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_21_66p The Society and Individual
But I shall venture to believe that the historian who is most conscious of his own situation is also more capable of transcending it, and more capable of appreciating the essential nature of the differences between his own society and outlook and those of other periods and other countries, than the historian who loudly protests that he is an individual and not a social phenomenon. Man's capacity to rise above his social and historical situation seems to be conditioned by the sensitivity with which he recognizes the extent of his involvement in it. In my first lecture I said: Before you study the history study the historian. Now I would add: Before you study the historian, study his historical and social environment. The historian, being an individual, is also a product of history and of society; and it is in this twofold light that the student of history must learn to regard him. Let us now leave the historian and consider the other side of my equation-the facts of history-in the light of the same problem. Is the object of the historian's inquiry the behaviour of individuals or the action of social forces? Here I am moving on to well-trodden ground. 그러나 나는 감히 믿는다. 역사가가 그의 시대적 환경을 잘 파악하고 있으면 있을수록 그는 더 그 시대를 잘 초월할 수 있고, 그 잘 차이들의 본질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그 자신의 사회와 전망과 다른 시대 다른 나라들의 차이를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된다. 아래와 같은 사람보다. 그는 단지 개인이며 사회적 현상이 아니다 라고 큰 소리로 항의하는 역사가보다는. 어떤 사람의 능력, 그 자신의 시대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을 잘 파악하는 사람은 민감도에더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그 민감도로 그는 그 자신의 시대적 상황을 파악한다. 나의 첫 번째 강의에서 나는 말했다. 역사책을 공부하기 전에 그 책을 쓴 역사가를 공부하라. 지금 나는 하나를 더 추가한다. 역사가를 공부하기 전에 그의 역사적 그리고 사회적 환경을 공부하라. 역사가는 개인이기 때문에 역사의 산물이다. 그리고 사회의 산물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측면이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을 이러한 면을 놓치면 안 된다. 이제 역사가는 내려두고 나의 방정식의 다른 쪽인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같은 관점에서 살펴보자. 역사가가 탐구하는 대상이 개인들의 행동인가? 아니면 사회적 세력들의 행동인가? 여기서 난 잘 닦여진 길을 따라 가려고 한다.
Chapter 2_22_67p The Society and Individual
When Sir Isaiah Berlin published a few years ago a sparkling and popular essay entitled Historical Inevitability-to the main thesis of which I shall return later in these lectures-he headed it with a motto, culled from the works of Mr T. S. Eliot, 'Vast impersonal forces'; and throughout the essay he pokes fun at people who believe in 'vast impersonal forces' rather than individuals as the decisive factor in history. What I will call the Bad King John theory of history-the view that what matters in history is the character and behaviour of individuals-has a long pedigree. The desire to postulate individual genius as the creative force in history is characteristic of the primitive stages of historical consciousness. The ancient Greeks liked to label the achievements of the past with the names of eponymous heroes supposedly responsible for them, to attribute their epics to a bard called Homer, and their laws and institutions to a Lycurgus or a Solon. The same inclination reappears at the Renaissance, when Plutarch, the biographer-moralist, was much more popular and influential a figure in the classical revival than the historians of antiquity. In this country, in particular, we all learned this theory, so to speak, at our mother's knee; and today we should probably recognize that there is something childish, or at any rate childlike, about it. It had some plausibility in days when society was simpler, and public affairs appeared to be run by a handful of known individuals. It clearly does not fit the more complex society of our times; and the birth in the nineteenth century of the new science of sociology was a response to this growing complexity. 이샤야 경은 몇 년 전에 출간했다. sparkling 하고 인기 있는 에세이를 출간했다. '역사적 불가피성'이라는 제목이었다. 그 주제에 대해서는 나중 강연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그는 책의 서두에서 Vast impersonal forces 어귀로 시작했다. 이것은 T.S.Eliot 작품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에세이 내내 그는 비웃었다. 'Vast impersonal forces'를 믿는 사람들을. 이샤야 경은 오히려 역사에서 결정적인 것은 개인들이라고 믿었다. 내가 ‘나쁜 존 왕’이라고 이름 붙이 역사 이론, 이 이론은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들의 성격과 행동이라고 한다. 이 이론은 오래된 족보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인 천재들에게 창조적 힘을 부여하려는 욕망은 역사적 인식이 있는 이래로 원시적 상태부터의 특징이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이름 붙이기를 좋아했다. 과거의 업적에 영웅의 이름을 따서 이름 붙이기를 좋아했다. 그들의 epics 에 호머라 불리는 방랑시인의 이름을 그들의 법과 제도에 리큘러스와 솔론이라고. 같은 경향인 르네상스 시대에도 나타났다. 플루타르크-전기 작가이면서 도덕가-훨씬 더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고전을 부활시키는 데 있어서 고대 역사가들보다도. 이 나라에서는 특별히 우리는 모두 엄마 무릎에서부터 이런 것들을 배웠다. 우리는 이제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약간 유아스럽다고, 아니 어쨌든 어린이 같이 순수하다고. 그것은 그럴 듯해 보인다. 사회가 좀 더 간단했을 때, 그리고 공적인 인들이 일부의 사람들에 의해 운영이 되는 시절에는.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맞지 않는다. 요즘같이 더 복잡한 사회에서는 그리고 19세기의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과학의 탄생은 이러한 복잡성에 대한 대응인 것이다.
