dynamic. Our sense of direction, and our interpretation of the past, are subject to constant modification and evolution as we proceed. 그것은 상대성적인 견해를 부인한다. 하나의 해석이 다른 것과 똑 같다거나 모든 해석은 그 자신의 시대나 장소에서는 사실이라고 하는 상대성을 부인한다. 그리고 그것은 기준을 제공한다. 그 기준으로 과거에 대한 해석이 궁극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의 방향에 대한 감각은 우리로 하여금 정리하고 해석이 가능하게 한다.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이것이 역사가가 할 일이다-그리고 해방시키고 조직화한다. 인간의 에너지들을. 미래에 대한 현재의 에너지들을 해방시키고 조직화시킨다. 이런 것들은 정치가, 경제학자. 그리고 사회 개혁가들의 책무이다. 그러한 이 과정은 그 자체로 진보적이고 동적으로 남는다. 우리의 감각들, 과거에 대한 방향과 해석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끊임없는 수정과 진화를 겪는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서.

 

Hegel clothed his absolute in the mystical shape of a world spirit, and made the cardinal error of bringing the course of history to an end in the present, instead of projecting it into the future. He recognised a process of continuous evolution in the past, and incongruously denied it in the future. Those who, since Hegel, have reflected most deeply on the nature of history have seen in it a synthesis of past and future. Tocqueville, who did not entirely free himself from the theological idiom of his day and gave too narrow content to his absolute, nevertheless had the essence of the matter.헤겔은 그의 절대성의 옷을 입혔다. 세계정신의 신비로운 형태에. 그리고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역사의 진행을 현재에서 끝난다고 하는, 미래에 그것을 투사하는 대신에. 그는 인식했다. 끊임없는 진화의 과정을 과거에서, 그러나 미래에 대해서는 incongruously 부정했다. 헤겔 이래로 역사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과거와 미래의 종합을 그것에서 보아왔다. 토크빌, 그는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신학적인 경향에서, 그리고 그의 절대성에 지나치게 좁은 내용을 부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에 대한 핵심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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