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_1_204p The widening horizon
THE conception which I have put forward in these lectures of history as a constantly moving process, with the historian moving within it, seems to commit me to some concluding reflexions on the position of history and of the historian in our time. We live in an epoch when-not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predictions of world catastrophe are in the air, and weigh heavily on all. They can be neither proved nor disproved. But they are at any rate far less certain than the prediction that we shall all die; and, since the certainty of that prediction does not prevent us from laying plans for our own future, so I shall proceed to discuss the present and future of our society on the assumption that this country-or, if not this country, some major part of the world-will survive the hazards that threaten us, and that history will continue. 내가 앞에서 강의했던 역사란 끊임없이 움직이는 행렬이고 역사가는 그 안에서 움직이는 존재이다. 라는 개념은 나로 하여금 어떤 결론적인 성찰들을 하게 한다. 역사의 위치와 우리 시대의 역사가의 위치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이런 적이 역사에서 처음은 아니다. 세계적인 재앙의 예언이 가득하며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종말론적인 대재앙의 예언은 증명될 수도 없고 부정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어쨌든 덜 확실하다. 어떤 예언보다는 덜 확실하다. 우리가 모두 죽을 것이라는 예언보다는 덜 확실하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죽을 것이라는 예언의 확실성이 우리를 막지 않는다. 계획을 세우는 것에 대해 우리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우는 것에 대해 방해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논의를 계속해 갈 것이다.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 갈 것이다. 아래와 같은 가정하에 이 나라 또는 꼭 이 나라가 아니더라도 세계의 주요한 일부분에서 그 위험으로부터 살아남고, 우리를 위협하는 그 위험으로부터 살아남고, 역사는 계속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우리는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고자 한다.
Chapter 6_2_205p The widening horizon
The middle years of the twentieth century find the world in a process of change probably more profound and more sweeping than any which has overtaken it since the medieval world broke up in ruins and the foundations of the modern world were laid in the fifteenth and sixteenth centuries. The change is no doubt ultimately the product of scientific discoveries and inventions, of their ever more widespread application, and of developments arising directly or indirectly out of them. The most conspicuous aspect of the change is a social revolution comparable with that which, in the fifteenth and sixteenth centuries, inaugurated the rise to power of a new class based on finance and commerce, and later on industry. The new structure of our industry and the new structure of our society present problems too vast for me to embark on here. 20세기 중반은 세계가 변화의 과정에 있었다. 아마 더 깊고 더 광범위하게 어떤 때보다도 중세가 무너지고 근대 세계의 기초들이 세워진 15~16세기 이래로. 그 변화는 의심 없이 궁극적으로 과학적인 발견들과 발명들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발견과 발명들의 광범위한 응용의 결과이고 그리고 그 응용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생기는 발달의 산물일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의 측면은 사회 혁명이다. 이것은 비교된다. 15~16세기에 상승을 시작한 새로운 계급의 힘의 상승과 비교된다. 그들은 금융과 상업 그리고 후에는 산업에 기초를 둔 계급이었다. 현재 우리 산업의 새로운 구조와 우리 사회의 새로운 구조는 내가 여기서 언급을 하기에는 너무나 방대하다.
But the change has two aspects more immediately relevant to my theme-what I may call a change in depth, and a change in geographical extent. I will attempt to touch briefly on both of these. History begins when men begin to think of the passage of time in terms not of natural processes-the cycle of the seasons, the human life-span-but of a series of specific events in which men are consciously involved and which they can consciously influence. 그러나 그 변화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진다. 내 주제에 적절하게 더 즉각적으로. 소위 깊이 면에서의 변화와 지리적인 범위에서의 변화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진다. 나는 이 두 가지 측면(깊이에 있어서의 변화와, 지리적인 범위에서의 넓이의 변화)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역사는 시작한다. 사람들이 시간의 흐름을 자연의 흐름-계절의 순환, 인간의 수명-이 아니라 일련의 사건들로 생각할 때 역사는 시작된다. 일련의 사건들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개입하고 또 의식적으로 그 사건들에 영향을 준다.
