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_27_192p History as Progress
But is not this in a sense the essence of the historian's job? The historian must not underestimate the opposition; he must not represent the victory as a walk-over if it was touch-and-go. Sometimes those who were defeated have made as great a contribution to the ultimate result as the victors. These are familiar maxims to every historian. But, by and large, the historian is concerned with those who, whether victorious or defeated, achieved something. I am not a specialist in the history of cricket. But its pages are presumably studded with the names of those who made centuries rather than of those who made ducks and were left out of the side. Hegel's famous statement that in history 'only those peoples can come under our notice which form a state', has been justly criticised as attaching an exclusive value to one form of social organization and paving the way for an obnoxious state-worship. But, in principle, what Hegel is trying to say is correct, and reflects the familiar distinction between prehistory and history; only those peoples which have succeeded in organizing their society in some degree cease to be primitive savages and enter into history. Carlyle in his French Revolution called Louis XV 'a very World Solecism incarnate'. 이것이 역사가가 해야 할 본질적인 일이 아닐까? 역사가는 반대편을 경시하면 안 된다. 그는 간신히 이길 수 있었던 것을 독주했다고 하면 안 된다. 때때로 패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승자만큼이나 궁극적인 결과에. 이것은 역사가들에게 익숙한 금언이다. 그러나 대체로 역사가는 승리자건 패배자건 어떤 것을 획득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나는 크리켓 역사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다. 크리켓에 관한 역사 페이지에는 이름들로 가드가 있을 것이다. 수 백점을 딴 사람들의 이름이. 0점이나 실격한 사람들의 이름은 빠져 있을 것이다. 헤겔의 유명한 말인 ‘오직 국가를 형성한 사람들만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라는 표현은 정당하게 비판받는다. 독점적인 가치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사회조직을 형성한 사람들에게 독점적인 가치를 부여하여 혐오스런 국가 숭배를 길을 열었다는 의미해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헤겔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옳다. 그리고 선사시대와 역사시대 사이의 익숙한 구별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들의 사회를 형성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만 어떤 면에서는 원시 상태를 끝내고 역사 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카알라일은 ‘프랑스 혁명사’ 속에서 루이 14세를 세계적 무법의 화신이고 불렀다
Chapter 5_28_193p History as Progress
He evidently liked the phrase, for he embroidered it later in a longer passage: What new universal vertiginous movement is this: of institutions, social arrangements, individual minds, which once worked co-operative, now rolling and grinding in distracted collision? Inevitable; it is the breaking-up of a World Solecism, worn out at last. The criterion is once more historical: what fitted one epoch had become a solecism in another, and is condemned on that account. Even Sir Isaiah Berlin, when he descends from the heights of philosophical abstraction and considers concrete historical situations, appears to have come round to this view. In a broadcast delivered some time after the publication of his essay on Historical Inevitability, he praised Bismarck, in spite of moral shortcomings, as a 'genius' and 'the greatest example in the last century of a politician of the highest powers of political judgement', and contrasted him favourably in this respect with such men as Joseph II of Austria, Robespierre, Lenin, and Hitler, who failed to realise 'their positive ends'. I find this verdict odd. 그는 분명히 이 구절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을 후에 더 길게 부여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어지러운 운동인가? 제도들, 사회 조직, 개인적인 마음들 이런 것들이 한 때는 서로 협조적이었지만 지금은 미친 듯이 충돌하고 있다. 이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세계적 무법 정신이 붕괴되어 버렸다. 이 기준은 다시 한 번 역사적이다. 한 시대에 맞던 것들이 다른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 이유로 비난받는다. 이샤야 벌린 경조차도 철학적 추상의 세계의 언덕에서 내려온 뒤 그리고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을 생각하게 되면 위와 같은 견해에 동조하게 된다. 한 방송에서 그의 에세이 ‘역사적 불가피성’ 책 발간 후 얼마 지나 한 방송에서 그는 비스마르크를 칭찬했다. 그의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재이고 가장 위대한 예 중의 하나이다라고. 전 세기의 정치적 판단의 최고 수준의 높은 힘을 부여준 정치가 중의 가장 위대한 예중의 하나라고. 그리고 그를 비교했다. 요세프 2세, 로베스피에르, 레닌, 히틀러와 같은 ‘자기들의 적극적인 목적’을 실현하지 못한 사람들과 비교했다.
