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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history_시즌2

[역사란 무엇인가_시즌2] 96~102(60+6*7)p_8월 7일(일)

작성자Frida|작성시간22.08.08|조회수19 목록 댓글 0

 

Chapter 3_13_96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If the evidence is not clear whether Richard murdered the princes in the Tower, the historian will ask himself-perhaps unconsciously rather than consciously-whether it was a habit of rulers of the period to liquidate potential rivals to their throne; and his judgment will, quite rightly, be influenced by this generalization. The reader, as well as the writer, of history, is a chronic generalizer, applying the observation of the historian to other historical contexts with which he is familiar-or perhaps to his own time. When I read Carlyle's French Revolution, I find myself again and again generalizing his comments by applying them to my own special interest in the Russian revolution. Take this on the terror: Horrible, in lands that had known equal justice-not so unnatural in lands that had never known it. Or, more significantly, this: It is unfortunate, though very natural, that the history of this period has so generally been written in hysterics. Exaggeration abounds, execration, wailing; and on the whole, darkness.' 만약 증거가 분명치 않다면, 리차드가 탑에서 왕자들을 살해한 증거가 명확치 않다면 그 역사가는 스스로 질문할 것이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인 아닌, 그 당시에는 지배자들의 습관이었나? 하고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것이. 왕위 계승에서. 그리고 그의 판단은 정당하게 일반화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독자는, 작가는 당연하고, 역사책을 읽은 독자는 만성적인 일반화시키는 사람이다. 본인의 관찰을 다른 역사적 맥락에 적용시키는, 그가 익숙한 다른 맥락에 적용시키는, 또는 그 자신의 시대에 적용시키려 한다. 내가 카알라일의 프랑스 혁명을 읽었을 때, 나는 나 스스로 그의 코멘트들을 내 자신의 관심 분야인 러시아 혁명에 적용시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 테러에 대해서 보자. 공정한 정의가 잘 알려진 지역에서는 이런 종류의 테러가 끔찍하지만, 공정한 정의라는 것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는 부자연스럽지 않다. 그것은 자연스럽지만 불행한 일이다. 이 시기의 역사가 그렇게 일반적으로 히스테릭하게 쓰여 졌다는 것이. 과장, 증오, 비탄이 넘쳐나고, 전반적으로 어둠으로 덮혀 있는 것이다.

 