Chapter 6_3_206p The widening horizon
History, says Burckhardt, is 'the break with nature caused by the awakening of consciousness'. History is the long struggle of man, by the exercise of his reason, to understand his environment and to act upon it. But the modern period has broadened the struggle in a revolutionary way. Man now seeks to understand, and to act on, not only his environment but himself; and this has added, so to speak, a new dimension to reason, and a new dimension to history. The present age is the most historically-minded of all ages. Modern man is to an unprecedented degree self-conscious and therefore conscious of history. He peers eagerly back into the twilight out of which he has come, in the hope that its faint beams will illuminate the obscurity into which he is going; and, conversely, his aspirations and anxieties about present, and future are linked together in the endless chain of history. The change in the modern world which consisted in the development of man's consciousness of himself may be said to begin with Descartes, who first established man's position as a being who can not only think, but think about his own thinking, who can observe himself in the act of observing, so that man is simultaneously the subject and the object of thought and observation. 부르크하르트가 말하길, 역사는 자연과의 단절이다. 의식의 각성에 의해 일어나는 자연과의 단절이다. 역사는 인간의 오랜 투쟁이다. 그의 이성의 사용으로 그의 환경을 이해하고 그것에 어떤 작용을 하고자 하는 오랜 투쟁이다. 그러나 근대 시기는 혁명적인 방식으로 투쟁을 넓혀왔다. 인간의 이해하고 영향을 끼치고자 한다. 그의 환경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차원을 보탠다. 이성에 그리고 역사에도 새로운 차원을 추가한다. 현대는 모든 시대 중에서 가장 역사의식이 많은 시기이다. 근대인은 유례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 자각적이다. 그리고 그러므로 역사에 대해서도 큰 자각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나온 황혼의 빛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그리고 희망한다. 그것의 희미한 빛이 불투명한 미래를 비춰줄 것이라고. 그 불투명한 미래를 향하여 그가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역으로 현재와 미래에 대한 그의 열망들과 불안감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역사의 끝없는 체인으로. 근대 세계에서의 변화는 그 자신의 자의식의 발달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데카르트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처음으로 인간의 위치를 생각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사고에 관해 생각하는 최초의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인간은 스스로 관찰하는 사람이다. 관찰하는 행위를 관찰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고와 관찰에서 주체와 객체가 동시에 되는 것이다.
Chapter 6_4_207p The widening horizon
But the development did not become fully explicit till the latter part of the eighteenth century, when Rousseau opened up new depths of human self-understanding and self-consciousness, and gave man a new outlook on the world of nature and on traditional civilization. The French revolution, said de Tocqueville, was inspired by 'the belief that what was wanted was to replace the complex of traditional customs governing the social order of the day by simple elementary rules deriving from the exercise of the human reason and from natural law'. 그러나 그 발달은 18세기 후반까지는 완전히 명시적으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루소가 인간의 자기 자각과 자의식을 새로운 깊이를 드러낼 때까지는. 그리고 사람에게 새로운 전망을 줄 때까지는 자연의 세계와 전통적인 문명에 대해 새로운 전망을 줄 때까지는 그것은 명시적으로는 완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토크빌이 말하기를 프랑스 혁명은 어떤 믿음애 고취되었다고 한다. 필요한 것은 그 당시 사회 질서를 지배하는 전통적인 관습들을 대체해야 한다고 했다. 간단한 기초적인 룰들에 의해, 그 기초적인 룰들은 도출된다. 인간의 이성과 자연법칙들의 구사를 통해서.
'Never till then,' wrote Acton in one of his manuscript notes, 'had men sought liberty, knowing what they sought.'" For Acton, as for Hegel, liberty and reason were never far apart. And with the French revolution was linked the American revolution.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 our fathers brought forth upon this continent a new nation, conceived in liberty, and dedicated to the pro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It was, as Lincoln's words suggest, a unique event-the first occasion in history when men deliberately and consciously formed themselves into a nation, and then consciously and deliberately set out to mould other men into it. 그 때까지는 사람들은 자유를 추구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자유인 줄도 모르고. 라고 액튼은 그의 원고에서 말했다. 액튼에게는 헤겔과 같이 자유와 이성은 결코 떨어질 수 없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은 미국 혁명과 관련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87년전 우리의 선조들은 이 나라에 국가를 가져왔다. 자유를 마음에 품고, 모든 인간의 평등하다는 명제를 신조에 헌신하는 것을 마음에 가진 채. 링컨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미국의 건국) 유일한 사건이었다. 역사상 첫 번째 케이스였다. 인간이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 모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그 국가 형성의 길로 모으기 시작했다.