Chapter 2_23_68p The Society and Individual
Yet the old tradition dies hard. At the beginning of this century, 'History is the biography of great men' was still a reputable dictum. Only ten years ago a distinguished American historian accused his colleagues, perhaps not too seriously, of the 'mass murder of historical characters by treating them as 'puppets of social and economic forces'. Addicts of this theory tend nowadays to be shy about it; but, after some searching, I found an excellent contemporary statement of it in the introduction to one of Miss Wedgwood's books The behaviour of men as individuals [she writes] is more interesting to me than their behaviour as groups or classes. History can be written with this bias as well as another; it is neither more, nor less, misleading. . . This book. . . is an attempt to understand how these men felt and why, in their own estimation, they acted as they did.' This statement is precise; and, since Miss Wedgwood is a popular writer, many people, I am sure, think as she does. Dr Rowse tells us, for instance, that the Elizabethan system broke down because James I was incapable of understanding it, and that the English revolution of the seventeenth century was an 'accidental' event due to the stupidity of the two first Stuart kings. 하지만 옛날 전통은 잘 죽지 않는다. 역사는 위대한 사람의 전기이다. 라는 말은 여전히 인기 있는 유행어였다. 오직 10년 전에(1951년) 유명한 미국의 역사가는 그의 동료들을 비난했다. 아마 크게 진지하지 않게, 역사적 인물들의 대량 학살에 대해서 그들을 사회적, 경제적 힘의 꼭두각시로 취급함으로써 그들을 대량 학살했다고 비난했다. 이와 같은 이론의 탐닉은 지금은 좀 부끄러워하는 듯하다. 그러나 약간의 조사 후에 나는 뛰어난 현대적인 문장을 발견했다. 외지우드의 책들의 서문에서 그녀는 서술하기를 개인적인 인물들의 행동에 더 흥미가 있다. 그들의 집단이나 계급의 존재로의 행동보다. 역사는 이와 같은 편향으로 쓰여 질 수 있다. 그것은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오도가 아니다. 이 책은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느꼈고 그들이 그들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행동했는지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이 진술은 정확하다. 외지우드 여사는 인기 작가이고 많은 사람들 또는 그녀와 같이 생각한다. 로즈박사는 우리에게 말하기를 앨리자베스 시스템은 붕괴되었다. 제임스 1세가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17세기 영국 혁명은 우연적인 사건이었다. 스튜어트 왕조의 처음 두 왕의 어리석음 때문에 일어났다고 한다.
Chapter 2_24_69p The Society and Individual
Even Sir James Neale, a more austere historian than Dr Rowse, sometimes seems more eager to express his admiration for Queen Elizabeth than to explain what the Tudor monarchy stood for; and Sir Isaiah Berlin, in the essay which I have just quoted, is terribly worried by the prospect that historians may fail to denounce Genghis Khan and Hitler as bad men. The Bad King John and Good Queen Bess theory is especially rife when we come to more recent times. It is easier to call communism 'the brain-child of Karl Marx'(I pluck this flower from a recent stockbrokers' circular) than to analyse its origin and character, to attribute the Bolshevik Revolution to the stupidity of Nicholas II or to German gold than to study its profound social causes, and to see in the two world wars of this century the result of the individual wickedness of Wilhelm II and Hitler rather than of some deep-seated breakdown in the system of international relations. Miss Wedgwood's statement, then, combines two propositions. The first is that the behaviour of men as individuals is distinct from their behaviour as members of groups or classes, and that the historian may legitimately choose to dwell on the one rather than on the other. The second is that the study of the behaviour of men as individuals consists of the study of the conscious motives of their actions. 닐조차도, 로즈 박사보다 더 진지한 역사였던, 가끔 더 열중하는 듯 보인다. 