Chapter 3_14_97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Or another, this time from Burckhardt on the growth of the modern state in the sixteenth century: The more recently power has originated, the less it can remain stationary-first because those who created it have become accustomed to rapid further movement and because they are and will remain innovators per se; secondly, because the forces aroused or subdued by them can be employed only through further acts of violence. It is nonsense to say that generalization is foreign to history; history thrives on generalizations. As Mr Elton neatly puts it in a volume of the new Cambridge Modern History, 'what distinguishes the historian from the collector of historical facts is generalization';" he might have added that the same thing distinguishes the natural scientist from the naturalist or collector of specimens. But do not suppose that generalization permits us to construct some vast scheme of history into which specific events must be fitted. And, since Marx is one of those who is often accused of constructing, or believing in, such a scheme, I will quote by way of summing-up a passage from one of his letters which puts the matter in its right perspective: 또는 다른 것은 부르크하르트의 16세기의 근대 국가의 성장에 관한 것이다. 어떤 권력이 최근에 생성되었을수록 그것은 덜 안정적이다. 첫 번째 그것을 만든 사람은 빠른 변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이고 그들은 본질적으로 혁신자들이다. 둘째로 그들에 의해 힘으로 눌러진 사람들은 오로지 힘에 의해서만 그들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화가 역사에 낯설다’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역사는 일반화가 thrives on 하고 있다. 엘튼이 간결하게 표현했듯이 NCMS에서.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들의 수집가들과 구별되는 것은 일반화이다. 그는 아마 보태고 싶었었지도 모른다. 같은 일이 자연과학자와 어떤 수집가들과 구분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그러나 일반화가 우리에게 역사에 대한 방대한 뼈대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마라. 그것에 특별한 사건들을 모두 끼워 넣을 수 있는. 마르크스는 그러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그런 방대한 것을 만들 수 있다고 또는 그러한 계획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한 사람이라고 비난당하고 있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마무리 격으로 그의 편지 중 하나를 인용할 것이다. 이 것에 대해 옳은 관점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Chapter 3_15_98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Events strikingly similar, but occurring in a different historical milieu(환경), lead to completely dissimilar results. By studying each of these evolutions separately and then comparing them, it is easy to find the key to the understanding of this phenomenon; but it is never possible to arrive at this understanding by using the passe-partout(master key) of some historical-philosophical theory whose great virtue is to stand above history. History is concerned with the relation between the unique and the general. As a historian, you can no more separate them, or give precedence to one over the other, than you can separate fact and interpretation. This is perhaps the place for a brief remark on the relations between history and sociology. Sociology at present faces two opposite dangers-the danger of becoming ultra-theoretical and the danger of becoming ultra-empirical. The first is the danger of losing itself in abstract and meaningless generalizations about society in general. Society with a big S is as misleading a fallacy as History with a big H. This danger is brought nearer by those who assign to sociology the exclusive task of generalizing from the unique events recorded by history: it has even been suggested that sociology is distinguished from history by having 'laws'." 눈에 띄게 유사한, 그러나 다른 역사적 환경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완전히 다른 결과들을 가져온다. 이와 같은 사건들을 별도로 조사하고 그들을 비교하는 것에 의해 우리는 이와 같은 현상을 이해하는 열쇠를 발견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결코 이해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마스터를 키를 사용하는 것에 의해 어떤 역사적-철학적 이론의 마스터 키를 사용하는 것에 의해서, 위대한 미덕을 역사 위에 두는 역사적-철학적 이론이라는 마스터 키를 사용하는 것에 의해서는 우리는 이러한 현상의 이해에 도달 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다. 역사가로서 당신은 그들을 분리할 수 없고, 어느 한쪽에 우위를 둘 수 없다. 당신이 사실과 해석을 분리할 수 없듯이. 이것은 아마 역사학과 사회학 사이의 관계들에 관한 간단한 언급을 하기 좋은 시점이다. 사회학은 현재 두 가지 위험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극단적으로 이론적인 면과 하나는 극단적인 경험론적인 위험. 첫 번째는 잃어버릴 위험이다. 추상성과 의미 없는 일반화 속에서 일반적인 사회에 관한 것만 연구하다가. 대문자 S를 갖는 사회학은 대문자 H를 갖는 역사학만큼이나 잘못된 곳으로 인도하는 오류이다. 이 위험은 더 가까워진다. 역사학에 배타적인 일반화의 과정을 부여하는 사람들에게. 역사에 의해 기록된 독특한 사건들로부터 일반화를 배타적으로 시도하는 작업을 부여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것은 쭉 제시되어 왔다. 