Chapter 6_5_208p The widening horizon
In the seventeenth and eighteenth centuries man had already become fully conscious of the world around him and of its laws. They were no longer the mysterious decrees of an inscrutable providence, but laws accessible to reason. But they were laws to which man was subject, and not laws of his own making: In the next stage man was to become fully conscious of his power over his environment and over himself, and of his right to make the laws under which he would live. 17~18세기에 인간들은 이미 그를 둘러싼 세계와 그 법칙들에 대해 완전히 의식해 오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신비한 불가사의한 섭리가 아니고 이것으로 접근 가능한 법칙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이 종속하는 법칙이었지 그들 자신이 만든 법칙들이 아니었다. 그 다음 단계에서 인간은 그 자신의 힘을 완전히 의식하게 되었다. 환경과 그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그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 그 권리들은 그들이 살아갈 법칙들을 만드는 것이었다.
The transition from the eighteenth century to the modern world was long and gradual. Its representative philosophers were Hegel and Marx, both of whom occupy an ambivalent position. Hegel is rooted in the idea of laws of providence converted into laws of reason. Hegel's world spirit grasps providence firmly with one hand and reason with the other. He echoes Adam Smith. Individuals 'gratify their own interests; but something more is thereby accomplished, which is latent in their action though not present in their consciousness'. Of the rational purpose of the world spirit he writes that men 'in the very act of realizing it, make it the occasion of satisfying their desire, whose import is different from that purpose'. This is simply the harmony of interests translated into the language of German philosophy. 18세기에서 근대로의 이행은 길고 점진적이었다. 그 대표적인 철학자들은 헤겔과 마르크스였다. 그들 둘 다 애매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이다. 헤겔은 섭리의 법칙 개념을 이성의 법칙 개념으로 바꾼 것에 뿌리를 둔다. 헤겔의 세계정신은 한 손에 섭리의 법칙을 다른 한 손엔 이성을 손에 꽉 쥐고 있다. 그는 아담 스미스를 공명한다. 개인들은 그들 자신의 이익들에 만족한다. 그러나 더 많은 어떤 것이 달성된다. 그것은 그들이 행위에서 잠재한다. 그들 자신의 의식 속에서 아닌. 세계정신의 합리적 목적을 달성하는 행위를 하면서 이것을 이용하여 그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고 있다. 이것의 수입은 본래 그들 목적과는 다른 것이다. 이것은 이익의 조화라는 것을 독일 철학의 용어로 번역해 놓은 것이다.
Chapter 6_6_209p The widening horizon
Hegel's equivalent for Smith's 'hidden hand' was the famous 'cunning of reason' which sets men to work to future purposes of which they are not conscious. But Hegel was none the less the philosopher of the French revolution, the first philosopher to see the essence of reality in historical change and in the development of man’s consciousness of himself. Development in history meant development towards the concept of freedom. But, after 1815, the inspiration of the French revolution fizzled out in the doldrums of the Restoration. Hegel was politically too timid and, in his later years, too firmly entrenched in the Establishment of his day to introduce any concrete meaning into his metaphysical propositions. 헤겔의 등치물,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헤겔의 등치물은 유명한 ‘이성의 간계’였다. 이것은 인간들로 하여금 미래의 일에 대해서 시작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미래의 목적들은 인간들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헤겔은 역시 프랑스 혁명의 철학자였다. 첫 번째 철학자였다. 역사적 변화 안에서 실체의 본질을 본 첫 번째 철학자였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 그 자체의 발달 안에서 실체의 본질을 본 최초의 철학자였다. 역사에서의 발달은 의미했다. 자유의 개념을 향한 발달을 의미했다. 그러나 1815년 이후 프랑스 혁명의 감격은 왕정복고라는 정체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헤겔은 정치적으로 너무난 소심했다. 그리고 후에 너무 기존 질서에 집착해 있어서 어떠한 구체적인 의미도 그의 형이상학적인 명제에 도입하지 못했다.
