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_21_186p History as Progress
Having spoken of the development of equality as a universal and permanent phenomenon, he went on: If the men of our time were brought to see the gradual and progressive development of equality as at once the past and the future of their history, this single discovery would give that development the sacred character of the will of their lord and master.' An important chapter of history could be written on that still unfinished theme. Marx, who shared some of Hegel's inhibitions about looking into the future, and was principally concerned to root his teaching firmly in past history, was compelled by the nature of his theme to project into the future his absolute of the classless society. Bury described the idea of progress, a little awkwardly, but clearly with the same intention, as 'a theory which involves a synthesis of the past and a prophecy of the future'. 평등의 발전을 보편적이고 영원한 현상으로 보면서 그는 계속했다. 만약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본다면, 평등의 점차적인 그리고 진보적인 발전을 역사의 과거와 미래라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이와 같은 한 가지 발견만이라도 신성한 성격의 발전을 부여할 것이다. 그들의 주님과 지배자의 의지로. 역사의 중요한 장은 아직 끝나지 않은 그 주제로 씌여질 수 있다. 마르크스는 공유했다. 헤겔의 억제의 일부, 미래를 바라보는 것을 억제하는 헤겔의 일부를 공유한 마르크스였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그의 자기 학설의 뿌리를 과거 속에서 찾으려 했지만, 그의 주제의 성격상 미래에 그의 계급없는 사회라는 절대성을 던졌다. 베리는 진보의 관념을 묘사했다. 약간 서투르게, 그러나 분명한 어조로 같은 의도로, 진보란 어떤 이론이다. 과거와 미래의 예언을 종합하는 이론이다.
Historians, says Namier in a deliberately paradoxical phrase, which he proceeds to illustrate with his usual wealth of examples, ‘imagine the past and remember the future'. Only the future can provide the key to the interpretation of the past; and it is only in this sense that we can speak of an ultimate objectivity in history. It is at once the justification and the explanation of history that the past throws light on the future, and the future throws light on the past. 역사가들은, 네이미어가 말하길, 의도적으로 역석절인 문장으로 말하길, 그리고 설명해 나간다. 그의 일상적인 풍부한 예들을 가지고, ‘과거를 상상하고 미래를 기억 한다’ 오직 미래만이 열쇠를 제공할 수 있다. 과거의 해석에 대한 열쇠를 그리고 이러한 의미로만이 우리는 역사에서 궁극적인 객관성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의 정당성이고 설명이다. 과거를 미래를 비추고 미래는 과거를 비춘다는 것은 역사의 정당성이고 설명이다.
Chapter 5_22_187p History as Progress
What, then, do we mean when we praise a historian for being objective, or say that one historian is more objective than another? Not, it is clear, simply that he gets his facts right, but rather that he chooses the right facts, or, in other words, that he applies the right standard of significance. When we call a historian objective, we mean I think two things. 그러면 우리가 어떤 역사가가 객관적이라고 할 때, 또는 한 사람의 역사가가 다른 역사가보다 더 객관적이라고 할 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분명히, 단순하게 그가 그의 사실들을 똑바로 바르게 하는 게 아니라, 그는 옳은 사실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즉, 그는 중요성에 대한 옳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역사가가 객관적이라고 할 때, 나는 두 가지를 생각한다.
First of all, we mean that he has a capacity to rise above the limited vision of his own situation in society and in history-a capacity which, as I suggested in an earlier lecture, is partly dependent on his capacity to recognize the extent of his involvement in that situation, to recognize, that is to say, the impossibility of total objectivity. Secondly, we mean that he has the capacity to project his vision into the future in such a way as to give him a more profound and more lasting insight into the past than can be attained by those historians whose outlook is entirely bounded by their own immediate situation. No historian today will echo Acton's confidence in the prospect of 'ultimate history'. But some historians write history which is more durable, and has more of this ultimate and objective character, than others; and these are the historians who have what I may call a long-term vision over the past and over the future. The historian of the past can make an approach towards objectivity only as he approaches towards the understanding of the future. 첫 번째로 우리는 의미한다. 그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다. 뛰어 넘을, 제한된 비전의 범위를 뛰어넘을, 사회와 역사에서 그 자신의 상황에 대한 제한된 비전을 뛰어 넘을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능력은 내가 지난 장에서 말했듯이, 일부는 그 자신의 능력에 의존한다. 그 상황에서 그의 기입의 정도를 알아차릴 능력에. 즉, 완전히 객관적인 것의 불가능을 알아차릴 능력. 두 번째로 우리는 의미하기를 그는 그의 비전을 투사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미래에 투사할 능력. 그럼으로써 그는 더 깊고 더 오래가는 통찰을 가진다. 과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사람들 보다는 자기 자기들의 전망이 완전히 그들 자신의 상황에 둘러싸인 사람들 보다. 오늘날 어떤 역사가도 액튼의 자신감을 불러 오지 않는다. 궁극적인 역사라는. 그러나 어떤 역사가들은 역사를 쓴다. 좀 더 견고하고 좀 더 궁극적인 그리고 객관적인 성격을 갖는. 다름 사람들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가들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을 가진 역사가들이다. 과거를 연구하는 역사가는 객관성에 접근할 수 있다. 오직 그가 미래의 이해를 향해서 나아갈 때만에.