심지어 사회학은 법칙들을 갖는 점에서 역사학과 구별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Chapter 3_16_99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he other danger is that foreseen by Karl Mannheim almost a generation ago, and very much present today, of a sociology 'split into a series of discrete technical problems of social readjustment'. Sociology is concerned with historical societies, every one of which is unique and moulded by specific historical antecedents and conditions. But to attempt to avoid generalization and interpretation by confining oneself to so-called 'technical' problems of enumeration and analysis is merely to become the unconscious apologist of a static society. Sociology, if it is to become· a fruitful field of study, must, like history, concern itself with the relation between the unique and the general. But it must also become dynamic-a study not of society at rest (for no such society exists), but of social change and development. For the rest, I would only say that the more sociological history becomes, and the more historical sociology becomes, the better for both. Let the frontier between them be kept wide open for two-way traffic. The question of generalization is closely connected with my second question: the lessons of history. The real point about generalization is that through it we attempt to learn from history, to apply the lesson drawn from one set of events to another set of events: when we generalize, we are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trying to do this. 다른 위험은 칼 만하임에 의해 보여진다. 거의 한 세대 전에. 그리고 오늘날 사회학은 일련의 분산된 기술적인 문제들로 갈라진다. 사회적 재조정에 관한 일련의 기술적인 문제들로 분리된다. 사회학은 역사적인 사회들이다. 그리고 그것들 각자는 유일하고 특정한 역사적 선행 원인들과 조건들에 의해 형성된다. 그러나 피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 일반화와 해석을 피하려는 시도. 스스로 제한하는 것에 의해. 소유 기술적인 문제들. 나열과 분석의 기술적인 문제들에 제한하는 것에 의해 일반화와 해석을 피하려는 시도는 정적인 사회의 무의식적인 apologist 가 되는 것이다. 사회학이 풍성한 연구 분야가 되려면, 역사와 같이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 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려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동적이 되어야 한다. 정지해 있는 사회가 아니라(그런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 변화와 발달 단계의 사회를 연구하는 것. 마지막으로 나는 오직 다음과 같은 것만 말하고자 한다. 더 사회적 역사학이 될수록 더 역사적 사회학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양쪽 모두에 더 좋다. 그들 사이의 경계선을 더 넓히자. 2차선 도로가 될 수 있도록. 일반화 문제는 나의 두 번째 주제인 역사에서의 교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반화에 관한 진정한 포인트는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우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다. 한 세트의 사건들을 다른 세트의 사건에 적용하려고 한다. 우리가 일반화하려고 할 때, 우리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이와 같은 것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Chapter 3_17_100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hose who reject generalization and insist that history is concerned exclusively with the unique are, logically enough, those who deny that anything can be learned from history. But the assertion that men learn nothing from history is contradicted by a multitude of observable facts. No experience is more common. In 1919 I was present at the Paris Peace Conference as a junior member of the British delegation. Everyone in the delegation believed that we could learn from the lessons of the Vienna Congress, the last great European peace congress a hundred years earlier. A certain Captain Webster, then employed in the War office, now Sir Charles Webster and an eminent historian, wrote an essay telling us what those lessons were. Two of them have remained in my memory. One was that it was dangerous, when re-drawing the map of Europe, to neglect the principle of self-determination. The other was that it was dangerous to throw secret documents into your waste-paper basket, the contents of which would certainly be bought by the secret service of some other delegation. These lessons of history were taken for gospel and influenced our behaviour. This example is recent and trivial. But it would be easy to trace in comparatively remote history the influence of the lessons of a still remoter past. Everyone knows about the impact of ancient Greece upon Rome. 일반화를 거부하고 역사는 독특한 것에 배타적으로 관계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고 주장은 충분히 논리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는 주장은 많은 관찰 가능한 사실들로부터 부정된다. 이런 경험은 흔한 것이다. 1919년에 나는 파리 평화 회의에 영국 대표단의 주니어 멤버로 있었다. 대표단에 있는 모든 사람은 믿었다. 우리는 비엔나 회의의 교훈들로부터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마지막 큰 유럽 평화 회의였다. 백년 전에 있었던. 어떤 웹스터 대위-지금은 웹스터경이며 유명한 역사가-에세이를 썼다. 우리들에게 교육을 주는. 그것들 중 기억에 남아 있는 두 개는 다음과 같다. 하나는 민족 자결주의를 무시하고 유럽지도를 그리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다른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비밀문서들을 쓰레기 통으로 버리는 것은. 그 내용들을 다른 대표단의 비밀 요원들이 매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은 안다. 역사에 관한 이 교훈들은 복음같이 받아 들여졌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줬다. 이와 같은 예는 최근의 예이고 사소한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역사에서 이런 것을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멀리 떨어진 과거의 교훈이 현재 영향을 미치는 것을 추적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가 로마에 준 충격을.

