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_33_198p History as Progress
Let us now take another look at this alleged dichotomy between fact and value. Values cannot be derived from facts. This statement is partly true, but partly false. You have only to examine the system of values prevailing in any period or in any country to realize how much of it is moulded by the facts of the environment. In an earlier lecture I drew attention to the changing historical content of value-words like liberty, equality, or justice. Or take the Christian church as an institution largely concerned with the propagation of moral values. 여기서 잠깐 눈을 다르게 돌려 보자. 사실과 가치 사이의 이분법이라는 것. 가치들은 사실들로부터 유추될 수 없다. 이것은 일부 사실이고 일부는 거짓이다. 당신은 단지 가치들의 체계를 조사해 보면 된다. 어떤 시대의 또는 어떤 나라의, 그것들이 얼마나 환경의 사실들에 의해 형성되는지를 깨닫기 위해서 어떤 시대, 어떤 나라들의 지배적인 가치 시스템을 조사해 보면 된다. 지난 강좌에서 나는 관심을 쏟은 적이 있다. 변해가는 역사적 내용들에 관해서, 가치를 나타내는 단어들인 자유, 평등, 정의등에 대한 가치를 나타내는 단어들의 변해가는 역사적 내용들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킨 적이 있다. 기독교 교회를 예를 들어보자. 기독교 교회는 주로 관련해 왔다. 도덕적 가치의 보급기관으로.
Contrast the values of primitive Christianity with those of the medieval papacy, or the values of the medieval papacy with those of the Protestant churches of the nineteenth century. Or contrast the values promulgated today by, say, the Christian church in Spain, with the values promulgated by the Christian churches in the United States. These differences in values spring from differences of historical fact. Or consider the historical facts which in the last century and a half have caused slavery or racial inequality or the exploitation of child labour-all once accepted as morally neutral or reputable-to be generally regarded as immoral.비교해 보라. 초기 기독교의 가치들과 중세 교황 시대의 가치들을, 그리고 중세 교황시대의 가치들과 19세기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가치들을. 가치들을 비교해 보라. 오늘날 전파된. 스페인의 교회들에 의해 전파된 가치들과 미국의 기독교 교회들에 의해 전파된 가치들을 비교해 보라. 이러한 차이들을 역사적 사실의 차이들로부터 생겨난다. 또는 역사적 사실들을 고려해 보라. 지난 1세기 반 동안에 노예제도와 인종차별과 아동 노동의 착취들을 유발시켰던 역사적 사실들, 이런 것들은 모두 도덕적으로 중립적으로 훌륭한 것으로 인정되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도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고려해 보라.
Chapter 5_34_199p History as Progress
The proposition that values cannot be derived from facts is, to say the least, one-sided and misleading. Or let us reverse the statement. Facts cannot be derived from values. This is partly true, but may also be misleading, and requires qualification. When we seek to know the facts, the questions which we ask, and therefore the answers which we obtain, are prompted by our system of values. Our picture of the facts of our environment is moulded by our values, i.e. by the categories through which we approach the facts; and this picture is one of the important facts which we have to take into account. Values enter into the facts and are an essential part of them. Our values are an essential part of our equipment as human beings. 가치들은 사실들로부터 유도될 수 없다는 명제는 일방적이고 오해를 부른다. 또는 그 진술을 거꾸로 해 보자. 사실들은 가치들로부터 유추될 수 없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다. 그러나 또한 잘못된 곳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조건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사실들을 알고자 할 때, 우리는 던지는 질문들은 그리고 우리가 찾고자 하는 해답들은 우리의 가치 체계에 의해 결정된다. 환경에 대한 사실들의 우리의 그림은 우리의 가치들에 의해 형성된다. 즉, 카테고리를 통해서 우리는 사실들에 접근한다. 그리고 이 그림은 가치들은 사실들 속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중요한 부분이 된다. 우리의 가치들은 중요한 부분이다. 인간으로서 우리들 구조의 일부분으로서
It is through our values that we have that capacity to adapt ourselves to our environment, and to adapt our environment to ourselves, to acquire that mastery over our environment, which has made history a record of progress. But do not, in dramatizing the struggle of man with his environment, set up a false antithesis and a false separation between facts and values. Progress in history is achieved through the interdependence and interaction of facts and values. The objective historian is the historian who penetrates most deeply into this reciprocal process. 우리의 가치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환경에 우리 스스로 적응하는 능력을 가진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 환경들을 적응시키기도 한다. 환경에 대한 지배력을 획득하여 역사를 진보의 기록으로 만드는 것도 우리의 가치들을 통해서이다. 그의 환경과 인간과의 투쟁을 과장하여 사실들과 가치들의 대립과 거짓된 분리를 세우지 마라. 역사에서의 진보는 획득된다.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사실들과 가치들의. 그리고 객관적인 역사가는 이와 같은 상호 작용을 깊게 꿰뚫어 보는 역사가이다.
Chapter 5_35_200p History as Progress
A clue to this problem of facts and values is provided by our ordinary use of the word 'truth'-a word which straddles the world of fact and the world of value, and is made up of elements of both. Nor is this an idiosyncrasy of the English language. The words for truth in the Latin languages, the German Wahrheit, the Russian pravda,' all possess this dual character. Every language appears to require this word for a truth which is not merely a statement of fact and not merely a value judgement, but - embraces both elements. It may be a fact that I went to London last week. But you would not ordinarily call it a truth: it is devoid of any value content. 사실과 가치라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힌트는 일반적인 ‘진리’라는 말의 일상적인 사용에 있다. 이 단어는 사실이라는 세계와 가치라는 세계에 모두 걸쳐져 있다. 그리고 양쪽의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은 영어만이 아니다. 라틴어에서 진리에 해당하는 단어들은 독일어는 Wahrheit, 러시아는 프라우다 등 이런 모든 것들은 이와 같은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다. 모든 언어는 진리라는 이 단어는 요구하는 것 같다. 단순히 사실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히 가치 판단만도 아니고 양쪽의 요소들을 모두 포함하는. 내가 지난주에 런던에 갔다는 것을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보통 이런 것을 진리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치 내용이 결여되어 있다.