Chapter 5_23_188p History as Progress
When, therefore, I spoke of history in an earlier lecture as a dialogue between past and present, I should rather have called it a dialogue between the events of the past and progressively emerging future ends. The historian's interpretation of the past, his selection of the significant and the relevant, evolves with the progressive emergence of new goals. To take the simplest of all illustrations, so long as the main goal appeared to be the organization of constitutional liberties and political rights, the historian interpreted the past in constitutional and political terms. When economic and social ends began to replace constitutional and political ends, historians turned to economic and social interpretations of the past. In this process, the sceptic might plausibly allege that the new interpretation is no truer than the old; each is true for its period. 그러므로 내가 전 강좌에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라고 했던 것을 오히려 이렇게 말했어야 할지도 모른다. ‘과거의 사건들과 진보적으로 나타나는 미래 목적들간의 대화’라고.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 중요한 것과 관계있는 것들의 선택은 진보적인 새로운 목표들의 등장과 함께 진화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만약 당신이 어떤 역사적 사건을 해석할 때 주된 목표가 입헌적 자유들과 정치적인 권리들에 관한 것이 주 목표라면, 당신은 과거를 입헌적·정치적 용어들로 과거를 해석하게 된다. 경제적·사회적 목적들이 입헌적·정치적 목적들을 대체할 때, 역사가들은 과거의 사건들을 경제적·사회적 관점에서 해석을 한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회의론자는 아마 주장할지 모른다. 해석이 해석은 옛날 해석보다 더 진실되지 않다. 각각은 각 시대에 진실하다라고.
Nevertheless, since the pre-occupation with economic and social ends represents a broader and more advanced stage in human development than the preoccupation with political and constitutional ends, so the economic and social interpretation of history may be said to represent a more advanced stage in history than the exclusively political interpretation. The old interpretation is not rejected, but is both included and superseded in the new. 하지만 경제적·사회적 목적들에 몰두하는 것은 더 넓은, 더 앞으로 나아간 단계를 표현한다. 인간 발달에 있어서, 정치적·입헌적 목표들에만 몰두하는 것보다는, 경제적·사회적 해석은 아마 표현할지 모른다. 더 선진화된 단계를 표현할지도 모른다. 역사에서 배타적으로 정치적인 해석을 할 때보다는. 옛날 해석은 거부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해석에 포함되었고, 새로운 관점에서 교체되었다.
Chapter 5_24_189p History as Progress
Historiography is a progressive science, in the sense that it seeks to provide constantly expanding and deepening insights into a course of events which is itself progressive. This is what I should mean by saying that we need 'a constructive outlook over the past'. Modern historiography has grown up during the past two centuries in this dual belief in progress, and cannot survive without it, since it is this belief which provides it with its standard of significance, its touchstone for distinguishing between the real and the accidental. Goethe, in a conversation towards the end of his life, cut the Gordian knot a little brusquely: When eras are on the decline, all tendencies are subjective; but on the other hand when matters are ripening for a new epoch, all tendencies are objective. Nobody is obliged to believe either in the future of history or in the future of society. 역사는 진보적인 과학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넓히고 심화시킨다. 통찰력을, 그 자체로 진보적인 사건들의 과정을 끊임없이 넓히고 심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역사는 진보적인 과학이다. 이것이 내가 말한 과거에 대한 건설적인 전망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다. 근대 역사학은 성장해 왔다. 지난 2세기 동안, 이와 같은 두 가지 진보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고 그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믿음이 바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중요성에 대한 표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준을 제공한다. 진짜 원인과 우연적인 원인을 구분하는 기준을 제공한다. 괴테는 그의 인생 말년에 이르러 약간 거칠게 이 난문을 해결했다. 시대가 기울어지고 있을 때 모든 경향들은 주관적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모든 일들이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성숙되어 갈 때, 모든 경향들은 객관적이 된다. 아무도 역사의 미래에 대해서 또는 사회의 미래에 대해서 믿어야 한다고 강요받지 않는다.