그의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에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해서 더 존경심을 표시한다. 튜더 왕조가 어떠했는가? 설명을 하려고 하는 것보다. (추측 엘리자베스 여왕은 튜더 왕조 때 여왕인 듯) 이샤야 벌린 경은 방금 내가 인용한 에세이에서 지나치게 걱정한다. 전망에 대해서 역사가들은 칭기스칸이나 히틀러를 나쁜 인물이라고 비난하는 데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나쁜 존 왕'과 '좋은 베스 여왕' 이론은 우리가 현대 쪽으로 올수록 더 많이 얘기되어졌다. 공산주의를 칼 막스의 뇌의 소산이라고 부르기가 더 쉽다. 나는 이것을 최근의 증권 잡지에서 봤다. 그것의 기원과 성격들 분석하느라 수고하기보다. 그리고 볼세비키 혁명을 니콜라스 2세나 독일 금으로 돌리기가 더 쉽다. 심오한 사회적 원인들을 연구하기 보다는. 그리고 지금 세기의 세계 대전의 원인을 빌헬름 2세나 히틀러의 개인적인 악덕의 결과로 돌리기가 더 쉽다. 국제적 관계 시스템의 뿌리 깊은 파산으로부터 원인을 찾으려 하는 것보다는. 웨지우드 여사의 진술은 두 가지 전제를 결합한다. 첫 번째 인간의 행동은,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행동은 집단이나 계급의 소속으로서의 그들의 행동과는 다르다. 그리고 역사가는 정당하게 집단이나 계급의 소속으로의 개인들을 분석하기보다 그냥 사회와 무관한 개인으로 연구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정당할지도 모른다고 웨지우드 여사는 주장한다. 두 번째 개인으로서의 인간들의 행위에 대한 연구는 그들 행동 각각에 대해 의식적인 동기들의 연구로 이루어진다고 웨지우드 여사는 말한다.
Chapter 2_25_70p The Society and Individual
After what I have already said, I need not labour the first point. It is not that the view of man as an individual is more or less misleading than the view of him as a member of the group; it is the attempt to draw a distinction between the two which is misleading. The individual is by definition a member of a society, or probably of more than one society - call it group, class, tribe, nation, or what you will. Early biologists were content to classify species of birds, beasts, and fishes in cages, aquariums, and showcases, and did not seek to study the living creature in relation to its environment. Perhaps the social sciences today have not yet fully emerged from that primitive stage. Some people distinguish between psychology as the science of the individual and sociology as the science of society; and the name 'psychologism' has been given to the view that all social problems are ultimately reducible to the analysis of individual human behaviour. But the psychologist who failed to study the social environment of the individual would not get very far. It is tempting to make a distinction between biography, which treats man as an individual, and history, which treats man as part of a whole, and to suggest that good biography makes bad history.’ Nothing causes more error and unfairness in man's view of history', Acton once wrote, 'than the interest which is inspired by individual characters.’ 내가 이미 말했던 것을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겠다. 어떤 사람을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는 게 다소 오류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룹의 멤버로 보는 것보다. 둘 사이에 경계선을 그을려는 시도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개인은 정의대로 하면 사회의 한 구성원이다. 아니면 하나 이상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것을 그룹, 계급, 종족, 국가등 당신이 무엇이라고 부르든. 초기의 생물학자들은 만족했다. 분류하는 것을, 새들의 종류, 짐승의 종류, 그리고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등, 그리고 쇼케이스에 있는. 그리고 그 환경과의 살아있는 생물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았다. 아마 사회과학들은 오늘날 아직 완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그 원시적인 단계로부터. 어떤 사람들은 구분한다. 개인을 연구하는 과학인 심리학과 사회를 연구하는 사회학으로. 그리고 심리학주의라는 이름은 어떤 견해에 주어졌다. 모든 사회적 문제들은 궁극적으로 개인행동의 분석으로 귀결된다고. 그러나 심리학자들,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는 것에 실패한 심리학자들, 개인의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는데 실패한 심리학자들은 멀리 갈 수 없다. 매력 있는 듯하게 보인다. 인간의 개인으로 보는 전기전과 인간의 전체의 일부분으로 보는 역사와의 차이를 시도하는 것은 매력있어 보인다. 그리고 좋은 젼기는 나쁜 역사를 만든다고 제시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더 이상 더 오류와 불공정을 드러내는 것은 없다. 인간의 역사에서 액튼이 한 때 썼듯이, 개인적인 성격들에 의해 환기되는 관심들만큼 더 오류와 비공정을 드러내는 없다.