Chapter 5_29_194p History as Progress
But what interests me at the moment is the criterion of judgement. Bismarck, says Sir Isaiah, understood the material in which he was working; the others were led away by abstract theories which failed to work. The moral is that 'failure comes from resisting that which works best ... in favour of some systematic method or principle claiming universal validity'." In other words the criterion of judgement in history is not some 'principle claiming universal validity', but 'that which works best'. It is not only-I need hardly say-when analysing the past that we invoke this criterion of 'what works best'. 그러나 그 당시 나를 흥미 있게 한 것은 판단의 기준이었다. 비스마르크는 이샤야 벌린 경이 말하기를 사물을 이해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그의 작업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추상적인 이론들에 휩쓸려서 그의 일을 수행하는 데 실패했다고 한다. 교훈은 어떤 실패이다. 그 실패는 저항하는 것으로부터 온다. 가장 소용되는 것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온다. 체계적인 방법이나 원리를 선호하다 보니. 보편적인 타탕성을 주장하는 체계적인 방법이나 원리등을 선호하다 보니 가장 소용되는 것에 대한 저항이 나오고 이것일 실패의 원인이라는 교훈이다. 다시 말해 역사에서 판단의 기준은 보편적인 타당성을 주장하는 원리가 아니라 가장 소용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가장 소용되는 것이라는 기준을 환기 시킬 때 과거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If someone informed you that he thought that, at the present juncture, the union of Great Britain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in a single state under a single sovereignty was desirable, you might agree that this was quite a sensible view. If he went on to say that constitutional monarchy was preferable to presidential democracy as a form of government, you might also agree that this was quite sensible. But suppose he then told you that he proposed to devote himself to conducting a campaign for the reunion of the two countries under the British crown; you would probably reply that he would be wasting his time. If you tried to explain why, you would have to tell him that issues of this kind have to be debated on the basis not of some principle of general application, but of what would work in given historical conditions; you might even commit the cardinal sin of speaking of history with a capital H and tell him that History was against him.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말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현 시점에서 영국과 미국의 단일 주권국가로의 통합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면 당신은 이것은 현명한 생각이라고 찬성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입헌적 군주제가 대통령제보다 더 선호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 정부의 형태로 당신은 또한 이것이 말이 된다고 동의할지 모른다. 그러나 가정해 보자 그가 당신에게 말하기를 그는 헌신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하자. 어떤 캠패인에 두 나라(미국과 영국)을 합치되 영국의 주권 하에 합치자고 주장한다면 당신은 아마 그에게 말하기를 시간 낭비일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만약 왜라고 설명을 시도한다면 당신은 아마 그에게 이렇게 말하지 모른다. 이와 같은 종류의 이슈는 토론되어야 한다. 일반적인 응용의 원리에 기초에서가 아니라 역사적 조건에서 그것이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에 기초해서 다루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당신은 큰 죄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대문자로 쓴 역사를 얘기하면서, 그리고 그에게 말하기를 역사는 그에게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사란 무엇인가_시즌2] 195~200(90+22*5)p_ 월 22일( )
Chapter 5_30_195p History as Progress
The business of the politician is to consider not merely what is morally or theoretically desirable, but also the forces which exist in the world, and how they can be directed or manipulated to probably partial realizations of the ends in view. Our political decisions, taken in the light of our interpretation of history, are rooted in this compromise. But our interpretation of history is rooted in the same compromise. 정치가가 해야 할 일은 도덕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바람직한가를 고려할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는 세력들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방향지워지고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 에 대해서도, 당면한 목적의 일부라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의 정치적 결정들은 역사의 해석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러한 타협에 뿌리를 둔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해석은 같은 타협에 뿌리를 둔다.