It is possible that our society may be destroyed or may perish of slow decay, and that history may relapse into theology-that is to say, a study not of human achievement, but of the divine purpose-or into literature-that is to say, a telling of stories and legends without purpose or significance. But this will not be history in the sense in which we have known it in the last 200 years. 가능한 것이다. 사회가 멸망하거나 또는 천천히 없어져갈 수 있다. 그리고 역사는 신학으로 후퇴할지 모른다. 즉, 인간의 성취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신의 뜻에 대한 연구가 된다. 또는 문학의 영역이 되기도 한다. 즉, 목적이나 중요성이 없는 이야기들이나 신화들을 말하는 것과 같은. 그러나 이것은 역사가 아니다. 우리가 지난 200년간 알아왔던 의미에서의 역사가 아니다.
Chapter 5_25_190p History as Progress
I have still to deal with the familiar and popular objection to any theory which finds the ultimate criterion of historical judgement in the future. Such a theory, it is said, implies that success is the ultimate criterion of judgement, and that, if not whatever is, whatever will be, is right. For the past 200 years most historians have not only assumed a direction in which history is moving, but have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believed that this direction was on the whole the right direction, that mankind was moving from the worse to the better, from the lower to the higher. The historian not only recognised the direction, but endorsed it. The test of significance which he applied in his approach to the past was not only a sense of the course on which history was moving, but a sense of his own moral involvement in that course. The alleged dichotomy between the 'is' and the 'ought', between fact and value, was resolved. It was an optimistic view, a product of an age of overwhelming confidence in the future; Whigs and Liberals, Hegelians and Marxists, theologians and rationalists, remained firmly, and more or less articulately, committed to it. For 200 years it could have been described without much exaggeration as the accepted and implicit answer to the question 'What is history?' 나는 익숙하고 인기 있는 어떤 반대를 아직 다루어야 한다. 그 반대는 어떤 이론이다. 그 이론은 궁극적인 판단을 찾는다. 미래의 역사적인 판단에서 궁극적인 기준을 찾는 것에 대한 이론을 반대하는 익숙하고 인기 있는 반대를 다루어야 한다. 그런 이론은 의미하기를 성공이 판단의 궁극적인 기준이었다. 현존하는 것은 모두 옳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미래에 있을 일은 모두 옳다고 믿는 것이었다. 지난 200년 동안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역사가 진행되고 있는 방향에 대해 가정했을 뿐만 아니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믿었다. 이 방향은 전반적으로 옳은 방향이었으며, 인류는 나쁜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진행된다고 믿었다. 역사가는 방향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증했다. 중요성의 기준, 그가 과거에 대한 그의 접근법에서 중요성을 테스트할 때 기준은 역사가 흘러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감각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그가 지니고 있는 그 자신의 도덕관념이기도 했다. 존재와 당위 사이의 이분법,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은 해결되었다. 그것은 낙관적인 견해였다. 어떤 결과였다. 미래에 대해 지난친 자신감이 넘치는 시대의 산물이었다. 휘그들 그리고 자유주의자들, 헤겔파들 그리고 마르크스들, 신학자들, 그리고 이성주의자들은 확고하게 믿었다. 그리고 다소 분명하게 그것에 믿었다. 200년 동안 그것은 서술되어 올 수 있었다. 과장됨이 없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공인된 그리고 묵시적인 대답으로서
Chapter 5_26_191p History as Progress
The reaction against it has come with the current mood of apprehension and pessimism, which has left the held clear for the theologians who seek the meaning of history outside history, and for the sceptics who find no meaning in history at all. We are assured on all hands, and with the utmost emphasis, that the dichotomy between 'is’ and 'ought' is absolute and cannot: be resolved, that 'values' cannot be derived from 'facts'. This is, I think, a false trail. Let us see how a few historians, or writers about history, chosen more or less at random, have felt about this question. Gibbon justifies the amount of space devoted in his narrative to the victories of Islam on the ground that 'the disciples of Mohammed still hold the civil and religious sceptre of the Oriental world'. 이러한 것에 대한 반동은 현재의 불안과 비관주의 경향으로부터 나왔다. 그것은 자리를 내어 주었다. 신학자들에게. 신학자들은 역사 바깥에서 역사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회의주의자들에게. 회의주의자들은 역사에서 전혀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강조 받는다. ‘존재’와 ‘당위’의 이분법은 절대적이라느니 또는 해결될 수 없다고 강조 받는다. 그리고 가치들은 사실들로부터 유추될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기엔 거짓된 경로이다. 몇 사람의 역사가나 저술가들을 생각해 본다. 다소 랜덤하게 선택되었다. 이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본 역사가나 저술가들. 기번은 정당화했다. 일정 공간을 할애하는 것을, 회교의 승리에 관한 얘기를 할 때, 왜냐하면 모하마드의 제자들이 아직 세속적, 종교적 영역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동양세계에서.