 

Chapter 3_18_101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But I am not sure whether any historian has attempted to make a precise analysis of the lessons which the Romans learned, or believed themselves to have learned, from the history of Hellas. An examination of the lessons drawn in western Europe in the seventeenth, eighteenth, and nineteenth centuries from Old Testament history might yield rewarding results. The English Puritan revolution cannot be fully understood without it; and the conception of the chosen people was an important factor in the rise of modern nationalism. The stamp of a classical education was heavily imprinted in the nineteenth century on the new ruling class in Great Britain. Grote, as I have already noted, painted to Athena as an exemplar for the new democracy; and I should like to see a study of the extensive and important lessons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imparted to British empire-builders by the history of the Roman Empire. In my own particular field, the makers of the Russian revolution were profoundly impressed-one might almost say, obsessed–by the lessons of the French revolution, of the revolutions of 1848, and of the Paris commune of 1871. But I shall recall here the qualification imposed by the dual character of history. Learning from history is never simply a one-way process. 나는 확신이 안 선다. 어떠한 역사가가 시도를 했는지를 교훈들에 대한 정확한 분석, 로마인들이 배운 것, 또는 그들 스스로 배웠다고 믿는 것, 헤라스의 역사로부터. 교훈들의 조사, 서유럽에서 17, 18, 19세기의 서유럽사에서 구약성서로부터 추론된 교훈은 풍성한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영국의 푸리탄 혁명은 그것에 대한 이해 없이는 완전히는 이해가 불가하다. 그리고 선민사상은 근대 민족주의의 성장에 중요한 요인이었다. 고전 교육의 각인은 깊이 뿌리박았다. 19세기 영국의 새로운 지배 계급에. 그로테,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아테네를 모범적인 새로운 민주주의로 삼았다. 나는 보고 싶다. 광범위하고 중요한 교훈들을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영국 제국 건설자들에게 물려준, 로마 제국의 역사 교훈을. 내 자신의 분야에서는 러시아 혁명 주체들은 깊이 영향을 받았다. 아니 거의 사로잡혔다. 프랑스 혁명의 교훈과 1848년의 혁명에 그리고 1971년 파리 꼬뮨에. 나는 다시 상기시키고자 한다. 역사의 이와 같은 양면성을.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결코 한쪽 방향이 아니다.

 

[역사란 무엇인가_시즌2] 102~108(60+6*8)p_4월 8일(금)

Chapter 3_19_102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o learn about the present in the light of the past means also to learn about the past in the light of the present. The function of history is to promote a profounder understanding of both past and present through the interrelation between them. My third point is the role of prediction in history: no lessons, it is said, can be learned from history because history, unlike science, cannot predict the future. This question is involved in a tissue of misunderstandings. As we have seen, scientists are no longer so eager as they used to be to talk about the laws of nature. The so-called laws of sciences which affect our ordinary life are in fact statements of tendency, statements of what will happen other things being equal or in laboratory conditions. They do not claim to predict what will happen in concrete cases. The law of gravity does not prove that particular apple will fall to the ground: somebody may catch it in a basket. The law of optics that light travels in a straight line does not prove that a particular ray of light may not be refracted or scattered by some intervening object. But this does not mean that these laws are worthless, or not in principle valid. Modern physical theories, we are told, deal only with the probabilities of events taking place. Today science is more inclined to remember that induction can logically lead only to probabilities or to reasonable belief, and is more anxious to treat its pronouncements as general rules or guides, the validity of which can be tested only in specific action. 과거에 비추어 현재에 관해서 배운다는 것은 현재 관점에서 과거를 또한 배운다는 것이다. 역사의 기능은 더 깊은 이해를 높이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에 관한 이해. 그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나의 세 번째 포인트는 역사에서 예언에 관한 역할이다. 역사에서는 어떠한 교훈도 얻을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역사는 과학과 달리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고 말해진. 이 문제는 여러 가지 오해의 계층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보았듯이 과학자들은 더 이상 자연의 법칙들에 관하여 말하는 것에 열중하지 않는다. 소위 과학의 법칙들, 우리 일상에 영향을 주는 과학의 법칙들은 사실 경향의 진술이거나 실험실 조건에서 모든 것이 같다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들은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예측하지 않는다. 중력 법칙은 특정한 사과가 꼭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증명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빛이 직진으로 진행한다는 광학 법칙은 특정한 빛이 중간의 방해물에 의해 굴절되거나 산란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런 법칙이 소용없다거나 원리적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현대 물리 이론들은 우리가 듣기에는 오직 어떤 사건이 일어날 확률들만 다룬다고 한다. 오늘날 과학은 더 아래와 같은 것을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다. 연역은 논리적으로 오직 확률적으로나 이성적인 믿음으로 유도한다고. 그리고 더 열중한다. 그 선언들은 일반적인 규칙이든가 또는 가이드 정도로 간주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의 유효성은 오직 특정한 행동속에서만 테스트 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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