Herzen's description of Hegel's doctrines as 'the algebra of revolution' was singularly apt. Hegel provided the notation, but gave it no practical content. It was left for Marx to write the arithmetic into Hegel's algebraic equations. A disciple both of Adam Smith and of Hegel, Marx started from the conception of a world ordered by rational laws of nature. Like Hegel, but this time in a practical and concrete form, he made the transition to the conception of a world ordered by laws evolving through a rational process in response to man's revolutionary initiative. 헤르첸의 헤겔의 학설에 대한 서술을 ‘혁명의 대수학’이라고 부른 것은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헤겔은 기호를 제공했다. 그러나 그것에 어떠한 실제적인 내용을 주지 않았다. 마르크스에게 남겨졌다. 수식을 헤겔의 대수 방정식에 써 넣는 것은. 아담 스미스와 헤겔의 동시 제자였던 마르크스는 세계의 걔념으로부터 출발했다. 그 세계는 합리적인 자연의 법칙들에 의해 질서지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헤겔과 같이 그러나 이번에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로, 그는 이행기를 만들었다. 어떤 세계의 개념을 법칙들에 의해 지배된다고 간주했다. 그리고 그 법칙들은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서 진화하고 있는 법칙들이었다. 인간의 혁명적인 주도권에 대응해서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서.
Chapter 6_7_210p The widening horizon
In Marx's final synthesis history meant three things, which were inseparable one from another and formed a coherent and rational whole: the motion of events in accordance with objective, and primarily economic, laws; the corresponding development of thought through a dialectical process; and corresponding action in the form of the class struggle, which reconciles and unites the theory and practice of revolution. What Marx offers is a synthesis of objective laws and of conscious action to translate them into practice, of what are sometimes(though misleadingly) called determinism and voluntarism. 마르크스의 최종 종합에서 역사는 세 가지를 의미했다. 그들은 서로 서로 분리될 수 없고 하나의 일관된 합리적인 전체를 형성했다. 하나의 사건들의 운동이었다. 객관적인, 주로 경제적인 법칙들에 따라 전개되는 사건들의 운동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에 대응한 발달이었다. 변증법 과정을 통해서 생각들의 대응되는 발달이었다. 그리고 대응되는 행동이었다. 계급 투쟁의 형태로 나타나는. 그들은 조화시키고 통일시킨다. 혁명의 이론과 실천들을 조화시키고 통일시킨다. 마르크스가 제공하는 것은 통합이다. 객관적인 법칙들과 그들을 실행으로 옮기려는 의식적인 행동의 통합이다. 그리고 때때로(물론 잘못 해석되기도 하지만) 결정주의와 voluntarism라 부르는 것의 통합이다.
Marx constantly writes of laws to which men have hitherto been subject without being conscious of them: he more than once drew attention to what he called the 'false consciousness' of those enmeshed in a capitalist economy and capitalist society: 'the conceptions formed about the laws of production in the minds of the agents of production and circulation will differ widely from the real laws'. But one finds in Marx's writings striking examples of calls for conscious revolutionary action. 'Philosophers have only interpreted the world differently', ran the famous thesis on Feuerbach; 'but the point is to change it. ''The proletariat', declared the Communist Manifesto, 'will use its political dominance to strip the bourgeoisie step by step of all capital, and concentrate all means of production in the hands of the state.' 마르크스는 끊임없이 법칙들에 대해 쓴다. 이 법칙들에 인간들은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종속되어 왔다. 그는 한 번 더 주의를 환기했다. 소위 그가 부르는 거짓 의식에 대해서. 자본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사회에 휘말려있는 허위의식에 대해 환기를 했다. 개념들 생산법칙들에 관해 형성된 개념들. 생산가 유통의 당사자들 사이의 생산에 관한 법칙들에 관한 개념들은 실제 법칙들과는 크게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마르크스의 눈에 뛸 만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의식적으로 혁명적인 행동을 부르는 눈에 띄는 예들을 본다.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다양하게 세계를 해석해 왔다. 그러나 포인트는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라고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유명한 논문에서 말했다. 공산당 선언에서 말하기를 ‘프롤레타리아는 그들의 정치적 우위성을 사용할 것이다. 부르조아 계급들로부터 모든 자본을 단계적으로 빼앗기 위해. 그리고 집중시킬 것이다. 국가의 손에 모든 생산 수단들을 집중화 것이다’ 라고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