Nothing is more radically false than to set up some supposedly abstract standard of the desirable and condemn the past in the light of it. For the word 'success', which has come to have invidious connotations, let us by all means substitute the neutral 'that which works best'. Since I have joined issue with Sir Isaiah Berlin on several occasions during these lectures, I am glad to be able to close the account with, at any rate, this measure of agreement. But acceptance of the criterion of 'what works best' does not make its application either easy or self-evident. It is not a criterion which encourages snap verdicts, or which bows down to the view that what is, is right. Pregnant failures are not unknown in history. History recognizes what I may call 'delayed achievement': the apparent failures of today may turn out to have made a vital contribution to the achievement of tomorrow - prophets born before their time. 아무 것도 더 근본적으로 오류가 아니다. 어떤 가상적인 추상적인 기준을 세우는 것만큼, 어떤 바람직한 기준을 세워놓고 그것에 비추어 과거를 비난하는 것만큼 오류는 없다. 우리는 성공이라는 약간 불쾌한 느낌을 주는 단어를 피하고 ‘가장 소용되는 것’이라는 좀 더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기로 하자. 나는 벌린 경과 여러 번 이슈에 대해 의견 대립을 해 왔다. 진행 중인 이 강좌들에서. 가는 이 문제에 대해 이정도의 합의를 이룬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잘 작동하는 것’이라는 기준을 수용한다고 해서 이것의 응용이 쉽다거나 자명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기준이 아니다. 순간적인 판단을 내리는 곳이나 현존하는 것은 모두 옳다. 라는 기준이 아니다. 역사에는 뜻깊은 실패들도 없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인정한다. 소위 ‘지연된 성취’에 대해, 오늘 명백하게 실패인 듯한 것이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 내일은. 특히 시대를 앞서 태어난 예언자들이 그 예이다.
Chapter 5_31_196p History as Progress
Indeed, one of the advantages of this criterion over the criterion of a supposedly fixed and universal principle is that it may require us to postpone our judgement or to qualify it in the light of things that have not yet happened. Proudhon, who talked freely in terms of abstract moral principles, condoned the coup d'etat of Napoleon III after it had succeeded; Marx, who rejected the criterion of abstract moral principles, condemned Proudhon for condoning it. Looking back from a longer historical perspective, we shall probably agree that Proudhon was wrong and Marx right. 사실, 이와 같은 기준의 장점들 중의 하나는, 고정되었고 보편적인 원리들이라는 기준보다 이와 같은 기준들의 장점들 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판단을 연기시키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또는 정당화 하는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들의 관점에서. 프루동, 그는 추상적인 도덕적 원리들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했었다. 프루동은 용인했다.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를, 그것이 성공한 뒤에나. 그리고 마르크스는 추상적인 도덕적 원리들을 거부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용인한 프루동을 비난했다. 긴 역사적 관점에서 되돌아보면 우리는 아마 프루동이 틀렸고 마르크스가 맞았음을 동의할 것이다.
The achievement of Bismarck provides an excellent starting-point for an examination of this problem of historical judgement; and, while I accept Sir Isaiah's criterion of 'what works best', I am still puzzled by the narrow and short-term limits within which he is apparently content to apply it. Did what Bismarck created really work well? I should have thought that it led to an immense disaster. This does not mean that I am seeking to condemn Bismarck, who created the German Reich, or the mass of Germans who wanted it and helped to create it. But, as a historian, I still have many questions to ask. 비스마르크의 업적은 좋은 출발점을 제공해 준다. 역사적 판단의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조사할 때, 그리고 나는 이샤야 벌린경의 가장 제대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만 나는 여전히 당황스럽다. 좁고 단기간의 한계에 그가 그것을 적용하는듯하게 보일 때. 비스마르크는 참으로 유용했을까? 나는 그가 큰 재난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비스마르크를 비난한다고, 그는 독일 제국을 건설한 비스마르크를. 그리고 나는 독일 국민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스마르크를 원했고 그를 도와 제국 건설을 도왔다. 그러나 나는 역사가로서, 나는 여전히 물어볼 많은 질문들이 있다.