sceptre 1. 왕이 지니는 홀 2. 왕위 3. …을 왕위에 앉히다
But, he adds, ‘the same labour would be unworthily bestowed on the swarms of savages who, between the seventh and twelfth centuries, descended from the plains of Scythia', since 'the majesty of the Byzantine throne repelled and survived these disorderly attacks'. This seems not unreasonable. History is, by and large, a record of what people did, not of what they failed to do: to this extent it is inevitably a success story. Professor Tawney remarks that historians give 'an appearance of inevitableness to an existing order 'by dragging into prominence the forces which have triumphed and thrusting into the background those which they have swallowed up'. 그러나 그는 추가한다. 같은 노력을 부여할 가치가 없다고 야만인 무리들에게는. 7세기에서 18세기에 사이에 스키티아 평원에 왔던 야만인 무리들에 대해서는. 왜냐하면 비잔틴 제국의 권위가 그들을 쫓아내고 이러한 무질서한 공격들로부터 살아남았으므로. unworthily 1.진가에 어울리지 않게 2.걸맞지 않게 3.부당하게 이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얘기가 아니다. 역사가 대체로 무엇을 이룬 사람들의 기록이다. 그들이 실패한 기록이 아니라. 그리고 이와 같은 면에서는 성공 스토리라는 것은 불가피하다. 토니 교수는 언급한다. 역사가들은 불가피성의 외양을 부여한다. 현존 질서에. 전면으로 끌고 온다. 승리한 세력을. 그리고 후면으로 밀어내 버린다. 패배한 세력은.
Chapter 5_27_192p History as Progress
But is not this in a sense the essence of the historian's job? The historian must not underestimate the opposition; he must not represent the victory as a walk-over if it was touch-and-go. Sometimes those who were defeated have made as great a contribution to the ultimate result as the victors. These are familiar maxims to every historian. But, by and large, the historian is concerned with those who, whether victorious or defeated, achieved something. I am not a specialist in the history of cricket. But its pages are presumably studded with the names of those who made centuries rather than of those who made ducks and were left out of the side. Hegel's famous statement that in history 'only those peoples can come under our notice which form a state', has been justly criticised as attaching an exclusive value to one form of social organization and paving the way for an obnoxious state-worship. But, in principle, what Hegel is trying to say is correct, and reflects the familiar distinction between prehistory and history; only those peoples which have succeeded in organizing their society in some degree cease to be primitive savages and enter into history. Carlyle in his French Revolution called Louis XV 'a very World Solecism incarnate'. 이것이 역사가가 해야 할 본질적인 일이 아닐까? 역사가는 반대편을 경시하면 안 된다. 그는 간신히 이길 수 있었던 것을 독주했다고 하면 안 된다. 때때로 패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승자만큼이나 궁극적인 결과에. 이것은 역사가들에게 익숙한 금언이다. 그러나 대체로 역사가는 승리자건 패배자건 어떤 것을 획득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나는 크리켓 역사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다. 크리켓에 관한 역사 페이지에는 이름들로 가드가 있을 것이다. 수 백점을 딴 사람들의 이름이. 0점이나 실격한 사람들의 이름은 빠져 있을 것이다. 헤겔의 유명한 말인 ‘오직 국가를 형성한 사람들만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라는 표현은 정당하게 비판받는다. 독점적인 가치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사회조직을 형성한 사람들에게 독점적인 가치를 부여하여 혐오스런 국가 숭배를 길을 열었다는 의미해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헤겔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옳다. 그리고 선사시대와 역사시대 사이의 익숙한 구별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들의 사회를 형성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만 어떤 면에서는 원시 상태를 끝내고 역사 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카알라일은 ‘프랑스 혁명사’ 속에서 루이 14세를 세계적 무법의 화신이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