On the other hand, when the Founding Fathers of the United States in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referred to the self-evident truth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you may feel that the value content of the statement predominates over the factual content, and may on that account challenge its right to be regarded as a truth. Somewhere between these two poles-the north pole of valueless facts and the south pole of value judgements still struggling to transform themselves into facts-lies the realm of historical truth. 반면에 미국의 건국 아버지들이 독립 선언서에서 언급했다. 자명한 진리라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라는 것은 자명한 진리라고 했을 때, 당신은 느낄 것이다. 그 진술의 가치 내용은 사실적인 내용을 압도하며, 그리고 그런 이유로 그것이 진리인지에 대해서 도전해 봐야 할 것이라고 느낄 것이다. 이와 같은 두 개의 극 사이의 어딘가에-가치판단이 없는 사실들의 북극과 가치 판단의 남극, 그리고 사실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치 판단 들-역사적 진실의 영역에 있다.
Chapter 5_36_201p History as Progress
The historian, as I said in my first lecture, is balanced between fact and interpretation, between fact and value. He cannot separate them. It may be that, in a static world, you are obliged to pronounce a divorce between fact and value. But history is meaningless in a static world. History in its essence is change, movement, or-if you do not cavil at the old-fashioned word-progress. I return therefore in conclusion to Acton's description of progress as 'the scientific hypothesis on which history is to be written'. You can, if you please, turn history into theology by making the meaning of the past depend on some extra-historical and super-rational power. You can, if you please, turn it into literature-a collection of stories and legends about the past without meaning or significance. 역사가는 내가 1강에서 말했듯이 사실과 해석, 사실과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춘다. 그는 그들을 분리할 수 없다. 그것은 정적인 사회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사실과 가치의 분리를 선언해야할 의무를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정적인 사회에서는 무의미하다. 역사는 본질적으로 변화다, 운동이다. 또는 당신이 오래된 단어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면, 진보다. 나는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액튼의 진보에 대한 진술로, 역사는 과학적 가정위에서 씌어진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면 역사는 신학으로 바꿀 수 있다. 과거의 의미를 어떤 역사외부의 그리고 초 합리적인 힘에 의존하는 식으로. 당신은 원하면 역사를 문학으로 바꿀 수 있다. 이야기들의 모음이나 신화들의 모음. 과거에 관한 이야기들이나 전설들의 집합으로 의미도 없고 중요성도 없는.
History properly so-called can be written only by those who find and accept a sense of direction in history itself. The belief that we have come from somewhere is closely linked with the belief that we are going somewhere. A society which has lost belief in its capacity to progress in the future will quickly cease to concern itself with its progress in the past. As I said at the beginning of my first lecture, our view of history reflects our view of society. I now come back to my starting-point by declaring my faith in the future of society and in the future of history. 역사가 소위 올바로 씌어 진다는 것은 오직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씌어진다. 역사에서의 방향 감각을 찾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씌어 진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왔다는 믿음은 어디로 간다는 믿음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미래의 진보에 대한 가능성을 잃어온 사회는 과거에서의 진보에 대한 관심도 빠르게 잃어버릴 것이다. 내가 첫 강의의 시작에서 말했듯이 역사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사회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반영한다. 나는 지금 출발점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사회의 미래와 역사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표명하려 한다.
Chapter 6_1_204p The widening horizon
THE conception which I have put forward in these lectures of history as a constantly moving process, with the historian moving within it, seems to commit me to some concluding reflexions on the position of history and of the historian in our time. We live in an epoch when-not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predictions of world catastrophe are in the air, and weigh heavily on all. They can be neither proved nor disproved. But they are at any rate far less certain than the prediction that we shall all die; and, since the certainty of that prediction does not prevent us from laying plans for our own future, so I shall proceed to discuss the present and future of our society on the assumption that this country-or, if not this country, some major part of the world-will survive the hazards that threaten us, and that history will continue. 내가 앞에서 강의했던 역사란 끊임없이 움직이는 행렬이고 역사가는 그 안에서 움직이는 존재이다. 라는 개념은 나로 하여금 어떤 결론적인 성찰들을 하게 한다. 역사의 위치와 우리 시대의 역사가의 위치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이런 적이 역사에서 처음은 아니다. 세계적인 재앙의 예언이 가득하며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종말론적인 대재앙의 예언은 증명될 수도 없고 부정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어쨌든 덜 확실하다. 어떤 예언보다는 덜 확실하다. 우리가 모두 죽을 것이라는 예언보다는 덜 확실하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죽을 것이라는 예언의 확실성이 우리를 막지 않는다. 계획을 세우는 것에 대해 우리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우는 것에 대해 방해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논의를 계속해 갈 것이다.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 갈 것이다. 아래와 같은 가정하에 이 나라 또는 꼭 이 나라가 아니더라도 세계의 주요한 일부분에서 그 위험으로부터 살아남고, 우리를 위협하는 그 위험으로부터 살아남고, 역사는 계속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우리는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