Chapter 5_32_197p History as Progress
Did the eventual disaster occur because some hidden flaws existed in the structure of the Reich I or because something in the internal conditions which brought it to birth destined it to become self-assertive and aggressive? or because, when the Reich was created, the European or world scene was already so crowded, and expansive tendencies among the existing Great Powers already so strong, that the emergence of another expansive Great Power was sufficient to cause a major collision and bring down the whole system in ruins? On the last hypothesis, it may be wrong to hold Bismarck and the German people responsible, or solely responsible, for the disaster: you cannot really blame the last straw. 종국적인 그 재앙은 일어났는가? 어떤 숨겨진 결함들이 제국의 구조에 있었기 때문에, 또는 내부적인 어떤 조건들 때문에 이기적이고 공격적이 될 운명이었을까? 또는 제국이 건설되었을 때, 유럽이나 세계는 너무나 이미 꽉 차 있었고, 그리고 현존하는 강대국 사이에서 팽창적인 경향도 이미 너무나 강해 있었기 때문에, 다른 팽창하는 강대국의 등장은 대규모 충돌을 불러오기에 충분했고 조직 전체가 붕괴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마지막 가정에 의한 것이라면 비스마르크와 독일 국민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은 잘못이다. 그 재난에 대해 온전히 책임을 지우는 것은. 우리는 마지막 지푸라기(낙타 등에 얹혀진)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But an objective judgement on Bismarck’s achievement and how it worked awaits an answer from the historian to these questions, and I am not sure that he is yet in a position to answer them all definitively. What I would say is that the historian of the 1920s was nearer to objective judgement than the historian of the 1880s, and that the historian of today is nearer than the historian of the 1920s; the historian of the year 2000 may be nearer still. 객관적인 판단. 비스마르크의 업적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잘 작용했느냐에 대한 것은 역사가로부터의 답변을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나는 확신이 없다. 그는 아직 이런 위치에 있지 않다고 그들에 대해 확정적으로 답한 위치에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1920년대의 역사가는 더 객관적인 판단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1980년대의 역사가보다는. 그리고 오늘날의 역사가는 더 가까워진다. 1920년대의 역사가보다는. 그리고 서기 2000년의 역사가는 더욱 더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This illustrates my thesis that objectivity in history does not and cannot rest on some fixed and immovable standard of judgement existing here and now, but only on a standard which is laid up in the future and is evolved as the course of history advances. History acquires meaning and objectivity only when it establishes a coherent relation between past and future. 이것은 나의 주제를 선명하게 한다. 역사에서 객관성은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어떤 고정된 움직이지 않는 판단기준에 의존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오직 미래에 설정되는 기준에 의존한다. 그리고 점점 더 진화한다. 역사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역사는 의미와 객관성을 획득한다. 오직 과거와 미래의 일관성 있는 관계를 정리할 때.
Chapter 5_33_198p History as Progress
Let us now take another look at this alleged dichotomy between fact and value. Values cannot be derived from facts. This statement is partly true, but partly false. You have only to examine the system of values prevailing in any period or in any country to realize how much of it is moulded by the facts of the environment. In an earlier lecture I drew attention to the changing historical content of value-words like liberty, equality, or justice. Or take the Christian church as an institution largely concerned with the propagation of moral values. 여기서 잠깐 눈을 다르게 돌려 보자. 사실과 가치 사이의 이분법이라는 것. 가치들은 사실들로부터 유추될 수 없다. 이것은 일부 사실이고 일부는 거짓이다. 당신은 단지 가치들의 체계를 조사해 보면 된다. 어떤 시대의 또는 어떤 나라의, 그것들이 얼마나 환경의 사실들에 의해 형성되는지를 깨닫기 위해서 어떤 시대, 어떤 나라들의 지배적인 가치 시스템을 조사해 보면 된다. 지난 강좌에서 나는 관심을 쏟은 적이 있다. 변해가는 역사적 내용들에 관해서, 가치를 나타내는 단어들인 자유, 평등, 정의등에 대한 가치를 나타내는 단어들의 변해가는 역사적 내용들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킨 적이 있다. 기독교 교회를 예를 들어보자. 기독교 교회는 주로 관련해 왔다. 도덕적 가치의 보급기관으로.
Contrast the values of primitive Christianity with those of the medieval papacy, or the values of the medieval papacy with those of the Protestant churches of the nineteenth century. Or contrast the values promulgated today by, say, the Christian church in Spain, with the values promulgated by the Christian churches in the United States. These differences in values spring from differences of historical fact. Or consider the historical facts which in the last century and a half have caused slavery or racial inequality or the exploitation of child labour-all once accepted as morally neutral or reputable-to be generally regarded as immoral.비교해 보라. 초기 기독교의 가치들과 중세 교황 시대의 가치들을, 그리고 중세 교황시대의 가치들과 19세기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가치들을. 가치들을 비교해 보라. 오늘날 전파된. 스페인의 교회들에 의해 전파된 가치들과 미국의 기독교 교회들에 의해 전파된 가치들을 비교해 보라. 이러한 차이들을 역사적 사실의 차이들로부터 생겨난다. 또는 역사적 사실들을 고려해 보라. 지난 1세기 반 동안에 노예제도와 인종차별과 아동 노동의 착취들을 유발시켰던 역사적 사실들, 이런 것들은 모두 도덕적으로 중립적으로 훌륭한 것으로 인정되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도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고려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