Chapter 2_26_71p The Society and Individual
But this distinction, too, is unreal. Nor do I want to take shelter behind the Victorian proverb placed by G. M. Young on the title-page of his book Victorian England: 'Servants talk about people, gentlefolk discuss things.' Some biographies are serious contributions to history: in my own field, Isaac Deutscher's biographies of Stalin and Trotsky are outstanding examples. Others belong to literature, like the historical novel. ‘To Lytton Strachey', writes Professor Trevor-Roper, 'historical problems were always, and only, problems of individual behaviour and individual eccentricity. . . Historical problems, the problems of politics and society, he never sought to answer, or even to ask.'" Nobody is obliged to write or read history; and excellent books can be written about the past which are not history. But I think we are entitled by convention-as I propose to do in these lectures - to reserve the word 'history' for the process of inquiry into the past of man in society. The second point, i.e. that history is concerned to inquire why individuals 'in their own estimation, acted as they did', seems at first sight extremely odd; and I suspect that Miss Wedgwood like other sensible people, does not practise what she preaches. 그러나 이 구별은 또한 현실적이지 않다. 또한 나는 피난처를 만들고 싶지 않다. 빅토리언 속담에 G.M.Young에 의해 제공된 속담, 그의 책 빅토리언 시대의 영국. 하인들은 사람들에 관해 얘기하고 귀족들은 사물들에 관해 논의한다. 어떤 전기물들은 역사에 진지한 기여를 한다. 내 분야에서는 아이작 도이쳐의 스탈린과 트로츠키에 관한 전기물들은 눈에 띄는 예들이다. 다른 것들은 문학 작품에 속한다. 역사적 소설처럼. 스트레치에게 로퍼 교수가 얘기를, 역사적 문제들은 언제나 개인적인 행위에 관한 문제들이며 개인적인 특이성에 관한 것이다. 역사적 문제들, 정치와 사회에 관한 문제들은 그는 결코 답을 찾지 않았고, 심지어 질문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역사책을 쓰거나 읽는 것에 대해 강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뛰어난 책들도 씌어질 수 있다. 역사책은 아니지만 과거에 관해 씌어진 것 중에서. 그러나 나는 관례적으로 역사란 것은 사회속에 있는 과거의 인간에 대한 탐구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역사는 각 개인들이 각자 자신의 판단대로 행동한 것을 연구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처음 언뜻 보기에도 이상하다. 난 웨지우드 여사가 다른 분별 있는 사람들 같이 그는 주장하고 역설하는 대로 실천하고 행동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Chapter 2_27_72p The Society and Individual
If she does, she must write some very queer history. Everyone knows today that human beings do not always, or perhaps even habitually, act from motives of which they are fully conscious or which they are willing to avow; and to exclude insight into unconscious or unavowed motives is surely a way of going about one's work with one eye wilfully shut. This is, however, what, according to some people, historians ought to do. The point is this. So long as you are content to say that the badness of King John consisted in his greed or stupidity or ambition to play the tyrant, you are speaking in terms of individual qualities which are comprehensible even at the level of nursery history. But, once you begin to say that king John was the unconscious tool of vested interests opposed to the rise to power of the feudal barons, you not only introduce a more complicated and sophisticated view of king John's badness, but you appear to suggest that historical events are determined not by the conscious actions of individuals, but by some extraneous and all-powerful forces guiding their unconscious will. This is, of course, nonsense. So far as I am concerned, I have no belief in Divine Providence, World Spirit, Manifest Destiny, History with a capital H, or any other of the abstractions which have sometimes been supposed to guide the course of events; and I should endorse without qualification the comment of Marx: 만약 그녀가 그렇게 한다면 그녀는 매우 이상한 역사를 써야 한다. 오늘날 모든 사람은 한다. 인간은 언제나 아마 습관적으로 동기로부터 행동하지 않는다. 완전히 의식한다고 주장하는 동기, 그들이 기꺼이 avow. 그리고 통찰을 배제하는 것은, 무의식이나 unavowed 동기를 배제하는 것은 한 눈을 의도적으로 감고 작업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에 의하며 역사는 꼭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만족한다면 존 왕의 나쁜 점은 그의 탐욕과 어리석음 또는 독재를 휘두르는 야망에 있다고 말하는 것에 만족한다면 당신은 개인적인 특성들을 얘기하는 것이다. 유치원생들도 이해하는 레벨의 개인적인 특성들을. 그러나 당신이 존 왕은 무의식의 도구였다. 이익집단의 도구였다. 반대하는 도구 막 성장하고 있었던 봉건 영주들의 무의식적 도구였다. 당신은 더 복잡하고 세련된 존왕의 나쁜 점을 얘기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당신은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사건들은 결정된다. 인간들의 의식적인 행동들이 아니라 어떤 외부의 막강한 힘들에 의해 그들을 무의식으로 이끄는 막강한 힘에 의해. 물론 이것도 난센스다. 내가 생각하는 한, 나는 아래와 같은 것에 믿음이 없다. 신의 섭리, 세계정신, Manifest Destiny, 추상적인 역사등. 그리고 다른 추상적인 것들 때때로 사건의 진행을 예정된 것으로 인도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나는 믿음이 없다. 난 오히려 다음과 같은 마르크스의 생각에 무조건 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